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강해(제3계명) (출20:7)
본문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중심으로 상고할 말씀의 내용은 십계명중에서 제 3계명인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 제3계명의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강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순서로 접근을 하기를 원합니다.
1. 앞선 시간에 상고했던 제
1,2 계명과 오늘 상고할 제 3계명과의 차이점을 알아보고
2. 제 3 계명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고
3. 이렇게 망령되이 일컫는것이 우리의 실제 생활속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알아 봄으로서 지금까지 실제적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생활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한 부분에 대해 경각심을 던져 주고자 합니다.
1. 오늘 우리가 상고해야할 제 3 계명과 제 1,2 계명과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제 1 계명은 "너는 나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배해야 할 대상이 유일하신 하나님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 2 계명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데 시시하게 생명력이 없는 새긴 우상에게 예배하지 말고 영이신 하나님 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제 3 계명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이것은 예배드리는 자의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어떠한 태도로 하나님앞에서의 삶을 살아가야 될것인지에 대해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제 한번 다시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제 1 계명은 예배의 대상에 대해 제 2 계명은 예배의 방법에 대해 제 3 계명은 예배자의 태도에 대해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1,2,3계명의 차이점입니다.
2. 제 3 계명에서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했는데 그 말이 내포하고 있는 뜻이 무엇 이겠습니까 사실 제 3 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에 관계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름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름이라고 하는것은 그 이름을 가진자의 존재의 품성과 인격과 업적을 포함하고 있는 전인적인 호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 그 자체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을 입에 담을때 마다 그 분의 이름을 생각할때 마다 역사의 주인이시요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려가시는 사랑의 하나님,공의의 하나님을 늘 염두에 두 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알고 있었던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평소에는 감히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도 사용하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오직 대 제사장만이 1년에 한번 지성소에 나가서 속죄 제물을 드린후에 여호와를 불렀 다고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말은
1)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것이요
2)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되이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여기서 말하는 망령이라는 말은 헛되게 하는것,낭비하는 것,쓸데없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런 의미에서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말은 하나님의 이름이 인간들에 의해 헛되고 무가치하게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3.
그렇다면 이제 3번째로 이렇게 망령되이 일컽지 말라는 명령을 우리는 하나님으로 부터 받았는데 우리는 우리의 구체적인 삶속에서 어떻게 이 주신 명령을 어기고 있는 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문제를 다루기 전에 먼저 여러분들에게 양해의 말씀을 드려야 할것 같습니다.
사실 설교를 준비하다보면 교훈이 목적이 되어지는 설교가 있고 위로가 목적이 되어지는 설교가 있고 소망이 목적이 되어지는 설교가 있고 책망이 목적이 되어지는 설교가 있는등 많은 목적이 동기가 되어서 설교가 작성되어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의 말씀은 책망이 목적이 되어지는 설교임을 먼저 여러분들에게 밝 혀드립니다.
그래서 설교자 이전에 아직 인생 연륜이 짧은자로서 감히 성님들앞에서 책망의 설교를 한다는것이 두렵고 떨리는게 솔직한 저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디모데후서 3:16-17의 말씀을 제 앞에 내 세움으로서 오늘의 말씀을 계속하고 자 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 에 유익하니/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하며 모든 선한일을 행하기에 온전케하려 하심이니라"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다는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이 부분에 대해 이론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여러분들이 이해하기가 쉽게 사례 위주로 말씀을 전개하도록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랜 신앙생활을 통해 기독교의 문화가 우리의 생활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 자신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경우가 있기 대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속에서 자행되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경우를 살펴보면
1) 우리가 드리는 예배중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많이 일어납니다.
기도할때 나타나는 경우인데 기도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라고 하는것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 들어 올리는 것입니다.
먼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간구하는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겸손하고 겸허한 가운데서 하나님께 드려야 되는데 오늘날 많은 경우 기도를 어떻게 합니까 어떤 분들은 기도를 마치 하나님을 향해 연설을 연설하듯이 합니다.
