성령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③ (행전2:37-47)
본문
오늘은 사도신경-성도가 서로 교통하며-에 대하여 배우려고 합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며’란 말을 통하여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 모습을 엿 볼수 있습니다.
‘교통’이란 말은 원어로 ‘코이노니아’로 한마디로 번역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떤 데는 ‘교제’라고 했고 어떤 데는 ‘교통’이라고 번역 했고 어떤 데는 ‘동참’ 또는 ‘나누어 준다’고 번역하였습니다.
이런 뜻이 다 들어 있기 때문에 피차에 유익과 선을 위하여 교제하고 협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첫째. 성도의 교통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인종,빈부,유무식,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하나님의 가족이 된 자들입니다.
‘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엡2:19)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교제는 땅 위의 신자만 가족이 아니라 별세하여 천국에 올라간 성도와도 영원한 교제를 할 자들입니다. 고전13:12에 ‘그 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란 말은 땅에서 모르던 신자들도 하늘에 가면 다 환히 안다는 말씀입니다.
실례로 마17:1-8에 보면 예수께서 갑자기 변화하셨을 때 좌우편에 모세와 엘리야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통성명한 일이 없었으나 영안이 열린 세 제자가 단번에 알아본 것처럼 변화되어 사는 천국에 가면 인사나 소개받을 것 없이 선후배 간에 환히 알고 지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세계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겠습니까
둘째. 성도의 교통에는 선행 조건이 있습니다.
성도 간에 교통이 있기 전에 먼저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일1:3에 ‘`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니라’고 하셨고, 고후13:13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 하셨습니다.
곧 성부,성자,성령 삼위 일체 하나님과 교통이 있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주님과 교통이 있어야겠습니다. 옛날 어느 경건한 수난 성도가 기도하는 중 주님의 환상을 보았는데 주께서 물으시기를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나에게 무엇을 구하느냐’ 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겸손히 대답하기를 ’주여 당신만으로 만족합니다. 그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먼저 주와 깊은 교제를 가진 자는 사람과의 교제도 바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22:37-40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받은 성도는 위로 하나님과 교제를 하고 옆으로 사람들과는 화평 관계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본래 십자가는 수직과 수평의 두 나무토막으로 되어 있습니다. 위와 아래인 수직은 하나님과 사람의 교제를 말하고 옆으로 된 수평은 사람과 사람 간의 교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였던 내가 용서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게 되고, 나아가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로막힌 것들도 그리스도의 공로를 보고 용서하고 이해하여 서로 사귀게 되는 것입니다.
세째. 성도 교통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의 의로 성도 각인에게 덮어서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선언하신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 각인의 할 일은 주님을 사랑함과 동시에 성도 서로가 죄를 용서해 주면서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주님을 일시 반역했지만 용서받은 감격을 말년에 가서 성도들에게 설명하기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8)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초목은 수분을 취하여 자라며 사람은 곡식을 먹고 자라는 것처럼 성도는 사랑을 주고 받음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통이란 서로 돕고 산다는 뜻입니다. 롬12:15에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고 하셨습니다.
아름다운 꽃밭이 있으면 벌과 나비는 모여 오기 마련인 것처럼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가 있는 곳에 교인들이 모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초대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행2:46-47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네째. 그러면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성도는 교통해야 합니다.
성도는 고립적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신앙은 나와 하나님 관계에서 시작되는 것이지만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나와 하나님 그리고 내 이웃의 삼각관계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무의 가지는 여럿이지만 한 나무에 붙어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지와 가지가 연결이 됩니다. 사람의 몸도 여러 지체가 있지만 한 몸에 붙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체끼리 관련이 있습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몸임과 동시에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으로 인하여 관계를 맺고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생활은 서로 사귀는 면이 있어야 합니다. 사귀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교역자와 교인간의 교제가 있고 교인과 교인끼리 잘 지내야 합니다. 신앙의 동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보면 항상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2성도는 화평과 일치를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성도가 모이는 것은 귀한 일인데 모여서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옛날 고린도 교회는 모이기는 잘했는데 모여서는 ‘나는 바울파다, 나는 아볼로파다, 나는 게바파다, 나는 그리스도파다’라면서 당파를 지어 서로 분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초대교회처럼 화평과 일치의 생활로 칭송받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엡4:1에 ‘
그러므로 주안에서 갖힌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시는 것을 힘써지키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성도의 화평과 일치의 생활은 가장 귀합니다.
그러므로 관용의 덕이 필요한 것입니다.
