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의 길목에서 (호13:1-14)
본문
제가 부산에 있을 때 사투리 때문에 사람을 오해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중 하 나가 조졌다는 말입니다. 제법 인격적인 소양이 잘 갖추어 졌다고 생각되어 졌던 한 여 집사님이 이야기도중 조졌다 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 집사님이 다시 보이더군요. 아하 사람은 겪어 봐야 안다더니 정말 그렇구나 어떻게 여 집사가 목사 앞에서 조졌 다는 말을 서슴없이 사용할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조졌다는 말이 부 산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망쳤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난 후 그 집 사님을 속으로 판단한 자신이 부끄러워서 그 집사님을 만나면 괜스레 얼굴이 달아오르곤 하였습니다. 오늘은 바로 이 조지는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신앙적으로 영적으로 조지는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요즘 신앙생활에 별 재미 를 느끼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생활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 설교를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틀림없이 조 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지난 번 호 11장을 강해 하면서 묵은 땅을 기경해야 함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었는데 자신이 묵은 땅으로 여겨짐에도 불구 하고 기경할 별 다른 마음이 없이 그냥 그럭저럭 사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잘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틀림없이 여러분들의 신앙 조질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호세아서를 통해서 거듭 거듭 돌 아올 것을 말씀하심에도 불구 하고 아직도 아무 감각 없이 생활을 하고 계시는 분들 그런 분들도 잘 들으십시오. 아 마 그런 분들도 조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신앙생활을 하기를 원하는 분들이 계시면 역시 오늘 설교를 잘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조지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 터이니까 그 반대로만 잘한다면 여러분들은 아마 보다 영적으로 성숙된 신 앙인이 되실 것입니다. 거울을 보지 않아서 자 그러면 오늘 본문에 소개되고 있는 조지는 일 즉, 망하는 일에는 어떤 것이 있을 까요
1,2절을 읽겠습니다. 자 보십시오. 이 구절은 어떻게 하면 망할 수 있다고 우리들 에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우상 숭배를 하면요 바알을 섬기면은 요 예, 물론 이것도 말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좀 더 말씀을 자세히 살 펴보면 이것 보다 좀 더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절을 가만히 보십시오. 에브라임이 어떤 존재였습니까 그렇 습니다. 말하면 떨 정도로 지명 도도 있고 권세도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점점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망하는 길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여기 망한다는 말은 사실 사망이라는 말입니다. 즉, 점점 죽음의 길을 향해 저어 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 다면 보십시오. 무엇으로 인해 점점 사망의 길로, 망하는 길로, 조지는 길로 걸어가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바알을 섬김으로 범죄 했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바로 이 일에 대표적인 가문이 하나 있습니다. 어느 가문 인줄 아십니까 바알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죠 이스라엘에 바알신 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보다 더 흥왕 하게 했던 인물이 하나 있죠 그렇습니다. 바로 이세벨입니다. 이세벨은 아합의 아내였고 베니게 왕이자 바알신 을 섬기는 제사장의 딸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아합왕과 결혼을 하여 이스라엘에 거하게 되자 바알을 섬기는 일이 점점 흥왕 해져 갔습니다. 왕상 18장에 보면 당시 이스라엘에는 바알신을 섬기는 선지자 450명과 바알신과 친척 지간인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 400명이 있었다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반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몇 명이 있었습니까 엘리야의 말 대로라면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했습니다. 다 이세벨 이 죽인 것입니다. 이 정도로 당시 바알을 섬기는 일이 흥왕 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 가문이 어떻게 되었습니 까 그렇습니다.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예후의 반역에 의해서 나봇의 포도원에서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또 이 세벨은 어떻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역시 난간에서 떨어져 죽어 개들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알을 섬기다가 망 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제도 그런데 보십시오. 2절은 이 사실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도 더 욱 범죄 하여라 말합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자 다시 보십시오. 1절 끝나는 부분입니다. 망하였거늘 2절은 어떻게 시 작을 하죠 그렇습니다. 이제 도 라고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죠 그렇습니다. 이렇게 우상을 섬기다 처 참하게 망한 거울이 있는데 그 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도 그렇게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2절에 그렇습니다. 우상을 만 듭니다. 그리고는 그 우상에게 입맞춥니다. 즉,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이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가를 보십시오. 우상을 섬기다 망한 거울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들은 어떻게 하고 있 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것과 상관없이 그 일을 그대로 행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죠. 그렇습니다.분명히 거울이 되는 사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거울을 보지 않으면 조진다는 것이죠. 사람에게 있어서 거울은 참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모양새를 고치고 다듬을 수 있으니까요. 아마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얼굴에 검정이 묻은 것을 보고도 그대로 방치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즉시 그것을 고치려 할 것입니다. 요즘 저희 집 큰아이가 얼마나 거울을 들여다보는지요. 하루에도 수없이 거울을 보고 머리를 빗습니다. 잠시도 머리가 엉클어 진 것을 두지 않아요. 심지어는 잠자기 전에도 거울을 보고 자더라고요. 여러분 혹시 건물 복도에 세 워진 거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해 본 적이 있습니까 없다면 한 번 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앞을 지나 가는 사람은 거이 대부분이 흘깃 흘깃 거울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쳐다보면서 지나갑니다. 어떤 사람은 이상한 표정 도 지어 보기도 하고 그래요. 이게 바로 사람의 속성이에요. 거울이 있으면 그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고 싶은 것이 죠.