하나님을 가르치는 듯이 합니다.
하기는 하는데 습관적으로 허공에다가 대고 합니다.
여러분 기도의 주체는 누구이며 객체는 누구입니까 기도의 주체는 하나님이요 객체는 기도하는자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주체가 되어지고 하나님께서는 손님이 되거나 옵서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기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하나님과의 사귐이 없고 하나님과의 대화의 축복이 없다면은 그 기도중에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은 그 기도하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망령되이 일컬어 지는 것입니다.
기도라고 하는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혼합되어질때 하나님께 드려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요일서 5:10,"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롬 10:14,"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이렇게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요 하나님을 욕되게 한는 것입니다.
기도 말이 나왔으니 꼭 한번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왜 기도 시간이 광고물을 전달해 주는 시간이 되어야 하고 성가대원의 장소를 변경시 키는 시간이 되어야 하고 늦게 오는 사람을 안내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까 우리 깊이 이 문제에 대해 반성했으면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눈을 감았다도 해서 그러는 겁니까
그렇다면 도데체 누구에게 기도하는 겁니까
찬송할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찬송이라고 하는것은 찬양이라고 하는것은 우리의 신앙의 모습을 아름다운 멜로디로 오직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속에서 불리어지는 찬송의 현주소가 어디에 있습니까 예배의 순서에 따라 찬송을 받으실 분이 하나님임을 망각한체 입만 겨우 열었다 닫았 다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특히 찬양대에서 찬양을 할때 그 찬양을 듣는 성도들의 태도가 그렇습니다.
왜 들리어지는 찬양이 화음이 잘되고 듣기에 좋으면은 그 찬양이 끝났을때 아멘 소리 가 크고 인간적으로 생각할때 좀 실패작이라고 생각할때는 아멘 소리가 작습니까 이런 현상은 찬양을 받으실 분이 하나님이신데 그 사실을 잠시 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가대의 찬양이라고 하는것은 우리 모든 회중을 대표로해서 하나님께 우리의 모두를 찬양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성가대만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다른 사람들은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가대가 우리를 대표한 것이기에 그 찬양드리는 그 순간은 비록 일어서서 하나님께 목소리로 찬양을 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다가 하나님앞에서 같은 자격으로 동 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찬양이라는 내용이 나왔기에 4세기의 교부 어거스틴이 남긴 찬송에 대한 유명 한 말을 한가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어거스틴의 말인즉 "찬송을 하면 두번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가사로 한번 기도하고 멜로디로 한번 기도한다는 것이죠 찬송은 하나님의 영광을 멜로디로 노래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일종의 기도의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찬송을 하나님께 드리는데 우리가 어떻게 감히 듣는자로서 방관자로서 성의없이 대할수가 있겠습니까 바로 이런 듣는자 방관자 성의없는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자라고 한다 면 그 누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이외에도 우리가 예배중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부분은 많이 있 지만 이 정도에서 생략하고
2) 다음으로 우리의 생활중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경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타고가다 보면 앞에가는 자동차 뒤에 물고기 모양안에 잌투스라는 단어나 지저스라는 단어가 새겨진 패를 보게 됩니다.
그 잌투스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우리의 구주 라는 5가지 헬라어 단어의 약자입니다. 한 마디로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양을 단 운전자가 교통법규도 잘지키고 양보운전도 잘하면 얼마나 좋겠습 니까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되겠습니까 그런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역시 그리스도인이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속에 기독교인으로서의 큰 자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 물고기 모양을 단 운전자가 교통위반을 예사롭게 하고 양보도 없이 끼어들고난폭운전을 하게 되면 어떻습니까 그 사람이 욕을 들어먹기 이전에 하나님이 세인들의 입을 통해 욕을 들어 먹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경우가 되는 것입니다.
