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개로 말미암아 말씀이 임하니라 (학1:1)
본문
1.선지자에게 말씀이 임했습니다. (학1:1) 다리오왕 이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 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 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1)선지자는 무엇을 보고 들었다. 선지자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나비는 발언자 또는 대언자 의 뜻 입니다. 그 어원은 ANNOUNCE,CAIL,PROCIAIM의 뜻이 있으나, 특별히 그 어원에서 나온 나비는 SPOKESMAN FOR ANOTHER 의 뜻이 강합니다. (신18: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 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 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출7: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 게 신 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에서 아론 이 네 선지자가 되리니 라고 했는데, 이것은 어떻게 모세의 대언자가 될 것을 말한 것입니다. 나비 를 헬 라어 번역에서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그를 배경으로 하고 그의 주시는 말씀을 대언 하는 자라는 뜻인 것입니다. 선지자는 과거, 현재, 미래에 구속됨이 없이 하나님의 주시는 말씀을 대언하는 자인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를 초 월하는 오직 영원한 지금 만이 있을 분입니다. 이처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 하는 자이었기 때문에 (렘15:19)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 를 다시 이끌어서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할 것 같으면 너는 내 입 같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 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그 증거하는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살전3:13)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또 선지자라는 히브리어는 로에코제 라는 말인데, 1>무엇을 보았다 2>무엇을 들었다. 3>그것 때문에 속이 끓었다 4>끓 어 넘치기 때문에 입으로 터져 말로 나와서 게속되니 들로도 나가고 군중속에도 들어가서 목숨걸고 외치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학개 선지자도 역시 무엇을 보고 들었습니다. 다리오왕 2년 6월 곧 그달 초하루에 년도는 B.C520년겅 의 일입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B.C537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앙적 감격을 갖고 그 이듬해부터 바로 성전 재건에 착수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열심은 여러 가지 이유로 얼마 못가서 식고 말았으며 무려 15년동안이나 성전 재건이 중단 상태에 놓여 있엇습니다. 이것을 학개로 보게 했습니다, 또한 듣게 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학개로 말미암아 히브리어를 빅역하게 되면 학개 의 손에 의하여 라는 뜻입니다. 즉, 도구로 썼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선지자들이 그러하듯이 학개 역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는 종 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2)선지자는 보고 들은 것 때문에 속이 끓었다. 그렀습니다. 사람에게는 눈이 여러개 있습니다. 육신의 눈은 물질을 보고, 지식의 눈은 과학을 보고, 양심의 눈은 도를 보지만, 우리 중생한 영의 눈은 하나님을 봅니다. 귀도 마찬가지 입니다. 육신의 귀는 음성을 듣고, 지식의 귀는 맥박 소리만 들어도 무슨 병인 지 알지만 우리 중생한 자의 귀는 보통 사람들의 소리치는 그 속에서 도 하나님의 때가 가까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왜 내게 와서 이런 언동을 하는 가를 가만히 보면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다른 사람의 귀에 않들리던 것이 들리는 것입니다. 인간사회의 시대에는 2가지가 잇습니다. 눈으로 볼수 있는 시대상이 라는 모습이 있고, 귀로 들을 수 있는 시대의 소리가 있습니다. 가만히 귀를 막고 눈을 감아도 시대의 모습과 소리가 들려 옵니다. 신음하는 소리, 빗쟁이들 고민소리, 온갖 난무한 소리가 들려 옵니다. 이 소리를 하나님의 말씀에 비쳐볼 때 우리에게 끓어 오르는 그 무엇 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학개에게 임하실 때, 학개는 듣고, 본바에 끓어 오르 수밖 에 없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을 듣고, 보고있습니까. 끓어 올라야 합니다.
