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돌단을 쌓으라 (창28:10-22)

본문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인물은 이스라엘 민족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 친 야곱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모두 12지파로 이루어졌는데 이 12지파는 야곱의 12아들들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이라는 국명(國 名)은 야곱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얍복강가에서 천사에게 환도뼈를 얻 어맞아 다리를 절기까지 하면서도 끝까지 천사와 씨름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내고야마는 야곱에게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여호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 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면서 천사는 그 이름을 개명(改名)하였습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다>는 이름을 가진 나라가 개명천지(開明天 地)에 없습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보내지 않겠다."며 자 신의 소망을 기어코 관철시킨 무서운 집념의 사나이가 야곱, 이스라엘이 었습니다. 세계의 어느 민족도 당해 낼 수 없는 강한 인내심을 가지고 나라 없는 떠돌이 민족으로서 거의 2천 년을 지내면서도 자신의 민족성 과 신앙을 고스란히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핏줄에 바로 그 끈질긴 야곱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전세계의 모든 민족에게 짓밟힘을 받으면서도 오뚝이처럼 늘 일어섰습니다.
야곱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 방법도 가리지 않는 교활하기 그지없는 인간이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에 대한 집념은 무서우리만큼 강했습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내려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 그리고 그 아버지 이삭에게 계승된 축복의 약속을 자신이 받아야겠다는 집요한 집념은 마침내 형 에서와 아버지 이삭을 속이는 일을 서슴지 않 게 합니다. 형 에서와 야곱은 원래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단 몇 분, 아니 몇 초 차이로 에서가 먼저 나와 형이 되었고 그래서 당연히 그 가 장자로서 조상으로부터 계승되어 내려온 축복의 약속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야곱이 그대로 주저앉아 있을리 없습니다. 하루는 에서가 사 냥에서 돌아와 배가 고파 허덕일 때 마침 야곱은 집에서 팥죽을 쑤고 있 었습니다. 기진한 에서가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을 청합니다. 그러자 노 렸다는듯이 대뜸 장자의 명분과 맞바꾸기를 제의했습니다. 에서는 주저하 지않고 그 요구에 선뜻 응합니다. "내가 배가 고파 죽게 되었으니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 리요."(창25:30) 우리는 에서의 이 한마디를 통해서도 장자권에 대한 그의 생각을 충분 히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당장에 배를 채우는 것이 문제지 그런 막연한 축복의 약속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에서가 장 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창25:34)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배고파하는 형의 약점을 이용해서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권한을 빼앗는가 하면 눈먼 아버지의 축복을 훔치기 위해 형으로 가장하는 짓 마저 서슴치 않았을 만큼 야곱은 장자의 축복권, 다시말해 하나님의 축복 의 약속에 대한 대단한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면 야곱이 그토록 집착했던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은 무엇인가 그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에 게 약속되었던 하나님의 축복은 이렇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며 네게 복을 주고 네 이름을 위 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되리라. 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 내가 복을 주 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리라 네 안에서 땅의 모든 족속들이 복을 받을 것이라 하셨더라."(창12:2-3) 이와같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에서에게는 당장 현실성이 없어보이는 황당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장자의 축복권에 대해 그다지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달랐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 버지에게 무수히 들어온 그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아버지의 그 이야기는 어린 야곱의 가슴을 몹시 부풀게 했 고 설레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차츰 철이 들면서 그 축복이 차남인 자기에게는 돌아올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굉장한 좌절과 비애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는 과연 어떻게 하면 형의 장자권 을 빼앗아 하나님의 위대한 축복의 약속을 자기가 상속받을 수 있을까를 골똘하게 궁리하면서 기회만 노리고 있었던것 같은데 그러던 차에 마침 허기가 져서 거의 이성을 잃다시피한 에서와 마주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에서의 우직한 성격을 잘 알고 있었던 야곱은 결국 팥죽 한 그릇으로 간 단히 장자의 권한을 넘겨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남은 문제는 어떻게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장자에게 내리는 마지막 축복의 기도를 받아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실로 그것은 대단한 모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의 축복을 자기가 가로챈다는 것은 어쩌면 평생 저주를 면하기 어려운 결과를 가져올런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그의 집념은 마침내 아버지를 속여서라도 기어이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했습니다. 그는 형 에서가 아버지의 마지막 축복기도를 받기 위해 기름진 식탁을 마련하고자 사냥을 떠난 틈을 타서 자기를 더 사랑하는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교묘하게 에서로 위장하고 늙어서 눈이 먼 아버지에게로 들어가 결 국 장자에게 내리는 이삭의 최후의 축복을 받아내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당시 이삭이 맏아들인줄 알고 야곱에게 해준 축복은 다음과 같다. "아! 내 아들에게서 풍기는 냄새, 여호와의 복받은 들향기로구나,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리신 이슬로 땅이 기름져 오곡이 풍성하고 술이 넘쳐나거라, 뭇 백성은 너를 섬기고 뭇 백성은 네 앞에 엎드리리라 너는 네 겨레의 머리가 되어 네 동기들이 네 앞에 엎드리리라, 너를 저주 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에게 복을 빌어주는 사람은 복을 받으리라."(창 27:27-29)