또 사른 실례를 하나 들자면 명절때나 시간적이 여유가 있을때 특히 초상집에서 친구들이나 가족끼리 모이면은 늘 습관적으로 하는것이 있잖습니까 제가 설교중에 이 예를 드는것이기 때문에 직접화법은 쓰지 않고 간접화법을 사용하도 록 하겠습니다.
그 놀이 이름을 그림공부라고 부르던데 서양화 그림공부, 동양화 그림공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왜 그 놀이를 할때 그 소위 그림공부를 할때 하나님의 이름이 불리어져 야 합니까 제가 흉내는 내지 않겠지만 혹시 이중에 그런 경험이 있으신 분이 있다면 그냥 우스개 소리롤 듣지 말고 회개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들어주시고 다음의 말슴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의 후반부입니다.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없다 하지 아니 하리라" 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자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죄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왜 그림공부를 하시면서 겁도 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등장시킵니까 제가 그동안 시무했던 교회중에 한 교회에서는 이 문제를 가지고 권찰회때에 광고 까지 할 정도였으니 이 문제가 교회에 얼마나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아마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학생이 학교에서 시험을 치다가 다급한 나머지 옆에 있는 학생의 시험지를 쳐다 보고서는 마음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간구하오니 제발 선생님의 눈을 잠시만 감겨주세요 그리하여 이 컨닝 이 성공을 해서 좋은 성적이 나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 한다면 그 학생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결과를 초래하고 마는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신성 모독죄라고 하는것입니다.
하나님앞에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감추기 위해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하나님을 다름대로 이용하려는 처사인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는 경우입니다.
뻔히 자기 자신도 거짓인줄 알면서 상대방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뻔히 자기 자신도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상대방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라"
왜냐하면 지켜지지 않을 맹세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이 일컬음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악하고 무섭고 엄청난 맹세들을 저들의 삶속에서 하고 있습니까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맹세하는 자들은 미친 개처럼 하늘을 향해 정면 도전하는것이다. 그러다가 스스로 성이나면 하나님의 성스러운 위엄을 향해 그들의 모독적인 독액을 토해낸다" 이 얼마나 엄청난 말입니까 이 부분에 대해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지금 맹세함으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고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자들은 지상에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그 유대인들 못지 않게 죄를 짖는것이다" 맹세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피를 모독하고 그의 이름을 쥐어 뜯는 것입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아내와 3명의 아들을 남겨두고 죽게 되었습니다.
막상 죽게 되자 그 아내가 말하기를 3명의 아들이 다 당신의 아들이 아니고 그 중에 한명만 당신의 아들이라고 실토를 했습니다.
이에 죽어가는 그 사람이 유언 집행자들에게 말하기를 나의 유산을 세 아들중에 진짜 내 아들 한명만을 골라서 주라고 유언을 했습니다.
그 사람이 죽자 유언 집행자는 죽은 그 사람의 시체를 나무에다가 묶어서 세워놓고 세 아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활과 화살을 건네 주면서 그 아비의 심장에 제일 가깝게 쏘는자에게 전 유산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첫째 아들이 활을 쏩니다. 최선을 다해 아비의 심장을 겨냥해서 활을 쏘았습니다.
둘때 아들 역시도 최선을 다해 형이 맞춘것보다 더 심장가까이에 활을 쏘았습니다.
이제 3번째 아들 차례입니다.
세번째 아들은 활과 화살을 들었지만 마음속으로부터 도저히 쏠수 없다는 충동이 일어 났습니다. 그리고는 활과 화살을 집어던졌습니다.
누가 과연 그 죽은 사람의 친 아들이겠습니가 유언 집행인은 활쏘기를 거부한 아들을 참 아들로 인정하고 전 유산을 그에게 주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옳습니다.