3)선지자는 끓어 넘쳐서 입으로 터져 외치기 시작했다. 이 시대속에는 보이는 것이 있고 들리는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하나님의 감동을 입은 사람들에게 보이고 들릴 때 속이 끓고 끓어 넘치는 소리는 외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선지자 입니다. 눈치바가면서 살살 피해가지고 임기 웅변의 기 회 주의자 들로 돌아 다니는 자들은 선지자가 될 수 없습니다. 부탁을 해도 잃어먹고, 자기 체면만 차릴려고 하고, 사람에게 칭찬만 받을 말 만하고, 눈치만 보는 그런 자들에게는 하나님은 말씀을 부탁 하시지 않습니다. 생사를 불사하고 말씀만 외치고 전달할 그런 종에게 말씀을 주시는 것 입니다. 이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선지자 학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2.학개로 말미암아 말씀이 임했습니다. (1:1)
1)성경에서는 사람의 이름뜻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학개의 이름의 뜻은 쾌락, 즐거운 축제일, 나의 절기 라는 뜻을 가 지고 있습니다. 그에게 이러한 이름이 주어진 것은 F.DAVIDSON는 말하기를 그의 출생이 어떤 절기 의 날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포로지에 있어 곤고한 말을 보내던 부모가 옛날 고토에 서 맞았던 즐거운 절기의 날들을 추모하면서 새로운 그 절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의 어린 아들에게 이런 이름을 주었던지, 혹 또 그렇지 않다면 그의 설교들이 본문에서 보듯이 주로 절기의 날에 이루워 졌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훗일에 그에게 그렇게 붙혀 졌다고J.M.P.SMITH는 말하고 있습니다.
2)이렇게 학개 선지자가 한일을 생각할 때 그가 한 일 과 그의 이름의 뜻이 맞다고 보아야 되겠습니다. 학개는 한 마디로 성전을 열심히 세우도록 일한 종인데 성전은 언제 나 우리에게 쾌락을 주고 성전은 언제나 우리에게 즐거운 축제와 같은 축복을 주는 것이므로 그가 행한 일과 그의 이름 뜻이 잘 맞습니다. 몇해전 겨울에 영동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버스가 강으로 굴러 떨 어졌습니다. 이때에 얼음 속으로 버스가 들어 갔기 때문에 승객 40명 이 몽땅 다 죽고 딱 한사람만 살았는데 그 사람이름 강유일 이라는 이름으로서 강에서 유일하게 살았다는 뜻이 통하여서 재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하나님 믿는 신자였습니다. 사람은 어찌 하였던간 에 이름이 좋고 보아야지 되겠습니다. 이름이라는 것은 부르기에 따라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자주 부르는 음속에는 음악적인 효과를 가져 오기 때문에 자꾸만 부르면 부를수록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미신 적으로 풀이 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학상으로 볼 때 무시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바보야-하고 자꾸만 말하면 진짜 바보같이 보이게 되어 보이는 법입니다. 우리들이 자녀교육 시킬때에 자꾸만 나쁜 소리로 부르지 마 세요 그러면 아이들이 잘 못됩니다. 아이들이 잘못된, 않된 것으로 지적하면 나는 그런가 보다하여 좌절 됩니다.
3)학개 선지자는 말씀의 도구로 씀임을 받았습니다. 학개의 뜻는 참으로 그 뜻대로 성전을 지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즐겁고, 유월절, 초막절, 감사절을 성전에서 지켰으니 이름 뜻대로 행 한 선지자 였다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흔히 성경에는 선지자들에 대하여서는 그 아버지의 이름이 병행되는 것이 통레이나, (사1: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 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암1:1)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 보암의 시대의 지진 전 이 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묵시 받은 말씀이라 (렘1:1)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학개의 경우에는 그의 출신성분과 역사에 대하여 분명치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그는 바벨론 포로지 태생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는 아직 젊은 시절의 청년이었을 것이라고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이는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오기 전부터 포로지에서 자기 동포 들을 위하여 활동하였을 것이라 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학자는 (학2:3) 너희 중에 남아 있는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 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 잘것이 없지 아니하냐. 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그는 에루살렘의 첫 성 전을 보았던 사람이라고 하는 자도 있다. 이 말이 사실 이라면 그의 그 당시의 연령은 아마도 80세 전후의 노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개서에서 보는대로 그의 활동 기간이 그처럼 짧았던 것도 그의 그러한 고령때문이 아니었을까. 그에게는 다른 선지자의 경우와는 달리 그 자신이 뿌린 씨를 그 자신이 몸소 거두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그가 눈물로 호소한 성전 재건의 일은 그 눈이 지켜보는 중에 곧 착수되어 성취 되었습니다.
