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 거듭 말씀하셨으나 (호12:7-14)
본문
주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부르시고 계시는가를 노래한 찬송입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이렇게 우리를 간절히 부르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에도 이런 하나님의 음성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함께 10절을 읽겠습니다. 어 떻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십니까 자 이 구절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뭔가 말씀하시고 계 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하심이 한 번으로 끝났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10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듭 거듭 말씀하셨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 까 그렇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씀하셨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때로는 선지자 들을 통해서 말씀하시기도 하시 고 때로는 이상을 보여 주시면서 말씀하시기도 하시고 또 때로는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 시기도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렇게 하나님께서 동원하신 여러 방법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얼마나 열심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는가를 이 해하게 됩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선지자로 안되면 이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보내서 잘 안되면 신비한 어떤 것들을 보여 주시면서 저들이 믿을 수 있도록 하셨던 것이죠. 뿐만 아닙니다. 또 때로는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혹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생각에 저들의 수준에 맞게 비유를 통해서 쉽게 말씀하셨 다는 것이죠 왜 이렇게 여러 가지 방법들을 동원하셨을까요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든 지 저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러 방법들을 동원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것으로 자신의 노력을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다고 말하면서 어떤 단서를 붙여 놓고 있죠 예, 여러 선지자라는 단서를 붙여 놓고 있습니다. 즉, 한 두 명의 선지자를 보내시고는 포기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든지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여러 선지 자들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뿐 만 아닙니다. 이상을 보여 주신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많은 이상을 보여 주었다고 말 합니다. 이것 역시 한번 두번 이상을 보여 주다가 포기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땀 을 뻘뻘 흘리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점에 있어서 땀을 뻘뻘 흘리십 니까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여나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심정으로 저들 의 언어로 저들의 수준에 맞게 말씀하시고자 애를 쓰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저들이 어떻게 하든 지 돌아오기 위해서 한 두 번 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듭 거듭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어떻습니까 여러분들도 이 말씀을 통해서 이런 하나님의 열심히 보이십니까 사실은 이런 하나님의 열심히 우리들에도 넘치고 있습니다. 성경 구절을 하나 볼까 요 [히 1:1,2] 옛적에 선지자 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 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 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여러분 이 구절을 잘 보십시 오. 하나님께서 구약 시절에는 어떻게 말씀하셨다고요 그렇습니다.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 다는 것이죠
그런데 보십시오. 이제 이 모든 날 마지막 때에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아들로 말씀하셨 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죠 예, 바로 자신의 독생하신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를 통해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죽게 하심으로 자신의 의도를 알리시고 생각을 알리셨다는 것 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기까지 하셨습니다. 바로 불붙는 하나님의 사랑 이 있었기에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바로 이런 사랑으로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최후의 수단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다고요.
그렇다면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어떻게 반 응하고 계십니까 내가 너희들 을 사랑한다고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어떻 게 반응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십 시오. 여러분 베드로는 이 주님의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제 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고 반응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날마다 다가 오셔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여러분들을 그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때로는 자신 의 못자국을 보이시면서 자신의 창자국을 보이시면서 사랑하는 아무개야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말씀하시는데 여러분들 은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어떻게 반응해 오셨습니까 베드로와 같이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고 고백을 드릴 수 있으시겠습니까 자 이 시간 이렇게 한 번 해 보죠. 제가 잠시 주님이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무개야 네 가 나를 사랑하느냐 자 이 질 문에 한 번 대답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 것에 대해서 바울은 [롬 10:21]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 어떻게요 그렇습니다. 종일 손을 벌렸다는 것입니다. 사랑 하는 아무개야 이 손을 잡아라 이 손을 잡고 내게로 돌아 오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하나님 의 손을 뿌리치고 마음대로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길르앗과 길갈에서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 여기에 두개의 지명이 나옵니다. 하나는 길르앗이고 다른 하나는 길갈입니다.
