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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는 햇볕같이 (잠4: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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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가 오늘로 창립된 지 19년, 정말 세월이 유수같이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지난 1년 동안은 제 개인적으로도 제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 가운데에 참 힘들었던 기간이었습니다. 국가적으로 경제위기라고 하는 듣도 보도 못했던 초유의 경제적인 큰 타격이 우리 국민들을 슬프게 했고 수많은 가정들을 황폐하게 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우리 교회 성도들 가정도 많은 타격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사랑하시는 증거로 정권 교체를 하게 해주셔서 정권을 담당한 경험이 없던 분들이 정권을 잡다 보니까 우왕좌왕하고 제대로 하지 못한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점점 자리를 잡고 잘 하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됩니다. 그런 와중에 우리 교회는 제3성전이라고 하는 거대한 일을 지금까지 진행해 왔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 일로 인해서 여러분이 얼마나 마음에 부담을 느끼시고 괴 로워 하시는지 이해를 합니다. 그러한 마음의 짐이 부담, 또 갈등, 그러면서도 일선에서 수고하시는 주의 종들은 참으로 피눈물 흘리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수모도 당했고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고통 가운데서도 이제 제3성전이 마무리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금년 말이면 마무리 될 것입니다. 다만 한가지 이러한 여러 가지 말못할 고통을 겪었지만, 이러한 고통이 부끄러운 고통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끄러운 일을 해서 대단히 고통을 겪었다면 천번 만번 당해야 될 일이지만, 부족한 대로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다가 보니, 또 어려운 시절이 되어서 이런 저런 일로 많은 고통을 겪어왔습니다. 우리의 부족한 것과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아버지께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그 수고와 그 희생을 꼭 기억하시고 꼭 축복해 주실 줄로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남달리 사람이 모르는 고통과 희생을 겪으신 주의 종들에게 우리 하나님께서 분명히 백배, 천배, 만배로 자자 손손 축복해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떻게 은혜를 베푸시고, 어떻게 축복을 하시는가에 대한 성경에 나온 말씀 중에 가장 간단하고도 명백한 말씀입니다. 우리 18절을 같이 함께 읽어 봅시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라고 했습니다. 현대어 성경은 본문을 직역하지 않고 풀어서 번역한 성경입니다. 거기에는 이 본문을 아주 시적으로 번역했습니다."하나님을 모시고 올바로 살아가는 이들, 살아가는 나날이 환하게 비추어 오는 햇살처럼, 파아란 하늘처럼 맑고 밝기만 하리라. 그날이 올때까지…" 이렇게 아름답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돋아나는 아침 햇살처럼 살아가는 날동안 날마다 날마다 환하게 비춰오는 햇살처럼, 저 파란 하늘처럼 맑고 밝게 될 것이다. 이 말씀대로 지금의 어두움과 캄캄한 밤이 물러가고, 이 말씀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햇빛이 가득하게 되실 줄로 믿습니다.오늘 이 말씀을 세가지로 나누어 말씀하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이 귀하고 놀라운 축복을 어떤 사람이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분명히 말씀합니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같다" 라고 말했습니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같이 된다.'
그런데 이 첫마디 말이 우리 뒤통수를 때리는 것같습니다. 이 말씀 앞에 서니까 우리는 무엇을 느낍니다. 아! 나는 아니로구나! 내가 의인인가 의인이 아니다! 때문에 이 말씀으로 부풀어졌던 우리의 가슴이 거품이 사라질 때 허망하게 되는 것처럼, 폭삭 내려앉는 쓸쓸함, 절망감을 느낍니다. 분명히 우리는 의인이 아닙니다. 로마서 3:10에 "의인이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의인이 하나도 없는데, 오늘 말씀은 뭐하러 하셨는가 이말입니다. 해당되지도 않는 말씀을 우리 속을 부글부글 끓게 하시려고 이런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도대체 성경에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의인이라고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율법적으로 의인은 없습니다. 그러면 의인은 누구인가! 한마디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 인정하는 사람인데,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를 받아 주시고, 누구를 품어 주시고, 누구를 불쌍히 여기시고, 누구를 축복해 주시느냐 하면 하나님은 나같은 죄인도 불쌍히 여겨 주시고 세워 주시고 축복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올바른 길입니다. 죄인된 인생이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그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죄인을 사랑해 주시고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그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누구든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나같은 죄인도 받아 주심을 믿고 하나님 품으로 찾아오는 사람, 어린 아이가 엄마의 옷자락을 붙잡듯이, 갓난 아이가 엄마의 가슴을 풀어 헤치고 젖을 찾듯이,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불쌍한 인생을 하나님이 잡아 주시고, 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저같이 죄가 많고 허물이 많고 문제 많은 사람도 어떻게 살았는가하면 다른게 아니라 이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누가 나같은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겠습니까 그래서 이 하나님을 안 다음, 정말로 이 하나님을 부모님 이상으로 의지했습니다. 갓난 아이가 엄마의 품을 찾듯이 이 하나님을 이 예수님을 정말로 의지했고 오늘도 의지하고 있습니다. 이 길이 죄인된 우리가 사는 길, 올바른 길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세요. 그 넓은 하나님의 품 안에 들어가세요. 부끄러움 그대로 들어가세요 하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바라고 오는 자는 열번 백번 죄를 지었어도 하나님은 받아 주십니다. 가세요. 하나님께, 또 가세요.
