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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가 받은 네 번째 환상(1) (슥3:1-7)

본문

하나님의 선지자 스가랴는, 숨가쁜 구속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 역 사의 현장에서 흥분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 축복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보여 주신 8대 환상 계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 첫 번째 환상에서 화석류 나무 사이에 홍마를 타고 서 계신 예수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이 것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의 계시였습니다(1:7-17). 그 두 번째 환상에서 네 뿔과 네 공장(工匠)들의 계시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 공사를 방해하는 네 뿔을, 성령님 받은 지혜로운 공장들에 의해서 물 리치는 승리를 보여 주는 계시였습니다(1:18-21). 세 번째 환상은 예루살렘을 척량하는 한 사람 에 대한 계시였습니다. 이것은 재건될 예루살렘 성전으로 선민이 되돌아 와서 받을 축복을 알려 주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네 번째 환상은 예루살렘 성전 안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선민들이 정결 의 은총을 입고, 제사장된 백성의 임무가 새롭게 주어지는 계시의 내용입니다.
I. 예수 앞에 서 있는 죄인 된 선민을 보여 줍니다 3장 1절에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다 고 하였습니다. 여기 대제사장 여호 수아는 바벨론 포로지에서 1차 귀환할 때 정치적인 지도자 스룹바벨과 함께 백성들을 거느리고 돌아 온 종교적 지도자였습니다. 스가랴에게 보여 준 네 번째 환상 중에 그가 지금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서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여기 나타난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그의 직함과 이름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불행스럽게도, 여호와의 사자(예수) 앞에 서 있는 여호수아의 모습은 부정했습니다. 곧 죄인이 었습니다. 죄인 된 그의 실존을 가리켜,
(1)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와 같다고 하였습니다(3:2). 이 말은 선민 이스라엘이 불꽃같이 타오르던 저 바벨론 포로지의 환난 속에서 이제 막 되돌아 온 이스라엘의 참상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거기에는 진액도 볼 수 없고, 푸른 새싹의 생명력이나, 향기를 토하는 꽃이나, 열매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비참의 상태뿐인 것입니다. 이사야 7장 4절에는 연기 나는 부지깽이 라고 하였습니다. 아모스 4장 11절에는 불붙는 가운 데서 빼낸 나무 조각 이라고 하였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위시한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에 대한 징계로 바벨론 포로 생활의 극심한 고통과 환난 속에서, 겨우 살아 남은 자들임을 보 여 주고 있습니다. 불타 없어지고 말 불꽃 중에서(바벨론 환난), 그래도 다 타서 없어지지 않고, 그 불꽃 중에서 꺼냄을 받은 그슬린 나무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2) 더러운 옷을 입었다고 하였습니다(3:3)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결한 영적 죄악의 참상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64장 6절에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 같으며. 라고 함과 같습니다. 이스라 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을 받아 돌아 온 것이 저들의 의 때문이 결코 아닌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들은 바벨론 포로지 곧 불꽃 속에 있을 때는 죄인이요, 지금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을 재건 하고, 또 저들이 재건한 성전 가운데 거하는 중에도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보여 주는 중대하고 중대한 진리는 불에서 그슬린 그 나무 와 같고, 더러운 옷을 입은 여호수아(이스라엘)가 여호와의 사자 곧 예수 앞에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3장 1절에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라고 하였습니다. 3장 3절에도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 천사는 그 천사인데 3장 1절에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 곧 예수를 가리킵니다. 바로 이것이 이스라엘의 소망이요, 행복입니다. 저들이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 앞에 설 수 있었 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만이 의사 앞에 설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건강한 사람에겐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만 의사가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의인(건강한 자)을 구원하러 오지 않고, 죄인을 구원하러 왔다고 하였습니다(막2:17). 이제 여호수아와 그 백성들은 비록 불에서 꺼 낸 그슬린 나무요, 더러운 옷을 입은 부정한 죄인들이었지만, 바벨론이 아닌 하나님의 그 사자, 곧 예수 앞에 서 있습니다. 바벨론이 아닌 예루살렘 성전, 곧 하나님의 집 안에 서 있는 자들입니다. 실로 행복한 모습이 아닌가
