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의 신앙 (욘4:1-11,행4:1-22)
본문
본문인 사도행전 말씀에 보면, 오순절 이후 예루살렘 전체를 뒤흔들어 놓을 만큼 활발하 게 복음이 전파되어가자 이에 당황한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이를 어떻게 해서든지 막아보고자 애를 쓰는 모습이 나옵니다. 특별히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가 베드로와 요 한 에게 고침을 받자 성전을 찾아오던 사람들의 관심이 다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에게 집중이 되었습니다. 이제까지는 어느 누구도 성전 종교인 유대교와 그 율법에 도전하는 사람이 없었는 데,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며 그의 부활을 전하는 이 갈릴리의 무리들이 나타난 이후부터는 그들이 지켜온 유대교의 근본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새로운 신앙에는 능력이 있 었고 참신한 구원의 복음이 있었습니다. 율법주의에 빠진 구태의연(舊態依然)한 유대교가 줄 수 없었던 참신한 생명의 소식이 많은 사람들을 사로 잡았던 것입니다. 이에 유대교 지도자들은 이의 확산을 막고자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 들여 공회 앞에서 심문하 고 저들을 위협하여 이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충만한 베드로 와 요한은 너무나도 당당하고 자신 있게 자기들을 위협하는 공회원들 앞에서 예수의 부활을 증거 하였던 것입니다. 조금도 그들의 위협에 굴하지 아니하고 담대하게 서서 저들의 공갈과 협 박 에 맞섰던 것입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처음에는 위협하여 놓아 주었지만, 나중에는 사도중 야 고보를 잡아 죽였고, 베드로도 죽이려고 감옥에 가두었으나 천사가 그를 이끌어 내었기 때문에 죽이지는 못했습니다. 또 스데반이 성령님 충만하여 전도할 때에 그들이 돌로 그를 쳐 죽였습니다. 그리고 사울이라는 젊은이를 다메섹에 보내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이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점점 더 널리 확산되어 갔습 니다. 심지어는 사울이 변화되어 오히려 복음 전도자가 되어버리자 유대인들은 악이 받쳐 사울 을 죽이려고 온갖 수단 방법을 다 동원했던 것입니다. 곳곳에서 박해가 일어났지만 복음은 지중 해 연안 여러 도시에서 활발하게 전파되어 믿는 사람들이 도처에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일괄해 보면서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역사의 대전환(大轉換)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게 됩니다. 강력한 힘으로나 조직으로도 막을 수 없는 역사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 을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 읽을 수가 있습니다. 이 역사의 전환은 누구도 막을 수가 없는 것입 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친히 그 역사를 변화시키시기 때문입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온갖 수 단 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막으려 했지만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 리 스도가 친히 오셔서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 승천하신 사건은 역사의 대 전환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누고도 감히 막을 수 없는 거대 한 은총의 강물입니다. 이런 큰 역사의 전환을 깨닫지 못한채 유대인들은 어리석게 그 변화를 막 으려 하고 자기들이 지켜온 율법주의의 틀 속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들은 하 나 님이 이루시는 역사의 전환을 수용하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경험한 역사의 전환 구약본문인 요나서에서도 우리는 같은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선민의식(選民意識)에 사로잡힌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다시스로 도망을 갑니다. 그러나, 폭풍우로 그 의 길은 막힙니다. 바다에 던져져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혼이 난 요나는 마지못해 니느웨로 가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그 성의 왕으로부터 짐승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성에 내리시려던 심판을 멈추셨습니다. 이에 화가 난 요나가 하나님께 항의를 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요나는 하나님의 용서와 은총을 찬양하기 보다는 화 를 내며 죽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죽기를 간구한 것은 요나 자신의 선민의식을 버리지 않겠 다는 것을 뜻합니다.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서, 하나님이 이룩하시려는 역사의 전환을 요나는 받아드리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요나는 역사 의 전환기를 맞었으면서도 자기 사고의 변화를 거부하고 그 속에 머물기를 고집했던 것입니다. 요 나는 죽으면 죽었지 결단코 니느웨에 대한 증오심을 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 이 니느웨를 용서하서도 자기는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가 아무리 고집하여도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고집스러운 이스라엘의 생각을 바꾸시기 위하여 저들을 바벨론에 포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바벨론 포로 사건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대전환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저들이 머물던 아성이 깨어지고 그들이 믿던 신앙의 기반이 흔들리는 대 변화였던 것입니다.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이라는 큰 물고기 뱃속에 들 어가 50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내면서 점차 새로운 역사의 변화에 대해 깨닫고 거기에 대응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다듬어 나갔습니다. 