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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합3: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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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교회를 이곳에 세워주시고 25년동안 지켜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 오늘 추수감사절을 지키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에는 감사라는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께로부터 지음받은 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야 합니다. 시편50:23절의 말씀 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이 감사절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꽃밭이고, 불평하는 마음은 가시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감사는 모든 미덕의 어버이입니다. 돈 많은 여행자에게 거지가 구걸하고 있습니다. 돈 많은 여행자는 "여기 있다. 먹고 사라져라"는 심정으로 돈을 주고, 거지는 더 많이 얻기 위해서 감사를 연 발합니다. 주는 심정도 병들었고 받는 심정도 병든 마음이며, 진정한 감사로 받 지 않으니 병든 마음입니다. 이것은 여행자와 거지의 경우만이 아닙니다. 오늘 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 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 시간 지금까지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뜨거운 가슴으로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감사는 인간에게만 주신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동물의 세계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가장 위대한 미덕일 뿐 아니라 모든 덕의 아버지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가 복받은 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감사드려야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 이유가 너무 나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숙된 그리스도인들이 드려야 하는 감사의 원인을 몇가지로 생각하며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1.구원의 은총을 감사드려야 합니다. 감사의 목적과 감사의 내용이 잘못되면 그 표현도 잘못될 수 밖에 없습니다. 누가복음18장에 보면 바리새인의 감사가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눅18:11-12)라고 감사를 했습니다. 이것은 감사가 아닙니다. 감사의 표현을 가장하여 자기를 자랑하고 있는 것 입니다. 잘못하면 우리의 감사가 이렇게 되기 쉽습니다. 농사가 잘 되었기 때문에, 남들처럼 실패하지 않고 성공했기 때문에, 아무개처럼 병들지 않고 건강하기 때문에, 아무개처럼 사고나지 않았기 때문에 감사를 한다면 그 감사는 비교우위 적 감사입니다. 감사의 진열장을 통하여 자기를 자랑하려는 심보가 깔려 있습니다. 우리이 감사는 순수해야 합니다. 하박국3:17-18절에 보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 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고 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처럼 우리의 감사가 소유의 넉 넉함이나 환경을 초월해서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그 구원의 은총을 감사 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가난해도, 병들어도, 실패해도, 죽음 앞에서도 넘치는 구원의 감격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비록 육신은 고통을 당해도 내 영혼이 구원받은 구속의 은총을 깨닫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 마의 지하 카타콤에서도 늘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 지하에 있었을 때도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 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445)라는 찬송을 부르며 감사의 제사를 드 렸습니다. 독일에서 혀암에 걸려 혀를 잘라야만 하는 환자가 있었습니다. 의사가 혀를 자르 기 전에 최후로 한 마디를 하라고 했습니다. 환자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 습니다. 주위에 둘러섰던 사람들은 과연 마지막 한마디는 무엇일까 생각하며 누 구의 이름을 부를 것인지를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는 떨리는 입술로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구속의 은초을 깨닫고 사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년 열두달 매일매일 감사하면서 살아야 되겠지만, 특별히 감사절을 맞아 더욱 허물과 죄로 죽었던 나를 구원해 주신 그 구속의 은총을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2.믿음을 선물로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엡2:8)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내가 만들어 내는 것 이 아닙니다. 수 많은 사람 가운데서 우리 하나 하나를 불러내셔서 믿음의 선물 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믿음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하나의 악세사리가 아 닙니다. 믿음은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살고 믿음이 없으면 죽습니다. 우리 모두를 깊은 바다에 던져넣으면 어떤 사람이 살아 나옵니까 공부를 많이한 사람입니까 사회적으로 지위나 명성이 있는 사람입니까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착한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이 살아나옵니까 다만 헤엄칠 줄 아는 사람만이 살 아나올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죄악 세상에서 마지막 때 구원받을 수 있는 삶은 오직 믿음의 사람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볼 때는 그 사람이 선하냐, 악하냐 를 보지만 하나님이 인간을 보실 때는 "그가 나를 믿느냐 안믿느냐"라는 믿음을 보십니다. 불신자 중에서도 신자들보다 더 윤리적이고 도덕적이요, 양심적인 선 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구원의 조건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이 통하지 않습니다. 비록 부족하고 때로는 부도덕해 보이고 비양심적으로 보이나 그래도 믿음으로 살아보겠다고 예수님을 꼭 붙들고 있는 그 믿음이 그를 구원하는 조건입니다. 주님 앞에는 믿음만이 통 합니다. 