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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대왕의 수리아 정복예언 (슥9:1-9)

본문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 땅에 임하며 다메섹에 머물리니 세상 사람과 이스 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 봄이니라 (슥9:1) 스가랴서 9장의 예언은 알렉산더 대왕 때에 그대로 성취되었다고 하는 것이 모든 성경학자들과 특별히 스가랴서를 주석하는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주전 336년에 빌립이라고 하는 사람이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통치를 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어서 왕으로 등극한 사람이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워 알고 있는 알렉산더라고 하는 청년입니다. 이 젊은 이가 왕이 되어서 다리우스왕을 쳐부수고 그 다음에 다메섹과 두로와 시돈 과 마지막에는 팔레스타인 지방, 애굽까지 점령하고 계속해서 남쪽으로 국토를 확장 하였습니다. 그런 그가 서른 세살 젊은 나이에 마라리아 병에 걸리고 술 취하여 주지육림에 빠졌 다가 드디어는 요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특별히 희랍문화를 모든 국가에 심는 것을 하나의 사도적 사명이라 고 주장하면서 가는 곳마다 도시를 건설하고 건설된 도시마다 희랍문화를 심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희랍 종교를 확산시키고 체육관을 건설하고 그 밖의 모든 문화를 전수하고자 하여 결국은 신약 성경에도 보이지 않는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가 신약시대에 복음 증거에 큰 역할을 한 것은 가는 곳마다 헬라어로 만국어를 삼게 하여 헬라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전도하고 설교하는 데 용이하게 한 것입니다. 또한 헬라어로 성경책을 번역하게 하여 그 당시에 성경책이 만민이 읽을 수 있는 유니버샬 복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아니였지만 그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은 불신자를 통해서도 자기의 뜻을 이루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1.경고의 대상
1).하드락과 다메섹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 땅에 임하며 다메섹에 머물리니 (슥9:1) 경고란 예언이 아주 위협적으로 나타난 것을 말합니다. 축구 선수들이 경기를 하다가 상대 선수에게 피해를 주고 반칙을 범하면 심판은 노란 카드를 들어 그 선수의 얼굴 앞에 댑니다. 이것은, 경고장입니다. 다음에 한 번 더 그런 짓을 하면 쫓아낸다고 하는 위협적인 언어입니다. 이러한 위협적인 하나님의 말씀이 하드락 땅에 임하고 다메섹에 머무르게 된 것입니다. 하드락 땅은 지도에도 나타나 있지 않은 지역인데 언어학적 통하여 수리아 지역일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것은 알렉산더 대왕이 저 멀리 수리아 지역을 점령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경고이며 또한 하나님의 심판이 다메섹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메섹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절되지 않고 지금까지도 있는 도시인데 이것은 다메섹이 심판으로 완전히 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경고의 대상으로 잠시 머물렀고 또 움직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 본다는 말은 하나님의 심판이 두려워 하나님을 우러러 본다는 뜻이 있고 도 다른 성경에는 하나님이 인간 을 감찰하신다는 뜻이 있는데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이 말 저 말이 다 가능한 용법으 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우러러 볼 수도 있고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볼 수도 있는 아무튼 하나님의 심판이 임함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쳐다보게 되는 그런 경우가 이르렀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모든 상황은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 앞에 적나라하게 드라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드러날 것을 아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더욱 조심하며 살아야 됩니다. 바울의 종말론을 연구해 보면 그는 윤리를 종말론적인 해석을 가지고 설명합니다. 왜 정직하게 살아야 되며 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옳은 삶을 살아야 되는가 사도 바울은 심판의 날이 언젠가는 반드시 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기독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윤회설을 주장하며 시간이 돌고 돈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데 끝이 있기 때문에 이 날을 바라보고 살아 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윤리적이 되며 조심스럽게 사는 이유는 경건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2).하맛과 두로와 시돈 그 접경된 하맛에도 임하겠고 두로와 시돈은 넓은 지혜가 있으니 그들에게도 임하 리라 (슥9:2) 하나님의 심판은 다메섹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맛과 두로와 시돈에게도 임하리 라고 하십니다. 두로와 시돈의 넓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도 중의 하나로 상업의 중심지로서 사치하고 교만한 도시였습니다. 이와 같이 사치하고 교만하여 죄악이 물든 두로와 시돈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여 알렉산더 대왕이 쳐들어 갔습니다. 두로는 어마어마한 도시입니다. 두로는 본래 해변가에 있는 도시인데 돈이 많으니까 혹시 전쟁이 날까봐 해안에서 반 마일 떨어진 곳에 섬을 하나 발견해서 그 섬에 큰 성을 쌓아 보루를 삼았습니다.두 로는 그섬에 150피트 높이의 철성벽을 쌓아 적군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난공불락의 요새를 삼았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본문은 보장을 건축했다고 했습니다. 교만의 성입니다. 그러나 이사야와 에스겔은 두로가 망하게 될 것을 예언하였고 결국은 느브갓네살왕 이 무너뜨리고 또 다시 섬으로 이주를하였을 때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무너뜨리고 또 다시 섬으로 이주하였을 때에는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륙에 있던 두로성은 쉽게 무너졌지만 섬에 있던 성은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아렉산더 대왕도 7개월이나 공략을 하여 무너뜨렸는데 그러는 가운데 1만명이 살해되고 3만 명이 노예로 끌려간 사실이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두로는 은을 티끌같이 정금을 진흙같이 쌓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본문의 5-6절은 알렉산더 대왕이 해안을 따라서 남쪽으로 군대를 끌고 내려오며 행군하며 정복하는 장면인데 이것은 역사적으로도 입증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6.25 사변을 우연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경고장입니다. 또 우리나라에는 혁명이 몇번씩 일어났는데 그것이 다 경고장입니다. 우리가 몸에 어려움을 당하고 마음에 시험을 당하고 생업이 곤란을 당하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경고장입니다. 경고장을 받고도 또 다시 반칙을 하면 그때는 쫓겨나게 됩니다.
2.심판의 결과 그 입에서 그 피를 그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하리니 (슥9:7) 입에서 피를, 잇사이에서 가증한 것을 제한다는 것은 우상 숭베의식을 제하여 버리 겠다는 뜻입니다. 당시에 우상을 섬기던 사람들은 제물을 우상 앞에 바치면서 제물의 피를 마셨는데 마신 피를입에 묻히고 다녀야 그 제사가 받아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나라가 망한 마당에 어디에 가서 우상을 숭배하는 제사를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른 것을 쫓아다니는 자들을 멸망시키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때에 남은 자들이 있어서 하나님께로 돌아 오는데 이것은 매우 중요한 말로서 신약에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눅6:17절을 보면 두로와 시돈은 흑암의 권세를 벗어나서 빛을 보게 되는 놀라운 장면이 나옵니다. 이와 간이 엄청난 죄를 지은 사람 중에도 남은 자가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는 환란을 당하는 중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팔에 안아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진을 쳐서 적군을 막는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알렉산더 대왕 이 성난 사자처럼 예루살렘을 진격해 올 때에 전날 밤 꿈을 꾸는 가운데 놀라운 이상을 보고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되 성은 무너뜨리지 않았다는 이상한 역사가 오늘 날에도 남아 있습니다. 익서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 오늘 우리 가운데 그대로 임하시어 이말씀 안에서 평강을 누리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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