그런데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았습니까 아니죠 그들은 거기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망한 것이죠. 사망의 길 로 들어선 것이죠.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일이에요. 우리들도 거울이 있습니다. '고전 10:6' 볼까요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 게 하려 함이니 어떤 것들이 거울이 된다고요 그렇습니다. 성경에 있는 여러 사건들이 거울이 된다는 것이에요. 또 '고전 10:1
1' 보죠. 저희에 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성경 이 무엇을 위해서 기록되었다 고요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거울이 되기 위해서 기록이 된 것이에요. 왜 우리가 말씀 을 묵상을 해야 되죠 그래요. 거울을 보기 위함이에요. 매일 우리들의 영적인 모습이 어떤 가를 보기 위함이죠 아마 일어나서 거울도 보지 않고 출근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에요. 왜죠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나의 최소 한의 예절이죠. 그래서 그 바쁜 와중에서도 거울과 씨름을 하죠. 마찬가지예요.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 우리들도 영적인 단장이 필요한 것이에요. 그래서 말씀이라는 거울을 펼쳐 들고 내 자신을 비추어 보고 다듬는 것이에 요.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서면서 내 영을 단장도 하지 않은 체 설 수 있겠어요. 이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저는 종종 성도들이 멋지게 단장 을 하고 길거리에 나서는 것을 보면서 저들이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어떤 단장을 했을까 궁금할 때가 있어요. 한 번 묻죠 어떤 단장을 하고 이 자리에 나오셨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매일 성경을 해야 하느냐 매일 성경 에 묶여야 되느냐 제가 이런 말을 했어요. 매일 성경에 묶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묶여야 한다고요. 또 이렇게도 말하고 싶어요. 거울 앞에는 매일 수분씩 묶이면서 말씀 앞에 좀 묶이면 안되느냐고요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에 좀 묶이세요. 그리고 자신을 살펴보세요. 내 자신의 영적인 모습이 어떤가 좀 살펴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일을 하지 않아 망했어요. 여러분들도 망하고 싶다면 할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말씀을 거 울을 보시기 바래요. '약 1:23-2
4'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 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사실 여러분 제가 이 자리에서 말씀 을 전하는 이유도 어디에 있죠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잘 들여다보시게 하기 위함이죠.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하든지 여러분들이 거울을 잘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 요. 여러분 희미하게나마 여러분들의 모습이 보인다면 좀 고치세요. 왜 그리 자신을 방치하세요. 경고 자 이렇게 자신을 방치했던 사람들에게 내리는 경고를 보세요. 3절 같다는 이야기가 네 번 나오죠 아침 구름 같고, 쉽게 사라지는 이슬 같고, 광풍에 날리 우는 쭉정이 같고, 굴뚝에서 나는 연기 같다고 하죠. 자 보세요. 이것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죠. 처음에는 있는 것 같 으나 쉬 사라지는 것들이죠. 또 정함이 없는 것들이에요. 어떤 사람의 말로예요. 그렇죠. 거울을 보지 않는 사람들의 말로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도 이런 인생이 되기 원하세요. 그러시다면 거울을 좀 보세요. 말씀의 거울을 통 해서 좀 고치세요. 배불러서 자 이제 다음으로 소개되고 있는 망하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죠. 먼저 4-6절을 읽겠 습니다. 어떻게 시작을 하죠 그렇습니다. 그러나라는 말로 시작을 합니다. 왜 그러나라는 말로 시작을 할까요 여기서의 그러나라는 말은 이런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울도 보지 않았어요. 그래서 망하는 길로 사망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이런 문제가 제기될 수 있죠 아니 이들이 거울도 보지 않고 엉뚱한 길로 갈 동안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셨는가 하는 문제에요. 바로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에요. 4 절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셨어요 그래 갈 테면 가 봐라 하고 뒷짐을 지고 계 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러시지 않으셨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셨죠 그렇습니다.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말씀하셨죠. 이 런 사실에 대해서 5절은 권고라는 말로 표현을 하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울을 보 지 않고 다른 길로 갈 때 권고하셨습니다. 바로 우리들이 살피고 있는 호세아서도 마찬 가지이죠. 다른 길로 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권고하기 위해서 기록한 것이죠. 종종 우리들이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어요. 무엇인고 하면 내 신앙이 떨어져 하나님 도 잘 느껴지지 않는 그런 상 황이 되면 하나님도 내게 무관심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은 부르시고 계셔요.