3성도는 서로 상부상조해야 합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는 신앙고백은 성도의 ‘상부상조하는 생활’을 믿는다는 것으로 동참하고 공급하고 나누어 주는 생활입니다.
실제적으로 초대교회가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은 은혜받은 다음에 모든 물건을 서로 융통했습니다(물질의 상부상조)
그들은 문자 그대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바나바가 자기의 재산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사도들이 그것을 극빈한 자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멀리 있는 안디옥 교회가 헌금을 해서 나누어 주었고, 빌립보 교회,고린도 교회들이 다 헌금을 해서 역시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구제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연보의 코이노니아를 가져야 합니다. 연보는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고 또한편으로는 사람에게 주는 것으로 일석이조의 역할을 하여 하나님과의 교제와 사람과의 교제를 다같이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은혜받은 다음 기도로 서로 돠왔습니다(기도의 상부상조)
어느 북장로교 여선교사는 다리 한쪽에 암이 생겨서 부득히 짤랐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무척 슬퍼했고 몸씨도 괴로워 했으나 많은 성도들이 위해서 기도해 주므로 그 어려운 수술을 하고 기쁜 마음으로 퇴원하여 다시 한국에 복음을 전하려 나왔다고 합니다.
서로 기도해 주는 가운데 새로운 힘을 얻었습니다. 병도 낫게됩니다. 환란 중에 서로 상부상조합니다. 핍박 중에서도 상부상조합니다.
㉰그들은 서로 동고동락하는 생활을 했습니다(생활의 상부상조)
롬12:15에 ‘즐거워 하는 자로 즐거워하고 우는 자로 함께 울라’고 했습니다. 동고동락을 하는 생활을 하자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모든 생활에 동참하는 것이 성도의 교제입니다. 고아원, 양로원, 유치장, 병원 등 우리가 선한 사업에 동참할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서로 도와주는데 힘을 쓰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교통은 코이노니아라는 말로 동참하고 참여하고 나누어 준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무슨일에든지 열심히 모이고, 동참하고, 나누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교통의 선행조건은 하나님과의 교통에 있습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교통해야 하고, 화평과 일치를 위하여 힘써야 하고, 상부상조해야 합니다.
물질의 상부상조, 기도의 상부상조, 생활의 상부상조로 교제에 힘쓰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며’란 말을 통하여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 모습을 엿 볼수 있습니다.
‘교통’이란 말은 원어로 ‘코이노니아’로 한마디로 번역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떤 데는 ‘교제’라고 했고 어떤 데는 ‘교통’이라고 번역 했고 어떤 데는 ‘동참’ 또는 ‘나누어 준다’고 번역하였습니다.
이런 뜻이 다 들어 있기 때문에 피차에 유익과 선을 위하여 교제하고 협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첫째. 성도의 교통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인종,빈부,유무식,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하나님의 가족이 된 자들입니다.
‘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엡2:19)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교제는 땅 위의 신자만 가족이 아니라 별세하여 천국에 올라간 성도와도 영원한 교제를 할 자들입니다. 고전13:12에 ‘그 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란 말은 땅에서 모르던 신자들도 하늘에 가면 다 환히 안다는 말씀입니다.
실례로 마17:1-8에 보면 예수께서 갑자기 변화하셨을 때 좌우편에 모세와 엘리야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통성명한 일이 없었으나 영안이 열린 세 제자가 단번에 알아본 것처럼 변화되어 사는 천국에 가면 인사나 소개받을 것 없이 선후배 간에 환히 알고 지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세계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겠습니까
둘째. 성도의 교통에는 선행 조건이 있습니다.
성도 간에 교통이 있기 전에 먼저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일1:3에 ‘`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니라’고 하셨고, 고후13:13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 하셨습니다.
곧 성부,성자,성령 삼위 일체 하나님과 교통이 있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주님과 교통이 있어야겠습니다. 옛날 어느 경건한 수난 성도가 기도하는 중 주님의 환상을 보았는데 주께서 물으시기를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나에게 무엇을 구하느냐’ 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겸손히 대답하기를 ’주여 당신만으로 만족합니다. 그 밖에 아무것도 없습니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먼저 주와 깊은 교제를 가진 자는 사람과의 교제도 바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22:37-40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받은 성도는 위로 하나님과 교제를 하고 옆으로 사람들과는 화평 관계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본래 십자가는 수직과 수평의 두 나무토막으로 되어 있습니다. 위와 아래인 수직은 하나님과 사람의 교제를 말하고 옆으로 된 수평은 사람과 사람 간의 교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였던 내가 용서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게 되고, 나아가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로막힌 것들도 그리스도의 공로를 보고 용서하고 이해하여 서로 사귀게 되는 것입니다.
