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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위로자 예수님 (요11:2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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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살아가노라면 기쁘고 행복스러운 일도 많지만 뼈져리게 아프 고 고통스러운 일로 한숨짖고 울어야 될 때도 많습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 시간에도 지구 구석 구석에서 울고 신음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뜻밖의 재난을 당하여 울고 있을 것입니다.
엊그제 TV를 보니까, 멕시코에서 가스 폭발로 200명이 죽었습니다. 가스가 지하로 누출되어 하수계통으로 흐르다가 폭발되었는데 15m 나 되는 웅덩이가 파이면서 차들이 날아가고 사람들의 몸이 찢기고 날아가는 돌덩이와 진흙에 묻혀 버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 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말레이시아도 우리나라 처럼 큰 태풍이나 홍수로 인한 재난은 없지만 폭우로 내리는 비때문에 나무들이 쓰러지면서 차나 집들을 덮쳐서 사람들이 죽는 것을 가끔보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 시간도 배고픔 때문에 울고 있을 것입니다. 가끔 TV를 통해서 보지만, 영양실조로 뼈만 앙상한 여인이 역시 뼈에다가 가죽만 입혀 놓은 것같은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처절한 장면들 말입니다. 세계 도처에서 10억에 가까운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 다는 통계를 우리는 압니다.
또한 원치아니하는 압제와 학대의 설움에 우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얼마전에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이 곳의 한 어린아이가 부모로 부터 버림을 받고 어떤 친척인 젊은 부부에게 맡겨졌는데 너무나 학대 하고 때려서 병원에 입원한 것을 보았습니다. 양눈에도 꺼즈를 붙여 놓고 온 살에다가 줄을 꽂아 놓고,밥도 대롱을 통해서 주사기로 주는 모습을 보니 사람이 아니라 무슨 개구리 같이 느껴졌습니다. 결국 죽었다는 신문의 기사를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몰랐습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우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들은 고 독에 빠져서 가슴을 치고 우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 와의 이별을 하게 되어 우는 이가 있는가 하면 까닭없이 생의 허무 와 깊은 공허감을 느끼면서 몸부림치면서 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건강하다고 큰 소리치던 사람이 뜻하지 않게 건강을 잃어 버리고 병상에 누워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몇일 전에는 가장 근처에 있는 한 깊은 정글의 오랑아슬리 지역을 방문하였는데 마침 거기의 추장격인 지도자 부인이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막내 딸이 이제 한 4살 정도 되었을 법 한데 눈망울이 무척 맑고 예뻣습니다. 거기서 사역하는 분이 그 가족한테는 알리지 않았지만, 간암 이기 때문에 가망이 없다는 말을 제게 해 주었습니다. 같이 기도하는 가운데도 그 남편은 계속 하염없이 울기만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리아와 마르다도 사랑하는 오빠의 죽음앞에 서 가슴을 치며 울고 있습니다. 인간의 노력과 방법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절망에 부딪혀 울고 있는 것입니다. 같은 친구들과 친척들이 와서 울어 주고 있지만 문제가 해결이 되거나 깊은 위로 를 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때로는 눈물을 쏟고,땀을 흘리고,피를 토하며 노력하다 보 면 이루어지는 일도 있습니다만은 죽음의 문제란 인간의 한계점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이기에 땀을 흘려도 해결할 수 없고,눈물을 흘 려도 해결할 수 없으며,피를 흘린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흘러나오는 두 여인의 울음소리를 듣습니다. 기둥처럼 의지하고 살았던 사랑하는 오빠 나사로의 뜻밖의 죽음앞 에서 마리아와 마르다가 울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드리고 있는 이 시간도 가만히 귀 귀울여 보면, 지구의 도처 에서 이와 같은 울음소리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뜻밖의 재난앞에서, 사랑하는 이의 죽음앞에서, 회복의 가능성이 없은 병상위에서, 베가 고파서, 억울해서 울고 있는 울음이 이 지구 구석 구석에서 끊일 날이 없습니다.
몇일 전의 TV에 보니까,멕시코에서는 지하에서 가스가 터져서 갑자 기 200명이 죽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가스가 누출되어서 하수시스템으로 흐르다가 폭발되었다고 하는데 15m나 패이는 웅덩이를 만들면서 많은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었습니다.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언제 이러한 재난이 우리 곁에서 혹은 우리에게 생겨질지 알 수가 없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마리아와 마르다의 슬픔이 단지 외형적인 면 에서 사랑하는 이의 죽음때문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앞에서 속수무책인 인간의 한계와 절망때문에 흘리는 눈물이지 않겠습니까 또한 사랑하는 이를 볼 수 없다는 깊은 고독감과 자신들이 해쳐 나 가야할 험난한 앞으로의 삶을 보면서 오열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인간은 배가 고파서 울 때도 있지만,고독해서 울 때도 많습니다. 재난 때문에 울 때도 있지만,공허감과 허무적 절망 때문에 우는 때 가 더욱 많습니다. 억울하게 압제받고 학대받는 때에 울 때도 많지만, 미움받고,오해 받고,사람의 세계가 야속해서 울 때가 더 많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을 고해와 같다고 했는데, 정말 한숨과 절망 과 울음이 있는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이 고난의 바다같은 인생의 현장에 찾아 오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같이 울어 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33절에 마리아와 마르다와 장례에 참석한 자들이 우는 모습을 보시 면서 통분한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35절에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한마디로 인생의 고난과 아픔에 깊히 동참해 주시는 것입니다. 공감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여러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가 인생을 친히 경험하시며 깊이 이해 하시려는데 있습니다. 인생이 받을 수 있는 모든 고통과 고난을 친히 경험하신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고난과 슬픔을 이미 경험하셨다는 사실과 나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아신다는 내용을 생각하면 너무나 큰 마음에 위로를 받습니다.
