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암4:6-13)
본문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한 보응으로 징계하신다. 4:6-11에 기록된 일련의 징계는 이스라엘 의 완악함과 범죄함 뿐만 아니라 끊임없고 다함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 내 준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랑이다. 그리고 징계 를 내리는 것은 더 큰 징계를 막기 위함이다. 그러나 모든 징계의 끝에는 하나님 께서 행하신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 니라"(6,8,9,10,11)라는 말이 반복되어 있음을 주목하라. 이와같은 말씀이 사 9:13, 렘 5:3, 호 7:10에도 기록되어 있다. 아모스서에서 이 말씀이 반복되는 것은 이스라엘이 계속 완고하고 완악하 게 반항함을 나타낸다. "보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보다 더 눈먼 사람들은 없다." 이 격언적인 진리는 대체로 죄인들의 상태를 잘 서술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들이 지금 살펴보려는 본문의 문맥에서 생각하면 이스라엘 백성 들에게 꼭 맞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도덕, 정치, 사회, 종교의 각 분야에 서 물마시듯 하는 죄악들을 지적받았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이 내릴 것이 라는 말도 여러번 분명하게 들었다. 이스라엘은 저울에 달리어 부족하다는 선언 을 받았다. 한편 아모스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공정한 경고를 충분히 해주지 않았 다는 이의가 제기되지 않도록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내적 의식을 상기시켜 준다. 이 의식은 곧 우리 인간들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그분이 지으 신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자각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고 볼 수 있다. "너희 인간들이 설사 내 말과 선지자들에게 귀를 막고 마음을 닫 아도 창조와 섭리를 통한 분명한 가르침에서 결코 도피할 수 없다. 이것들은 단 순하고도 직관적이며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너희들이 하나님께 잘못하였다는 사실을 항상 상기시켜 주며 하늘로서 진노가 너희들에게 내린다고 알려 준다." 바울도 나중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 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 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 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 라"(롬 1:18-20). 이것이 곧 하나님의 메시지가 당사자의 영적 무지에 상관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접촉점이다. 따라서 아무도 핑계할 수 없다. 인간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복음의 도전을 받으면 양심에 불편 을 느낀다.
그런데 아모스는 이방인들이 아닌 탈선된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에게 말씀 을 증거하고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메시지에 아 랑곳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더 한층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를 정당화시키며 무 서운 먹구름의 예고를 촉발시킨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 라"(12절). 이 엄숙한 경고는 온 인류를 전율케 하고 긴장케 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영원한 두 번째 사망으로 떨어지게 하는 하나님의 진노 와 심판 앞에서 꼼짝도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전에 설 수 있는 준비가 전 혀 되어 있지 않았다. 본문의 각 구절들이 이 점을 생생하게 드러내 준다.
I. 하나님의 경고가 임했다(다섯 가지 심판).
첫째, 치아의 청결함과 식량의 결핍으로 생생하게 묘사된 기근이었다. 그들 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게 하고 그들의 영성을 바로 잡아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물질적 필수품들을 빼앗아 가신 것이다. 구약의 역사서를 보면 이에 대한 역 사적 증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을 여러번 행하셨기 때 문이다. 그 한 예가 왕하 8:1에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기근을 당하고도 회개하 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둘째, 가뭄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추수하기 전 3개월 동안 비를 내리지 않으 셨다. 이것은 재난이었다. 봄의 늦은비는 옥수수와 곡물의 성장에 결정적으로 영 향을 주어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게 한다. 이 가뭄은 이스라엘 전 지역에 보 편적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성읍에는 비가 오고 어느 성읍에는 오 지 않았다. 이것은 이 가뭄이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와 선택 에 의한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가뭄을 당한 성읍의 거민들은 물이 귀했기 때문에 먼 곳까지 가서 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물을 가져와야 했다. 세째, 풍재와 깜부기 재앙이었다. 이것은 신 28:22에 예고된 바 하나님의 율법을 불순종하는데 대한 심판이었다. 풍재는 건조한 사막으로부터 불어오는 마르게 하는 동풍이다(창 41:6). 또한 극심한 가뭄 때문에 생기는 깜부기 로 인해 이삭은 여물지 못하고 누렇게 되었다. 일련의 재앙의 절정으로써 메뚜 기 떼가 포도원, 무화과, 감람나무들을 먹어버렸다(신 28:39-42). 물질적인 기준 에서 볼 때 도저히 살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않는 심령들은 심 판 날을 향하여 진노를 쌓고 있었다. 하나님께 반항하는 심령들에게 임할 최 후 심판의 결과에 관해 계 16:21을 보라. 아모스는 이런 모든 재앙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았 음을 거듭 슬프게 이야기하고 있다. 옛날 바로처럼 그들은 마음을 더욱 굳게 하 여 하나님의 간청을 거부했다. 네째, 애굽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재앙이 그들에게 임했다(신 28:27, 60). 그리고 그 나라의 훌륭한 청년들은 오래 지속되고 반복되는 전쟁으로 죽어 갔다. 