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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관심 (욘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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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즐겨 읽는 책 중에 三國志演義 라는 책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고전이며 베스터셀러이기도 한 이 책은 한국에서도 이문열, 김홍신씨와 같은 분이 번역하 여 연간 50만부 이상 팔리는 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읽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삼국지는 읽을때 마다 또 다른 재미와 교훈을 주는 책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고대 한나라가 망한 후 전환기 중국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 소설로써, 무수한 영웅과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비, 관우, 장비로 일 컬는 도원결의의 전반부는 널리 알려져 있고, 후반부의 묘사꾼, 사마의와 제갈 공명의 대결은 너무나 볼만해 무수한 고사성어를 낳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방대한 중국의 역사 소설인 삼국지를 읽을때도 특별히 기억에 남고 다시 한번 보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갈공명으로 읽켰는 촉한의 승상이 중국의 오지인 남만이라는 땅을 정벌하러 가서 남만의 왕인 맹획을 7번 잡았다 가 7번 놓아준다는 이야기입니다. "무력으로 땅을 정복할 수는 있으나 사람의 마음은 무력이 아닌 마음으로 다스려야 된다"는 말로도 유명한 이 사건을 읽을때 마다. 제가 느끼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때 7번이 아닌 70번까지 용서해 주시고, 마침내는 스스로 자신을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힘이 아닌 마음과 사랑으로 우리를 끌어 않으시는 모습이 생각 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도 이런 사랑의 이야기에 관심합니다. 먼저 구약본문인 요나서를 보시겠습니다. 요나서는 다른 예언서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예언서의 특징은 신탁입니다. 그러나 요나서는 신탁이 아닌 한 예언자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어가고 있습니다. 그 렇다고 이 책의 내용이 하나님의 명을 어겼던 한 예언자가 자기의 잘못을 뉘우 치는 속죄 행위를 묘사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를 예언적 으로 취급한 것도 아닙니다. 앗수르 수도 니느웨는 요나에게 있어 적대 국 이었 습니다. 요나의 모국인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원융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일 본과 같습니다.
그렇기에 1장에서 1절에서 니느우웨를 회개 시키라는 명령이 요나에게 떨어졌 을때 요나가 취한 행동 즉 2절, 3절에서, 야훼의 눈을 벗어나 다시스로 도망가려 고 요빠로 내려가는 장명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의 양심으로는 하나님의 명령 보다 민족이 더욱 중요했던 것입니다. 민족의 원수, 결코 회개시켜는 안될 대상 그렇기에 하나님의 명령일 찌라도 그 런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야훼의 눈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다시한번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명령을 받습니다. 3장 1절과 2절입니다. 3 1 여호와의 말씀이 두번째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3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드디어 요나는 그 큰 성읍 니느웨, 민족의 원수의 수도 니느웨를 회개 시키려 들어갑니다. 그리고 단 한번 회개를 선포했을때 그들 앗수르 인들이 취한 행동을 3장 5절이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3 5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는 행위입니다. 이에 대한 결과는 다시 10절에 나타납니다. 3 10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 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 하시니라 아주 단순해 보이는 이 사건은 결코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자신들을 시온의 민족, 선택받은 민족으로 생각하는 이스라엘 그 이스라엘를 멸망시킨 민족 앗수르, 그 앗수르의 죄악된 도시 니느웨, 그 니느웨는 그들에게 있어 어떤 경우에도 멸망받아 마땅할 곳이며, 절대, 결코, 회개의 대상이 아닌, 심판에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요나서 4장에서 원수의 나라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는 것을 보 고 요나가 격분을 참지 못하여 하나님께 4장 2절에 "하나님, 제가 집을 떠나기 전에 이렇게 되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다시스로 동망치려 했던 것입니다. 저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 처롭고 불쌍한 것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시며 사랑 이 한없으시어, 악을 보고 벌하려 하시다가도 금방 뉘우치시는 분인지 어찌 몰 랐겠습니까 제 목숨을 거두어 가십시오"라고 하나님께 따지는 것은 당연한 일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생각이지 하나님의 생각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달랐습니다. 그 관심이 요나서의 가장 핵심된 주장입니다. 3장 10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3 10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 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 시니라 이스라엘이 생각했던 하나님은 참으로 협소했습니다. 자신의 민족만을 위해 자 신들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믿었던 편협한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성서 본문인 요나서 3장 10절을 통해 결코 그렇지 않음 을 보여 주십니다.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민족, 그리고 이스라엘에 고난을 준 민족 앗수르, 그 민족 또한 하나님 앞에 진실로 회개할때, 악에서 마음을 돌이킬때, 하나님은, 재앙을 거두시는 분이심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만을 향한 편협한 자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는 이방인, 심지어는 그 이방인들의 동물이나 가축에게까지 이르는 자비입니다. 회개하고, 야웨께 돌 아오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 국적이나 소속민족을 묻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바로 요나서의 중심 내용이며, 편협한 민족주의에 대한 반항 문학으로서 예언과 지혜 가 함께 결합된 요나서의 특징입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인 마가복음 1장 14-20에도 마찬가지의 내용이 나옵니다.