참 아름다운 축복이다. 에서는 이 축복을 그의 미련함과 무분별함으로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뒤늦게 온 에서가 그 사실을 알고 통곡하지만 이 미 사태는 끝났습니다. 그 대신 에서가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들은 예언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네가 살 땅은 기름지지 않는 땅, 하늘에서 이슬 한 방을 내리지않는 땅이다. 칼만이 네 밥줄이 되리라. 너는 네 아우를 섬겨야 할 몸, 스스로 힘을 길러 그가 비운 멍에를 목에서 떨쳐버려야 하리라."(창27:39-40)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경솔히 여긴 자가 받은 저주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우습게 생각하여 팥죽 한 그릇에 그 상속권을 팔아 넘 긴 에서의 경솔한 태도에 대한 당연한 대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주셨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을 수 있는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 자녀의 권세나,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을 축복을 헐값에 팔아 넘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에 대한 신앙을 소흘히 여기 쉽게 포기하 지 마시기 바랍니다. 에서와 같이 통탄할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당장에 배고프다고 팥죽 한 그릇에 여러분의 영원한 미래를 팔아버리는 일은 없 습니까 현재의 고난을 이기지 못하고 미래의 축복을 너무나 쉽게 팔아 치우지는 않습니까 눈 앞에 보이는 한 조각 떡을 위해 신앙을 등지고 예배를 멀리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가 약속하는 것들이 현실성이 없다고해서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쉽게 팔아버릴 생각을 가져본 적은 없 습니까 형 에서를 기만하는 부도덕과 아버지 이삭을 속이는 비윤리보다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기는 신앙을 하나님께서는 귀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축복을 위해서 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야곱의 부도덕과 비윤리를 정당화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도덕과 윤리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것이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도덕과 윤리를 능가하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집념어린 신앙으로 형의 장자 축복권을 탈취하는 엄청난 일을 저지른 야곱은 형 에서의 살기등등한 증오를 피해 멀리 외삼촌이 계시는 밧단 아람으로 도망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 을 받았지만 당장의 자신의 처지는 도망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토 록 총애를 받았던 어머니를 다시 만날 기약도 없이 떠나야하는 생이별을 당해야 했습니다. 처음 겪는 고독감 속에 엄습해오는 피곤함으로 그는 들 판에서 외로히 밤을 지내게 됩니다. 그는 돌 하나를 주워서 베개로 삼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 오르락 내리 락하고 있었습니다. 이어 하나님께서 그 위에 서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이었습니다.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주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 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씨에게 주리라. 네 씨는 땅의 티끌같이 될 것이며 너는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까지 멀리 퍼지리라 땅의 모든 족속들이 너와 네 씨 안에서 복을 받으리라.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 로 가든지 모든 곳에서 너를 지키며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리니, 내 가 네게 말한 바를 이룰 때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할 것이라."(창 28:13-15)
한 마디로 야곱이 받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에 대한 하나님의 재확인 이며, 그 약속을 다 이루기까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항상 너와 함 께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고독한 도망자의 처량한 신세에 홀로인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너무나 큰 위로와 소망이 되는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이곳이 바로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 이로다."며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다 단을 쌓고 그곳 이름을 벧엘, 즉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 돌단을 쌓았다는 것은 "내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항상 너와 함께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마음 속에 늘 기억하며 살겠다는 마음의 다짐입니다. 그가 그 후 20년 간 객지의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도 불평 없이 하루 하루를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이 신비로운 사닥다리 체험을 통해 주어졌 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꿈에 나타난 사닥다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 징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장 5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 을 보리라"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이 시대에 모든 인류를 위한 사닥다리인 것입니다. 