그들이 뽐내던 말들이 약탈당했다. 전쟁터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수가 엄청 나 미처 매장하지 못한 시체들의 악취가 공중에 가득했다. 이번만은 확실히 하나님께 돌아와야만 했으나 성서에는 그들이 계속 완악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불순 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섯째,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사악한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리신 것과 비 견할 수있는 파멸과 황폐를 그들이 겪었다고 회상한다. 이것이 암 1:1의 지진 을 말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자료로는 분명 히 결정하기에 충분치 못하다. 아마 이것은 앞에 언급된 모든 재앙들의 요약 일 것이다(사 1:9). 하나님의 손에 의한 형벌은 매우 견디기 어려운 것이어서 이 스라엘 백성들은 완전한 파멸을 간신히 모면하였다(슥 3:2, 고전 2:15). 아모스는 백성들이 마지막 재앙으로도 하나님께로 돌아오려 하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성경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날마다 발생되는 자연 및 사회 현상에서 하나님 의 분명한 경고의 메시지를 읽고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성경은 인간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와 주권적인 하나님으로 믿고 순종하 면 인간 사회가 일신된다고 증언하고 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은 과거 의 영적 부흥의 역사들이 증명하듯이 참된 영적 축복과 물질적 축복들을 쏟아 붓 게 한다. 아모스가 소리높여 외치는 골자는 하나님의 참다운 축복을 받기 위해 서, 아니 하나님의 정당한 진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죄인들이 믿음으로 회개하 고 진심으로 주님을 믿고 순종하는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 도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는 것이 주님의 결론이자 본 메시 지의 반복된 후렴이다.
II. 하나님을 만나라(12절). 하나님은 다섯 차례에 걸쳐 이스라엘이 "이미" 당했던 심판들을 점강적으 로 선포하셨다. 그러나 다섯번 다 긍정적인 반응을 이스라엘로부터 받지 못하였다. 한편 마지막 경고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최근에 겪었던 재앙에서 은혜 를 입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너희가 불 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조각 같 이 되었으나"(사 7:4, 슥 3:2). 이스라엘은 마지막 순간에 구사일생으로 재난 에서 구출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지 못하고 회개치도 않았다. 하나님이 이들에게 어떻게 하셔야 되겠는가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 하였다.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을 행하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그러므로 내가 먼저 그 행위를 헤아리고 그 품에 보응하리 라"(사 65:2,7).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12절). 본절의 "그러므로"라는 말은 강조형이다. 악행의 잔이 넘쳐서 심판의 때가 왔다는 것이다. 앞절들에서 펴보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의 근원은 영적인데 있었으 며 그들의 종교적 퇴폐 속에서 이 점이 가장 뚜렷하게 노출되었다(암 4:4-5). 그 들은 무슨 일을 해도 자기들이 하나님 앞에서 옳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처럼 자기들의 "유전(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막 7:9) 자들이었다. 이 전통이라는 것은 사실상 인간의 창안물들 로써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 은혜나 성도의 삶에서 드러나야 할 하나님의 영광 을 가로막기 위한 장치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이었다. 그들은 스 스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공언하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만족하 지 않았다. 실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가장 싫어하였다. 이제 우리 자신들을 놓고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들도 바리새인들처 럼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의 전통으로 대치하거나 추가시키지는 않는가 우리들 은 성경의 가르침을 삭감시키지는 않는가 우리들은 처신이나 교제의 영역에 서 성경 자체의 교훈보다 하잘 것 없는 인간의 전통적 가치관을 더 중시 하지는 않는가 우리들은 과연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되고 신실하게 따르고 있는가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을 만나기를 예비 하라"(12절). "이것"이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일 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 이외에는 심판의 내용은 확실하지 않다. 한 가지 분명 한 사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모든 인간들이 반 드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롬 14:10, 고후 5:10).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만나 기 위해 준비할 시간이 있었지만 이를 다 허비해 버렸다. 우리에게도 준비의 시간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시간을 어떻게 보 낼 것인가 심판대의 책들이 펼쳐져서 우리에 관한 모든 기록이 드러날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간 자로 판멸될 수 있겠는가 그때 우리는 그리스도 의 속죄와 긍휼과 그의 공로에 우리의 구원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그리스도인으 로 나타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지금 어떠한 상태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가 우리 자신이 누추한 자기 의를 내세우면서 우리의 영혼과 영원한 운명을 경 박한 자세로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는가 시간은 짧다. 지금이 곧 구원의 날이다.
