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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간섭 (왕상17:8-16)

본문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보다보면 우리는 상식밖에 일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당혹스럽게 합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중 하나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가치관을 요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역시 그러한 사건 중 하나입니다. 엘리야가 선지자로 활동하던 시대에 대표적인 악한왕이 있다면 그는 아합일 것입니다. 그는 북왕국의 제 6대 왕 오므리의 아들로 주전 874년부터 22년 간 이스라엘을 통치한 왕입니다. 그는 아버지 오무리와 자신의 아내인 이세벨의 영향을 받아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으며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기 위해 나봇을 죽이는 물욕과 욕심으로 가득찬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는데 그것은 엘리야라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합왕 시대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많은 선지자 가운데 가장 위대한 선지자라면 아마도 우리는 엘리야를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합은 그 사실을 축복으로 이해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엘리야를 핍박하면서 하나님의 길로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들에 악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 가뭄을 이스라엘에게 허락합니다. 엘리야는 그 사실을 아합에게 예언한 후 그릿 시냇가로 피신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침과 저녁에 까마귀를 보내어 떡과 고기를 가져다 주셔서 엘리야의 생명을 보존하십니다. 그러다 그 시내가 마르고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사르밧 과부에게 가서 생활하라고 지시하십니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접하게 됩니다. 당시에 가장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바로 과부였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어려운 경제생활을 하고 있는 과부에게 가서 경제적인 도움을 받으라고 말했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적적인 방법으로 그동안 엘리야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다가 왜 그 과부에게 가서 생활하라고 했는지에 대해 우리의 상식은 당황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도덕성으로 우리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오늘 본문에 보게 되면 그 내용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것을 보게 됩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사르밧으로 갑니다. 10절에 보니까 “저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곳에서 나무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가로되 청컨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나로 마시게 하라” 가뭄에 물이 귀한 상황에서 엘리야는 자신이 마시기 위해 그 과부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다. 그때 그 과부는 물을 가지러 갑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저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저를 불러 가로되 청컨대 네 손에서 떡 한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점점 엘리야의 상식밖의 요구를 우리는 보게 됩니다. 자신의 배부름을 위해 가난한 과부에게 먹을 것을 달라는 이 사람이 과연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어쨌든 상황은 계속 이어집니다. 그 과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웅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무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후에는 죽으리라” 얼마나 절박한 말입니까 남은 것은 가루 한 웅큼과 기름 조금 뿐이라는 그 과부에 말은 남은 것은 그것이 전부라는 말이며 그 후에는 살 방법이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을 위한 마지막 식사준비를 하고 있는 과부에게 엘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을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여기까지 듣다보면 우리는 엘리야라는 사람에 대해 대단히 분노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도대체 이 말이 하나님을 믿는 그것도 선지자가 할 수 있는 말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다음의 엘리야의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이어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엘리야는 하나님의 비밀을 전합니다. 과부는 이 말을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과부는 믿음을 가지고 엘리야의 말에 순종합니다. 15절에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인생에 간섭하시는 방법에 대해 찾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적인 하나님의 역사만을 믿는다면 우리는 상식적인 경험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상식을 넘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간섭을 믿는다면 우리는 또한 상식을 넘어서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간섭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무엇을 믿으며 또 그 믿음의 근거는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인간의 현실을 넘어서 역사하신다.