3.말씀이 임하는 경로가 있습니다. (계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 어 지시하신 것이라
1)말씀은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님에게 주십니다. 임한다는 말은 붙잡아 두다 의 뜻으로 (요12:35) 예수께서 가라사 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 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살전5: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 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이 두 본문에서 은유적 표현으로서 압도하다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는 말입니다. 특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그 육신으로 입혀 주셨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육신이 되어 빛으로 오시었던 것입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 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 (계3: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2)말씀은 그 종들에게 주셔서 증거하게 하십니다. (삿15:14)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이 그에게로 마주 나 가며 소리지르는 동시에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매 그 팔 위의 줄이 불탄 삼과 같아서 그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 지라 (왕상18:1) 많은 날을 지내고 제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 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 에 내리리라 (학1:1) 다리오왕 이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눅4:18) 주의 성령님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 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 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행1:8)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 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3)학개에게 말씀을 주시고 지도자에게 전했습니다. (학1:1) 다리오왕 이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 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학1:2)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학개에게 임하신
첫째 말씀은 연월일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렇게 밝히는 이유는 그들이 얼마나 오랜 동안 성전을 중단 하였던가 를 보여 주기 위함일 것입니다. 바벨론의 포로였던 그들이 돌아오면서 곧 착수한 것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일 이었습니다. 그들의 귀환이 B.C536년(귀환 명령이 내려진 해는 B.C539-538년 이 였고 그들이 실제로 돌아간 해는 B.C536년이다) 였다면 다리오왕2년은 B.C520년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성전건축이 중단된 상태로 버려진 것은 약 15년간이 게산이 됩니다.
1.말씀을 깨닫고 증거하는 선지자의 사명을 나에게도 주소서!
2.나의 이름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게 삶의 지혜 주소서!
3.겸손히 말씀을 잘 받아 순종하여 삶이 힘있게 하옵소서!
1)선지자는 무엇을 보고 들었다. 선지자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나비는 발언자 또는 대언자 의 뜻 입니다. 그 어원은 ANNOUNCE,CAIL,PROCIAIM의 뜻이 있으나, 특별히 그 어원에서 나온 나비는 SPOKESMAN FOR ANOTHER 의 뜻이 강합니다. (신18: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 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 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출7: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 게 신 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에서 아론 이 네 선지자가 되리니 라고 했는데, 이것은 어떻게 모세의 대언자가 될 것을 말한 것입니다. 나비 를 헬 라어 번역에서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그를 배경으로 하고 그의 주시는 말씀을 대언 하는 자라는 뜻인 것입니다. 선지자는 과거, 현재, 미래에 구속됨이 없이 하나님의 주시는 말씀을 대언하는 자인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를 초 월하는 오직 영원한 지금 만이 있을 분입니다. 이처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 하는 자이었기 때문에 (렘15:19)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 를 다시 이끌어서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할 것 같으면 너는 내 입 같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 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그 증거하는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살전3:13)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또 선지자라는 히브리어는 로에코제 라는 말인데, 1>무엇을 보았다 2>무엇을 들었다. 3>그것 때문에 속이 끓었다 4>끓 어 넘치기 때문에 입으로 터져 말로 나와서 게속되니 들로도 나가고 군중속에도 들어가서 목숨걸고 외치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학개 선지자도 역시 무엇을 보고 들었습니다. 