그런데 길르앗에는 거짓 이 있다고 말하고 길갈에는 우 상 숭배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이 두 지명을 인 언급하고 있는 것일 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이 길르앗과 길갈이 어떤 곳이었는가를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길르앗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길르앗은 일반적으로 길르앗 라못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곳에 어떤 곳인 줄 아십니까 성경을 한 곳 보도록 하죠 [수 21:38] 갓 지파 중에서 준 것은 살인자의 도피성 길르앗 라못 과 그 들이요 또 마하나임과 그 들과 이 구절을 길르앗에 대해서 무엇이 말하죠 그렇습니다. 도피성이었다고 말하 고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도피성이 무엇을 하던 곳인가를 잘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지중에 죄를 지은 사람들이 피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으로 피하면 살 수 있죠.
그렇다면 죄인들에게 있어서 이 곳은 은혜의 장소입니다. 이 도피성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견줄 정도로 은혜가 넘치는 곳입니다. 우리들도 죄를 지었지만 십자가 아래로 피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길르앗은 부지중에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은혜의 장소였 던 것입니다. 이런 길르앗이 어 떻게 변했는가를 보십시오. 먼저 6:8절을 보시겠습니다. 그 렇습니다. 이제는 행악하는 자 들이 피를 흘린 자국들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곳에서 살인이 자행되었 다는 것입니다. 안전한 피신처 가 변해서 위험한 장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은혜의 장소가 죄를 짖는 장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은 이렇게 말합니다. 길르앗은 불의한 것이냐 저는 과연 거짓되도다 고요. 또 다음으로 등장하는 길갈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도록 하죠 여러분 길갈이라는 말 이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 줄 아십니까 예, 수치를 굴려 버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길갈에서 무엇인가 수치가 굴러갔다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수치가 굴러갔을 까요 [수 5:8,9] 온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필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 에 처하여 낫기를 기다릴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왜 길갈이라 했다고요 그렇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수치가 이제는 굴러갔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우리들을 구원하시고 우리들에게 약속의 땅 인 가나안 땅을 허락하셨으니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이죠 그래서 더 이 상 수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 로 여기 이 길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착을 했을 때 광야 생활의 상징인 만나 와 메 추라기가 끊어져 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길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것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지 파의 숫자대로 세워져 있는 곳 이기도 하죠
그런데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길갈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 고 있습니다. 그래서 곳곳에 이방신을 섬기는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자 보십시오. 이곳 에는 어떤 돌이 서 있는 곳이 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기 위한 돌 비가 서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 제는 우상을 섬기기 위한 제단 들이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이야기입니다. 왜요. 은혜의 돌들이 있는 곳에 우상을 섬기는 돌 즉, 제단들이 넘치고 있으니요.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었습니다. 저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떠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듭 거듭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저들은 그것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들 을 죄를 짖는 일에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에게도 많은 은혜의 증거들 이 있으실 것입니다. 어떤 분들 은 건강의 은혜가 어떤 분들에게는 물질의 은혜가 어떤 분들에게는 평안의 은혜가 있으 실 것입니다. 또 가장 큰 은혜 인 영적인 은혜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이렇게 이 모양 저 모양의 은혜 들이 넘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은혜들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면 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이런 넘 치는 은혜들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혹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것들을 오히려 죄 를 짖는 일에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거듭 거듭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주시면서 말씀하시는데 여러분들은 그 은혜 를 저버린 체 점점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들의 귀를 여십시오. 그리고 그 음성을 청종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인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사랑하셨는가를 다시 12,13절은 이렇게 말하 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 12,13절에서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입니 까 13절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분명합니다. 인도하시고 보호하셨다는 것이죠 그러나 12절은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분명치 않습니다.
그런데 12절에 우리들의 눈에 싹 들어오는 이름이 하나 있죠 그렇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도 야곱 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어떤 점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발꿈치를 잡고 태어 날 정도로 비열한 사람이 였지 만 저가 울며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저를 용서하시고 만나 주셨다는 것이 죠. 자 여기서는 울며 회개를 하는 야곱이 강조되었습니다. 야곱 자 오늘 본문도 이 야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먼저 어떤 이야기부터 하고 있 습니까 그렇습니다. 도망친 이 야기부터 하고 있죠 왜 도망을 쳤습니까 그렇습니다.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도망을 친 것이죠.
