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경외하라 (말1:2)
본문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알아 선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이태중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이 아셨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셨고 끝가지 인도하셨습니다 (1:2).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왕은 모든 삶을 주장할 뿐 아니라 그 백성들의 삶을 책임지는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할 때는 바로 이러한 의미를 담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모든삶은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맡겨져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을의뢰하는 것을 가리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이라고 합니다. 경외한다는 말은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단순히 두렵다는말이 아니라 즐거 워하면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니다. 즉, 두려움과 즐거움을동시에 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그 앞에서잠잠히 두려워하면서 가슴이 터지도록 즐거워하는 것을 뜻합니다. 바로 그러한 삶이 형상화 될 때, 비로소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신 6:5)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는 늘 존귀와 영광을 드리되 가장 큰 기쁨과 벅찬감동을 받는 삶이 바탕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조금치도두려워하지도 않으며 즐거워하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된 사랑입니다. 누구 나 쉽게 할 수 있는 사랑을 하나님은 원하시지 않습니다. 온 마음과 뜻과힘을 다하는 사랑이 아니라면 그 역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벅찬 감격을 누리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따라 산다고할 때는 규정된 삶의 태도를 갖추는 것을 뜻하질 않습니다. 오 히려 하나님을 섬기고 떨며 즐거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그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때 비로소 율법을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주께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1:2)고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증표가 전혀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불평이었습니다. 그들의 선조들도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 오던 그 기쁨의 순간들 속에서도 그와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맛사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목이 갈하자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가로되 우리에게 물 을 주어 마시게 하라"(출 17:2)고 원망을 합니다.
그런데이 원망 속에는 그들이 참으로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 되어서 물을 달라고하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을 시험하는 못된 심성이 담 겨져 있었습니다. 곧하나님께서 참으로 이스라엘 가운데 계시며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고 책임 질수 있는 분이신가 하는 의구심에서 물을 달라고 원성을 높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맛사라고 했는데 성경에서는 이것을 가리켜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출 17:7)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건너게도 하셨고 광야에서 만나를 내리셔서 먹이기도 하시며, 불기둥과 구 름기둥으로 친히 인도하심을 체험하면서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그들 중에 계신지 아닌지 시 험을 하기 위하여 객기를 부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심성의 발로는 그 근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빈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연단하셨습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을철저하게 변화시 키셨습니다. 그 결과 옛 사람은 모두 광야에서 멸절되고 전혀 새 사람이 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연단은 지상에서 계속되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었습니다. 철저하게 옛 사람을 죽이 고 새 사람이 될 때만이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구원의 계획은 마침내 지상 왕국을 멸 망케 하심으로써 또한번 확증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완전한 인간성 회복을 위해서 중 보자이신 메시야가 오셔서 하나님과 접붙이는 작업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라기 선 지자가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His Temple)에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 의 사자(중보자이신 메시야)가 임할 것이라"(3:1). 이 메시야가 임하는 날에는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군의 삯에 대하여서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3:5)는 말씀 처럼 하나님의말씀을 거역한 자들을 철저하게 심판 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심판이 있은 후 새롭게 태어난 새 이스라엘만이 비로소 하나님을경외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만이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되어 남게 될 것입니다(3:16-17). 이 들이 약속된 남은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만이 메시야의 구원에 참예하게 되는 것입니다(4:2).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말라기의 메시지는 구약 전체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모든삶은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맡겨져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전적으로 하나님을의뢰하는 것을 가리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이라고 합니다. 경외한다는 말은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단순히 두렵다는말이 아니라 즐거 워하면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니다. 즉, 두려움과 즐거움을동시에 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그 앞에서잠잠히 두려워하면서 가슴이 터지도록 즐거워하는 것을 뜻합니다. 바로 그러한 삶이 형상화 될 때, 비로소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신 6:5)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는 늘 존귀와 영광을 드리되 가장 큰 기쁨과 벅찬감동을 받는 삶이 바탕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조금치도두려워하지도 않으며 즐거워하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된 사랑입니다. 누구 나 쉽게 할 수 있는 사랑을 하나님은 원하시지 않습니다. 온 마음과 뜻과힘을 다하는 사랑이 아니라면 그 역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벅찬 감격을 누리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따라 산다고할 때는 규정된 삶의 태도를 갖추는 것을 뜻하질 않습니다. 오 히려 하나님을 섬기고 떨며 즐거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그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때 비로소 율법을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주께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1:2)고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증표가 전혀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불평이었습니다. 그들의 선조들도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 오던 그 기쁨의 순간들 속에서도 그와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맛사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목이 갈하자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가로되 우리에게 물 을 주어 마시게 하라"(출 17:2)고 원망을 합니다.
그런데이 원망 속에는 그들이 참으로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 되어서 물을 달라고하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을 시험하는 못된 심성이 담 겨져 있었습니다. 곧하나님께서 참으로 이스라엘 가운데 계시며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고 책임 질수 있는 분이신가 하는 의구심에서 물을 달라고 원성을 높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맛사라고 했는데 성경에서는 이것을 가리켜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출 17:7)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건너게도 하셨고 광야에서 만나를 내리셔서 먹이기도 하시며, 불기둥과 구 름기둥으로 친히 인도하심을 체험하면서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그들 중에 계신지 아닌지 시 험을 하기 위하여 객기를 부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심성의 발로는 그 근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빈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연단하셨습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을철저하게 변화시 키셨습니다. 그 결과 옛 사람은 모두 광야에서 멸절되고 전혀 새 사람이 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연단은 지상에서 계속되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었습니다. 철저하게 옛 사람을 죽이 고 새 사람이 될 때만이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구원의 계획은 마침내 지상 왕국을 멸 망케 하심으로써 또한번 확증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완전한 인간성 회복을 위해서 중 보자이신 메시야가 오셔서 하나님과 접붙이는 작업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라기 선 지자가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His Temple)에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 의 사자(중보자이신 메시야)가 임할 것이라"(3:1). 이 메시야가 임하는 날에는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군의 삯에 대하여서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3:5)는 말씀 처럼 하나님의말씀을 거역한 자들을 철저하게 심판 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심판이 있은 후 새롭게 태어난 새 이스라엘만이 비로소 하나님을경외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만이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되어 남게 될 것입니다(3:16-17). 이 들이 약속된 남은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만이 메시야의 구원에 참예하게 되는 것입니다(4:2).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말라기의 메시지는 구약 전체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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