만일 구원의 조건이 이 믿음이 아니고 행함이었다고 한다면 그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 기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어떤 믿음이냐가 문제입니다. 믿음이 란 무슨 뜻입니까 원어의 뜻은 "신뢰한다.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믿는다'는 말과 '의지한다'는 말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믿는다는 말은 지적인 것입니다. 어떤 진리에 대한 지적인 긍적을 말합니다. 어떤 진리에 대한 지적인 동의입니다. 마귀들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약2:19"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 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했습니다. 귀신들은 아마도 우리들 이 예수님에 관하여 믿는 것보다 더 믿을지 모릅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마8:29" 이에 저희가 소리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 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 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고 했습니다. 귀신들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조금도 의심하지 아니하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마귀들의 믿음 은 지적인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의 믿음이 단순히 진리에 대한 긍정이나 지적인 동의라고 한다면 그런 믿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행위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어느 아름다운 아침이었습니다. 많은 관중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나이아가라폭포 의 물결은 그 장엄함을 자랑하며 낭떠러지에서 흘러 내리고 있었습니다. 두 언덕 사아에 긴 밧줄이 매어져 있는데 세계에서 제일 줄을 잘 타는 사람이 묘기를 보 여주기로 되어 있습니다. 만약 밧줄에서 떨어진다면 깨끗이 흔적도 없이 죽고 맙니다. 드디어 묘기를 보여줄 사람이 긴 장대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긴 장대로 균 형을 잡은 뒤 줄에 발을 옮겨놓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군중들은 숨을 죽이고 죽은 듯이 조용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묘길르 보여주는 사람은 흔들흔들 거리면서도 무사히 건너편 언덕에 도착했습니다. 수많은 군중은 환성을 지르는 것이었 습니다. 이 흥분한 군중을 향하여 그 사람은 놀라운 청을 했습니다. 누구든지 군 중 가운데 한사람을 업고 줄을 다시 타고 건너가겠다는 것입니다. 줄타는 사람은 군중을 향해서 "내가 여러분 중의 한 사람을 업고도 무사히 건너갈 줄을 믿습니 까"하고 물었습니다. 모든 군중들은 "믿습니다."하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누가 업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업힐 듯한 사람을 쳐다보고 물었습니다. "당신을 업고 내가 저쪽으로 건너갈 수 있다고 믿습니까그거야 물론 믿습니다"하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업히시지요!나보고 업히란 말 입니까 웬 천만의 말씀입니다.내가 왜 그런 위험한 일을 합니까"하고 돌아서버 렸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그러면 저를 의지할 수 있습니까물론이지요" 드디어 업혔습니다. 군중들은 숨소리를 죽이고 줄 위를 쳐다보았습니다. 줄타는 사람은 손에든 장대의 균형을 잡았습니다. 줄타는 사람은 이 사람을 등에 업고 줄 위에 올라섰 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줄 위를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밑에는 사납게 흘러내리는 폭포수와 험한 바위들이 있습니다. 떨어지면 깨끗이 끝납니다 구경꾼들은 손에 땀을 쥐었습니다. 드디어 그들은 무사히 반대쪽에 도착했습니다. 긴장은 풀리고 마음 졸이는 경험은 끝났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예화에서 두 언덕에 매어져 있는 밧줄은 구원의 밧줄로 생각해 보십시다. 예수님만이 구원의 밧줄이십니다.
그런데 밑에서 아무리 믿습니다. 믿 습니다. 해도 예수님을 믿고 업히지 못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회에 수십만명, 혹은 수만명이 모여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고 아무리 외쳐대도 우리의 믿음이 진리에 대한 동의나 지적인 긍정에 불과하 다면 그런 믿음은 귀신들도 가지고 있는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으로는 구원을 못 받습니다. 그런고로 믿음에는 반드시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사실을 믿고, 시인 하고 행동에 옮길 때만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10명의 문둥 병자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고 했을 때, 10명의 문둥병자가 믿고 행동으로 옮겼을 때 나음을 받았습니다. (실로암에 가서 나음받은 소경. 가난의 혼인잔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습니까 진실로 하나님을 의지 하십 니까 여러분이 고백하는 그 믿음은 금보다 은보다 귀한 것입니다. 살고 죽는 생 명의 문제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은 아무나의 것이 아닙니다. 선택받은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우리가 믿음의 선물을 받고 그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으니 이 믿음이야말로 엄청난 복입니다. 심히 부족하고 허물 많은 나에게 하나님의 믿음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감사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벧전2:9"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은 영원지존하시며 영원불 변하시며 무소부재하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세상 만물이 모두 우리 아버지의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자녀입니다.(요1:12)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모시고 산다면 우주 만물이 모두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지 자체가 큰 복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물질만 복인 줄 알고, 그 물질을 주신 복의 근원이 되시고 복의 통로가 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이미 말씀드린대로 육신 적이고 물질적인 것만이 복이 아닙니다. 신령한 복이 더 큰 복입니다. 구속의 은총, 믿음의 선물,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이 자체가 얼마나 큰 복인지 추수감사절을 맞아 다시 한번 기억하면서 최선을 다하여 감사하여야 하겠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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