그런데 이 천하의 거짓말쟁이인 야곱이 사기를 당하죠 누구에게 당하죠 그렇습니다. 삼촌에게 사기를 당합니다. 삼촌 라반은 라헬을 주지 않고 레아를 먼저 주어서 야곱이 자신의 집에서 더 일하게 만들죠. 그래서 그는 많은 세월들을 보냅니다. 이렇 게 보면 야곱의 삼촌 라반도 만만치 않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천하의 사기꾼 인 야곱을 속일 정도이니까요.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홀홀 단신으로 삼촌의 집에 이렇게 들어가 살았지만 그가 삼촌의 집에서 나올 때는 어떠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엄청난 재산을 모아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한가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가능하죠 그렇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보호하시고 지켜 주신 것이죠. 만약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시지 않았다면 천하의 사기꾼 야곱도 삼촌 라반에게 속아서 고생만 하다가 끝날 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를 지켜 주셨기에 그의 인생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점박이 양을 많게 한 것도 야곱을 지 켜 주신 것이고요. 또 야곱이 도주를 했을 때 삼촌 라반이 추적을 하자 하나님께서 그 의 꿈에 나타나셔서 야곱을 간 섭하지 말라고 하시죠. 만약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지 않았다면 야곱의 인생은 여기서 끝장이 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바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야곱과 같은 인생도 지 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자 지난 시간 살펴보았던 야곱의 이야기는 야곱의 회계가 강조된 반면 오늘 야곱의 이야기에서는 무엇이 강조가 되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강조가 되죠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야곱과 같이 생활을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다는 것이죠 그렇 습니다. 저들을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지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호를 받을 만해서 보호해 주 신 것입니까 아니죠. 그럴 만 한 아무런 조건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은 혜죠. 이것은 마치 이런 말씀과 같은 말이죠.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 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렇게 보면 우리들도 마찬가지의 은혜를 입고 있 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 은 우리들도 야곱과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비열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남의 발꿈치를 잡 을까를 생각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런 우리들이 하나님 의 사랑을 입은 것입니다. 이런 우리들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고 있는 것이죠. 이런 사랑이 우리들에게 넘치고 있으 니 즐겁고 재미있는 것이죠. 신나는 것이죠.
출애굽 자 이런 사랑이 13절에는 이렇게 표현이 되고 있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죠 그렇습니다. 선지자를 세우셨습니다. 누구죠 그렇습니다. 모세입니다. 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 굽 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들이 출애굽을 하는 동안 어떤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그 렇습니다. 엄청난 일들이 있었 습니다. 홍해가 갈라지기도 하고 반석이 갈라져 물이 나오기도 하고 하늘에서 만나 와 메추라기가 떨어지기도 하고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저들을 지켜 주기도 했어요. 정말 꿈같은 이야기이지요. 그렇다 면 여러분 왜 이런 일들이 일어 났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저들을 인도하기 위해서 바 로 이런 기적들을 일으켜 주신 것이죠. 그런데 보십시오. 14절은 무엇이라 말하고 있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격노케 했다고 말합니다. 이 격노케 하심이 어떠했다고요 그렇습니다. 극심했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 리고 하나님을 화나게 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취한 행동이었습니다. 죄를 깨닫지 못함
그런데 문제는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어떤 죄를 짖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무감각 해 졌다는 것이죠.
