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목자 (요10:1-18)
본문
지나간 주간에는 우리 모두의 깊은 관심속에 국회의원선거가 치뤄 졌습니다. 이제 '누가 뽑히느냐'의 문제는 사라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뽑힌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하는 문제가 남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선거운동기간에 가졌던 그 겸손함과 최선을 다 하는 부지런함으로 "14대총선 이후에 가장 관심사로 꼽히는 민족화 합과 화해및 물가안정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선거결과에 대하여 걱정하는 분들도 있지만, 우리들의 국민의식만 바르고,믿는자들이 자기 몫을 잘 하면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독버섯은 반드시 썩은 나무에서 자양분을 섭취하며 자라기 때문입니다. 국민이 바르면 독버섯은 없어집니다.
특별히 이 번 선거를 보니까, 또한 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청치에 입문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기업의 문을 드나들며 경제를 위해 활동했던 분들, 대학의 문을 드나들며 후진양성을 위해 활동했던 분들, 재판정의 문을 드나들며 법의 수호를 위해 헌신했던 분들, 그리고 방송국의 문을 드나들며 연예활동을 한 분들이 새롭게 정치의 문으로 들어섰습니다.
또 그 중에 어떤 분은 9번째 국회의 문을 두들겨서 당선이 된 8 전9기의 사람도 있었죠 연이은 낙선으로 가정이 풍지박산 나는 어려움을 격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결국 금뱃지를 달았습니다.
국회의원이 좋기는 좋은 것같습니다. 자신의 전문직을 버리고, 가정의 파탄까지 격으며 9번씩이나 두드려서 그 문에 들어서려고 하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 보니까 사람이 들어서야 할 가장 아름답고 좋은 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문10장7절에 보니까/ 예수님은 자신이 양들의 문이라고 말하 시면서 9절에, "내가 문이니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 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양은 반드시 보호가 있고,먹을 꼴이 풍부한 양의 문으로 드나들 엉야 합니다. 양이 이리의 소굴을 드나들거나 사자굴을 드나든다면 그것은 곧 멸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들을 양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양의 문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역사에 드나들어야 구원 을 얻게 되며 생의 풍성한 꼴을 공급받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양의 문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사실은 목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특히 양들에게 좋은 풀을 먹게하기 위해서 멀리 떠나다 보면 우리 로 돌아오지 못하고 들판에서 밤을 지낼 때가 많습니다. 이 때는 우리가 따로 없고, 문이 따로 없습니다. 목자가 곧 그들을 지키는 우리요,목자가 곧 그들이 드나드는 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1절에 보면, 양의 문을 다른 말로 표현하기를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합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우리들을 이끌고 먹이시는 선한목자가 되신다는 것이지요!
잘 아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나,진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비유를 많이 사용하십니다.
(예)기도에 관하여 잘 설명하기 위해서 세상의 좋은 아버지를 사 용하여 비유하십니다. 자식이 무엇을 달라하면 세상의 좋은 아 비가 좋은 것을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와 마찬가지로 자녀된 우리가 구하면 정말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종말에 관하여 말씀하실 때는 신랑과 신부에 대하여 아주 비유로 쉽게 이야기 하십니다.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는 가운데 영화로운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신부된 우리가 믿음과 사랑의 등불을 밝히며 신랑 되신 주님을 인내로 기다리게 될 때, 신랑되신 주님 오실 때 찬란하게 눈부시고 영화로운 하늘나라의 잔치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어진 선한 목자와 양의 비유는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쉽게 표현해 주시는 것입니다. 선하신 목자가 양들을 이끌어 푸른 초장에서 꼴을 먹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에 쉬면서 소화와 휴식을 가지게 하는 모습을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꼴이 있고 평화가 있고 잔잔한 휴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도적이나 이리 떼가 오면 생명을 걸고 사투하여 양을 지키는 아름다운 보호의 그림이 있는 것입니다.
꼴을 찾을 수 있는 능력과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가 지지 못한 양에게 있어서 목자는 생명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양과 목자의 관계는 필요의 관계를 넘어서는 생명적 관계입니다.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필요적 관계도 아니요, 우연적 관계도 아닙니다. 생명적 관계입니다. 그 관계가 끊어지면 죽는다는 말 씁입니다.
자! 이제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선한 목자께서 어떻게 그 양을 먹 이시고 인도하시는지 구체적으로 보기를 원합니다.
1.각각 이름을 불러내어 인도하신다고 하였습니다.
3절에 보니까,"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이 음성 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 눈부신 아침햇살을 받으며 목자가 우리 에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문지기가 문을 열어주면 사랑하는 양떼들 을 확인하시는데 각각 이름을 불러 밖으로 인도해 냅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특히 양들에게 하나 하나 이름을 붙여서 기른다고 합니다. 양 한마리 한마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마치 부모가 잘난 자식이나,못나고 아픈 자식이나 모두 골고루 사랑하며 자식이 많다해도 하나 하나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도 우리 각자 각자에게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조금 부족하고 조금 연약하다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동일하게 관 심과 사랑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2.선한 목자는 양들의 앞에서 인도하신다고 말합니다.