Ⅱ. 예수 앞에 대적자 사단이 서 있음을 보게 됩니다 3장 1절에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 우편에 서 있다 고 하였 습니다.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장면입니다. 사단이 여호수아의 우편에 서 있다고 하였습니다. 왜 사단이 여호수아의 우편에 섰을까 3장 1절 중에 그가 여호수아로 대적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이 장면을 보여주셨다고 하였습니다(3:16b). 사탄이란 그 뜻이 바로 적대자 , 대적자 입니다. 그가 감히 예수님 앞에 서 있는, 여호수아 오른편에 서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교만한 놈인가를 가히 알 수 있습니다. 사탄에 대한 다른 이름은 아바돈(Abadon) 곧, 파괴자(the destructor ;계9:11), 참소자(the accuser ;계12:10), 속이는 자(the deceiver ;계12:9 = 꾀는 자), 큰 용(thegreat dragon ;계12:9)이라 고 하였습니다. 복음에서는 예수님은 사탄을 원수(마13:28, 39), 악한 자(마13:19, 38), 거짓의 아비(요8:44), 살인 자(요8:44), 이 세상 임금(요12:31, 14:30, 16:11), 시험하는 자(마4:3, 살전3:5), 귀신의 왕 바알세불 (마12:24)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이를 가리켜 이 세상의 신 (고후4:4), 공중 귄세 잡은 자 (엡2:2), 벨리알 (고후6:15) 등 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욥기 1장 7절과 2장 2절에는 사방으로 두루 돌아다니는 자 ,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고 하였습니다. 저놈에게 여러 이름들이 따라 다니는 것은 그만큼 사탄의 역사가 다양하여, 여러 면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저놈이 지금 여호수아와 그 백성은 그슬린 나무로 전혀 쓸데가 없다고 고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그 백성은 더러운 옷을 입은 불결한 자들을 거룩하신 하나님 나라에 전혀 무익하 다고 대적하며, 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랍고 놀라운 것은 예수님 앞에는 구원받은 죄인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구원받은 그 죄인들 우편에 사탄이 자리를 잡고, 우리가 받은 구원을 우리들에게 있는 연약을 가지고 방해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Ⅲ. 죄인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구원 역사)을 봅니다 스가랴 선지자에게 보여 준 여호와의 사자 곧 그 천사 이신 예수의 구원 은총이 어떻게 나타 났던가
1. 사탄을 책망하므로 나타났습니다. 3장 2절에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고 하였습니다. 본문에는 여호와의 사자 대신에 여호와께서 직접 사탄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표현 은 사탄의 고소와 참소와 대적을 일고의 여지없이 내동댕이 쳐버리심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2절 중에 사탄을 향한 여호와의 책망이 두 번이나 반복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단호한 거절 을 뜻합니다.
2. 여호와께서 단호하게 여호수아와 그 백성의 편이 되어 변호함으로 나타났습니다.
첫째 이유는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선택했다는 사실입니다(3:2). 여기 예루살렘은 선민의 애칭입니다. 곧 여호수아와 그 백성이 되돌아 와서 머물고 있는 곳을 말합니다. 이 말은 내가 여호수아와 그 백성을 선택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탄 앞에서 여호 수아와 그 백성의 연약을 인정했습니다.
1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3:2)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하나님 당신이 꺼냈다고 하였습니다.
2 더러운 옷 입은 여호수아와 그 백성의 모습을 인정하였 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미 저들을 구원하기로 창세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택했다고 하였습니다. 이 위대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 죄인이 용서받을 이유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한번 다시 이 본문에 유의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의 대적 앞에 여호수아와 그 백성을 변호한 것은
1 그의 그 백성의 제사장직 때문이 아닙니다.
2 그들의 의나 공로 때문은 아 닙니다.
3 사단의 주장이 근거 없음도 아닙니다.
4 이스라엘 민족이 남보다 고난을 많이 당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5 앞으로 그 백성이 새롭게 더 잘살 것이라는 보장 때문도 아닙니다. 그것은 창세전에 하나님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저들을 구원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이유입니다.