하나님의 참 자녀는 하나님을 향해 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참 자녀는 하나님을 향해 맹세의 화살을 쏠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 자녀가 아닌 사생아라면 얼마든지 맹세와 저주의 화살을 하나님께로 향해 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레 19:12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성도 여러분 ! 혹 여러분들의 삶속에 이런 거짓맹세하는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혹 있다면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양심앞에서 좀 심각해지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케하는 일의 여러가지 사례들을 몇가지 발췌 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런일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일이 앞에서 소개한 그것 뿐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아마 오늘 밤을 세워서 이 부분에 대해 계속해서 설교를 해도 다하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저는 오늘의 말씀의 주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부분에 대한 여러분 의 적용을 위해 한가지 예를 들므로서 말씀을 마무리 짖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가상적인 이야기임을 먼저 전제로 합니다.
마귀는 두 개의 안경을 가지고 있다가 사람들의 눈앞에 갖다 놓는다고 합니다.
하나는 작은 안경인데 이 작은 안경으로 보면 죄가 너무 작게 보여서 거의 눈에 띠지 않을 정도라고 하는데 이것은 마귀가 지금 막 죄를 지을려고 하는 사람들의 눈앞에 갖 다 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짖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안경은 확대안경인데 이것으로 보면 죄가 너무 크게 보여서 죄를 짖고도 용서받을 수 없다고 자포자기 하게 끔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가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의 생활중에서 어떤 경우에는 지나가는 농담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합니다.
이런 경우 마귀가 작은 안경을 가지고 우리에게 등장을 합니다.
그러고는 말합니다.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 그 정도는 궨찮아 !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습관화가 되어짐에 따라서 나중에는 너무나도 큰 죄를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내걸고 거짓맹세를 합니다. 특히 사기를 칠때 말입니다.
이 경우 마귀는 어떤 안경을 가지고 등장을 합니까 확대안경을 가지고 와서 너는 이제 구제불능이야 이제 되는데로 사는거야라고 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자포자기하게끔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거짓 맹세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더 큰 죄를 범 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이렇게 해서는 우리는 제 3계명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은 이 3계명을 통해 무엇을 느꼈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죄를 짓는것은 곧 하나님의 이름 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늘 우리들 자신의 말과 행동을 살펴보고 이 땅위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이름으로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요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이요 우리들 자신이 영육간에 축복을 받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한주간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축복된 삶을 사기고 승리하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저는 이 제3계명의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강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순서로 접근을 하기를 원합니다.
1. 앞선 시간에 상고했던 제
1,2 계명과 오늘 상고할 제 3계명과의 차이점을 알아보고
2. 제 3 계명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고
3. 이렇게 망령되이 일컫는것이 우리의 실제 생활속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알아 봄으로서 지금까지 실제적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생활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한 부분에 대해 경각심을 던져 주고자 합니다.
1. 오늘 우리가 상고해야할 제 3 계명과 제 1,2 계명과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제 1 계명은 "너는 나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배해야 할 대상이 유일하신 하나님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 2 계명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데 시시하게 생명력이 없는 새긴 우상에게 예배하지 말고 영이신 하나님 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제 3 계명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이것은 예배드리는 자의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어떠한 태도로 하나님앞에서의 삶을 살아가야 될것인지에 대해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제 한번 다시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제 1 계명은 예배의 대상에 대해 제 2 계명은 예배의 방법에 대해 제 3 계명은 예배자의 태도에 대해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1,2,3계명의 차이점입니다.
2. 제 3 계명에서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했는데 그 말이 내포하고 있는 뜻이 무엇 이겠습니까 사실 제 3 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에 관계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름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름이라고 하는것은 그 이름을 가진자의 존재의 품성과 인격과 업적을 포함하고 있는 전인적인 호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 그 자체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을 입에 담을때 마다 그 분의 이름을 생각할때 마다 역사의 주인이시요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려가시는 사랑의 하나님,공의의 하나님을 늘 염두에 두 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알고 있었던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평소에는 감히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도 사용하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오직 대 제사장만이 1년에 한번 지성소에 나가서 속죄 제물을 드린후에 여호와를 불렀 다고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말은
1)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것이요
2)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되이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여기서 말하는 망령이라는 말은 헛되게 하는것,낭비하는 것,쓸데없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런 의미에서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말은 하나님의 이름이 인간들에 의해 헛되고 무가치하게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3.