본문4절에,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앞서서 간다는 말속에 우리는 몇가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지금 앞서가는 목자의 머리속에는 양들을 위한 푸른 초장과 잔잔 한 물가의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양들을 데리고 어디 가겠습니다. 오직 그들에게 유익한 곳입니다. 때로는 험난한 길을 지날 때가 있고, 위험스러운 시내를 건너야 할 때도 있으며 가시덤불과 골짜기를 지나갈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그 곳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닙니다. 가려고 하는 곳은 푸른 초장이요,잔잔한 물가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의도를 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는 우리를 궁극적으로 아름다운 곳에 인도하십니다. 과정이 험난하고 어려운 길에 있다고 의심하고 이탈하면 안됩니다. 그 인자하신 음성을 늘 들으면서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2)주님이 우리의 모범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순종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저가 친히 순종하셨습니다. 시험받는 자들을 위하여 시험을 참는 인내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친히 십자가에서 원수를 사랑하셨습니다. 기도하라고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새벽미명에 혹은 밤을 새우 시면서,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아이들, 술과 담배피우면 안된다. 말하면서 왜 어른은 피워 야 하는가 아이들에게 못하게 하려면 본인이 먼저 하지 말 아야 합니다.
3)앞서가시면서 맹수를 방어하시고 양들을 보호하시기 위한 것 입니다. 다윗,"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심이라"
3.선한 목자는 양의 생명과 그 생명의 풍성함을 위하여 존재한다 고 하는 것입니다.
10절,"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 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생명을 얻게 한다는 것은 영생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입니다. 하늘의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또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더 풍성한 생명에 대하여서는 몇가지정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생의 활기를 주는 것입니다. 병에서 놓여나는 사람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병에서 낳게 되면 즉시로 눈은 빛나고 얼굴은 생기가 돌고 그리고 삶은 다시 활력을 찾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새생명을 가진 천국백서으로서의 활기를 가지고 살게 합니다.
2.생의 범위를 확장케 합니다. 자기만을 위한 삶에서 나누어주는삶,이웃에게 기여하는 삶을 살 게 합니다. 톨스토이,"내 삶의 목적을 하나님께 두어 보라, 그리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이웃에게는 유익이 되며 네 자신에게는 참 행복이 임할 것이다."
3.새힘과 능력을 크게 더하십니다.
4.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게됩니다.
5.하나님의 현세적인 축복도 또한 경험하며 살게 됩니다.
4. 마지막으로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생명도 내어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15절에,"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비교/도둑-도적질하고 멸망시키려는 것 삯군/양을 버리고 도망감
나는 목숨을 버리면서라도 지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자의 사랑입니다.
죽음이라도 지불할 수 있는 사랑으로 지키시고 보호하시니 너 무나 안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10장28절에 보니까,"저희를 내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선거결과에 대하여 걱정하는 분들도 있지만, 우리들의 국민의식만 바르고,믿는자들이 자기 몫을 잘 하면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독버섯은 반드시 썩은 나무에서 자양분을 섭취하며 자라기 때문입니다. 국민이 바르면 독버섯은 없어집니다.
특별히 이 번 선거를 보니까, 또한 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청치에 입문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기업의 문을 드나들며 경제를 위해 활동했던 분들, 대학의 문을 드나들며 후진양성을 위해 활동했던 분들, 재판정의 문을 드나들며 법의 수호를 위해 헌신했던 분들, 그리고 방송국의 문을 드나들며 연예활동을 한 분들이 새롭게 정치의 문으로 들어섰습니다.
또 그 중에 어떤 분은 9번째 국회의 문을 두들겨서 당선이 된 8 전9기의 사람도 있었죠 연이은 낙선으로 가정이 풍지박산 나는 어려움을 격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결국 금뱃지를 달았습니다.
국회의원이 좋기는 좋은 것같습니다. 자신의 전문직을 버리고, 가정의 파탄까지 격으며 9번씩이나 두드려서 그 문에 들어서려고 하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 보니까 사람이 들어서야 할 가장 아름답고 좋은 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문10장7절에 보니까/ 예수님은 자신이 양들의 문이라고 말하 시면서 9절에, "내가 문이니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 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양은 반드시 보호가 있고,먹을 꼴이 풍부한 양의 문으로 드나들 엉야 합니다. 양이 이리의 소굴을 드나들거나 사자굴을 드나든다면 그것은 곧 멸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들을 양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양의 문이 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역사에 드나들어야 구원 을 얻게 되며 생의 풍성한 꼴을 공급받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양의 문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사실은 목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특히 양들에게 좋은 풀을 먹게하기 위해서 멀리 떠나다 보면 우리 로 돌아오지 못하고 들판에서 밤을 지낼 때가 많습니다. 이 때는 우리가 따로 없고, 문이 따로 없습니다. 목자가 곧 그들을 지키는 우리요,목자가 곧 그들이 드나드는 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1절에 보면, 양의 문을 다른 말로 표현하기를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합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우리들을 이끌고 먹이시는 선한목자가 되신다는 것이지요!
잘 아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나,진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비유를 많이 사용하십니다.
