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납되지 않은 제사 (말1:6-14)
본문
제사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열납되기 위함입니다.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 과 만나고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게되는 것입니다. 제사에 실패해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또한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말라기의 두번째 설교인데 내용이 없고 형식만 있는 제사를 탄 식 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룹바벨의 지도로 세워진 성전이 머지 않아 서 마국의 보배가되고 하나님의 영광이(학2:7) 충만해질것을 믿고 기다렸차 않쬈 총독 스룹바벨도 죽고 없어졌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자 그 들은 마음을 조급하게 먹고 낙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들은 인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기에 쉽게 절망하고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무시 했던 것이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을 책망함에 있어서 먼저 이 스라엘과의 언약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향하신 절대적인 사랑을 아버지의 사랑으로 묘사하신 것이다. (출 4:22-23)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장자 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 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이스라엘은 영적인 장자 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들의 위치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모세의 고별 설교에서도 (신 32:6)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 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 이사야도(사 1:2)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호세아도(호 11:1-2)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 선지자들이 저희를 부를수록 저희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 하며 아로새긴 우상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말라기도 마찬가지로 6절 (말 1:6)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 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스라엘은 택한 선민이 되었음에도 참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마지 못 하여 더러운 떡과 눈먼 희생과 병든 것을 골라 제물로 드리는 형식적인 의식만 남아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아버지 일뿐 아니라 주인이시다. 하나님이 주인 이라고 말씀하신다면 스라엘은 하나님의 종이심을 의미한다. 아버지는 공경의 대상이요, 주인은 두려 움의 대상이다.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으로 부터 생명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마땅히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삶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명을 볼때 우리는 다 하나님의 종이다. 사명으로 볼때 메시야도 종이었다(사42:1;52:13). 이스라엘은 이와같이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감격이 없이 의식과 형식적인 신앙 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7-7절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 더러운 떡은 단에 놓은 것으로 보아서 진설병이 아니라 소제로 드리는 무교병을 말하는 것이다.
이 소제는 레위기 2:4-9에 보면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만든 것이어야 했는데 이들은 제물을 드림에 있어서 정성이 없었던 것이다. 떡에 더러운 것이 묻어서 더러운 것이 아니라 정성 이 없는 제물을 가르키는 것이다. 이와같은 지경에 이르게된 까닭이 무엇인가 그들은 벌써 마음이 병들어 있 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단을 경멸하고 없신여기는 것이다 8절-하나님의 단을 경멸하는 행위는 더러운 떡을 드림에서 부터 더 나아가 서 눈멀고 병든 것을 하나님의 제단에 드리는 것이다. 신15:21,레22:22은 이미 구약에서 눈먼것, 저는것, 병든것은 희생제물로 드릴 수 없게되어있다. 온전한 제물을 드려야 할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가치없고 천한 것을 선물을 선물 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너희 총독 들에게 갖다 줘보아라 받는가라는 말씀으로 반문하시는 것입니다. 9절은 더러운 제물을 드린 결과를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도 안받으시겠 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받겠느냐는-얼굴을 받아 들인다 혹은 든다라고 번 역할 수있는데 임금 앞에 얼굴을 들 수 잇는 것은 은총와 자비의 표현이다. 