III. 하나님은 장엄하시다(13절). 영국 해군은 한 때 문제의 조속한 타결을 위해 분쟁 가능성이 높은 지역 만 순항한 적이 있었다. 1982년의 포크랜드 전쟁에서 실증되었듯이 잠재적인 침 략자들을 막거나 격퇴시키려면 한척의 배로는 부족하다. 분쟁 가능 지역에 포함 을 대기시키는 정책의 의도는 "원주민"들로 하여금 무력 시위에 압도되 어 군사적 개입을 미연에 방지시키는데 있었다. 그래서 이 정책이 효과를 내 기 위해서는 상당한 무력 과시가 필요하였다. 13절의 살아계신 하나님도 이와 유사한 정책을 쓰고 계신다. 하나님은 자신 의 속성과 능력에 관해서 총괄적인 시위를 하지 않고 대표적인 특징들만 골라 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이를테면 하나님의 무력 과시는 다음과 같이 옮길 수 있다. "너희들이 나와 다투려고 하는가
그렇다면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해 보아 야 한다. 나는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시다. 나를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도전하셨다. 산들을 보아라. 그리고 누가 그것들을 조성했는지 자문해 보아라. 너희들은 일기 예보를 할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누가 바람을 일으키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너희들은 사고 를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누가 너희의 생각들을 알고 있는가 너희는 밤을 인공 적인 빛으로 밝힐 수 있다. 그렇지만 너희들의 힘으로 낮을 어둡게 할 수 있겠는가 땅의 높은 곳들을 밟는 자가 누구이겠는가 기후를 통제하는 자가 누구 이겠는가 누가 비를 내리게 하는가 누가 영원한 계획과 목적에 따라 모든 역 사를 이루어 나가는가 그의 이름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시느리라.
그런데 우리들이 지금 살펴보려는 본문의 문맥에서 생각하면 이스라엘 백성 들에게 꼭 맞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도덕, 정치, 사회, 종교의 각 분야에 서 물마시듯 하는 죄악들을 지적받았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이 내릴 것이 라는 말도 여러번 분명하게 들었다. 이스라엘은 저울에 달리어 부족하다는 선언 을 받았다. 한편 아모스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공정한 경고를 충분히 해주지 않았 다는 이의가 제기되지 않도록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내적 의식을 상기시켜 준다. 이 의식은 곧 우리 인간들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그분이 지으 신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자각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고 볼 수 있다. "너희 인간들이 설사 내 말과 선지자들에게 귀를 막고 마음을 닫 아도 창조와 섭리를 통한 분명한 가르침에서 결코 도피할 수 없다. 이것들은 단 순하고도 직관적이며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너희들이 하나님께 잘못하였다는 사실을 항상 상기시켜 주며 하늘로서 진노가 너희들에게 내린다고 알려 준다." 바울도 나중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 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 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 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 라"(롬 1:18-20). 이것이 곧 하나님의 메시지가 당사자의 영적 무지에 상관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접촉점이다. 따라서 아무도 핑계할 수 없다. 인간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복음의 도전을 받으면 양심에 불편 을 느낀다.
그런데 아모스는 이방인들이 아닌 탈선된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에게 말씀 을 증거하고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메시지에 아 랑곳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더 한층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를 정당화시키며 무 서운 먹구름의 예고를 촉발시킨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 라"(12절). 이 엄숙한 경고는 온 인류를 전율케 하고 긴장케 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영원한 두 번째 사망으로 떨어지게 하는 하나님의 진노 와 심판 앞에서 꼼짝도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전에 설 수 있는 준비가 전 혀 되어 있지 않았다. 본문의 각 구절들이 이 점을 생생하게 드러내 준다.
