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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인 결단과 위대한 삶 (요1:9-14)

본문

인간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결단의 연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결단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우리의 자유 의지로 적극적인 결단을 할 수도 부정적인 결단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단에의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계십니다. 보다 적극적인 결단을 하는 사람은 위대한 인생, 성곡적인 인생을 살아가지만 부정적인 결단을 하는 사람은 소극적이고 열등한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서를 통하여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적극적인 결단, 위대한 결단을 통해서 놀라운 인생을 살아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요셉, 모세가 그러했고 베드로, 바울, 마틴 루터, 요한 웨슬레가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놀라운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생명의 외경을 부르짖었던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는 그 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아프리카의 르완다 같은 곳에서는 생명들이 가장 천하고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세상 곳곳에서 순간의 결단이든 장기적인 결단이든 그리스도를 벗어난 결단들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비참함 속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탐심과 죄악적인 부정적인 판단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는 요한복음 1장 말씀을 통해 3가지 위대한 결단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는 ‘내가 어떤 존재인가’하는 결단입니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하는 결단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선한 행위, 의로운 삶, 도덕적인 삶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선한 열매, 바른 행위가 나타나게 됩니다.
기독교는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느냐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존재가 되어야만이 우리는 권세를 누리면서 선한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갈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두번째 결단은 누구에게 속해야 하느냐는 결단입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에겐가 속해서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때문에 인간의 가장 중요한 결단이 소속감의 결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 예수 그리스도에 있는 사람은 새로운 생명을 얻고 새로운 존재가 되고 그의 생명안에서 바른 소속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요한 1서 5장 12절에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게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속한 자 만이 그 관계성을 통해 생명을 누리면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누구에게 속해 있습니까
세번째로는 무엇을 믿느냐는 결단입니다. 가장 중요한 결단은 누구를 믿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지식을 믿든지 명예나 돈을 믿든지 어떤 것을 믿고 살고 있습니다. 믿음은 인간의 싦의 자원이기 때문입니다.
남.여가 결단해서 결혼을 해 사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여러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한 여자가 훌륭한 남자와 더불어 결혼해 살면 남자 때문에 훌륭한 인격을 가지고 대접받는 존귀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또 남자도 지혜로운 여자와 결혼하게 되면 그 결혼을 통해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누구와 더불어 결혼하느냐에 따라서 그 미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저는 뉴욕 타임지에서 스티브 커디이라는 사람이 쓴 가장 효율적인 사람의 7가지 습관이라는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으면서 신앙적인 입장에서 6가지의 습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로는 자기 지식과 자아 발견의 결단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내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이 자기 발견, 자기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면 그 인생은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철학의 명제를 내놓았습니다. 현대 심리학도 인간의 본성, 심리를 탐구함으로써 내가 어떤 존재가 되어야 겠고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를 찾아내는 것을 기본 명제로 삼고 있습니다.
종교 또한 인간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느냐를 생각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서 인간의 본래의 형상을 발견하게 되고 존재의 의미를 찾게 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서 자기 지식을 발견하고 나 자신을 발견하고 위대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인간의 가장 큰 위기는 자기 정체의 위기입니다. 누구나 자기 정체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사회에 비춰진 나, 이외에 실제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서 성서 안에서 믿음안에서 자아를 발견하고 결단하게 될 때 구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상상력과 양심의 습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위대한 상상력을 주셨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바탕을 두고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종교입니다.
1979년 저는 이 성전을 건축할 때 강단 앞에 어느 때인가는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배볼 때마다 이 제단 앞에 훌륭한 파이프 오르간이 세워진 모습을 상상하였고 그후로 15년이 지났습니다. 그 꿈이 이루어져 지금 독일의 크라이스 오르간이 설치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상상력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위대하게 사는 사람은 고상한 상상력을 가지고 양심의 습관을 반복하는 가운데 위대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의지력의 습관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 중에 하나가 의지력입니다. 선을 선택하느냐 악을 선택하느냐는 우리의 의지력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요 3:16)
믿도록 의지적인 결단을 내린 사람은 구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자 하더라도 우리가 결단해서 선택하지 않으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의지력 있는 사람은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믿음과 의지력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가장 건실한 의지력을 습관해서 가장 귀한 것을 선택하여 믿음안에서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네번째는 풍요로운 정신력의 습관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패배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승자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너희에게 풍요로운 삶을 주기 위함이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강팍한 정신 생활이 아니라 풍요로운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마음의 안정을 가져야 합니다.
인간의 심리작인 욕구중에 가장 큰 것이 안정감을 얻으려 하는 것입니다. 이 안정감은 생명의 원천을 따라 살아갈 때에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생명의 원척,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의 생명 원칙을 가지고 살아갈 때 우리는 안정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제 책상위에 편지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김선도 목사님께
병상에서 고통받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서울대 병원에 교회를 건축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 기뻐하시는 크신 역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 기회야말로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값진 선물인 줄 알고 기쁜 마음으로 동참하고자 합니다. 저는 작은 사업을 경영하는 기업인으로서 총 공사비 19억원 중에 100의 1에 해당하는 2000만원을 2년 작정으로 봉헌코저 하오며 1차로 500만원을 헌금합니다. 이 재물을 오직 땀으로 모여진 것으로만 구별되어진 것입니다. 아울러 기도 드리기는 저의 자녀들이 모두 믿음의 재목들로 건강하게 성장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분은 한 마디로 풍요로운 정신력을 가지고 남에게 나누어 주고자 라는 마음을 가진, 땀 흘려 모은 재산을 보람있는 곳이 쓰고자 하는 의지력의 사람입니다. 우리 광림교회는 부요한 사람이 모이는 교회가 아닙니다. 풍요로운 정신력을 가지고 될 수만 있다면 남에게 나누어 주려고 하는 성도들이 모인 교회입니다.
다섯째번째는 창의력의 개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무한한 가능성은 창의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우리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십니다. 열등의식, 죄책감, 미움과 시기, 질투, 파괴적인 생각때문에 우리의 창의력이 발달되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가 새로운 존재가 될 때에 죄사함을 받고 열등 의식이 사라지고, 사랑하는 마음,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 적극적인 생각을 하고 의로운 생각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발한 창의력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번 선교대회를 마치고 저는 그 곳 감독님과 함께 금문교를 보고 돌아왔습니다. 미국의 자랑인 금문교는 긴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입니다.
그런데 그 금문교는 어떤 사람이 연날리기 대회에서 연이 나는 것을 보고 착안하여 만든 것입니다. 연줄을 이용하여 굵은 밧줄을 주고 받으면서 철근과 돌을 옮겼습니다. 한 사람의 창의력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지 보여주는 예입니다.
그런데 금문교 옆에 작은 섬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감독님 말씀으로는 형무소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은 아이디어를 통해서 유명한 금문교를 놓았는데 비해서 어떤 사람은 일생동안 그 속에 갇혀있는 죄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 채 일생을 죄의식 속에 갇혀 지내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기 개혁의 결단입니다. 인간은 날마다 날마다 자기를 쇄신해야 합니다. 자기를 개혁하는 사람이 발전할 수 있고 자기 향상을 꾀할 수 있습니다. 나는 오래 전에 거듭 났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의 연나라 임금이 아침마다 세수를 하는데 대야 안에는 일신 우일신이라고 새겨 놓았다고 합니다.
자기 개혁은 아픈 것입니다. 자기 혁신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부단히 개혁하고 새롭게 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 있고 위대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개혁을 통해서 은혜와 진리가 풍성한 삶을 누리시며 날마다 적극적인 결단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위대한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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