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하지 말라 (미5:21-26)
본문
1. 율법 순종의 동기 오늘날 우리가 살인치 말라는 이 말씀을 순종해야 할 진정한 동기는 무엇입니 까 본문은 두 가지의 동기를 강조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율법의 정신을 진심으로 따르고자 하는 동기에서 율법을 순종해 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문자를 수호하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니,사실그들은 철저하게 율법의 문자를 수호하려고 애써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정신을 이 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다음과 같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성경에 살인치 말라고 했는데 나는 현재까지 살인한 일이 없다. 그러니까 나는 율법을 깨뜨리지 않았따. 나는 법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선량한 시민이다." 이것이 그들의 율법에 대한 접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생각해야 했 습니다. "살인치 말라아니 내가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이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어떤태도로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가 어떤 태도로 인간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그들은 이런 맥락에서부터 이 말씀을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서 본문에서 말씀하신 미움이나 증오를 품는 정신적 살인을 하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 자기는 법을 깨뜨린 일이 없고, 감옥에 간 일도 없고 재판 을 받은 일도 없으니 자기는 율법을 지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그 들은 율법을 깨뜨리고 있었으므로 주님이 보시기에는 그들이 위선자로 등장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형식의 이름으로 내용을 말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6절에 보면 바울은 "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 니라" 고 말합니다.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율법의 문자만을 수호하려고 할 때 율법의 참된 정신을 망각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율법을 지키는 동기는 무엇입니까 율법을 외적인 형태에서만 지키려 하십니까 아니 면 깊은 내적인 사고와 의도에서부터 율법을 지키려는 동기가 당신의 마음을 지 배하고 있습니까 누가복음 16장 15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라고 말씀 하십니다.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고 자부하는 자가 아니냐 나는 의인 이고,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선량한 시민으로 살아왔따고 자부하지 아니하느냐 "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씁니다. "하나님은 네 중심을 보신다." 우리는 율법을 진실되게 지키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태도로 이 말씀에 접근해 가 지 않으면 안 됩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인간 관계는 옳은가
둘째로, 우리는 적극적 동기에서 율법을 순종해야 합니다. 주께서는 형제에 대해 미움과 경멸과 그리고 시기와 투기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것,그것을 이미 살인의 시작으로 간주하십니다. 다시 말하면,예수께서는 바 리새인들이 강조하는 외면적 의 보다는 내면적 의의 중요성을 주시하시며 강조하 십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율법을 소극적이 아닌 적극적으로 지키려는 동기를 우리에게 심어 줍니다. 바리새인들은 왜 살인하지 않았습니까 단순히 재판받지 않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체면과 위신을 생각해서 그들은 범법자가 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율법을 지키는 동기였습니다. 극히 소극적 인 행동이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주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옳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사랑하는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기 원하기 때문에, 이 계명 을 지키고 있는가, 즉 "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이 계명을 지키는 나의 적극 적 동기가 되고 있는가"라고 주께서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어떻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주님의 의를 사모하며,의로운 주님 의 인격을 닮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이 세상 사람들 앞에 창피와 무안을 당하는 인간으로서 나타나지 않기 위한 목적 으로,아직 법을 문자적으로는 파괴하지 않았지만 내적으로는 이미 율법을 파괴한 상태로 하나님 앞에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닌지요 그 당시 바리새인들에 게는 이런 중요하고도 깊은 동기가 결핍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을 지키려는 동기가 저급한 동기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들은 결과적으로 율법을 파 괴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율법을 지킨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것이 주님의 안목에서는 위선자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2. 살인의 단계 예수께서는 본문에서 살인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하십니까 22절 말씀을 잘 분석해 보면 세 가지 단계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 나는 너희에게 이 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어 들어가게 되리라" 분노하고 라가라 하고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것, 이 세 가지 단계로 발전하고 있는 살인 행위가 문자적인 행위로 나타나기까지의 과정을 주께서 보여 주십니다. 분노는 살인의 사작입니다. 예수께서는 이거시보다 더한 것은 "라가" 라는 욕설 을 토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살인입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그렇 게 말씀하십니다. "라가" 라는 욕설은 상대방을 나쁘게 보이도록 이야기하는 모 든 것을 포함합니다. "편견,시기,중상모략,투기,타인을 깎아내리는 무책임한 말,음모,헛소문" 이 모든 것이 라가에 속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욕설을 하는 사람마다 유대 나라의 최고 법정에서 심판을 받아야 할 만큼 심각한 법죄라 고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미련한 놈" 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가치가 없는 놈" 이라고 욕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주께서 저 사람을 참 어리석게 만들 어 놓으셨다고 욕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이것은 주님께 대한 도전입니다. " 저 어리석은 인간 같으니라고 어떻게 하나님이 저런 인간을 지으셨나" 라고 당신 이 말하는 순간 당신은 하나님을 향하여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 아내가 그 려놓은 작품을 보고"저걸 그림이라고 그렸나" 하면 그것은 작품에 대한 멸시가 아니라 그 작품을 만든 제 아내에 대한 멸시입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을 그렇게 대하기 시작할 때 당신은 하나님을 향해서 선전포고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야고보서 3장 9절에 보면 야고보는 혀의 범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 뜻이 있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그 인간을 저주하고 증오하기 시작할 때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선전포고를 감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뜻이 있으셔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몹시도 못마땅한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이렇게 소리치십시오 " 저 인간도 하나님이 만드셨다" 하나님께는 뜻이 있어서 만드셨습니다. 계획 이 있어서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계획이 있어서 저 사람을 만드셨다면,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이 있어서 저 사람을 만드셨다면, 나는 하나님이 지으신 그 사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선언입니다.