그런데 내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에요. 지난 시간 말씀을 드린 것처럼 영적인 에이즈에 걸린 것이에 요. 감각 없는 사람이 된 것이 죠. 하나님이 간절하게 부르셔도 그것을 듣지 못하는 것이에요. 호세아서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떻습니까 그렇 죠. 하나님께서 얼마나 간절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시나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 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에요. 혹 오늘 여러분 중에도 이런 오해를 하고 있는 분이 계시지 않으세요. 아 니에요 문제는 바로 당신 이예 요. 하나님이 어떻고 누가 어떻고 하지 마세요. 바로 당신이 무감각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깨달아 지지 않는 것 뿐이에요. 권고하시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간절히 권고하시면서 하신 것이 있죠 무엇이죠 예, 저들을 배부르게 하신 일이에 요. 아마 여러분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면서 어떻게 배불리었는가를 잘 아 시고 계실 것이에요. 아주 특 별한 방법을 동원하셔서 저들을 먹이셨어요.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또 물이 없을 때는 반석에서 물이 쏟아 지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죠. 사실은 저들이 가나안 땅에서 생활하면서 누린 모든 것들 이 다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주 신 것들이죠. 하나님의 돌보심이 없이 어떻게 저들이 배부를 수 있겠어요.
그런데 보세 요. 6절에 배부름으로 인해 어 떻게 되었다고 말하죠 그렇습니다. 배부름으로 인해 교만해 지고 하나님을 잊어 버렸 다는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저 들을 배부르게 하셨다면 더 감사하고 더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들은 교만하여 졌고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이 죄의 발전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세요. 배 가 부르자 어떻게 되었죠 그렇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교만해 졌어요. 그리고는 요 예,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었 죠.
그렇다면 보십시다. 배부른 것과 교만해지는 것과 어떤 상관이 있을까요 예, 상관 이 있습니다. 어떤 상관이 있 죠. 그렇습니다. 배부름으로 인해 자신의 원래 처지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배를 불리시니까 고 맙고 감사했겠죠 얼마나 감격했겠어요. 아무것도 아닌 나를 이렇게 먹여 주시고 입혀 주시다니 하고 노래를 부르고 신났겠죠. 그러나 시간이 점점 흘러가자 타성에 젖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먹어 도 감사하지 않아요. 그러나 시간이 더 지나면 이제자신이 뭔가 잘나서 먹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것이에요. 그래 내가 이정도구나 하는 것이죠. 우리 속담에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지 못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바로 그런 처지가 된 것이에요. 이렇게 되면 무엇 만 보이죠 그렇습니다. 자신만 보이는 것이에요. 그러니 하나님을 잊어버리죠. 바로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 이었어요. 하나님께서 저들을 잘 권고하시고 배부르게 했더니 그만 저들이 망하는 길로 들어서 버리고 만 것이에요.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배불러서 망하게 되었다고요. 다시 말하면 배불러서 조진 경우죠.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에요.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배불러서 망하다니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의외로 이런 일들 이 우리 주변에도 많이 있더라구요. 배고플 때는 신앙생활을 잘하다가도 그만 배가 부 르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사람 들이 많아요. 아마 여러분들도 주변에서 이런 사람을 많이 보았을 것이에요. 조심하세 요. 여러분들도 배불러 망하지 않도록 늘 주의하세요. 사람의 심리가 참으로 묘하죠. 없고 가난할 때는 작은 것 하나 도 그렇게 고맙고 감사할 수 없 어요.