(예)너무나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목사님들이 설교를 위하여 밤 새 고민한다. 교회를 이끌고 가는데 큰 어려움들을 만난다. 사람들의 비평과 원망때문에 괴로워 했다.-이런 내용을 들으면 괜히 제 마음에 큰 위로가 됩니다. 바로 그렇게 존경받는 훌륭한 분들도 그랬구나! 하물며 나는 어떻 겠는가

(예)어느 글에서, 스콰이어즈라는 부인이 자신의 딸을 찾은 내용이다. 자신의 남편이 한국동란 때 전사했는데 8살난 딸을 고아원에 맡겼다. 그리고 4년후에 재혼을 했는데,자신의 딸이 어느 가 정에 입양되어 잘 자란다고 하는 소식을 들은 후에는 12년 동안 소식이 끊겼다는 것이다. 그 후에 딸을 찾기 위해서 헤어진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는 사람들을 통하여 수소문을 한 끝에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20세의 맹인이 자신의 딸인 것을 알게 된다. 만나려고 했지 만 그 딸이 완강이 반대하는 것이었다. 맹인이 된 자신을 버 려두고 자신의 살길을 찾아 갔다는 분노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억지로 만남을 가졌는데, 이 딸이 매우 앙칼진 소 리로 화를 내다가 자신의 어머니도 맹인인 것을 알게되었다. 그 어머니는 과거에 유전성 눈병을 앓고 있었고,자신의 딸 에게도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딸이 맹인인 자신에게서 불행해 지는 것이 싫어서 고아원에 맡긴 것이었다. 그 딸의 모든 감정은 그 한순간에 사랑으로 녹아내리고 힘 껏 그의 어머니를 포옹했다. 나와 꼭 같이 눈이 먼 어머니 를 만나는 감격이야말로 그 녀의 가슴에 훈훈한 봄바람을 실어다 주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들중의 한 사람같이 되셨습니다. 때로는 피 곤에 지치기도 하셨고, 오늘처럼 울기도 하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왜,하나님은 우리를 아픔과 고통 을 돌아보시지 않습니까 왜,우리의 슬픔을 외면하십니까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 분은 침묵속에서 우리와 함께 고난과 슬픔을 같이 나누고 계시는 것입니다. 마치 그 부모가 자녀와 깊은 고난을 같이 나누는 것처 럼 우리와 같이 고난을 나누시는 것입니다.
로마서12장에 나타난 그대로 입니다. 15절에,"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우는 자들로 함께 울 라!"
(예)다리 부러진 사람한테 가서 두 다리 다 부러지지 않은 것을 감사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것은 신앙적으로 교훈을 줄 때, 교육할 때, 그렇게 살도록 말하는 것입니다. 일단 일이 닥치면 우선 같이 공감해 주고 같은 입장에 서서 시작해야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영광나타나게 하심으로서 위 로를 얻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나사로의 무덤의 돌문을 굴려서 옮겨 놓게 하신 후에 40절 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믿으면 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늘 거꾸로 생각하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보면,믿겠다는 것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다릅니다. 소망이 없는 것처럼 계속 절망하지 말고,자포자기도 하지 말아라!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신뢰하면 영광을 보게 되리라고 말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하나님과 그 말씀을 신뢰하고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된 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을 보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태의 죽은 것같은 사라의 몸을 통하여 자식인 이삭을 보게 된 것입니다. 모세는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 었기에 출애굽의 사건을 볼 수가 있었고,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주 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에 가나안을 차지하는 역사를 볼 수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 원리로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들을 오늘 이 시점에서 우리 가 믿을 때에 그것들이 우리의 삶가운데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내 죄를 위하여 죽었다가 사신 것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이 말씀을 믿음으로 우리는 보이지는 않지만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절망적 상황이요, 아무리 눈물지을 수 밖에 없는 상 황이라고 할지라도, 믿음을 잃어 버리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의 역사를 끝까지 믿게 되면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눈물속에서도 주님을 이말씀을 하십니다. 겉으로는 눈물이 흘러도 믿음을 포기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예) 스펄죤 목사님 시카코에 대화재가 나서 온 시가지가 불 바다를 이루었을 때의 일이다. 각 신문사의 기자들이 화재 현장에 도착해 보 니 건물들이 모두 불타고 있었고, 더우기 시가지 한 복판에 있던 무디 목사의 교회는 완전히 타 버렸다. 기자들이 무디 목사님 곁으로 다가가 "목사님, 하나님은 전지전능 하셔서 무엇이든지 원하기만 하면 이루어 주신다고 설교하셨지요.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성전인 교회가 불에 타 없어지는 것을 보고 왜 가만 두십니까"하며 빈정거리며 말하자 무디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벌써부터 하나님께 큰 교회를 달라고 기도해 왔소. 그 기도의 응답으로 지금 교회가 불에 탄 것입니다. 우리가 큰 교회를 짓기 위해 서는 교회를 헐고 다시 세워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건물을 불에 태워서 허는 비용이 들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에 기자들은 어이가 없었다.