이제까지 자기들이 고집하던 것들이 모두 잘못되었으며, 예 언자들의 깨우침이 옳았었다는 것을 점차 인식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대전환기를 맞은 한국사회 오늘 우리는 분명히 이 역사가 전환기를 맞이하였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동서 냉 전의 시대가 끝나는가 싶더니 어느 사이에 경제와 문화의 교류를 시작하여 어제의 원수가 오늘 의 친구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환이 너무 급속하여서 우리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또 그렇게 폐쇄적이었던 공산 국가들인 소련을 비롯하여 중국과 동구의 여러 나라가 개방 정책을 채택하고 서방 세계를 향하여 문호를 개방하였습니다. 이 역시 놀라운 변 화 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변화의 물결은 그대로 우리 사회에도 전달되어 때맞추어 새로 출 발 한 제 6 공화국과 더불어 역사의 대 전환기를 맞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억압된 체제 속 에 갇혀 있던 이 사회가 서서히 개방적인 사회로 전환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누구도 거 역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작년에 6.29 선언이 노태우씨 개인의 결심으로만 가능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 선언이 나오지 않을 수 없도록 거대한 민중의 압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6.29 선언을 못마땅하게 여긴 구 세력이 노태우씨를 제거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은 역시 그들의 권력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역사의 전환을 가속시킨 또 하나의 요 인으로 올림픽을 들 수 있습니다. 처음 올림픽을 유치하였을 때는 정치적인 목적이 크게 작 용 하였지만, 사상 유례없는 동서의 모든 국가들이 이번 올림픽에 참가하므로 해서 세계적으로 일 어나고 있는 역사의 변화의 물결이 급속하게 우리 사회 속으로 흘러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 올림픽은 이제까지 폐쇄적이던 우리 사회를 세계 앞에 완전히 개방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올림픽으로 인해서 한국 사회는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민주화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도록 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올림픽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불안해 합니다만, 열 려할 것이 없는 것은 이제는 누구도 이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만 약에 우리가 다시 역사를 거슬려 되돌아간다면 세계가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놀라운 역사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아직 옛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구세 력 들이 이 변화를 막으려고 어리석은 짓들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지금 제 5 공화국의 비리들 을 속시원하게 파헤쳐서 짜를 것은 짜르고 용서할 것은 용서해서 속히 이 새 역사의 흐름에 따라야 할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까닭은 구 세력들이 너무 완강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에 일어난 언론인 피습사건도 결코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역사의 변화를 따르지 않으려는 구 세력의 몸부림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사회 요소 요소에 들어가 박혀있는 구 세력 들 은 과거의 권위주의적인 사고와 행동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한번 권토중래(捲土重來) 하려고 기 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 개방된 사회로의 역사의 흐름은 아 무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금년에 들어 일어나는 노동 쟁의의 쟁점은 임금 인상보다는 경 영 진의 퇴진과 근로자들의 선출에 의하여 책임자를 선택하는 일 등입니다. 그래서, 문화방송이나 서울신문사가 그런 방식으로 경영진을 바꾸었습니다. 그들을 바꾸지 아니하고는 변화되는 새 역 사에 부응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역사의 전환기에 서 있는 우리 믿는 사람들의 의식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요나같이 새 시대로의 변화를 거부하고 있지 않은지요 사도행전에 나타난 유대 지도자들처 럼 엄청난 변화의 역사를 막아보려고 어리석은 시도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유감스럽게도 우리 믿는 사람들은 신속하게 이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채 옛날 사고방식 그대로를 고집하고 있는 것 입니다. 지난번 NCC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에 대한 반응이 바로 그 런 우리의 의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이 선언은 변화하는 새 역사에 부응하려는 교회의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공이념(反共理念)에 사로잡힌 그리스도인들 이 이를 비판하고 여전히 옛 시대에 그대로 머물고자 한 것입니다. 일부 보수적인 교단에서 세계교회협의회를 용공(容共)이라고 비난하였습니다. 그것은 거기에 동구권 공산국가의 교회대표들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나라는 중국과 교역하며 동구 공산권 심지어는 소련하고도 교역을 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 다 면 보수교단은 정부를 향하여 성명을 발표해야 할 것입니다. 용공 정부가 되어서 우리는 당신 들을 용납할 수 없다고 해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저들은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그런 사 고의 틀을 가지고는 이 변화하는 역사에 대응할 수가 없습니다. 