오늘 본문의 사건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교훈은 하나님의 간섭의 성격입니다. 분명히 이 사건은 상식적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과부에게 인계하십니다. 하나님이 먹을 것을 주시다가 갑자기 사르밧 과부에게 가서 먹고 살라고 말합니다. 엘리야의 입장에서도 얼마나 황당한 명령이겠습니까 가도 왜 가장 가난한 과부에게 가라고 하실까 이 요구앞에 순종해야 하는 엘리야의 입장도 믿음이 없이는 행동할 수 없는 요구였습니다. 하나님의 어떤 뜻이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순종할 수 없는 요구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부의 입장에서도 자신에게 갑작스럽게 벌어진 이 요구앞에 순종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범주에서는 엘리야나 그 과부나 모두 순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요구였던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의 근거는 하나님은 역사 하실 때 결코 현실의 범주에서만 일하시지 않는다는 말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가리켜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고 믿음은 그 하나님의 간섭을 이해할 지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순종의 댓가였습니다. 그리고 그 순종은 우리의 상식을 넘어서는 경험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의 배후는 하나님이 이끄셨다는 것입니다. 결코 엘리야의 독단적인 카리스마나 그 과부의 일방적인 기복적 믿음에 의한 사건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하셨으며 그 말씀앞에 엘리야와 과부는 순종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경험한 배경은 과부의 욕심이나 엘리야의 특권의식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말씀앞에 순종했던 결과였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앞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있는한 하나님의 사역은 멈출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찾으시고 있는 것입니다.
2. 이 사건의 기적은 믿음에 의해 현실화 되었다.
이 기적의 배경은 절박한 상황에 요구되었습니다. 그 과부는 죽음을 앞에 두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엘리야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그 과부의 마지막 음식을 요구합니다. 도대체 그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마지막 음식을 포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빙자한 엘리야의 사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엘리야의 신앙을 인정한 여인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그를 하나님의 종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결코 그들은 모두 현실을 과장하거나 속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먹을 것의 전부라는 것을 서로 인정했습니다. 그들에게 있는 현실은 절박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단은 자신이 경험하는 현실에 근거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결단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결단을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현실을 극복했습니다. 결코 현실로인해 그들이 지배당하지 않았습니다. 결단의 마지막 순간까지 현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남은 음식을 먹은 후 그들의 현실은 새로운 경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믿음의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머리로 생각으로 경험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믿음은 바로 결단으로 경험되는 것이며 그 결단의 근거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욕망이나 타인의 강요로 믿음은 경험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경험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적이라고 말하는 이 사건은 바로 이러한 두 사람의 믿음의 아름다운 조화였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믿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 말씀앞에 순종하는 결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오늘도 우리의 현실에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은 과부를 위해 하나님의 사람을 사용하셨다.
엘리야의 사르밧에 방문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결코 엘리야의 독단적인 판단으로 행해진 행동이 아니였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명령앞에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드러난 분위기는 마치 엘리야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같이 보이지만 사실을 사르밧 과부에 대한 배려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엘리야를 도울 수 있었습니다. 또 그렇게 도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은 엘리야를 돕는 방법을 달리하십니다.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사는 엘리야는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다른 사람들과 선명하게 구별된 생활은 그에게도 강한 자부심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이 존재하는 도덕적 목적을 분명하게 제시하십니다. 바로 다른 영혼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이 사건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가뭄속에서 기적으로 먹고 살았다는 동화같은 결과가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현실을 넘어서 역사하시며 그 역사속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증거된다는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 증거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우리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거짓과 욕심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의 부도덕한 가치관이나 생활을 격려하지 않습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앞에 순종하기를 요구합니다. 결코 우리의 잘못된 삶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속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한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그 시간을 하나님의 때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역사하시는 순간을 우리는 하나님의 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두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을 원하십니다. 결코 하나님이 우리의 현실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현실을 넘어서 역사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정도를 더욱 분명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이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인도하심에는 하나님의 의지가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의 관심을 하나님의 뜻앞에 모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현실을 걱정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면서 현실에 끌려 다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면서 우리의 삶은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설명하는 지식은 있으면서 행동하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답답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모습으로 임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살아있음을 만인에게 선포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의 순종속에는 이 세상이 알 수 없는 믿음의 비밀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과 사랑이 우리에게 넘쳐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의 결단이 있을 때 상식을 넘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간섭을 우리는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엘리야와 그 과부의 믿음의 비밀을 여러분 모두가 깨달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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