8절 말씀을 보도록 하죠. 무엇이라고 이 야기하죠 예,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럴 수 있습니까 이렇게도 자신을 모를 수 있습니까 무감각해짐
그렇다면 이들이 이런 지경에 빠지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요 7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라 말합니까 예, 이스라엘 백성들이 속이는 저 울을 사용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8절에서 무엇이라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들에게는 불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문제가 무엇일까요 이렇게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도덕적인 가치관 이 상실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그렇습니다. 죄가 보편화되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면 모든 사람 들이 건널목으로 건너지 않고 무단 횡단을 한다면 무단 횡단이라는 말이 없어지죠. 무단 횡단이 아니라 그냥 길을 건 너는 것이에요. 또 예를 들어 봅시다. 물건을 살 때 본전이에요. 밑지고 파는 것이에요. 하는 말을 듣습니다. 사실은 거짓말이죠.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서 아하 내가 죄를 지었구나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일반화되 었기 때문이죠. 이렇게 죄가 보 편화되면 그것을 죄로 여기지 않게 된다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렇습니다. 거짓을 말하 고 사기를 치고서도 난 불의가 없다 라고 말할 정도로 죄가 일반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일이죠. 바로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영적인 눈이 어두 워 진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죄인지 조차 분간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감각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고 나니 하나님의 음성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 시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찔러 도 아픈 것이 느껴지지 않고 사랑의 품으로 안으시는데도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미 건조하게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상태 였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혹 이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의 모습은 아닙니까 영적인 무감각자가 되어서 어떤 느낌도 느낄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의 영혼을 후려치는 그런 말씀 앞에서도 가슴아파 할 줄 모르고 불붙는 하나님의 사랑 앞에 서 있으면서도 그 사랑이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는 그런 상태는 아닌 지요. 기쁨도 없고 눈물도 없는 그런 여러분들은 아닙니까 사실 이것만큼 무서운 영적 질병 이 없습니다. 치료 약이 없으니 까요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는 질병만큼 무서운 질병도 없습니다. 왜 에이즈가 무서 운 질병입니까 그렇습니다. 이 것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 여러분들이 이런 영적 인 에이즈에 걸려 있지 않습니 까 그래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그런 여러분은 아닙니까 결과에 눈멂 이들이 이렇게 눈멀게 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8절을 보겠습니다. 무엇 이라 말합니까 나는 부자라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 내 일은 잘된다는 것입니다. 만사 형통을 하고 있다는 것 이죠. 우리 식으로 말하면 돈벌이도 잘되고 아이들도 잘 크고 하는 일 마다 형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바로 이것이 이들을 눈멀게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어떤 죄를 짖고 있는지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것은 결과를 보고 원인을 평가하는 일입니다. 사실 이것만큼 위험한 일이 없습니다. 이 렇게 생각을 하고 성경을 살피 면 큰일이 납니다. 한번 생각해 볼까요.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밖혀 죽었습니다. 결과가 아주 나빠요. 바울은 어떻습니까 그 역시 결과를 놓고 보면 비참한 인생입니다. 스데반은 또 어떻습니까 그 역시 비참하게 인생을 마쳤 습니다. 결과가 좋지 않아요. 이들의 인생이 이렇게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서 이들이 바르지 못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결과로 우리들의 문제를 따지지 않습니다. 과정 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가고 있느냐 이것을 더 중요하게 따집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실수를 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에요. 과정을 보고 복받은 인생이라 평가하지 않아요. 결과를 보고 평가를 하려고 하지요. 그 렇지 않습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빠진 함정이 바로 이것이에요. 잘된다는 것이에요. 나는 부자라는 것이에요. 그러니 나에게는 허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죠. 여러분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결과에 너무 연연 하지 않도록 하세요. 중요한 것은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느냐는 것이에요. 좀 빈궁하게 살 수도 있고 때때로 어려운 일들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며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 사람 참으로 복된 인 생이 되는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세요. 이렇게 눈멀었으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말씀이 들릴리 있어요. 없지요.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셔도 들리지 않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도 혹 이렇게 눈먼 사람 들이 아닙니까 이렇게 눈먼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절을 보 십시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다고요 예, 장막에 거하게 하기를 명절 일에 하던 것 같이 하겠 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명절이란 초막절을 말합니다. 여러분 초막절은 무엇을 기념하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저들이 광야 생활을 하면서 초막에 살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렇게 초막절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주일 동안 초막을 짖고 거기서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다시 하나님께서 이렇게 초막에 거하 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광 야 생활을 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 졌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감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광야 로 내 몰리고 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떠하십니까 여러분들도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눈멀고 귀 먼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거듭 거듭 말씀하셔도 깨닫지 못하고 자꾸 자꾸 멀어져 가는 여러분들이 아 닙니까 1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문 앞에 나와서 사면을 보며 우리를 기다리네 2 간절히 오라고 부르실 때에 우리는 지체하랴 주님의 은혜를 왜 아니 받고 못 들은 체하려나 3 세월이 살 같이 빠르게 지나 쾌락이 끝이 나고 사망의 그늘이 너와 내 앞에 둘리 며 가리우네 4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두신 영원한 집이 있어 죄 많은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영접 해 주시겠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 다시 이 찬송가가 생각이 납니다.