다리오왕 2년 6월 곧 그달 초하루에 년도는 B.C520년겅 의 일입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B.C537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앙적 감격을 갖고 그 이듬해부터 바로 성전 재건에 착수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열심은 여러 가지 이유로 얼마 못가서 식고 말았으며 무려 15년동안이나 성전 재건이 중단 상태에 놓여 있엇습니다. 이것을 학개로 보게 했습니다, 또한 듣게 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학개로 말미암아 히브리어를 빅역하게 되면 학개 의 손에 의하여 라는 뜻입니다. 즉, 도구로 썼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선지자들이 그러하듯이 학개 역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는 종 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2)선지자는 보고 들은 것 때문에 속이 끓었다. 그렀습니다. 사람에게는 눈이 여러개 있습니다. 육신의 눈은 물질을 보고, 지식의 눈은 과학을 보고, 양심의 눈은 도를 보지만, 우리 중생한 영의 눈은 하나님을 봅니다. 귀도 마찬가지 입니다. 육신의 귀는 음성을 듣고, 지식의 귀는 맥박 소리만 들어도 무슨 병인 지 알지만 우리 중생한 자의 귀는 보통 사람들의 소리치는 그 속에서 도 하나님의 때가 가까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왜 내게 와서 이런 언동을 하는 가를 가만히 보면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다른 사람의 귀에 않들리던 것이 들리는 것입니다. 인간사회의 시대에는 2가지가 잇습니다. 눈으로 볼수 있는 시대상이 라는 모습이 있고, 귀로 들을 수 있는 시대의 소리가 있습니다. 가만히 귀를 막고 눈을 감아도 시대의 모습과 소리가 들려 옵니다. 신음하는 소리, 빗쟁이들 고민소리, 온갖 난무한 소리가 들려 옵니다. 이 소리를 하나님의 말씀에 비쳐볼 때 우리에게 끓어 오르는 그 무엇 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학개에게 임하실 때, 학개는 듣고, 본바에 끓어 오르 수밖 에 없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을 듣고, 보고있습니까. 끓어 올라야 합니다.
3)선지자는 끓어 넘쳐서 입으로 터져 외치기 시작했다. 이 시대속에는 보이는 것이 있고 들리는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하나님의 감동을 입은 사람들에게 보이고 들릴 때 속이 끓고 끓어 넘치는 소리는 외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선지자 입니다. 눈치바가면서 살살 피해가지고 임기 웅변의 기 회 주의자 들로 돌아 다니는 자들은 선지자가 될 수 없습니다. 부탁을 해도 잃어먹고, 자기 체면만 차릴려고 하고, 사람에게 칭찬만 받을 말 만하고, 눈치만 보는 그런 자들에게는 하나님은 말씀을 부탁 하시지 않습니다. 생사를 불사하고 말씀만 외치고 전달할 그런 종에게 말씀을 주시는 것 입니다. 이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선지자 학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2.학개로 말미암아 말씀이 임했습니다. (1:1)
1)성경에서는 사람의 이름뜻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학개의 이름의 뜻은 쾌락, 즐거운 축제일, 나의 절기 라는 뜻을 가 지고 있습니다. 그에게 이러한 이름이 주어진 것은 F.DAVIDSON는 말하기를 그의 출생이 어떤 절기 의 날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포로지에 있어 곤고한 말을 보내던 부모가 옛날 고토에 서 맞았던 즐거운 절기의 날들을 추모하면서 새로운 그 절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의 어린 아들에게 이런 이름을 주었던지, 혹 또 그렇지 않다면 그의 설교들이 본문에서 보듯이 주로 절기의 날에 이루워 졌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훗일에 그에게 그렇게 붙혀 졌다고J.M.P.SMITH는 말하고 있습니다.
2)이렇게 학개 선지자가 한일을 생각할 때 그가 한 일 과 그의 이름의 뜻이 맞다고 보아야 되겠습니다. 학개는 한 마디로 성전을 열심히 세우도록 일한 종인데 성전은 언제 나 우리에게 쾌락을 주고 성전은 언제나 우리에게 즐거운 축제와 같은 축복을 주는 것이므로 그가 행한 일과 그의 이름 뜻이 잘 맞습니다. 몇해전 겨울에 영동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버스가 강으로 굴러 떨 어졌습니다. 이때에 얼음 속으로 버스가 들어 갔기 때문에 승객 40명 이 몽땅 다 죽고 딱 한사람만 살았는데 그 사람이름 강유일 이라는 이름으로서 강에서 유일하게 살았다는 뜻이 통하여서 재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하나님 믿는 신자였습니다. 사람은 어찌 하였던간 에 이름이 좋고 보아야지 되겠습니다. 이름이라는 것은 부르기에 따라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자주 부르는 음속에는 음악적인 효과를 가져 오기 때문에 자꾸만 부르면 부를수록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미신 적으로 풀이 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학상으로 볼 때 무시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바보야-하고 자꾸만 말하면 진짜 바보같이 보이게 되어 보이는 법입니다. 우리들이 자녀교육 시킬때에 자꾸만 나쁜 소리로 부르지 마 세요 그러면 아이들이 잘 못됩니다. 아이들이 잘못된, 않된 것으로 지적하면 나는 그런가 보다하여 좌절 됩니다.