세째. 성도 교통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의 의로 성도 각인에게 덮어서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선언하신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 각인의 할 일은 주님을 사랑함과 동시에 성도 서로가 죄를 용서해 주면서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주님을 일시 반역했지만 용서받은 감격을 말년에 가서 성도들에게 설명하기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8)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초목은 수분을 취하여 자라며 사람은 곡식을 먹고 자라는 것처럼 성도는 사랑을 주고 받음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통이란 서로 돕고 산다는 뜻입니다. 롬12:15에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고 하셨습니다.
아름다운 꽃밭이 있으면 벌과 나비는 모여 오기 마련인 것처럼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가 있는 곳에 교인들이 모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초대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행2:46-47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네째. 그러면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성도는 교통해야 합니다.
성도는 고립적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신앙은 나와 하나님 관계에서 시작되는 것이지만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나와 하나님 그리고 내 이웃의 삼각관계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무의 가지는 여럿이지만 한 나무에 붙어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지와 가지가 연결이 됩니다. 사람의 몸도 여러 지체가 있지만 한 몸에 붙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체끼리 관련이 있습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몸임과 동시에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으로 인하여 관계를 맺고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생활은 서로 사귀는 면이 있어야 합니다. 사귀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교역자와 교인간의 교제가 있고 교인과 교인끼리 잘 지내야 합니다. 신앙의 동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보면 항상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2성도는 화평과 일치를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성도가 모이는 것은 귀한 일인데 모여서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옛날 고린도 교회는 모이기는 잘했는데 모여서는 ‘나는 바울파다, 나는 아볼로파다, 나는 게바파다, 나는 그리스도파다’라면서 당파를 지어 서로 분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초대교회처럼 화평과 일치의 생활로 칭송받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엡4:1에 ‘
그러므로 주안에서 갖힌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시는 것을 힘써지키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성도의 화평과 일치의 생활은 가장 귀합니다.
그러므로 관용의 덕이 필요한 것입니다.
3성도는 서로 상부상조해야 합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는 신앙고백은 성도의 ‘상부상조하는 생활’을 믿는다는 것으로 동참하고 공급하고 나누어 주는 생활입니다.
실제적으로 초대교회가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은 은혜받은 다음에 모든 물건을 서로 융통했습니다(물질의 상부상조)
그들은 문자 그대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바나바가 자기의 재산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사도들이 그것을 극빈한 자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멀리 있는 안디옥 교회가 헌금을 해서 나누어 주었고, 빌립보 교회,고린도 교회들이 다 헌금을 해서 역시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구제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연보의 코이노니아를 가져야 합니다. 연보는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고 또한편으로는 사람에게 주는 것으로 일석이조의 역할을 하여 하나님과의 교제와 사람과의 교제를 다같이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은혜받은 다음 기도로 서로 돠왔습니다(기도의 상부상조)
어느 북장로교 여선교사는 다리 한쪽에 암이 생겨서 부득히 짤랐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무척 슬퍼했고 몸씨도 괴로워 했으나 많은 성도들이 위해서 기도해 주므로 그 어려운 수술을 하고 기쁜 마음으로 퇴원하여 다시 한국에 복음을 전하려 나왔다고 합니다.
서로 기도해 주는 가운데 새로운 힘을 얻었습니다. 병도 낫게됩니다. 환란 중에 서로 상부상조합니다. 핍박 중에서도 상부상조합니다.
㉰그들은 서로 동고동락하는 생활을 했습니다(생활의 상부상조)
롬12:15에 ‘즐거워 하는 자로 즐거워하고 우는 자로 함께 울라’고 했습니다. 동고동락을 하는 생활을 하자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모든 생활에 동참하는 것이 성도의 교제입니다. 고아원, 양로원, 유치장, 병원 등 우리가 선한 사업에 동참할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서로 도와주는데 힘을 쓰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교통은 코이노니아라는 말로 동참하고 참여하고 나누어 준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무슨일에든지 열심히 모이고, 동참하고, 나누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교통의 선행조건은 하나님과의 교통에 있습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교통해야 하고, 화평과 일치를 위하여 힘써야 하고, 상부상조해야 합니다.
물질의 상부상조, 기도의 상부상조, 생활의 상부상조로 교제에 힘쓰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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