I. 하나님의 경고가 임했다(다섯 가지 심판).
첫째, 치아의 청결함과 식량의 결핍으로 생생하게 묘사된 기근이었다. 그들 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게 하고 그들의 영성을 바로 잡아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물질적 필수품들을 빼앗아 가신 것이다. 구약의 역사서를 보면 이에 대한 역 사적 증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을 여러번 행하셨기 때 문이다. 그 한 예가 왕하 8:1에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기근을 당하고도 회개하 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둘째, 가뭄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추수하기 전 3개월 동안 비를 내리지 않으 셨다. 이것은 재난이었다. 봄의 늦은비는 옥수수와 곡물의 성장에 결정적으로 영 향을 주어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게 한다. 이 가뭄은 이스라엘 전 지역에 보 편적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성읍에는 비가 오고 어느 성읍에는 오 지 않았다. 이것은 이 가뭄이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와 선택 에 의한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가뭄을 당한 성읍의 거민들은 물이 귀했기 때문에 먼 곳까지 가서 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물을 가져와야 했다. 세째, 풍재와 깜부기 재앙이었다. 이것은 신 28:22에 예고된 바 하나님의 율법을 불순종하는데 대한 심판이었다. 풍재는 건조한 사막으로부터 불어오는 마르게 하는 동풍이다(창 41:6). 또한 극심한 가뭄 때문에 생기는 깜부기 로 인해 이삭은 여물지 못하고 누렇게 되었다. 일련의 재앙의 절정으로써 메뚜 기 떼가 포도원, 무화과, 감람나무들을 먹어버렸다(신 28:39-42). 물질적인 기준 에서 볼 때 도저히 살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않는 심령들은 심 판 날을 향하여 진노를 쌓고 있었다. 하나님께 반항하는 심령들에게 임할 최 후 심판의 결과에 관해 계 16:21을 보라. 아모스는 이런 모든 재앙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았 음을 거듭 슬프게 이야기하고 있다. 옛날 바로처럼 그들은 마음을 더욱 굳게 하 여 하나님의 간청을 거부했다. 네째, 애굽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재앙이 그들에게 임했다(신 28:27, 60). 그리고 그 나라의 훌륭한 청년들은 오래 지속되고 반복되는 전쟁으로 죽어 갔다. 그들이 뽐내던 말들이 약탈당했다. 전쟁터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수가 엄청 나 미처 매장하지 못한 시체들의 악취가 공중에 가득했다. 이번만은 확실히 하나님께 돌아와야만 했으나 성서에는 그들이 계속 완악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불순 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섯째,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사악한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리신 것과 비 견할 수있는 파멸과 황폐를 그들이 겪었다고 회상한다. 이것이 암 1:1의 지진 을 말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자료로는 분명 히 결정하기에 충분치 못하다. 아마 이것은 앞에 언급된 모든 재앙들의 요약 일 것이다(사 1:9). 하나님의 손에 의한 형벌은 매우 견디기 어려운 것이어서 이 스라엘 백성들은 완전한 파멸을 간신히 모면하였다(슥 3:2, 고전 2:15). 아모스는 백성들이 마지막 재앙으로도 하나님께로 돌아오려 하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성경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날마다 발생되는 자연 및 사회 현상에서 하나님 의 분명한 경고의 메시지를 읽고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성경은 인간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와 주권적인 하나님으로 믿고 순종하 면 인간 사회가 일신된다고 증언하고 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은 과거 의 영적 부흥의 역사들이 증명하듯이 참된 영적 축복과 물질적 축복들을 쏟아 붓 게 한다. 아모스가 소리높여 외치는 골자는 하나님의 참다운 축복을 받기 위해 서, 아니 하나님의 정당한 진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죄인들이 믿음으로 회개하 고 진심으로 주님을 믿고 순종하는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 도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는 것이 주님의 결론이자 본 메시 지의 반복된 후렴이다.