(예)기도에 관하여 잘 설명하기 위해서 세상의 좋은 아버지를 사 용하여 비유하십니다. 자식이 무엇을 달라하면 세상의 좋은 아 비가 좋은 것을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와 마찬가지로 자녀된 우리가 구하면 정말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종말에 관하여 말씀하실 때는 신랑과 신부에 대하여 아주 비유로 쉽게 이야기 하십니다.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는 가운데 영화로운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신부된 우리가 믿음과 사랑의 등불을 밝히며 신랑 되신 주님을 인내로 기다리게 될 때, 신랑되신 주님 오실 때 찬란하게 눈부시고 영화로운 하늘나라의 잔치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어진 선한 목자와 양의 비유는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쉽게 표현해 주시는 것입니다. 선하신 목자가 양들을 이끌어 푸른 초장에서 꼴을 먹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에 쉬면서 소화와 휴식을 가지게 하는 모습을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꼴이 있고 평화가 있고 잔잔한 휴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도적이나 이리 떼가 오면 생명을 걸고 사투하여 양을 지키는 아름다운 보호의 그림이 있는 것입니다.
꼴을 찾을 수 있는 능력과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가 지지 못한 양에게 있어서 목자는 생명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양과 목자의 관계는 필요의 관계를 넘어서는 생명적 관계입니다.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필요적 관계도 아니요, 우연적 관계도 아닙니다. 생명적 관계입니다. 그 관계가 끊어지면 죽는다는 말 씁입니다.
자! 이제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선한 목자께서 어떻게 그 양을 먹 이시고 인도하시는지 구체적으로 보기를 원합니다.
1.각각 이름을 불러내어 인도하신다고 하였습니다.
3절에 보니까,"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이 음성 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 눈부신 아침햇살을 받으며 목자가 우리 에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문지기가 문을 열어주면 사랑하는 양떼들 을 확인하시는데 각각 이름을 불러 밖으로 인도해 냅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특히 양들에게 하나 하나 이름을 붙여서 기른다고 합니다. 양 한마리 한마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마치 부모가 잘난 자식이나,못나고 아픈 자식이나 모두 골고루 사랑하며 자식이 많다해도 하나 하나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도 우리 각자 각자에게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조금 부족하고 조금 연약하다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동일하게 관 심과 사랑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2.선한 목자는 양들의 앞에서 인도하신다고 말합니다.
본문4절에,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앞서서 간다는 말속에 우리는 몇가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지금 앞서가는 목자의 머리속에는 양들을 위한 푸른 초장과 잔잔 한 물가의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양들을 데리고 어디 가겠습니다. 오직 그들에게 유익한 곳입니다. 때로는 험난한 길을 지날 때가 있고, 위험스러운 시내를 건너야 할 때도 있으며 가시덤불과 골짜기를 지나갈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그 곳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닙니다. 가려고 하는 곳은 푸른 초장이요,잔잔한 물가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의도를 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는 우리를 궁극적으로 아름다운 곳에 인도하십니다. 과정이 험난하고 어려운 길에 있다고 의심하고 이탈하면 안됩니다. 그 인자하신 음성을 늘 들으면서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2)주님이 우리의 모범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순종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저가 친히 순종하셨습니다. 시험받는 자들을 위하여 시험을 참는 인내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친히 십자가에서 원수를 사랑하셨습니다. 기도하라고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새벽미명에 혹은 밤을 새우 시면서,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아이들, 술과 담배피우면 안된다. 말하면서 왜 어른은 피워 야 하는가 아이들에게 못하게 하려면 본인이 먼저 하지 말 아야 합니다.
3)앞서가시면서 맹수를 방어하시고 양들을 보호하시기 위한 것 입니다. 다윗,"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심이라"
3.선한 목자는 양의 생명과 그 생명의 풍성함을 위하여 존재한다 고 하는 것입니다.
10절,"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 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생명을 얻게 한다는 것은 영생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입니다. 하늘의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또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더 풍성한 생명에 대하여서는 몇가지정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생의 활기를 주는 것입니다. 병에서 놓여나는 사람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병에서 낳게 되면 즉시로 눈은 빛나고 얼굴은 생기가 돌고 그리고 삶은 다시 활력을 찾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새생명을 가진 천국백서으로서의 활기를 가지고 살게 합니다.
2.생의 범위를 확장케 합니다. 자기만을 위한 삶에서 나누어주는삶,이웃에게 기여하는 삶을 살 게 합니다. 톨스토이,"내 삶의 목적을 하나님께 두어 보라, 그리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이웃에게는 유익이 되며 네 자신에게는 참 행복이 임할 것이다."
3.새힘과 능력을 크게 더하십니다.
4.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게됩니다.
5.하나님의 현세적인 축복도 또한 경험하며 살게 됩니다.
4. 마지막으로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생명도 내어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15절에,"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비교/도둑-도적질하고 멸망시키려는 것 삯군/양을 버리고 도망감
나는 목숨을 버리면서라도 지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자의 사랑입니다.
죽음이라도 지불할 수 있는 사랑으로 지키시고 보호하시니 너 무나 안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10장28절에 보니까,"저희를 내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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