둘째 이유는,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구원했다는 이유입니다. 3장 2절 중에 여호와께서 불에서 꺼내셨다 고 한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서 아주 망하지 않게 그 불꽃 속에서 저를 건져내었다고 하는 이유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사죄와 축복을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1) 하나님은 천사들에게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고 하였습니다(6:4). 이는 죄에 대한 용서를 가 리킵니다. 계시록 7장 14절에는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다 고 하는 말과 같습니다.
(2) 여호수아 자신에게 사죄를 선언하였습니다. 3장 4절 중에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다 고 하였습니다. 옮겨 버렸다 , 제거하다 , 없이 해 버리다는 내용의 뜻입니다.
(3) 여호수아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혀 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3:4). 돌아온 탕자에게 아버지가 입혀 준 제일 좋은 옷(눅15:22)을 가리킵니다. 무엇이 제일 좋은 옷일까 회개의 옷(계7:14), 칭의의 옷(롬3:21-22) 빛의 갑옷(롬13:12), 성도들 의 덕행(계19:8)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신분 회복의 은총입니다. 본문에 여호수아에게 입힌 옷은 제사장의 옷이 됩니다(3:5).
(4) 정한 관이 그 머리에 씌워졌습니다(3:5). 이것은 제사장의 직무가 복직되었음을 알려 줍니다. 말하자면 선민의 영적 기능이 회복된 내용 입니다. 놀랍고, 또 놀라운 것은 여호수아에게 이러한 은총이 주어지는 그 현장에 예수께서 그 곁 에 서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3장 5절 하반절에 .여호와의 사자는 그 곁에 섰더라 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우리의 구속주의 자격으로 사단의 송사를 막고, 우리를 보호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4. 새로운 임무를 명하므로 나타났습니다. 이 새로운 임무는 왕같은 제사장의 직무 수행을 뜻합니다.
1) 그 임무는 여호와의 사자,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께로부터 주어졌습니다. 3장 6절에 여호와 의 사자가 여호수아에게 증거 하여 가로되. 라고 하였습니다.
2) 그 임무의 내용은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의 도(道)와 율례를 준행하고 지키라는 것입니다 (3:7).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고 지킴은 하나님께서 선민에게 주신 계명과 율례를 가리킵니다(신 8:6, 10:12-13). 공적으로는 공인의 의무로서 내 집을 다스리고, 내 뜻을 지키라(3:7)고 하였습니다. 여기 집 이란 뜻은 예루살렘 성전과 그 경내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것은 제사장된 여호수아와 선민 이스라엘의 영예요, 특권입니다. 그리하면 여호수아와 선민 이스라엘은 영물들(천사들=여기 서있는 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세계(영계)를 왕래할 것이라고 하 였습니다(3:7b).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스가랴 선지자가 받은 네 번째 환상 중에, 이스라엘 선민을 대표하는 여호수아에 대한 이상을 보고 있습니다. 그와 그의 백성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요, 더러운 옷을 입은 불결 한 죄인이라고 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와 그의 백성이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 앞에 서 있어야만 하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사탄이 그 우편에서 죄인 된 여호수아와 그 백성을 하나님 앞에 대적하고 송사하고 있는 끔찍스러운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여호수아 옆에 예수님을 곁에 세우고(3:5b), 사탄 앞에 여호수아를 변호했습니다. 여호수아(이스라엘=예루살렘)는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내가 구원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새 옷을 입히고, 제사장의 빛나는 관을 씌 워 주었습니다. 이때 그 곁에 서 있던 예수님은 여호수아에게 성경 중심의 삶을 명했습니다. 내 도(道)와 율례 를 준행하라고 하였습니다. 교회 중심의 삶을 명했습니다. 내 집을 다스리고 왕래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중심의 삶을 명했습니다. 천사들과 함께 영의 세계를 왕래하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선민들은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예수 앞에 서, 그리고 그의 말씀 가운데서, 성전 안에서 새 삶을 시작해야 된다는 진리입니다. 말하자면, 저들이 재건하는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만민을 위한 제사장의 사명을 수행해야 된다는 진리입니다. 바로 우리가 받은 경향의 새 성전 안에서 우리는 복음의 제사장 (롬15:16), 왕 같 은 제사장 (벧전2:9)의 축복을 약속 받고 있다는 사실 앞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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