우리는 제사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제사는 바로 얼굴을 맑갛게 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제물을 통해서 진노의 얼굴을 푸시고 자비와 은혜의 모습으로 은총을 베푸실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흠있고 더러운 제물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도 받지 않으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0절-하나님께 보실때 그모든 제물을 헛된 제물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헛된 제물은 아무 성과가 없을 뿐더러 전적으로 허무한 제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제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도 받지도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게서는 때때로 사람들을 통하여 기쁨을 얻으시고 (시22:8,41:11,민14:8), 인간들이 하나님이 정한 선한길을 갈때 기뻐하시고(시37:23), 때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거하는 곳을 기뻐하시기도 하시는 것입니다(사62:4).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사드리는 사람들이 더러운 제물을 드릴때 하나님께서는 더이상 헛된 제물을 드리지 못하도록 (누가) 성전문을 아 예 닫아 주었으면 좋겠도다. 고 하십니다. 솔로몬 성전도, 수룹바벨 성전도, 헤롯 성전도 허물도록 허용하신 이유는 형 식적인 의식만 남아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11절-하나님은 의식만 남을 유대인들을 더이상 장자로 인정하시지 아니하시 고 이방의 모든 나라, 해뜨는 곳에 부터 지는 곳까지 각처에서 내이름으로 크게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 선지자들 처럼 교회 시대를 예언 한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신12:5-7에서 보면 정한 장소에서 제사를 드리 게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로 이름으로 모인 곳은 어디든 지(마18:20) 신령과 진정으로(요4:21,23,24) 예배를 드리게 될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깨끗한 재물이란 육체적으로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깨끗한 것을 말하는데 장차 나타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디에서나 순결한 예배가 이루어질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12절은 미래적으로 이방의 나라들도 깨끗한 제사를 드리게될 것인데 반하여 유대인들을 가르키면서 너희라고 대조를 이루면서 오히려 그렇지 못함을 깊 이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7절의 경고를 다시 반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오히려 내적인 생명은 잃어 버리고 의식만 남아서 외식적인 형식만 남아 있다면 하나님을 멸시하는 악한자들과 다를바가 없는 것이다. 13절은 8절의 경고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라고 짜 증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번폐라는 말은 괴롭고 피곤을 토로하는 말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믿음 없이 봉사하는 것을 피곤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 자체가 기쁨이요, 행복인 것입니다.
그런데 기쁨이 없이 억지 로 하나님께 제사를 하니 원망과 불평과 힘이 들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사는 드려야 겠고해서 좋고 실한 것을 아껴서 남겨두고 저는 것, 토색한것, 병든것을 가져왔던 것이다. 이런 것은 개에게 던져야 했던 것이다(출22:31). 14절-그들은 없어서가 아니라 떼가 있음에도 불고하고 더러운 제물을 드리는 것이다. 서원제는 자원하는 제사이다. 서원제는 화목제물의 하나로 항상 흠없은 숫컷이어야 했다(레22:19,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흠있는 것을 골라서 드리는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기행위로 규정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하나님은 큰 임금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을 큰 임금으로서 결코 그냥 넘어 가시지 않고 심판하실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결론 사람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 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한다고 했습니다(시50:23). 우리의 봉사와 충성과 예물 이 하나님께 열납이 되어야 합니다. 가인의 제사는 정성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습니다 우리의 한 사람도 예배에 실패자가 되지 않고 열납되는 예배와 제사가 되어 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며,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받게되시기 를 축원합니다.
말라기도 마찬가지로 6절 (말 1:6)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 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스라엘은 택한 선민이 되었음에도 참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마지 못 하여 더러운 떡과 눈먼 희생과 병든 것을 골라 제물로 드리는 형식적인 의식만 남아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아버지 일뿐 아니라 주인이시다. 하나님이 주인 이라고 말씀하신다면 스라엘은 하나님의 종이심을 의미한다. 아버지는 공경의 대상이요, 주인은 두려 움의 대상이다.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으로 부터 생명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마땅히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삶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명을 볼때 우리는 다 하나님의 종이다. 사명으로 볼때 메시야도 종이었다(사42:1;52:13). 이스라엘은 이와같이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감격이 없이 의식과 형식적인 신앙 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준다.(7-7절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 더러운 떡은 단에 놓은 것으로 보아서 진설병이 아니라 소제로 드리는 무교병을 말하는 것이다.