그렇다면 이제 3번째로 이렇게 망령되이 일컽지 말라는 명령을 우리는 하나님으로 부터 받았는데 우리는 우리의 구체적인 삶속에서 어떻게 이 주신 명령을 어기고 있는 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문제를 다루기 전에 먼저 여러분들에게 양해의 말씀을 드려야 할것 같습니다.
사실 설교를 준비하다보면 교훈이 목적이 되어지는 설교가 있고 위로가 목적이 되어지는 설교가 있고 소망이 목적이 되어지는 설교가 있고 책망이 목적이 되어지는 설교가 있는등 많은 목적이 동기가 되어서 설교가 작성되어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의 말씀은 책망이 목적이 되어지는 설교임을 먼저 여러분들에게 밝 혀드립니다.
그래서 설교자 이전에 아직 인생 연륜이 짧은자로서 감히 성님들앞에서 책망의 설교를 한다는것이 두렵고 떨리는게 솔직한 저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디모데후서 3:16-17의 말씀을 제 앞에 내 세움으로서 오늘의 말씀을 계속하고 자 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 에 유익하니/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하며 모든 선한일을 행하기에 온전케하려 하심이니라"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다는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이 부분에 대해 이론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여러분들이 이해하기가 쉽게 사례 위주로 말씀을 전개하도록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오랜 신앙생활을 통해 기독교의 문화가 우리의 생활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 자신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경우가 있기 대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삶속에서 자행되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경우를 살펴보면
1) 우리가 드리는 예배중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많이 일어납니다.
기도할때 나타나는 경우인데 기도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라고 하는것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 들어 올리는 것입니다.
먼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간구하는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겸손하고 겸허한 가운데서 하나님께 드려야 되는데 오늘날 많은 경우 기도를 어떻게 합니까 어떤 분들은 기도를 마치 하나님을 향해 연설을 연설하듯이 합니다.
하나님을 가르치는 듯이 합니다.
하기는 하는데 습관적으로 허공에다가 대고 합니다.
여러분 기도의 주체는 누구이며 객체는 누구입니까 기도의 주체는 하나님이요 객체는 기도하는자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주체가 되어지고 하나님께서는 손님이 되거나 옵서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기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하나님과의 사귐이 없고 하나님과의 대화의 축복이 없다면은 그 기도중에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은 그 기도하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망령되이 일컬어 지는 것입니다.
기도라고 하는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혼합되어질때 하나님께 드려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요일서 5:10,"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롬 10:14,"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이렇게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요 하나님을 욕되게 한는 것입니다.
기도 말이 나왔으니 꼭 한번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왜 기도 시간이 광고물을 전달해 주는 시간이 되어야 하고 성가대원의 장소를 변경시 키는 시간이 되어야 하고 늦게 오는 사람을 안내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까 우리 깊이 이 문제에 대해 반성했으면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눈을 감았다도 해서 그러는 겁니까
그렇다면 도데체 누구에게 기도하는 겁니까
찬송할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찬송이라고 하는것은 찬양이라고 하는것은 우리의 신앙의 모습을 아름다운 멜로디로 오직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속에서 불리어지는 찬송의 현주소가 어디에 있습니까 예배의 순서에 따라 찬송을 받으실 분이 하나님임을 망각한체 입만 겨우 열었다 닫았 다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특히 찬양대에서 찬양을 할때 그 찬양을 듣는 성도들의 태도가 그렇습니다.