마가복음 1장 14-15절을 보시겠습니다. 1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 하여 1 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갈릴리에 오셔서" 갈릴래아, 요세푸스는 갈리래아지방 전체가 비옥한 푸른 정 원 같다고 격찬을 했습니다. 또한 사무엘서 20장 19절에서는 갈릴래아 지방을 "이스라엘의 어머니"라고 일컫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 또한 그 지역이 비옥한 곡창대임을 의미합니다. 역사적으로는 이 지역은 주전 733년 앗수루에 점령당함 으로 본토 이스라엘과 분리되고 그후 다른 민족의 통치와 문물에 적응하거나 아 니면 싸워야 하는 한의 역사를 거듭하였습니다. 또한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의 이스라엘 중간사에서도 그 지역을 통치하는 하스몬왕가에 의해 이방인들이 유입 되어 유대인과 이방인의 혼열화가 시작되었고 이 결과 같은 민족 유대인들에게는 '잡종'으로 천시되어 무시당하는 지역으로 절락하게 됩니다. 훗날 예수님의 시대때에 와서는 헤로데가 죽은후 그의 아들들에 의해 다시금 땅이 분배되어 안 티파스라는 왕에 의해 이스라엘서 찢겨져 통치받는, 팔린 창기(娼妓)와도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땅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지역의 주민들은 갈릴래아와 그 주민을 그토록 무시했으며,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갈릴리의 사람들이 율법 을 잘 지키지 않는다고 감히 단정한 것입니다. 또한 이곳이 사람들은 바리새파 에 의해 암하이레츠(땅의 사람)이라고 불려 멸시 되었습니다. 그 바라새파인들은 그들이 가난하기에 율법이 정한 정결법이나 십일조를 내지 못함을 이해하지 못 했던 것입니다. 겉보기에 부유한 땅 갈릴래아 그럼에도 갈릴래아 지방에 대다수를 차지한 멸시 받는 이들 암하레츠, 바로 그곳에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공생에의 첫 발 을 내 디디셨습니다. 마가복음의 저자는 이 사실을 언제나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분명 처음부터 예수님이 갈릴래아 사람이라고 못박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갈릴래아로 가 다",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다가"(막 1:16), "갈릴래아에 오시어"(1,9)라는 말을 반복하여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래아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끊임 없이 상기시키려는 노력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사역지는, 요나서에서와 같이 이미 선택 받은 이들로부터 버려 진 곳, 눌리고, 포로된 자들 바로 인간의 관심에, 세상의 관심에 버려진 자들, 다 버린 곳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선포하십니다. 가라사대 때가 찾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공동번역으로 다시금 읽어 보겠습니다. 때가 다 되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선포했던, 40일 후에 이 성이 문어지고 말것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제 마지막 때다, 하나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라, 가장 멸시받던곳, 구원이라고 있을 수 없고, 그 누구도 관심 가져 주지 않던 곳 에서,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선포하십니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바로 예수님의 관심이 이 말 한마디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신학자들은 이 구절을 예수님의 설교의 함축이라고 합니다. 이 2가지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선택받은자 이스라엘, 유대인, 바리새인들 그들은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선 택받았다 하며, 자만에 빠진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지요 진정 우리가 돌보아야 할 사람들, 이웃들을 우리의 기준에서 멸시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우리의 관심이 결코 하나님이 관심은 아닙니다. 