함께 10절을 읽겠습니다. 어 떻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십니까 자 이 구절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뭔가 말씀하시고 계 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하심이 한 번으로 끝났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10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듭 거듭 말씀하셨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 까 그렇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씀하셨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때로는 선지자 들을 통해서 말씀하시기도 하시 고 때로는 이상을 보여 주시면서 말씀하시기도 하시고 또 때로는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 시기도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렇게 하나님께서 동원하신 여러 방법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얼마나 열심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는가를 이 해하게 됩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선지자로 안되면 이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보내서 잘 안되면 신비한 어떤 것들을 보여 주시면서 저들이 믿을 수 있도록 하셨던 것이죠. 뿐만 아닙니다. 또 때로는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혹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생각에 저들의 수준에 맞게 비유를 통해서 쉽게 말씀하셨 다는 것이죠 왜 이렇게 여러 가지 방법들을 동원하셨을까요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든 지 저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러 방법들을 동원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것으로 자신의 노력을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다고 말하면서 어떤 단서를 붙여 놓고 있죠 예, 여러 선지자라는 단서를 붙여 놓고 있습니다. 즉, 한 두 명의 선지자를 보내시고는 포기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든지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여러 선지 자들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뿐 만 아닙니다. 이상을 보여 주신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많은 이상을 보여 주었다고 말 합니다. 이것 역시 한번 두번 이상을 보여 주다가 포기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땀 을 뻘뻘 흘리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점에 있어서 땀을 뻘뻘 흘리십 니까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여나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심정으로 저들 의 언어로 저들의 수준에 맞게 말씀하시고자 애를 쓰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저들이 어떻게 하든 지 돌아오기 위해서 한 두 번 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듭 거듭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어떻습니까 여러분들도 이 말씀을 통해서 이런 하나님의 열심히 보이십니까 사실은 이런 하나님의 열심히 우리들에도 넘치고 있습니다. 성경 구절을 하나 볼까 요 [히 1:1,2] 옛적에 선지자 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 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 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여러분 이 구절을 잘 보십시 오. 하나님께서 구약 시절에는 어떻게 말씀하셨다고요 그렇습니다.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 다는 것이죠
그런데 보십시오. 이제 이 모든 날 마지막 때에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아들로 말씀하셨 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죠 예, 바로 자신의 독생하신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를 통해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죽게 하심으로 자신의 의도를 알리시고 생각을 알리셨다는 것 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기까지 하셨습니다. 바로 불붙는 하나님의 사랑 이 있었기에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바로 이런 사랑으로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최후의 수단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다고요.
그렇다면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어떻게 반 응하고 계십니까 내가 너희들 을 사랑한다고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여러분들은 어떻 게 반응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십 시오. 여러분 베드로는 이 주님의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제 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고 반응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날마다 다가 오셔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여러분들을 그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때로는 자신 의 못자국을 보이시면서 자신의 창자국을 보이시면서 사랑하는 아무개야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말씀하시는데 여러분들 은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어떻게 반응해 오셨습니까 베드로와 같이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고 고백을 드릴 수 있으시겠습니까 자 이 시간 이렇게 한 번 해 보죠. 제가 잠시 주님이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아무개야 네 가 나를 사랑하느냐 자 이 질 문에 한 번 대답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 것에 대해서 바울은 [롬 10:21]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 어떻게요 그렇습니다. 종일 손을 벌렸다는 것입니다. 사랑 하는 아무개야 이 손을 잡아라 이 손을 잡고 내게로 돌아 오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하나님 의 손을 뿌리치고 마음대로 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길르앗과 길갈에서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 여기에 두개의 지명이 나옵니다. 하나는 길르앗이고 다른 하나는 길갈입니다.
그런데 길르앗에는 거짓 이 있다고 말하고 길갈에는 우 상 숭배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이 두 지명을 인 언급하고 있는 것일 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이 길르앗과 길갈이 어떤 곳이었는가를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길르앗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길르앗은 일반적으로 길르앗 라못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곳에 어떤 곳인 줄 아십니까 성경을 한 곳 보도록 하죠 [수 21:38] 갓 지파 중에서 준 것은 살인자의 도피성 길르앗 라못 과 그 들이요 또 마하나임과 그 들과 이 구절을 길르앗에 대해서 무엇이 말하죠 그렇습니다. 도피성이었다고 말하 고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도피성이 무엇을 하던 곳인가를 잘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지중에 죄를 지은 사람들이 피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으로 피하면 살 수 있죠.