3)학개 선지자는 말씀의 도구로 씀임을 받았습니다. 학개의 뜻는 참으로 그 뜻대로 성전을 지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즐겁고, 유월절, 초막절, 감사절을 성전에서 지켰으니 이름 뜻대로 행 한 선지자 였다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흔히 성경에는 선지자들에 대하여서는 그 아버지의 이름이 병행되는 것이 통레이나, (사1: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 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암1:1)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 보암의 시대의 지진 전 이 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묵시 받은 말씀이라 (렘1:1)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학개의 경우에는 그의 출신성분과 역사에 대하여 분명치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그는 바벨론 포로지 태생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는 아직 젊은 시절의 청년이었을 것이라고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이는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오기 전부터 포로지에서 자기 동포 들을 위하여 활동하였을 것이라 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학자는 (학2:3) 너희 중에 남아 있는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 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 잘것이 없지 아니하냐. 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그는 에루살렘의 첫 성 전을 보았던 사람이라고 하는 자도 있다. 이 말이 사실 이라면 그의 그 당시의 연령은 아마도 80세 전후의 노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개서에서 보는대로 그의 활동 기간이 그처럼 짧았던 것도 그의 그러한 고령때문이 아니었을까. 그에게는 다른 선지자의 경우와는 달리 그 자신이 뿌린 씨를 그 자신이 몸소 거두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그가 눈물로 호소한 성전 재건의 일은 그 눈이 지켜보는 중에 곧 착수되어 성취 되었습니다.
3.말씀이 임하는 경로가 있습니다. (계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 어 지시하신 것이라
1)말씀은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님에게 주십니다. 임한다는 말은 붙잡아 두다 의 뜻으로 (요12:35) 예수께서 가라사 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 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살전5: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 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이 두 본문에서 은유적 표현으로서 압도하다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는 말입니다. 특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그 육신으로 입혀 주셨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육신이 되어 빛으로 오시었던 것입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 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 (계3: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2)말씀은 그 종들에게 주셔서 증거하게 하십니다. (삿15:14)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이 그에게로 마주 나 가며 소리지르는 동시에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매 그 팔 위의 줄이 불탄 삼과 같아서 그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 지라 (왕상18:1) 많은 날을 지내고 제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 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 에 내리리라 (학1:1) 다리오왕 이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눅4:18) 주의 성령님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 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 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행1:8)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 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3)학개에게 말씀을 주시고 지도자에게 전했습니다. (학1:1) 다리오왕 이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 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학1:2)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학개에게 임하신
첫째 말씀은 연월일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렇게 밝히는 이유는 그들이 얼마나 오랜 동안 성전을 중단 하였던가 를 보여 주기 위함일 것입니다. 바벨론의 포로였던 그들이 돌아오면서 곧 착수한 것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일 이었습니다. 그들의 귀환이 B.C536년(귀환 명령이 내려진 해는 B.C539-538년 이 였고 그들이 실제로 돌아간 해는 B.C536년이다) 였다면 다리오왕2년은 B.C520년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성전건축이 중단된 상태로 버려진 것은 약 15년간이 게산이 됩니다.
1.말씀을 깨닫고 증거하는 선지자의 사명을 나에게도 주소서!
2.나의 이름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게 삶의 지혜 주소서!
3.겸손히 말씀을 잘 받아 순종하여 삶이 힘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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