2.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햇볕같은 축복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둠이라는 것은 분명히 저주요, 사망이요 불행이요 죄요 마귀입니다. 빛은, 햇볕은 생명을 말합니다. 거기에는 행복이 있고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햇볕같이 만드신다고 했는데 어떻게 축복하시느냐 두가지입니다.
(1).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 속에 내 마음에 내 영혼 안에 있는 이 캄캄한 흑암을 하나님이 권능으로 몰아 내신다는 것입니다. 저도 젊은 날에 무등산을 몇번이고 올라 다녔습니다. 해돋이를 보려고 올라갔는데 어둡고 캄캄한 사면에 저 동편에서 햇볕이 희미하게 돋아오릅니다. 자! 이때 이 사면에 덮인 어두움과 이 흑암을 누가 사라지게 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못합니다. 또 저 어둠 저 땅 지평 아래있는 빛을, 태양을, 어떤 손이 끌어 올라오게 하겠습니까 이 흑암을 소리없이 사라지게 한 것도 하나님의 손이요 지평 아래 있는 태양을 떠오르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능력의 손입니다. 그 강력한 창조의 손이 내 영혼 속에 역사하셔서 내 영혼 속에 있는 어두움을 몰아 내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햇볕같은 사람으로 밝고 따뜻하고 온유하고 진실하게 사는 사람으로, 빛으로 사는 사람으로 나를 만들어 주시는 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 예수님만이 하시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가고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2). 우리의 삶, 가정, 자녀들, 하는 일들, 우리의 미래라든지 이러한 우리의 살림살이 위에 하나님께서 슬픔과 어둠을 몰아내시고 햇빛으로 돋아나게 해 주십니다. 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인생의 밑바닥에서 만났습니다. 아주 가난했습니다. 그 때 저는 예수님을 만났고 그때부터 오늘까지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사는데, 그 때 두가지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는, 공부를 계속 해야되는데 공부를 할 수 있는 길은 장학생 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지혜를 주십시오" 하였습니다. 그래서 소정의 공부를 마칠 수 있었는데, 이 장학금이란 것은 꼭 공부를 할 수 있는 돈이지, 먹고 사는 돈은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서 또 하나는 "양식을 주시옵소서" 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그 때 제가 체험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돌보아 주시는 아버지시구나! 그 때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외롭고 힘없는 자를 붙들어 주시는 인자하신 아버지시구나라는 것을 그때 체험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경제위기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의지하고 믿었던 것이 끊어지는 것 아닙니까 이럴 때 사람들은 두려워 합니다. 이제는 죽었구나! 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경제위기흑암의 때에 우리에게 햇볕을 주셔서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의지하십시오.
3. 하나님께서 이러한 축복을 어떻게 이루어 주시는가 하는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요점인데 오늘 본문에 "돋는 햇볕이 점점" 그랬습니다. 점점, 점점,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방법입니다. 점점 원만한 광명에 이르게 된다.
(1). 반드시 된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어둠이 사라지고 햇볕이 돋아나듯이 된다. 왜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이 내 영혼과 내 가족, 내 삶 속에서 무한하신 사랑의 권능으로 흑암을 몰아내시고 빛으로 채워주십니다.
(2).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아진다는 말입니다. 점점 더 좋아집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 두려워 합니다. 금년엔 어떻게 살았는데, 내년엔 어떨까! 또 걱정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에 하나님께서 점점 점점 오늘보다 내일, 금년보다 내년을 더 빛나게 아름답게 하나님께서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때문에 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
(3). 원만한 광명 아래에서도 또 어두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태양은 밝은데, 내가 있는 자리는 어두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먹구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먹구름이 태양을 가리우면 그 아래 사는 사람은 어두움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빛인데, 내 가정은 먹구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햇볕 속에 있는데, 나는 흑암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억하십시다. 아무리 흑암이 짙어도 이 먹구름 위에는 태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먹구름은 지나갑니다. 버티면 얼마나 버팁니까! 오늘의 나에게 이 먹구름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보십시오, 요셉이 애굽에 끌려 가서 손과 발에 쇠고랑을 채워서 쇠고랑을 끌고 다닐 때에 그 요셉은 흑암과 캄캄한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냥 흑암입니까 그냥 고통입니까 사람이 보기에는 그냥 고통이고 되는 것이 없구나! 우리 여기 성도들 가운데 나는 10년을 예수님을 믿었는데, 되는 것이 없다고 하시는분 계실 것입니다. 요셉은 그런 세월을 13년 지냈습니다.
그런데 13년 후에 햇볕이 떠올랐습니다. 지난 날 어두운 흑암 아래 있었던 그 고난의 때가 무엇이었는가 하면 장차 떠오를 새날을, 원만한 광명을 만들고 그릇을 만드는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의 고난을 다 잘 받으세요. 하나님은 이 고난을 통해서 나를 만드십니다. 그렇게 받아 들이세요. 원망하지 마시고, 미워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서 저를 깨뜨리십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리하면 이 먹구름은 빨리 지나갑니다. 그리고 예비된 새날의 햇볕이 돋아 오릅니다. 찬송가 115장 3절에 "온 세상 죄를 사하 러 주예수 오셨네. 죄와 슬픔 몰아내고 다 구원하시네. 다 구원하시네." 다윗이 임종할 때 유언으로 한 말씀인 사무엘 하 23:4절입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돋는 해, 아침 빛같고 구름없는 아침같고 비온 후에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 성도들에게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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