그렇다면 죄인들에게 있어서 이 곳은 은혜의 장소입니다. 이 도피성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견줄 정도로 은혜가 넘치는 곳입니다. 우리들도 죄를 지었지만 십자가 아래로 피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길르앗은 부지중에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은혜의 장소였 던 것입니다. 이런 길르앗이 어 떻게 변했는가를 보십시오. 먼저 6:8절을 보시겠습니다. 그 렇습니다. 이제는 행악하는 자 들이 피를 흘린 자국들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곳에서 살인이 자행되었 다는 것입니다. 안전한 피신처 가 변해서 위험한 장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은혜의 장소가 죄를 짖는 장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은 이렇게 말합니다. 길르앗은 불의한 것이냐 저는 과연 거짓되도다 고요. 또 다음으로 등장하는 길갈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도록 하죠 여러분 길갈이라는 말 이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 줄 아십니까 예, 수치를 굴려 버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길갈에서 무엇인가 수치가 굴러갔다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수치가 굴러갔을 까요 [수 5:8,9] 온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필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 에 처하여 낫기를 기다릴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왜 길갈이라 했다고요 그렇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수치가 이제는 굴러갔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우리들을 구원하시고 우리들에게 약속의 땅 인 가나안 땅을 허락하셨으니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이죠 그래서 더 이 상 수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 로 여기 이 길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착을 했을 때 광야 생활의 상징인 만나 와 메 추라기가 끊어져 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길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것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지 파의 숫자대로 세워져 있는 곳 이기도 하죠
그런데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길갈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 고 있습니다. 그래서 곳곳에 이방신을 섬기는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자 보십시오. 이곳 에는 어떤 돌이 서 있는 곳이 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기 위한 돌 비가 서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 제는 우상을 섬기기 위한 제단 들이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이야기입니다. 왜요. 은혜의 돌들이 있는 곳에 우상을 섬기는 돌 즉, 제단들이 넘치고 있으니요.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었습니다. 저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떠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듭 거듭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저들은 그것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들 을 죄를 짖는 일에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에게도 많은 은혜의 증거들 이 있으실 것입니다. 어떤 분들 은 건강의 은혜가 어떤 분들에게는 물질의 은혜가 어떤 분들에게는 평안의 은혜가 있으 실 것입니다. 또 가장 큰 은혜 인 영적인 은혜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이렇게 이 모양 저 모양의 은혜 들이 넘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은혜들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면 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이런 넘 치는 은혜들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혹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것들을 오히려 죄 를 짖는 일에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거듭 거듭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주시면서 말씀하시는데 여러분들은 그 은혜 를 저버린 체 점점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들의 귀를 여십시오. 그리고 그 음성을 청종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인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사랑하셨는가를 다시 12,13절은 이렇게 말하 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 12,13절에서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입니 까 13절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분명합니다. 인도하시고 보호하셨다는 것이죠 그러나 12절은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분명치 않습니다.
그런데 12절에 우리들의 눈에 싹 들어오는 이름이 하나 있죠 그렇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도 야곱 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어떤 점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발꿈치를 잡고 태어 날 정도로 비열한 사람이 였지 만 저가 울며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저를 용서하시고 만나 주셨다는 것이 죠. 자 여기서는 울며 회개를 하는 야곱이 강조되었습니다. 야곱 자 오늘 본문도 이 야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먼저 어떤 이야기부터 하고 있 습니까 그렇습니다. 도망친 이 야기부터 하고 있죠 왜 도망을 쳤습니까 그렇습니다.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도망을 친 것이죠.