이 소제는 레위기 2:4-9에 보면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만든 것이어야 했는데 이들은 제물을 드림에 있어서 정성이 없었던 것이다. 떡에 더러운 것이 묻어서 더러운 것이 아니라 정성 이 없는 제물을 가르키는 것이다. 이와같은 지경에 이르게된 까닭이 무엇인가 그들은 벌써 마음이 병들어 있 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단을 경멸하고 없신여기는 것이다 8절-하나님의 단을 경멸하는 행위는 더러운 떡을 드림에서 부터 더 나아가 서 눈멀고 병든 것을 하나님의 제단에 드리는 것이다. 신15:21,레22:22은 이미 구약에서 눈먼것, 저는것, 병든것은 희생제물로 드릴 수 없게되어있다. 온전한 제물을 드려야 할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가치없고 천한 것을 선물을 선물 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너희 총독 들에게 갖다 줘보아라 받는가라는 말씀으로 반문하시는 것입니다. 9절은 더러운 제물을 드린 결과를 말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도 안받으시겠 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받겠느냐는-얼굴을 받아 들인다 혹은 든다라고 번 역할 수있는데 임금 앞에 얼굴을 들 수 잇는 것은 은총와 자비의 표현이다. 우리는 제사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제사는 바로 얼굴을 맑갛게 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제물을 통해서 진노의 얼굴을 푸시고 자비와 은혜의 모습으로 은총을 베푸실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흠있고 더러운 제물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도 받지 않으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0절-하나님께 보실때 그모든 제물을 헛된 제물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헛된 제물은 아무 성과가 없을 뿐더러 전적으로 허무한 제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제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도 받지도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게서는 때때로 사람들을 통하여 기쁨을 얻으시고 (시22:8,41:11,민14:8), 인간들이 하나님이 정한 선한길을 갈때 기뻐하시고(시37:23), 때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거하는 곳을 기뻐하시기도 하시는 것입니다(사62:4).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사드리는 사람들이 더러운 제물을 드릴때 하나님께서는 더이상 헛된 제물을 드리지 못하도록 (누가) 성전문을 아 예 닫아 주었으면 좋겠도다. 고 하십니다. 솔로몬 성전도, 수룹바벨 성전도, 헤롯 성전도 허물도록 허용하신 이유는 형 식적인 의식만 남아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11절-하나님은 의식만 남을 유대인들을 더이상 장자로 인정하시지 아니하시 고 이방의 모든 나라, 해뜨는 곳에 부터 지는 곳까지 각처에서 내이름으로 크게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 선지자들 처럼 교회 시대를 예언 한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신12:5-7에서 보면 정한 장소에서 제사를 드리 게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로 이름으로 모인 곳은 어디든 지(마18:20) 신령과 진정으로(요4:21,23,24) 예배를 드리게 될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깨끗한 재물이란 육체적으로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깨끗한 것을 말하는데 장차 나타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디에서나 순결한 예배가 이루어질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12절은 미래적으로 이방의 나라들도 깨끗한 제사를 드리게될 것인데 반하여 유대인들을 가르키면서 너희라고 대조를 이루면서 오히려 그렇지 못함을 깊 이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7절의 경고를 다시 반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오히려 내적인 생명은 잃어 버리고 의식만 남아서 외식적인 형식만 남아 있다면 하나님을 멸시하는 악한자들과 다를바가 없는 것이다. 13절은 8절의 경고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라고 짜 증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번폐라는 말은 괴롭고 피곤을 토로하는 말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믿음 없이 봉사하는 것을 피곤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 자체가 기쁨이요, 행복인 것입니다.
그런데 기쁨이 없이 억지 로 하나님께 제사를 하니 원망과 불평과 힘이 들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사는 드려야 겠고해서 좋고 실한 것을 아껴서 남겨두고 저는 것, 토색한것, 병든것을 가져왔던 것이다. 이런 것은 개에게 던져야 했던 것이다(출22:31). 14절-그들은 없어서가 아니라 떼가 있음에도 불고하고 더러운 제물을 드리는 것이다. 서원제는 자원하는 제사이다. 서원제는 화목제물의 하나로 항상 흠없은 숫컷이어야 했다(레22:19,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흠있는 것을 골라서 드리는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기행위로 규정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하나님은 큰 임금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을 큰 임금으로서 결코 그냥 넘어 가시지 않고 심판하실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결론 사람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 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한다고 했습니다(시50:23). 우리의 봉사와 충성과 예물 이 하나님께 열납이 되어야 합니다. 가인의 제사는 정성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습니다 우리의 한 사람도 예배에 실패자가 되지 않고 열납되는 예배와 제사가 되어 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며,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받게되시기 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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