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목자 (슥11:15-17)
본문
화 있을찐저 양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 팔에, 우편 눈에 임하리니 그 팔이 아주 마르고 그 우편 눈이 아주 어두우리라 (슥11:17) 이 세상에 진리만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참이 있는 가하면 악은 그보다 더 크게 성황을 하고 있습니다. 은혜가 풍성한 교회일수록 사탄의 역사는 더욱 크고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려고 하는 사람이 생길수록 사탄은 그를 넘어뜨리려고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교회를 사랑하시어서 교회에 발을 들여놓고 모든 성도들이 은혜 에 잠길 때에 사탄은 그것을 보고 좋아서 박수를 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 사탄은 가까운 가족 식구나 교회 안의 형제 혹은 가장 지원해 주어야 할 사람들 을 통해서 성도를 넘어뜨리려고 별의 별 짓을 다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것은 지도자 중에 거짓 지도자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성도를 가장 가깝게 인도해야 할 분들이 거짓 지도자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1.거짓 목자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슥11:16) 스가랴 선지자는 본문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두 번째 상징적인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슥11:7-14절에서는 참목자 되시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것이라고 하는 예언이 기록되어 있고 이어서 15-16절에서는 메시야가 오실 때에는 또한 거짓 목자들이 도처에서 나타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그 거짓 지도자들이 부정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이 있고 또 긍정 적,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1).무관심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슥11:16상) 16절의 한 목자는 악한 목자를 말합니다. 그악한 목자는 없어진 자, 즉 흩어진 자, 상한 자 등 도움이 요청되는 사람들에게 무관심합니다. 마음에 두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태만입니다. 모든 일에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앞에 흩어지고 상한 양떼가 있는가 하면 없어진 양떼들이 있는데 거짓 목자는 그들을 못본체 합니다. 또한 거짓 목자는 강건한 자를 먹이지도 않습니다. 강건한 자가 누구입니까.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자들로 생명의 떡을 먹어야 하고 생수를 마시게 하여 영양을 공급시키고 기도의 능을 갖게 하고 믿음을 키워 주어야 하는 그런 자들이 인데 거짓 목자는 그들을 먹이지도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짓 목자의 특징이며 또한 부정적인 부분입니다.
2).적극적인 악행 오히려 살찐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슥11:16하) 거짓 목자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이 말은 두 가지로 정리가 됩니다.
첫째, 욕심입니다. 탐욕과 자기 욕심에 끌려서 살찐 자의 고기를 먹고 배를 채웁니다. 자기만 건강하고 자기만 좋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둘째, 자인 성입니다. 살찐 것을 먹고 그 굽까지 찢어 먹으니 얼마나 잔인합니까. 딱딱끊어버리는데 냉정 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성도는 눈물을 흘리고 갈 곳이 없이 이리저리 방황하는데 너 같은 것은 지옥에 가도 좋다고 하면서 쫓아냅니다. 오늘 우리 교역자들 가운데 이런 분이 있으면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개개인이 다 지도자입니다. 자식에게도 가족에게도 구역에서 교회 안에서 민족사회 안에서 지도자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 가운데 사라진 사람도 있고 하나님 앞에 나왔던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고 또 우리의 가족 식구들, 일가 친척, 구역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할 사람들이 멀리멀리 떠나고 있는데도 우리 마음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고 책임도 느끼지 못하고 갈 테면 가라고 하면서 자신의 구원만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바로 거짓 목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서 얼마나 태만했는지 또 기도의 폭이 좁아서 그들을 염려하는 일을 얼마나 했는지,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욕심에 차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욕심이 생기면 잔인해집니다. 자기 소욕을 채우려면 잔인해지는 것입니다. 인류의 최초의 살인자가 된 가인도 처음부터 악한 자는 아니었습니다. 그가 살인자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동생 아벨의 제물만 받으신 것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었습니다. 가인에게 왜 질투심이 생겼습니까. 자기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죄는 자기를 사랑하는 데서부터 옵니다.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자기의 욕심에 끌려가다가 죄에 빠지는 것입니다. 악한 자의 모습은 게으르고 태만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하셨습니다.