그런데 이 천하의 거짓말쟁이인 야곱이 사기를 당하죠 누구에게 당하죠 그렇습니다. 삼촌에게 사기를 당합니다. 삼촌 라반은 라헬을 주지 않고 레아를 먼저 주어서 야곱이 자신의 집에서 더 일하게 만들죠. 그래서 그는 많은 세월들을 보냅니다. 이렇 게 보면 야곱의 삼촌 라반도 만만치 않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천하의 사기꾼 인 야곱을 속일 정도이니까요.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가 홀홀 단신으로 삼촌의 집에 이렇게 들어가 살았지만 그가 삼촌의 집에서 나올 때는 어떠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엄청난 재산을 모아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한가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가능하죠 그렇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보호하시고 지켜 주신 것이죠. 만약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시지 않았다면 천하의 사기꾼 야곱도 삼촌 라반에게 속아서 고생만 하다가 끝날 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를 지켜 주셨기에 그의 인생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점박이 양을 많게 한 것도 야곱을 지 켜 주신 것이고요. 또 야곱이 도주를 했을 때 삼촌 라반이 추적을 하자 하나님께서 그 의 꿈에 나타나셔서 야곱을 간 섭하지 말라고 하시죠. 만약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지 않았다면 야곱의 인생은 여기서 끝장이 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바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야곱과 같은 인생도 지 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자 지난 시간 살펴보았던 야곱의 이야기는 야곱의 회계가 강조된 반면 오늘 야곱의 이야기에서는 무엇이 강조가 되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강조가 되죠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야곱과 같이 생활을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다는 것이죠 그렇 습니다. 저들을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지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호를 받을 만해서 보호해 주 신 것입니까 아니죠. 그럴 만 한 아무런 조건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은 혜죠. 이것은 마치 이런 말씀과 같은 말이죠.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 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렇게 보면 우리들도 마찬가지의 은혜를 입고 있 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 은 우리들도 야곱과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비열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남의 발꿈치를 잡 을까를 생각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런 우리들이 하나님 의 사랑을 입은 것입니다. 이런 우리들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고 있는 것이죠. 이런 사랑이 우리들에게 넘치고 있으 니 즐겁고 재미있는 것이죠. 신나는 것이죠.
출애굽 자 이런 사랑이 13절에는 이렇게 표현이 되고 있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죠 그렇습니다. 선지자를 세우셨습니다. 누구죠 그렇습니다. 모세입니다. 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 굽 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들이 출애굽을 하는 동안 어떤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그 렇습니다. 엄청난 일들이 있었 습니다. 홍해가 갈라지기도 하고 반석이 갈라져 물이 나오기도 하고 하늘에서 만나 와 메추라기가 떨어지기도 하고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저들을 지켜 주기도 했어요. 정말 꿈같은 이야기이지요. 그렇다 면 여러분 왜 이런 일들이 일어 났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저들을 인도하기 위해서 바 로 이런 기적들을 일으켜 주신 것이죠. 그런데 보십시오. 14절은 무엇이라 말하고 있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격노케 했다고 말합니다. 이 격노케 하심이 어떠했다고요 그렇습니다. 극심했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 리고 하나님을 화나게 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취한 행동이었습니다. 죄를 깨닫지 못함
그런데 문제는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어떤 죄를 짖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무감각 해 졌다는 것이죠.