그 생각을 바꾸지 않을 때 저 들 은 이 역사의 대열에서 낙오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보수교단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속하여 있는 교단도 그런 사고를 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이번 12일 부터(1989. 9. 12) 열리는 우리 교단 총회도 바로 이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전환기에서 흔히 겪는 갈등이 이번 총회에서 노출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제발 이 역사의 전환을 직시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교단이 되도록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전환기에 선 우리의 신앙 그러면, 이 역사의 전환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 렘 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그 들은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그 때에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여 오시자 그들 은 완전히 새 사람이 되어 놀라운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사고와 생활이 모두 바뀐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저들을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저들의 사 고의 변화는 복음이 유대땅을 떠나면서 더욱 가속화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하나님 의 선민이요 이방인(異邦人)은 밖에 버리운 백성이라는 인식이 바뀌어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유 대인이나 이방인이 모두가 다같이 한 형제라는 새로운 생각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를 위한 사도 바울의 피나는 투쟁이 있었습니다. 좀처럼 해서 바뀌어지지 않는 이 생각을 바꾸려 고 바울은 쉬지 않고 전도하고 편지 쓰고 사람들을 만나 설득을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 역사의 전환기에 서 있습니다. 먼저 조용히 엎드려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내 생각, 내 고집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것인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 역사를 끊임없이 새롭게 변 화시키고 계십니다. 항상 구름기둥처럼 우리 앞에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를 따르 기 위하여 내 고집과 내 주장을 버리고 겸손히 그의 듯을 받아드리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오늘 이 변화하는 역사의 의미를 깨 우쳐 주십니다. 자기를 비우고 항상 성령님께서 채워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자기를 새롭게 하여 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으로 자신을 새롭게 하면서 하나님이 이룩하시는 이 역사의 변화의 물결을 탈 때 우리는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며, 거기서 새로운 기쁨과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겸손히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릴 때입니다. 그리고 그가 열어 보이시는 이 역 사의 미래를 바라보며 담대하게 증거 하여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의 역사는 분명히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옛 생각을 버 리고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은 새 시대의 하나님 의 일군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낙오자가 될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과 같이 주어진 사명을 다하지 못하여 하나님 앞에 이르러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요나처럼 어리석게 하나님의 역사를 거스르려고 하지 맙시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 의 역사 앞에 겸손하게 열어 그가 이룩하시려는 역사에 순응하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야 하겠 습니다. 성령님 충만함을 기다려 그가 깨우치시는 이 역사의 의미를 분명히 파악하고 그 역사 에 앞장 서 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친히 그 역사를 변화시키시기 때문입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온갖 수 단 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막으려 했지만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 리 스도가 친히 오셔서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 승천하신 사건은 역사의 대 전환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누고도 감히 막을 수 없는 거대 한 은총의 강물입니다. 이런 큰 역사의 전환을 깨닫지 못한채 유대인들은 어리석게 그 변화를 막 으려 하고 자기들이 지켜온 율법주의의 틀 속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들은 하 나 님이 이루시는 역사의 전환을 수용하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경험한 역사의 전환 구약본문인 요나서에서도 우리는 같은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선민의식(選民意識)에 사로잡힌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다시스로 도망을 갑니다. 그러나, 폭풍우로 그 의 길은 막힙니다. 바다에 던져져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혼이 난 요나는 마지못해 니느웨로 가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그 성의 왕으로부터 짐승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성에 내리시려던 심판을 멈추셨습니다. 