3. 살인의 극복 우리는 어떻게 이 살인죄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첫째로, 분노가 일어날 때 그 분노를 죄로 인정하십시오. "기왕 화나고 만 것을 어쩌랴 하면서 넘어가지 말고 하나님 제가 법죄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말씀드리십시오. 내 마음 속에 분노가 일어날 때 지 체하지 말고 그것을 죄로 인정하십시오. 가벼운 죄가 아닙니다. 무서운 죄로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십시오. 미국의 역사책을 보면 1931년 5월 미국 뉴욕에서 경찰이 유명한 어떤 살인범을 체포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크라울리 라는 이 살인법은 사람을 잘 죽이 기로 유명했습니다. 이 사람은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자기 모자를 건드리면 총 을 쏘았습니다. "기분 나쁘게 왜 내 모자를 건드리고 다니느냐" 고 하면서, 경 찰이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하면 경찰관을 쏴 죽이고 다시 경찰관의 옆구리에서 총을 뽑아 확인 사살을 하는 등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사람은 그렇게 수많은 사람을 죽였으면서도 자기는 언제나 정당하다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살인의 이유가 항상 있었습니다. 자기는 절대로 잘못한 일이 없고 항상 정당하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전기의자에서 사형을 받는 그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그는 이렇 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오늘 이 지경이 되어서 내 생을 마치는 것은 내 죄를 끝까지 합리화하려 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죄를 합리화하지 마십시오 분노의 감정은 죄입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는 의로운 분노라고 생각할지도 모 릅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분노를 금하셨습니다. 당신이 그 분노를 느끼는 순 간. 주님 앞에 범죄의 사실을 고하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둘째로 , 화해의 길을 모색하십시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 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살인한 일이 없지 않은가.나야말로 얼마나 의로운 사람인가 하나님께 예배 드릴 수 있는 당당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지" 그러나 주께서는 그 마음 속에 있는 분노와 시기와 질투를 보시면서 "예배를 중단하라.가서 그 미움을 풀고 화목 하라. 그리고 와서 예물을 드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유 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살인한 일이 없고,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도 부족합니다. 주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가라. 그 사람과 그 형제와 화목하라" 고 하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교훈입니다. 흔히 자기 마음 속에 어려움과,해결하지 못한 숙제를 가진 사람들이 더욱 더외면 적인 열심을 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배 그 자체는 귀한 것입니다. 봉사 그 자체도 귀한 것입니다.기도하는 것도 귀한 것입니다. 성경 공부하는 것도 귀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나, 나와 사람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이 의미가 없습니다.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 서 예물을 드리라고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시편 기자는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고 말합니다. 듣지 않으시는 기도는 해서 뭘합니까 주께서 받지 않으시는 봉사를 해서 뭘합니까 주께서 받으실 수 없는 예배는 드려서 뭘합니까
그러므로 먼저 화 해의 길을 모색하십시오. 세째로, 화해를 하되 즉각적으로 하십시오 화해의 길을 즉각적으로 모색하십시오. 25절 말씀을 보면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고 하십니다. 화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 은 것입니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에 하십시오. 시기를 넘기면 넘길수록 더욱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에베소서 4장 26절에서 ".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말한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 다음 절에서는 "마귀로 틈 을 타지 못하게 하라" 고 말합니다. 우리가 분을 풀지 못하고 있으면 마침내 우리의 인격은 사단에게 정복당하고 맙니다. 내 인격은 사단에게 지배당하고 맙니다. 나는 너절너절한 인격으로,추하게 더럽혀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해가 지기 전에 분을 푸십시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화해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당신이 인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 시간. 당신에게 목숨이 붙어있 을 때에 사화하십시오. 죽음의 침상에서 뒤늦게 화해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쓰 라린 후회를 안고 생명을 마치기 전에, 하나님 앞에 불리움을 받는 마지막 순간 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그때에야 비로소 내 잘못되었던 인생길의 모든 것들을 변명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지금이 바로 화해할 시간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율법의 정신을 진심으로 따르고자 하는 동기에서 율법을 순종해 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문자를 수호하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니,사실그들은 철저하게 율법의 문자를 수호하려고 애써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정신을 이 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다음과 같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성경에 살인치 말라고 했는데 나는 현재까지 살인한 일이 없다. 그러니까 나는 율법을 깨뜨리지 않았따. 나는 법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선량한 시민이다." 이것이 그들의 율법에 대한 접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생각해야 했 습니다. "살인치 말라아니 내가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이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어떤태도로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가 어떤 태도로 인간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그들은 이런 맥락에서부터 이 말씀을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서 본문에서 말씀하신 미움이나 증오를 품는 정신적 살인을 하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 자기는 법을 깨뜨린 일이 없고, 감옥에 간 일도 없고 재판 을 받은 일도 없으니 자기는 율법을 지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그 들은 율법을 깨뜨리고 있었으므로 주님이 보시기에는 그들이 위선자로 등장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형식의 이름으로 내용을 말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6절에 보면 바울은 "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 니라" 고 말합니다.