왜냐하면, 무디 목사는 밤중에 화재를 당하여 잠옷 바람으로 겨우 목숨만 건진 빈 주먹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기자들은 다시 "그럼, 그 큰 교회를 세울 돈은 가지고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무디 목사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낡은 성경책을 내놓으면서 대답했다. "나는 수표와 돈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써도 바닥이 나지 않는 하나님의 금고인 성경 책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얼마 안가서 불 에 탄 교회보다 더 크고 훌륭한 교회를 보게 될 것입니다" 무디 목사는 그 화재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전 영국을 뒤 흔드는 큰 부흥을 일으켰고, 영국에서는 무디 목사의 새로운 교회 건축을 위해 많은 헌금을 했다. 그렇게 해서 무디 목사는 영국 국민이 바친 헌금으로 화재가 난 거리에 옛날 교회 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운 교회를 지을 수가 있었다.
어느 상황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며 믿음을 잃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와 위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세번째로, 감사가 있는 온전한 믿음을 통하여 문제가 해결되게 하심으로 위로를 주십니다.
본문에 보면 아무래도 나사로의 사건이 완전히 해결되는 데는 예수님의 온전한 믿음에 기인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41절에,"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3절에,"큰 소리로,나사로야 나오라!"
적당히 믿고,적당히 의지하는 자세가 아니라, 온전하게 믿는 믿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떠한 것이 완전한 신앙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인격적인 것이 완전한 신앙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추상적인 것이나 지식적 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주일날 교회에 참석하고 가서 찬송도 부르고 하면 마음이 편하더라!' 이러한 심리학적인 요법이 아니라, 오늘도 살아계시고,역사를 주장 하시고,나의 모든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으로 믿 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아버지 내 말을 늘 들어주시는 것을 감사드립니다.' 하는 것은 차력사가 감짝 놀랄 일을 이루기 위하여 기합을 넣는 소 리와는 다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여! 주여! 믿습니다.를 마치 기합을 넣어 가지고 무슨 힘을 불어 넣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말을 듣고 계신 인격적이신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화하듯이 그대 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인격과 역사를 신뢰하고 오직 감사의 기도를 하고 계신 것이지요./
정말 믿음이 깊은 분들!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의 위로가 있는 분들은 이 온전한 믿음 의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와 관계가 확실한 분들인 것입니다.
(예)크리소스톰
교부 크리쏘스톰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크리쏘스톰은 로마 황제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포기하라는 엄명을 받았으나, 그는 죽어도 그리스도를 포기하지 않겠노 라고 하며 맞섰다. 그가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자, 로 마 황제는 그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린 후 신하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크리쏘스톰을 아무와도 대화하지 못하게 고독한 개인 감방 에 집어 넣어라" 그러자 그 신하가 울상을 하며 대답했다. "황제님, 크리쏘스톰은 크리스챤입니다크리스챤이면 별 사람이냐 빨리 집어 넣어라황제님은 모르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만일 그 사람을 거 기다 가두어 넣으면 혼자 있지를 않습니다. 하루 종일 싱글 벙글 웃으면서 중얼중얼 합니다. 우리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 지 않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이야기를 한답니다. 그러니까 혼자 두면 그에게 좋은 일이 될 겁니다. "그 러면 극악무도한 죄인들이 있는 감옥에 집어 넣어라" 신하 가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황제님, 그건 안 됩니다. 그 사람은 오히려 전도할 기회가 생겼다고 매우 좋아할 것이며 얼 마 있지 않아 그안의 사람들은 모조리 크리스챤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이상한 힘이 있어 극악무도한 죄인 도 변화시켜 오히려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놈을 내어다 목을 쳐라" 신하가 다시 말했다. "황제님, 모 르시는 말씀입니다. 그의 제일 큰 상급은 순교입니다. 그러 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 중에는 처형당할 때 우는 사람을 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얼굴에 광채가 나고 기뻐한답니다." 그러자 황제는 "그러면 이놈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 가!"하고 탄식을 했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사방으로 에워쌈 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한다.
근본적으로 깊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고 깊은 믿음이 있는 사람 들은 참된 위로의 근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미 죽음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죽음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죄악의 문제가 해결된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의 믿음있는 감사의 기도와 외침이 있어야 합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 참 위로와 소망과 영광을 주심을 누림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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