왜 들리어지는 찬양이 화음이 잘되고 듣기에 좋으면은 그 찬양이 끝났을때 아멘 소리 가 크고 인간적으로 생각할때 좀 실패작이라고 생각할때는 아멘 소리가 작습니까 이런 현상은 찬양을 받으실 분이 하나님이신데 그 사실을 잠시 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가대의 찬양이라고 하는것은 우리 모든 회중을 대표로해서 하나님께 우리의 모두를 찬양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성가대만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다른 사람들은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가대가 우리를 대표한 것이기에 그 찬양드리는 그 순간은 비록 일어서서 하나님께 목소리로 찬양을 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다가 하나님앞에서 같은 자격으로 동 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찬양이라는 내용이 나왔기에 4세기의 교부 어거스틴이 남긴 찬송에 대한 유명 한 말을 한가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어거스틴의 말인즉 "찬송을 하면 두번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가사로 한번 기도하고 멜로디로 한번 기도한다는 것이죠 찬송은 하나님의 영광을 멜로디로 노래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일종의 기도의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찬송을 하나님께 드리는데 우리가 어떻게 감히 듣는자로서 방관자로서 성의없이 대할수가 있겠습니까 바로 이런 듣는자 방관자 성의없는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자라고 한다 면 그 누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이외에도 우리가 예배중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부분은 많이 있 지만 이 정도에서 생략하고
2) 다음으로 우리의 생활중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경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타고가다 보면 앞에가는 자동차 뒤에 물고기 모양안에 잌투스라는 단어나 지저스라는 단어가 새겨진 패를 보게 됩니다.
그 잌투스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우리의 구주 라는 5가지 헬라어 단어의 약자입니다. 한 마디로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양을 단 운전자가 교통법규도 잘지키고 양보운전도 잘하면 얼마나 좋겠습 니까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되겠습니까 그런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역시 그리스도인이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속에 기독교인으로서의 큰 자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 물고기 모양을 단 운전자가 교통위반을 예사롭게 하고 양보도 없이 끼어들고난폭운전을 하게 되면 어떻습니까 그 사람이 욕을 들어먹기 이전에 하나님이 세인들의 입을 통해 욕을 들어 먹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경우가 되는 것입니다.
또 사른 실례를 하나 들자면 명절때나 시간적이 여유가 있을때 특히 초상집에서 친구들이나 가족끼리 모이면은 늘 습관적으로 하는것이 있잖습니까 제가 설교중에 이 예를 드는것이기 때문에 직접화법은 쓰지 않고 간접화법을 사용하도 록 하겠습니다.
그 놀이 이름을 그림공부라고 부르던데 서양화 그림공부, 동양화 그림공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왜 그 놀이를 할때 그 소위 그림공부를 할때 하나님의 이름이 불리어져 야 합니까 제가 흉내는 내지 않겠지만 혹시 이중에 그런 경험이 있으신 분이 있다면 그냥 우스개 소리롤 듣지 말고 회개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들어주시고 다음의 말슴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의 후반부입니다.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없다 하지 아니 하리라" 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자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죄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왜 그림공부를 하시면서 겁도 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등장시킵니까 제가 그동안 시무했던 교회중에 한 교회에서는 이 문제를 가지고 권찰회때에 광고 까지 할 정도였으니 이 문제가 교회에 얼마나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아마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학생이 학교에서 시험을 치다가 다급한 나머지 옆에 있는 학생의 시험지를 쳐다 보고서는 마음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간구하오니 제발 선생님의 눈을 잠시만 감겨주세요 그리하여 이 컨닝 이 성공을 해서 좋은 성적이 나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 한다면 그 학생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결과를 초래하고 마는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신성 모독죄라고 하는것입니다.
하나님앞에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감추기 위해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하나님을 다름대로 이용하려는 처사인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는 경우입니다.
뻔히 자기 자신도 거짓인줄 알면서 상대방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뻔히 자기 자신도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상대방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라"
왜냐하면 지켜지지 않을 맹세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이 일컬음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악하고 무섭고 엄청난 맹세들을 저들의 삶속에서 하고 있습니까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맹세하는 자들은 미친 개처럼 하늘을 향해 정면 도전하는것이다. 그러다가 스스로 성이나면 하나님의 성스러운 위엄을 향해 그들의 모독적인 독액을 토해낸다" 이 얼마나 엄청난 말입니까 이 부분에 대해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지금 맹세함으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고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자들은 지상에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그 유대인들 못지 않게 죄를 짖는것이다" 맹세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피를 모독하고 그의 이름을 쥐어 뜯는 것입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아내와 3명의 아들을 남겨두고 죽게 되었습니다.