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율법의 문자만을 수호하려고 할 때 율법의 참된 정신을 망각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율법을 지키는 동기는 무엇입니까 율법을 외적인 형태에서만 지키려 하십니까 아니 면 깊은 내적인 사고와 의도에서부터 율법을 지키려는 동기가 당신의 마음을 지 배하고 있습니까 누가복음 16장 15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라고 말씀 하십니다.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고 자부하는 자가 아니냐 나는 의인 이고,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선량한 시민으로 살아왔따고 자부하지 아니하느냐 "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씁니다. "하나님은 네 중심을 보신다." 우리는 율법을 진실되게 지키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태도로 이 말씀에 접근해 가 지 않으면 안 됩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인간 관계는 옳은가
둘째로, 우리는 적극적 동기에서 율법을 순종해야 합니다. 주께서는 형제에 대해 미움과 경멸과 그리고 시기와 투기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것,그것을 이미 살인의 시작으로 간주하십니다. 다시 말하면,예수께서는 바 리새인들이 강조하는 외면적 의 보다는 내면적 의의 중요성을 주시하시며 강조하 십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율법을 소극적이 아닌 적극적으로 지키려는 동기를 우리에게 심어 줍니다. 바리새인들은 왜 살인하지 않았습니까 단순히 재판받지 않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체면과 위신을 생각해서 그들은 범법자가 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율법을 지키는 동기였습니다. 극히 소극적 인 행동이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주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옳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사랑하는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기 원하기 때문에, 이 계명 을 지키고 있는가, 즉 "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이 계명을 지키는 나의 적극 적 동기가 되고 있는가"라고 주께서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어떻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주님의 의를 사모하며,의로운 주님 의 인격을 닮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이 세상 사람들 앞에 창피와 무안을 당하는 인간으로서 나타나지 않기 위한 목적 으로,아직 법을 문자적으로는 파괴하지 않았지만 내적으로는 이미 율법을 파괴한 상태로 하나님 앞에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닌지요 그 당시 바리새인들에 게는 이런 중요하고도 깊은 동기가 결핍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을 지키려는 동기가 저급한 동기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들은 결과적으로 율법을 파 괴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율법을 지킨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것이 주님의 안목에서는 위선자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2. 살인의 단계 예수께서는 본문에서 살인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하십니까 22절 말씀을 잘 분석해 보면 세 가지 단계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 나는 너희에게 이 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어 들어가게 되리라" 분노하고 라가라 하고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것, 이 세 가지 단계로 발전하고 있는 살인 행위가 문자적인 행위로 나타나기까지의 과정을 주께서 보여 주십니다. 분노는 살인의 사작입니다. 예수께서는 이거시보다 더한 것은 "라가" 라는 욕설 을 토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살인입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그렇 게 말씀하십니다. "라가" 라는 욕설은 상대방을 나쁘게 보이도록 이야기하는 모 든 것을 포함합니다. "편견,시기,중상모략,투기,타인을 깎아내리는 무책임한 말,음모,헛소문" 이 모든 것이 라가에 속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욕설을 하는 사람마다 유대 나라의 최고 법정에서 심판을 받아야 할 만큼 심각한 법죄라 고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미련한 놈" 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가치가 없는 놈" 이라고 욕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주께서 저 사람을 참 어리석게 만들 어 놓으셨다고 욕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이것은 주님께 대한 도전입니다. " 저 어리석은 인간 같으니라고 어떻게 하나님이 저런 인간을 지으셨나" 라고 당신 이 말하는 순간 당신은 하나님을 향하여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 아내가 그 려놓은 작품을 보고"저걸 그림이라고 그렸나" 하면 그것은 작품에 대한 멸시가 아니라 그 작품을 만든 제 아내에 대한 멸시입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을 그렇게 대하기 시작할 때 당신은 하나님을 향해서 선전포고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야고보서 3장 9절에 보면 야고보는 혀의 범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 뜻이 있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그 인간을 저주하고 증오하기 시작할 때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선전포고를 감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뜻이 있으셔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몹시도 못마땅한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이렇게 소리치십시오 " 저 인간도 하나님이 만드셨다" 하나님께는 뜻이 있어서 만드셨습니다. 계획 이 있어서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계획이 있어서 저 사람을 만드셨다면,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이 있어서 저 사람을 만드셨다면, 나는 하나님이 지으신 그 사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선언입니다.