그런데 배부르고 나면 작은 것은 거들 떠보지도 않아요. 언제 그랬느냐는 것이 죠. 이게 사람의 마음의 예요. 그래서 사단도 바로 이런 우리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을 하죠. 그래서 배부르게 하는 것이에요. 왜요. 예, 하나님 을 잊어버리게 하기 위해서예요. 감사를 잊어버리게 하기 위해서예요. 기쁨을 잊어버리 게 하기 위해서죠. 오늘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혹 여러분들 중에도 이렇게 배불러 망하고 있는 분은 없는지요 제가 이렇게 물어 보면 목사님 우리 사랑하는교회에 배불러서 망할 만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하고 말씀하실지 모르겠 어요. 그러나 배부르는 것은 비단 물질적인 것만 말하는 것은 아니죠. 여러 가지 면에서 그럴 수 있어요. 특히 영적 으로도 그럴 수 있지요.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여러분들이 어떻게 생각을 할지 모르겠지만 오해하지 말고 들으시 기 바랍니다. 우리 사랑하는교회가 아직 덜 다듬어져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성경적인 교회가 한 번 되어 보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모 르긴 몰라도 여러분들이 이 사랑하는교회를 선택하게 된 동기 가운데 하나가 전에 다니 시던 교회보다 뭔가 더 나은 점이 있다 싶어서 등록을 하셨을 것이에요. 그래 어떤 분들은 그래 참 내가 좋은 교회 를 만났다 하고 즐거워도 하셨 어요. 그리고 감사도 했고요. 그런데 시간이 점점 지나가자 그런 기쁨도 감사도 잃어버 리는 것 같아요. 배부르게 된 것이죠. 그래서 지금은 모든 것이 다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어요. 감사도 없고 기쁨도 없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배부 른 것은 좋은 것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배불러 망하지는 마세요. 오히려 그것이 더 큰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되기를 바 라겠어요. 경고 이렇게 배불러 교만해지고 하나님을 잊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셔요. 7-9절을 보죠. 여기서도 같다는 이야기가 몇 번 나오죠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사자 같고, 표범 같고, 새끼 잃은 곰 같다 말하죠. 이런 것들의 공통점이 무엇이죠 그렇습니다. 흉악하 다는 것이에요. 포악하죠. 그런데 보세요. 구나 이렇다고 말씀하시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대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 엘 백성들을 찢고 삼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10-11절을 보죠 무슨 이야기입니까 저들을 지키는 왕이 없다는 것이 이예요. 왜냐하면 왕들이 저들을 지키기 보다 오히려 저들을 괴롭히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죠. 하나님 을 잊어버린 자들이 당할 어려 움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도 배불러 이렇게 망하는 사람들이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죄를 저장함으로 또 다음으로 망한 예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12,절을 읽겠습니다. 언뜻 보면 이 구절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를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에브라임의 죄가 쌓이 고 쌓였으니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어떤 뜻이죠 그렇습니다. 죄를 저장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망하게 되었죠 그렇습니다. 죄를 저장해 두다가 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보 십시오. 저장할 것이 따로 있지 죄를 저장을 해 두다니요.
그런데 의외로 이런 분들이 많이 있더군요. 죄가 뭐 좋다고 저장을 해 두는지 모르겠어요. 혹 여러분들도 죄를 저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죄를 저장하는가 아닌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어떻게 하는 줄 아세요 내게 눈물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이 나고요. 자 보세요. 요한이 우리가 죄 없다 하면 거짓말이라고 했으니까 우리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죠.
그렇다면 문제는 이 지은 죄를 어떻게 처 리하고 있느냐는 것이에요. 어떻게 처리해야 하죠 그렇습니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 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요. 라 말합니다.