막상 죽게 되자 그 아내가 말하기를 3명의 아들이 다 당신의 아들이 아니고 그 중에 한명만 당신의 아들이라고 실토를 했습니다.
이에 죽어가는 그 사람이 유언 집행자들에게 말하기를 나의 유산을 세 아들중에 진짜 내 아들 한명만을 골라서 주라고 유언을 했습니다.
그 사람이 죽자 유언 집행자는 죽은 그 사람의 시체를 나무에다가 묶어서 세워놓고 세 아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활과 화살을 건네 주면서 그 아비의 심장에 제일 가깝게 쏘는자에게 전 유산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첫째 아들이 활을 쏩니다. 최선을 다해 아비의 심장을 겨냥해서 활을 쏘았습니다.
둘때 아들 역시도 최선을 다해 형이 맞춘것보다 더 심장가까이에 활을 쏘았습니다.
이제 3번째 아들 차례입니다.
세번째 아들은 활과 화살을 들었지만 마음속으로부터 도저히 쏠수 없다는 충동이 일어 났습니다. 그리고는 활과 화살을 집어던졌습니다.
누가 과연 그 죽은 사람의 친 아들이겠습니가 유언 집행인은 활쏘기를 거부한 아들을 참 아들로 인정하고 전 유산을 그에게 주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옳습니다.
하나님의 참 자녀는 하나님을 향해 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참 자녀는 하나님을 향해 맹세의 화살을 쏠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 자녀가 아닌 사생아라면 얼마든지 맹세와 저주의 화살을 하나님께로 향해 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레 19:12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성도 여러분 ! 혹 여러분들의 삶속에 이런 거짓맹세하는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혹 있다면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양심앞에서 좀 심각해지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케하는 일의 여러가지 사례들을 몇가지 발췌 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런일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일이 앞에서 소개한 그것 뿐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아마 오늘 밤을 세워서 이 부분에 대해 계속해서 설교를 해도 다하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저는 오늘의 말씀의 주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부분에 대한 여러분 의 적용을 위해 한가지 예를 들므로서 말씀을 마무리 짖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가상적인 이야기임을 먼저 전제로 합니다.
마귀는 두 개의 안경을 가지고 있다가 사람들의 눈앞에 갖다 놓는다고 합니다.
하나는 작은 안경인데 이 작은 안경으로 보면 죄가 너무 작게 보여서 거의 눈에 띠지 않을 정도라고 하는데 이것은 마귀가 지금 막 죄를 지을려고 하는 사람들의 눈앞에 갖 다 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짖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안경은 확대안경인데 이것으로 보면 죄가 너무 크게 보여서 죄를 짖고도 용서받을 수 없다고 자포자기 하게 끔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가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의 생활중에서 어떤 경우에는 지나가는 농담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합니다.
이런 경우 마귀가 작은 안경을 가지고 우리에게 등장을 합니다.
그러고는 말합니다.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 그 정도는 궨찮아 !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습관화가 되어짐에 따라서 나중에는 너무나도 큰 죄를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내걸고 거짓맹세를 합니다. 특히 사기를 칠때 말입니다.
이 경우 마귀는 어떤 안경을 가지고 등장을 합니까 확대안경을 가지고 와서 너는 이제 구제불능이야 이제 되는데로 사는거야라고 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자포자기하게끔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거짓 맹세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더 큰 죄를 범 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이렇게 해서는 우리는 제 3계명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은 이 3계명을 통해 무엇을 느꼈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죄를 짓는것은 곧 하나님의 이름 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늘 우리들 자신의 말과 행동을 살펴보고 이 땅위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이름으로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요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이요 우리들 자신이 영육간에 축복을 받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한주간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축복된 삶을 사기고 승리하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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