3. 살인의 극복 우리는 어떻게 이 살인죄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첫째로, 분노가 일어날 때 그 분노를 죄로 인정하십시오. "기왕 화나고 만 것을 어쩌랴 하면서 넘어가지 말고 하나님 제가 법죄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말씀드리십시오. 내 마음 속에 분노가 일어날 때 지 체하지 말고 그것을 죄로 인정하십시오. 가벼운 죄가 아닙니다. 무서운 죄로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십시오. 미국의 역사책을 보면 1931년 5월 미국 뉴욕에서 경찰이 유명한 어떤 살인범을 체포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크라울리 라는 이 살인법은 사람을 잘 죽이 기로 유명했습니다. 이 사람은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자기 모자를 건드리면 총 을 쏘았습니다. "기분 나쁘게 왜 내 모자를 건드리고 다니느냐" 고 하면서, 경 찰이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하면 경찰관을 쏴 죽이고 다시 경찰관의 옆구리에서 총을 뽑아 확인 사살을 하는 등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사람은 그렇게 수많은 사람을 죽였으면서도 자기는 언제나 정당하다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살인의 이유가 항상 있었습니다. 자기는 절대로 잘못한 일이 없고 항상 정당하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전기의자에서 사형을 받는 그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그는 이렇 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오늘 이 지경이 되어서 내 생을 마치는 것은 내 죄를 끝까지 합리화하려 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죄를 합리화하지 마십시오 분노의 감정은 죄입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는 의로운 분노라고 생각할지도 모 릅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분노를 금하셨습니다. 당신이 그 분노를 느끼는 순 간. 주님 앞에 범죄의 사실을 고하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둘째로 , 화해의 길을 모색하십시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 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살인한 일이 없지 않은가.나야말로 얼마나 의로운 사람인가 하나님께 예배 드릴 수 있는 당당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지" 그러나 주께서는 그 마음 속에 있는 분노와 시기와 질투를 보시면서 "예배를 중단하라.가서 그 미움을 풀고 화목 하라. 그리고 와서 예물을 드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유 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살인한 일이 없고,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도 부족합니다. 주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가라. 그 사람과 그 형제와 화목하라" 고 하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교훈입니다. 흔히 자기 마음 속에 어려움과,해결하지 못한 숙제를 가진 사람들이 더욱 더외면 적인 열심을 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배 그 자체는 귀한 것입니다. 봉사 그 자체도 귀한 것입니다.기도하는 것도 귀한 것입니다. 성경 공부하는 것도 귀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나, 나와 사람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이 의미가 없습니다.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 서 예물을 드리라고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시편 기자는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고 말합니다. 듣지 않으시는 기도는 해서 뭘합니까 주께서 받지 않으시는 봉사를 해서 뭘합니까 주께서 받으실 수 없는 예배는 드려서 뭘합니까
그러므로 먼저 화 해의 길을 모색하십시오. 세째로, 화해를 하되 즉각적으로 하십시오 화해의 길을 즉각적으로 모색하십시오. 25절 말씀을 보면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고 하십니다. 화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 은 것입니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에 하십시오. 시기를 넘기면 넘길수록 더욱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에베소서 4장 26절에서 ".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말한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 다음 절에서는 "마귀로 틈 을 타지 못하게 하라" 고 말합니다. 우리가 분을 풀지 못하고 있으면 마침내 우리의 인격은 사단에게 정복당하고 맙니다. 내 인격은 사단에게 지배당하고 맙니다. 나는 너절너절한 인격으로,추하게 더럽혀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해가 지기 전에 분을 푸십시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화해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당신이 인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 시간. 당신에게 목숨이 붙어있 을 때에 사화하십시오. 죽음의 침상에서 뒤늦게 화해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쓰 라린 후회를 안고 생명을 마치기 전에, 하나님 앞에 불리움을 받는 마지막 순간 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그때에야 비로소 내 잘못되었던 인생길의 모든 것들을 변명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지금이 바로 화해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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