그런데 악한 사람 따로 있고 게으른 사람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달란트를 땅에 묻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악하고 게으른 자입니다. 이런 자는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목적은 이스라엘이 귀해서 구원하신 것이 아니고 이방 사람들의 빛을 삼으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나를 통해서 내 가족이 구원을 받고 내 친척이 구원을 받고 내 이웃 형제들이 구원받기 위함입니다. 매우 소중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이 비록 어렵고 곤 고한 지경에 있어도 하나님 의 사랑과 은총에 감격된 삶을 살고 하나님 앞에 기쁨과 영광을 돌리면서 살아야 됩니다. 그러는 가운데 복음이 확산되고 마음에 기쁨이 오고 가정에 찬송이 생기며 교회에 은혜가 넘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나태한 자리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태만에서 벗어나고 탐욕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또한 욕심을 빨리 끊어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더 사랑해야 됩니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나 자기를 사랑하면 욕심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사랑하고 주님의 일을 사모해야 됩니다. 그러는 가운데 자기의 소욕이 떨어지게 됩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해 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흩어져 있는 선교사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소욕에만 밀리지 말고 좀도 넓게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근심 합시다. 우리는 잔인한 사람이 되면 안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가혹하게 하면 안됩니다. 또 우리는 너무 법, 법하지 말아야 됩니다. 너무 법을 따지다가는 자기 자신이 그 올 무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법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고 율법 안에 사는 사람이 아니며 은혜 안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자기의 정당성만을 구하지 말고 은혜 안에서 모든 일을 해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그렇게 인도해 주셨고 그렇게 사랑해 주셨고 은혜 안에서 대해 주셨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우리를 율법으로 대해 주셨다면 우리 가운데 누가 예수님 앞에 나올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계명으로 우리를 재어 보시며 우리 모두는 지금 이 자리에서 도망을 쳐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같은 죄인을 은혜로 불러 주시고 사랑으로 감싸주시고 지금의 자리 에 서게 하셨으니 저와 여러분은 은혜 안에서 은혜가 충만한 삶을 사실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1.거짓 목자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슥11:16) 스가랴 선지자는 본문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두 번째 상징적인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슥11:7-14절에서는 참목자 되시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것이라고 하는 예언이 기록되어 있고 이어서 15-16절에서는 메시야가 오실 때에는 또한 거짓 목자들이 도처에서 나타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그 거짓 지도자들이 부정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이 있고 또 긍정 적,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1).무관심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슥11:16상) 16절의 한 목자는 악한 목자를 말합니다. 그악한 목자는 없어진 자, 즉 흩어진 자, 상한 자 등 도움이 요청되는 사람들에게 무관심합니다. 마음에 두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태만입니다. 모든 일에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앞에 흩어지고 상한 양떼가 있는가 하면 없어진 양떼들이 있는데 거짓 목자는 그들을 못본체 합니다. 또한 거짓 목자는 강건한 자를 먹이지도 않습니다. 강건한 자가 누구입니까.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자들로 생명의 떡을 먹어야 하고 생수를 마시게 하여 영양을 공급시키고 기도의 능을 갖게 하고 믿음을 키워 주어야 하는 그런 자들이 인데 거짓 목자는 그들을 먹이지도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짓 목자의 특징이며 또한 부정적인 부분입니다.
2).적극적인 악행 오히려 살찐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슥11:16하) 거짓 목자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이 말은 두 가지로 정리가 됩니다.
첫째, 욕심입니다. 탐욕과 자기 욕심에 끌려서 살찐 자의 고기를 먹고 배를 채웁니다. 자기만 건강하고 자기만 좋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둘째, 자인 성입니다. 살찐 것을 먹고 그 굽까지 찢어 먹으니 얼마나 잔인합니까. 딱딱끊어버리는데 냉정 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성도는 눈물을 흘리고 갈 곳이 없이 이리저리 방황하는데 너 같은 것은 지옥에 가도 좋다고 하면서 쫓아냅니다. 오늘 우리 교역자들 가운데 이런 분이 있으면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개개인이 다 지도자입니다. 자식에게도 가족에게도 구역에서 교회 안에서 민족사회 안에서 지도자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 가운데 사라진 사람도 있고 하나님 앞에 나왔던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고 또 우리의 가족 식구들, 일가 친척, 구역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할 사람들이 멀리멀리 떠나고 있는데도 우리 마음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고 책임도 느끼지 못하고 갈 테면 가라고 하면서 자신의 구원만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바로 거짓 목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서 얼마나 태만했는지 또 기도의 폭이 좁아서 그들을 염려하는 일을 얼마나 했는지,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욕심에 차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욕심이 생기면 잔인해집니다. 자기 소욕을 채우려면 잔인해지는 것입니다. 인류의 최초의 살인자가 된 가인도 처음부터 악한 자는 아니었습니다. 그가 살인자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동생 아벨의 제물만 받으신 것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었습니다. 가인에게 왜 질투심이 생겼습니까. 자기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죄는 자기를 사랑하는 데서부터 옵니다.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자기의 욕심에 끌려가다가 죄에 빠지는 것입니다. 악한 자의 모습은 게으르고 태만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하셨습니다.
그런데 악한 사람 따로 있고 게으른 사람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달란트를 땅에 묻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악하고 게으른 자입니다. 이런 자는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목적은 이스라엘이 귀해서 구원하신 것이 아니고 이방 사람들의 빛을 삼으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나를 통해서 내 가족이 구원을 받고 내 친척이 구원을 받고 내 이웃 형제들이 구원받기 위함입니다. 매우 소중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이 비록 어렵고 곤 고한 지경에 있어도 하나님 의 사랑과 은총에 감격된 삶을 살고 하나님 앞에 기쁨과 영광을 돌리면서 살아야 됩니다. 그러는 가운데 복음이 확산되고 마음에 기쁨이 오고 가정에 찬송이 생기며 교회에 은혜가 넘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나태한 자리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태만에서 벗어나고 탐욕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또한 욕심을 빨리 끊어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더 사랑해야 됩니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나 자기를 사랑하면 욕심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사랑하고 주님의 일을 사모해야 됩니다. 그러는 가운데 자기의 소욕이 떨어지게 됩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해 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흩어져 있는 선교사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소욕에만 밀리지 말고 좀도 넓게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근심 합시다. 우리는 잔인한 사람이 되면 안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가혹하게 하면 안됩니다. 또 우리는 너무 법, 법하지 말아야 됩니다. 너무 법을 따지다가는 자기 자신이 그 올 무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법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고 율법 안에 사는 사람이 아니며 은혜 안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자기의 정당성만을 구하지 말고 은혜 안에서 모든 일을 해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그렇게 인도해 주셨고 그렇게 사랑해 주셨고 은혜 안에서 대해 주셨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우리를 율법으로 대해 주셨다면 우리 가운데 누가 예수님 앞에 나올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계명으로 우리를 재어 보시며 우리 모두는 지금 이 자리에서 도망을 쳐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같은 죄인을 은혜로 불러 주시고 사랑으로 감싸주시고 지금의 자리 에 서게 하셨으니 저와 여러분은 은혜 안에서 은혜가 충만한 삶을 사실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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