이에 화가 난 요나가 하나님께 항의를 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요나는 하나님의 용서와 은총을 찬양하기 보다는 화 를 내며 죽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죽기를 간구한 것은 요나 자신의 선민의식을 버리지 않겠 다는 것을 뜻합니다.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서, 하나님이 이룩하시려는 역사의 전환을 요나는 받아드리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요나는 역사 의 전환기를 맞었으면서도 자기 사고의 변화를 거부하고 그 속에 머물기를 고집했던 것입니다. 요 나는 죽으면 죽었지 결단코 니느웨에 대한 증오심을 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 이 니느웨를 용서하서도 자기는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가 아무리 고집하여도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고집스러운 이스라엘의 생각을 바꾸시기 위하여 저들을 바벨론에 포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바벨론 포로 사건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대전환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저들이 머물던 아성이 깨어지고 그들이 믿던 신앙의 기반이 흔들리는 대 변화였던 것입니다.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이라는 큰 물고기 뱃속에 들 어가 50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내면서 점차 새로운 역사의 변화에 대해 깨닫고 거기에 대응하는 신앙의 자세를 가다듬어 나갔습니다. 이제까지 자기들이 고집하던 것들이 모두 잘못되었으며, 예 언자들의 깨우침이 옳았었다는 것을 점차 인식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대전환기를 맞은 한국사회 오늘 우리는 분명히 이 역사가 전환기를 맞이하였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동서 냉 전의 시대가 끝나는가 싶더니 어느 사이에 경제와 문화의 교류를 시작하여 어제의 원수가 오늘 의 친구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환이 너무 급속하여서 우리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또 그렇게 폐쇄적이었던 공산 국가들인 소련을 비롯하여 중국과 동구의 여러 나라가 개방 정책을 채택하고 서방 세계를 향하여 문호를 개방하였습니다. 이 역시 놀라운 변 화 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변화의 물결은 그대로 우리 사회에도 전달되어 때맞추어 새로 출 발 한 제 6 공화국과 더불어 역사의 대 전환기를 맞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억압된 체제 속 에 갇혀 있던 이 사회가 서서히 개방적인 사회로 전환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누구도 거 역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작년에 6.29 선언이 노태우씨 개인의 결심으로만 가능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 선언이 나오지 않을 수 없도록 거대한 민중의 압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6.29 선언을 못마땅하게 여긴 구 세력이 노태우씨를 제거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은 역시 그들의 권력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역사의 전환을 가속시킨 또 하나의 요 인으로 올림픽을 들 수 있습니다. 처음 올림픽을 유치하였을 때는 정치적인 목적이 크게 작 용 하였지만, 사상 유례없는 동서의 모든 국가들이 이번 올림픽에 참가하므로 해서 세계적으로 일 어나고 있는 역사의 변화의 물결이 급속하게 우리 사회 속으로 흘러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 올림픽은 이제까지 폐쇄적이던 우리 사회를 세계 앞에 완전히 개방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올림픽으로 인해서 한국 사회는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민주화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도록 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올림픽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불안해 합니다만, 열 려할 것이 없는 것은 이제는 누구도 이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만 약에 우리가 다시 역사를 거슬려 되돌아간다면 세계가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놀라운 역사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아직 옛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구세 력 들이 이 변화를 막으려고 어리석은 짓들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지금 제 5 공화국의 비리들 을 속시원하게 파헤쳐서 짜를 것은 짜르고 용서할 것은 용서해서 속히 이 새 역사의 흐름에 따라야 할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까닭은 구 세력들이 너무 완강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에 일어난 언론인 피습사건도 결코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역사의 변화를 따르지 않으려는 구 세력의 몸부림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사회 요소 요소에 들어가 박혀있는 구 세력 들 은 과거의 권위주의적인 사고와 행동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한번 권토중래(捲土重來) 하려고 기 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 개방된 사회로의 역사의 흐름은 아 무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금년에 들어 일어나는 노동 쟁의의 쟁점은 임금 인상보다는 경 영 진의 퇴진과 근로자들의 선출에 의하여 책임자를 선택하는 일 등입니다. 그래서, 문화방송이나 서울신문사가 그런 방식으로 경영진을 바꾸었습니다. 