땅 위에 범죄한 야곱으로 하여금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 도록 하는 유일한 통로, 사닥다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이 꿈에 본 것은 단순 히 물리적인 사닥다리가 아니라 구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체험한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처럼 피곤하고 지친 인생들에게 최상의 위로와 안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도 절망의 심연과 뼈저린 고독으로 몸부림치는 자에게, 나그네와 행인으로 이 세상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닥다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셔서 참된 평 안과 위로와 용기를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닥다리 위에 서 야곱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 "네가 어디로 가든 너를 지키며 너를 떠 나지 아니하며 항상 너와 함께 하겠다."는 이 말씀은 형 에서의 보복을 피하여 황급히 도피하던 중 광야에서 날이 저물자 벧엘에 돌 베개를 베 고 기진맥진하여 쓰러져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위로와 소망의 말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동시에 미래의 영광을 제시한 격려의 약속이 었습니다. 즉 이 약속은 곧 "네가 고난받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이 너의 영광이 될 것이다."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야곱에게 있어서 자신 이 누워 있는 그 땅보다 더 초라한 것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실로 그것은 야곱에게 있어 최대의 불행한 암흑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하여 그렇게 처절한 순간이 야곱에게 있어서 가장 영광스러운 장면으로 바뀔 것을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오늘날 야곱과 같이 괴로움에 시달리는 영혼을 위해 이보다 더 값진 약속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약속은 십자가의 죽음이 생명의 부활 로 바뀔 것이라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시련 당하는 날이 이제 승리의 부활절 새벽이 될 것이라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누운 자리가 피곤하고 고독하며 고통스러운 자리입니까 하나님은 바로 그런 곳에 계십니다. 여러분이 계신 곳이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 될 것입니다. 사닥다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고 마음 에 돌단을 쌓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요한은 유배지 밧모섬에 던져졌을 때 인류의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했습니다. 다윗의 시와 노래들 은 사랑하는 아들의 반역으로 쫓겨 다니는 어두운 밤에 불려진 것들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고뇌의 밤은 곧 부활의 새벽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고 여러분의 마음에 하늘에 닿는 사닥다리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에 돌단을 쌓으십시오. 여러분이 마시 기 어려운 쓴 잔이 기쁨의 포도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우울했던 시절 이 기쁨이 될 것입니다. 황량한 마음이 기쁨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나중된 것이 머지않아 처음이 될 것입니다. 가시가 장미로, 골짜기가 언덕으로, 굽은 것이 곧게, 바퀴 자국이 평평하게, 안개가 햇살로, 그림자 가 빛으로, 실패가 승리로, 눈물의 골짜기가 환희의 대로로 변화될 것이다. 야곱은 그의 집념어린 신앙으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으로 축복의 줄기를 바꾸었습니다. 그는 그를 외면하여 흘 러가려는 역사의 줄기를 억지로 자기에로 되돌린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없는 길도 새로 만들어 간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결정적 인 비결은 바로 사닥다리 환상을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투 철한 믿음으로 돌단을 쌓는데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인구는 약 450만명 정도입니다.
그런데 히틀러에게 죽은 유 대인은 무려 600만명이나 됩니다. 남부 독일의 뮌헨 근교 다카우라는 곳 에는 그 악명 높은 유대인 강제 수용소가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약 10 여년 동안 20만명의 유대인이 그곳을 거쳐갔고, 그중 31,951명이 살해되 거나 온갖 인체실험용으로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가면서도 그들이 부른 노래 하나가 있습니다. "나는 태양이 빛나지 않을 때에도 태양이 있음을 믿는다. 나는 사랑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사랑이 있음을 믿는다. 나는 하나님이 침묵을 지키실 때에도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다. 나는 믿는다. 영원한 평화의 그날이 이 땅위에 오리라는 것을 더딜지라도 그날이 오리라 나는 굳게 믿는다." 질기디 질긴 야곱의 피가 흐르는 유대인의 신앙고백입니다. 이스라엘 의 역사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끝끝내 되살 아난다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말해 주는 좋은 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야곱과 같은 불굴의 신앙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 리시기 바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인생들이여, 하늘에 닿는 사닥다 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고 마음에 돌단을 쌓아 삶에 위로와 소망과 용기를 가지고 마침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내시기를 기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20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