8절 말씀을 보도록 하죠. 무엇이라고 이 야기하죠 예,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럴 수 있습니까 이렇게도 자신을 모를 수 있습니까 무감각해짐
그렇다면 이들이 이런 지경에 빠지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요 7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라 말합니까 예, 이스라엘 백성들이 속이는 저 울을 사용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8절에서 무엇이라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들에게는 불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문제가 무엇일까요 이렇게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도덕적인 가치관 이 상실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그렇습니다. 죄가 보편화되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면 모든 사람 들이 건널목으로 건너지 않고 무단 횡단을 한다면 무단 횡단이라는 말이 없어지죠. 무단 횡단이 아니라 그냥 길을 건 너는 것이에요. 또 예를 들어 봅시다. 물건을 살 때 본전이에요. 밑지고 파는 것이에요. 하는 말을 듣습니다. 사실은 거짓말이죠.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서 아하 내가 죄를 지었구나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일반화되 었기 때문이죠. 이렇게 죄가 보 편화되면 그것을 죄로 여기지 않게 된다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떠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렇습니다. 거짓을 말하 고 사기를 치고서도 난 불의가 없다 라고 말할 정도로 죄가 일반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일이죠. 바로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영적인 눈이 어두 워 진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죄인지 조차 분간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감각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고 나니 하나님의 음성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 시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찔러 도 아픈 것이 느껴지지 않고 사랑의 품으로 안으시는데도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미 건조하게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상태 였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혹 이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의 모습은 아닙니까 영적인 무감각자가 되어서 어떤 느낌도 느낄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의 영혼을 후려치는 그런 말씀 앞에서도 가슴아파 할 줄 모르고 불붙는 하나님의 사랑 앞에 서 있으면서도 그 사랑이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는 그런 상태는 아닌 지요. 기쁨도 없고 눈물도 없는 그런 여러분들은 아닙니까 사실 이것만큼 무서운 영적 질병 이 없습니다. 치료 약이 없으니 까요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는 질병만큼 무서운 질병도 없습니다. 왜 에이즈가 무서 운 질병입니까 그렇습니다. 이 것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 여러분들이 이런 영적 인 에이즈에 걸려 있지 않습니 까 그래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그런 여러분은 아닙니까 결과에 눈멂 이들이 이렇게 눈멀게 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8절을 보겠습니다. 무엇 이라 말합니까 나는 부자라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 내 일은 잘된다는 것입니다. 만사 형통을 하고 있다는 것 이죠. 우리 식으로 말하면 돈벌이도 잘되고 아이들도 잘 크고 하는 일 마다 형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바로 이것이 이들을 눈멀게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어떤 죄를 짖고 있는지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것은 결과를 보고 원인을 평가하는 일입니다. 사실 이것만큼 위험한 일이 없습니다. 이 렇게 생각을 하고 성경을 살피 면 큰일이 납니다. 한번 생각해 볼까요.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밖혀 죽었습니다. 결과가 아주 나빠요. 바울은 어떻습니까 그 역시 결과를 놓고 보면 비참한 인생입니다. 스데반은 또 어떻습니까 그 역시 비참하게 인생을 마쳤 습니다. 결과가 좋지 않아요. 이들의 인생이 이렇게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서 이들이 바르지 못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결과로 우리들의 문제를 따지지 않습니다. 과정 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가고 있느냐 이것을 더 중요하게 따집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실수를 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에요. 과정을 보고 복받은 인생이라 평가하지 않아요. 결과를 보고 평가를 하려고 하지요. 그 렇지 않습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빠진 함정이 바로 이것이에요. 잘된다는 것이에요. 나는 부자라는 것이에요. 그러니 나에게는 허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죠. 여러분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결과에 너무 연연 하지 않도록 하세요. 중요한 것은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느냐는 것이에요. 좀 빈궁하게 살 수도 있고 때때로 어려운 일들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며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 사람 참으로 복된 인 생이 되는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세요. 이렇게 눈멀었으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말씀이 들릴리 있어요. 없지요.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셔도 들리지 않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도 혹 이렇게 눈먼 사람 들이 아닙니까 이렇게 눈먼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절을 보 십시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다고요 예, 장막에 거하게 하기를 명절 일에 하던 것 같이 하겠 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명절이란 초막절을 말합니다. 여러분 초막절은 무엇을 기념하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저들이 광야 생활을 하면서 초막에 살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렇게 초막절이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주일 동안 초막을 짖고 거기서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다시 하나님께서 이렇게 초막에 거하 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광 야 생활을 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 졌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감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광야 로 내 몰리고 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떠하십니까 여러분들도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눈멀고 귀 먼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거듭 거듭 말씀하셔도 깨닫지 못하고 자꾸 자꾸 멀어져 가는 여러분들이 아 닙니까 1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문 앞에 나와서 사면을 보며 우리를 기다리네 2 간절히 오라고 부르실 때에 우리는 지체하랴 주님의 은혜를 왜 아니 받고 못 들은 체하려나 3 세월이 살 같이 빠르게 지나 쾌락이 끝이 나고 사망의 그늘이 너와 내 앞에 둘리 며 가리우네 4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두신 영원한 집이 있어 죄 많은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영접 해 주시겠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 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 예수 앞에 오라 다시 이 찬송가가 생각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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