II. 하나님을 만나라(12절). 하나님은 다섯 차례에 걸쳐 이스라엘이 "이미" 당했던 심판들을 점강적으 로 선포하셨다. 그러나 다섯번 다 긍정적인 반응을 이스라엘로부터 받지 못하였다. 한편 마지막 경고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최근에 겪었던 재앙에서 은혜 를 입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너희가 불 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조각 같 이 되었으나"(사 7:4, 슥 3:2). 이스라엘은 마지막 순간에 구사일생으로 재난 에서 구출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지 못하고 회개치도 않았다. 하나님이 이들에게 어떻게 하셔야 되겠는가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 하였다.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을 행하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그러므로 내가 먼저 그 행위를 헤아리고 그 품에 보응하리 라"(사 65:2,7).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12절). 본절의 "그러므로"라는 말은 강조형이다. 악행의 잔이 넘쳐서 심판의 때가 왔다는 것이다. 앞절들에서 펴보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의 근원은 영적인데 있었으 며 그들의 종교적 퇴폐 속에서 이 점이 가장 뚜렷하게 노출되었다(암 4:4-5). 그 들은 무슨 일을 해도 자기들이 하나님 앞에서 옳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처럼 자기들의 "유전(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막 7:9) 자들이었다. 이 전통이라는 것은 사실상 인간의 창안물들 로써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 은혜나 성도의 삶에서 드러나야 할 하나님의 영광 을 가로막기 위한 장치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이었다. 그들은 스 스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공언하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만족하 지 않았다. 실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가장 싫어하였다. 이제 우리 자신들을 놓고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들도 바리새인들처 럼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의 전통으로 대치하거나 추가시키지는 않는가 우리들 은 성경의 가르침을 삭감시키지는 않는가 우리들은 처신이나 교제의 영역에 서 성경 자체의 교훈보다 하잘 것 없는 인간의 전통적 가치관을 더 중시 하지는 않는가 우리들은 과연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되고 신실하게 따르고 있는가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을 만나기를 예비 하라"(12절). "이것"이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일 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 이외에는 심판의 내용은 확실하지 않다. 한 가지 분명 한 사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모든 인간들이 반 드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롬 14:10, 고후 5:10).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만나 기 위해 준비할 시간이 있었지만 이를 다 허비해 버렸다. 우리에게도 준비의 시간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시간을 어떻게 보 낼 것인가 심판대의 책들이 펼쳐져서 우리에 관한 모든 기록이 드러날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간 자로 판멸될 수 있겠는가 그때 우리는 그리스도 의 속죄와 긍휼과 그의 공로에 우리의 구원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그리스도인으 로 나타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지금 어떠한 상태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가 우리 자신이 누추한 자기 의를 내세우면서 우리의 영혼과 영원한 운명을 경 박한 자세로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는가 시간은 짧다. 지금이 곧 구원의 날이다.
III. 하나님은 장엄하시다(13절). 영국 해군은 한 때 문제의 조속한 타결을 위해 분쟁 가능성이 높은 지역 만 순항한 적이 있었다. 1982년의 포크랜드 전쟁에서 실증되었듯이 잠재적인 침 략자들을 막거나 격퇴시키려면 한척의 배로는 부족하다. 분쟁 가능 지역에 포함 을 대기시키는 정책의 의도는 "원주민"들로 하여금 무력 시위에 압도되 어 군사적 개입을 미연에 방지시키는데 있었다. 그래서 이 정책이 효과를 내 기 위해서는 상당한 무력 과시가 필요하였다. 13절의 살아계신 하나님도 이와 유사한 정책을 쓰고 계신다. 하나님은 자신 의 속성과 능력에 관해서 총괄적인 시위를 하지 않고 대표적인 특징들만 골라 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이를테면 하나님의 무력 과시는 다음과 같이 옮길 수 있다. "너희들이 나와 다투려고 하는가
그렇다면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해 보아 야 한다. 나는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시다. 나를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도전하셨다. 산들을 보아라. 그리고 누가 그것들을 조성했는지 자문해 보아라. 너희들은 일기 예보를 할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누가 바람을 일으키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너희들은 사고 를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누가 너희의 생각들을 알고 있는가 너희는 밤을 인공 적인 빛으로 밝힐 수 있다. 그렇지만 너희들의 힘으로 낮을 어둡게 할 수 있겠는가 땅의 높은 곳들을 밟는 자가 누구이겠는가 기후를 통제하는 자가 누구 이겠는가 누가 비를 내리게 하는가 누가 영원한 계획과 목적에 따라 모든 역 사를 이루어 나가는가 그의 이름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시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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