그런 엄청난 오류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관심은 분명 성서가 이야기 하듯, 버려진곳, 억눌린곳, 멸시받는 땅 갈릴래아, 니느웨, 그리고 그곳에 사는 앗수르 민족과, 암하레츠 들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멸시하고, 무시하는 사람들 그들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관심 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예배 드릴때 우리만의 편협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와 우리 의 하나님,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교회에 복을 달라고 기도할때, 우리 하나님의 관심은, 또다른 갈릴래아, 그리고 또 다른 니느웨를 향하고 있을 줄 모릅니다. 그렇기에 고린도전서 7장 29절에서 31절의 사도바울의 경고는 우리를 향한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7 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7 30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7 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 은 지나감이니라 이 말씀은 종말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도바울이 미혼남녀들에게 준 권면의 말로 25절부터 시작되어 집니다. 25절에서 사도바울은 주님께서 미혼남 녀에 대해 지시하신 것이 없다고 전제하나 자신이 주님의 자비를 입은 사람임으 로 자신의 말을 믿어도 좋다고 말을 하며 이 본문의 말씀을 전개합니다. 이제 결혼을 앞둔 미혼남녀, 새로운 공동체를 이룰 그들, 그들에게 사도바울이 권한 말은, "형적은 지나감이라"라는 말입니다. 표준새번역에서는 "이 세상의 모 습은 사라져 버립이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우리 사람 들이 관심하는 것은 전도서 기자가 말씀하듯, 헛되고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인간의 관심은 그럴 수밖에 없음을 성서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종말을 앞두고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 살아갈 미혼남녀들에게, 사 라져 갈 이 세상에 목적을 두지 말 것을 권면합니다. 그리고 분명 세상과 거래 하는 사람에 대해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 경고는 결코 그 시대를 살아가는 미혼 남녀들에게 국한 된 말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시금 찾아오는 질문은 그런 무엇에 관심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답은 우리가 오늘 요나서와 마가 복음서를 통해 살펴본 하나님의 관심입니다. 말씀을 줄일까 합니다. 오늘 설교를 준비하며 이제 삶을 시작하는 한 젊은 청년이 얼마나 감사하고 회개 하였는지 모릅니다. 목회를 생각하며, 매일 기도한다는 사람이 늘 관심하는 것은 절간의 제밥이었습니다. 얼마나 큰 목회를 할까!, 얼마나 휼륭한 목사가 될 까! 그래서 사람들로 존경받는 대단한 목사가 될까! 그것이 나의 관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나의 모습속에 하나님을 편협하고, 한정된 분을 제한 시켜 버리는 사람 본성의 마음이 들어 가 있음을 깨닫고 회개 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관심은 사랑입니다. 힘, 무력, 명예가 아닌, 마음과 인격으로 인간에게 오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그 하나님의 관심이 우리가 표어로 삶고 있는, 성도님들이 보시기에 왼쪽 에 붙어 있는 교회 표어인 "세상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들게 호소 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관심에 귀 기울입시다. 나의 관심, 가정의 관심 또한 중요하나, 그 것이 하나님의 관심에 반할때, 요나처럼 도망하시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관심이 결 코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아닌, 세상이 버리고, 우리가 버린 암하레츠와, 니느웨 임을 상기 하십시오 이 기억은 바로 버려진 죄된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7번이 아닌 70 번 까지 용서하셨고, 마지막에 자신을 십자가에서 희생 하심으로 우리를 살리셨 음을 기억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관심의 땅 갈릴래아, 하나님의 관심, 니느웨, 그곳에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기도 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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