그들을 바꾸지 아니하고는 변화되는 새 역 사에 부응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역사의 전환기에 서 있는 우리 믿는 사람들의 의식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요나같이 새 시대로의 변화를 거부하고 있지 않은지요 사도행전에 나타난 유대 지도자들처 럼 엄청난 변화의 역사를 막아보려고 어리석은 시도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유감스럽게도 우리 믿는 사람들은 신속하게 이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채 옛날 사고방식 그대로를 고집하고 있는 것 입니다. 지난번 NCC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에 대한 반응이 바로 그 런 우리의 의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이 선언은 변화하는 새 역사에 부응하려는 교회의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공이념(反共理念)에 사로잡힌 그리스도인들 이 이를 비판하고 여전히 옛 시대에 그대로 머물고자 한 것입니다. 일부 보수적인 교단에서 세계교회협의회를 용공(容共)이라고 비난하였습니다. 그것은 거기에 동구권 공산국가의 교회대표들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나라는 중국과 교역하며 동구 공산권 심지어는 소련하고도 교역을 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 다 면 보수교단은 정부를 향하여 성명을 발표해야 할 것입니다. 용공 정부가 되어서 우리는 당신 들을 용납할 수 없다고 해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저들은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그런 사 고의 틀을 가지고는 이 변화하는 역사에 대응할 수가 없습니다. 그 생각을 바꾸지 않을 때 저 들 은 이 역사의 대열에서 낙오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보수교단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가 속하여 있는 교단도 그런 사고를 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이번 12일 부터(1989. 9. 12) 열리는 우리 교단 총회도 바로 이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전환기에서 흔히 겪는 갈등이 이번 총회에서 노출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제발 이 역사의 전환을 직시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교단이 되도록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전환기에 선 우리의 신앙 그러면, 이 역사의 전환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 렘 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그 들은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그 때에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여 오시자 그들 은 완전히 새 사람이 되어 놀라운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사고와 생활이 모두 바뀐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저들을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저들의 사 고의 변화는 복음이 유대땅을 떠나면서 더욱 가속화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하나님 의 선민이요 이방인(異邦人)은 밖에 버리운 백성이라는 인식이 바뀌어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유 대인이나 이방인이 모두가 다같이 한 형제라는 새로운 생각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를 위한 사도 바울의 피나는 투쟁이 있었습니다. 좀처럼 해서 바뀌어지지 않는 이 생각을 바꾸려 고 바울은 쉬지 않고 전도하고 편지 쓰고 사람들을 만나 설득을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 역사의 전환기에 서 있습니다. 먼저 조용히 엎드려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내 생각, 내 고집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것인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 역사를 끊임없이 새롭게 변 화시키고 계십니다. 항상 구름기둥처럼 우리 앞에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를 따르 기 위하여 내 고집과 내 주장을 버리고 겸손히 그의 듯을 받아드리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오늘 이 변화하는 역사의 의미를 깨 우쳐 주십니다. 자기를 비우고 항상 성령님께서 채워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자기를 새롭게 하여 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으로 자신을 새롭게 하면서 하나님이 이룩하시는 이 역사의 변화의 물결을 탈 때 우리는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며, 거기서 새로운 기쁨과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겸손히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릴 때입니다. 그리고 그가 열어 보이시는 이 역 사의 미래를 바라보며 담대하게 증거 하여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의 역사는 분명히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옛 생각을 버 리고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은 새 시대의 하나님 의 일군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낙오자가 될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과 같이 주어진 사명을 다하지 못하여 하나님 앞에 이르러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요나처럼 어리석게 하나님의 역사를 거스르려고 하지 맙시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 의 역사 앞에 겸손하게 열어 그가 이룩하시려는 역사에 순응하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야 하겠 습니다. 성령님 충만함을 기다려 그가 깨우치시는 이 역사의 의미를 분명히 파악하고 그 역사 에 앞장 서 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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