그렇다면 보십시오. 이 렇게 죄를 자백하니 눈물이 있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여러분께 한 번 묻습니다. 죄 자백을 위한 눈물이 요즘 있으 세요. 없다면 문제입니다. 어떤 문제죠 그렇습니다. 죄를 쌓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망할 사람이기 때문이죠. 여러분 무감각하지 마세요. 어거스틴은 자신이 어린 시절 어머니의 젖꼭지를 깨문 것까지 죄로 느껴져서 회개를 했다고 하잖아요. 회개하세요. 여러분들의 죄를 보시고 눈물을 좀 흘 리세요. 그래서 좀 새로워지세 요. 언제까지 그렇게 있으시겠어요. 경고 이렇게 죄를 저장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하는 경고가 있습니다. 12,13절입니다. 12절은 해산하는 고통이 임하리라 말합니다. 13절은 이렇게 말해요. 글쎄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이런 말이에요. 출산을 하는데 왜 아이가 태에 걸려서 안나 오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 요.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바로 그런 고통이 있다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도 죄를 저장해 두다가 이 런 일 당하시지 마시고 버리세요. 그것 아무런 가치 없는 것이에요. 사망에서 구속하심 자 지금까지 살핀 말씀들을 정리해 보죠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망하죠 그렇습니다. 거울을 보지 않아서 망하고, 배불러서 망하고,죄를 저장했기 때문에 망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하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전 에 말씀을 드린 것처럼 호세아 서 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진노하겠다, 징계하겠다 하면 무엇을 생각 해야 한다고요 그렇습니다. 그 뒤의 하나님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죠 그렇습니다. 돌아오라는 간절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라 말씀을 드렸죠.
그렇다면 오늘 본문도 같은 원리에 따라서 해석되어져 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 역시 돌아오라는 것이에요. 내게로 오라는 것이에요. 너희들이 가고 있는 길은 망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내게로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14절에 있는 말씀을 통해서 더욱더 확증이 되죠 자 14절을 읽습니다. 예, 아주 유명한 말씀입니다. 누가 이 말을 했죠 그렇습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적용시키면서 이 말을 했 죠 바로 오늘 본문을 인용한 것입니다. 자 보십시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 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 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14절 말씀은 그 죄의 결과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담당하시는 지에 대한 말씀을 하시고 있죠 14절을 읽다 보면 바로 이 부분에 대해서 간결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속량, 구속이라는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한다는 것입니다. 그 대가가 무엇이죠 그렇습니다. 사망입니다. 죽음이죠. 바로 이 대가를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통해서 지 불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지불을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속량하는 것이죠. 즉, 값을 지불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죄의 대가를 지불하시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 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죄에 길목으로 들어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선언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죠.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십니다. 이렇게 사랑하시면서 돌아 오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죗 값을 내가 지불하겠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게로 돌아 오라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 이 초대에 응하 겠습니까 퓨지는 그의 주석에서 호세아서의 메시지를 이렇게 정리해 놓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너의 포로 생활은 너 스스로에게서 비롯되었지만 너의 구속은 나로 말 미암은 것이다. 너의 멸망이야 너에게서 비롯되었지만 너이 구원은 나에게서 비롯되었노라. 너의 죽음은 네 스스로에게서 초래된 것이지만 너의 생명은 나로 말미암았노라. 너의 악은 너 자신으로 말미암았지만 너의 선은 나에게서 비롯되었노라. 너의 영벌은 네 스스로에게 원인이 있지만 너의 예정은 항상 너의 마음의 문에 서서 자 비로 그 문을 두드리는 내가 했노라. 너의 의무 태만은 네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지만 너에게 소명을 준 것은 나이니라. 너의 참담함은 네 스스로 자초한 것이지만 너이 축복은 나에게서 비롯되었노라. 네가 받은 저주는 네 스스로에게서 초래되었을지라도 너의 구원과 성화는 내가 하는 일 이라. 그렇습니다. 바로 호세아서는 아니 오늘 메시지는 너는 죄 값으로 인해 멸망을 낳지 만 나는 너의 멸망의 길목에서 너를 구속하노라는 메시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이 사랑이 저와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이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조졌다는 말이 부 산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망쳤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난 후 그 집 사님을 속으로 판단한 자신이 부끄러워서 그 집사님을 만나면 괜스레 얼굴이 달아오르곤 하였습니다. 오늘은 바로 이 조지는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신앙적으로 영적으로 조지는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요즘 신앙생활에 별 재미 를 느끼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생활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 설교를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틀림없이 조 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지난 번 호 11장을 강해 하면서 묵은 땅을 기경해야 함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었는데 자신이 묵은 땅으로 여겨짐에도 불구 하고 기경할 별 다른 마음이 없이 그냥 그럭저럭 사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잘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틀림없이 여러분들의 신앙 조질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호세아서를 통해서 거듭 거듭 돌 아올 것을 말씀하심에도 불구 하고 아직도 아무 감각 없이 생활을 하고 계시는 분들 그런 분들도 잘 들으십시오. 아 마 그런 분들도 조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뿐만 아니라 보다 나은 신앙생활을 하기를 원하는 분들이 계시면 역시 오늘 설교를 잘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조지는 일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 터이니까 그 반대로만 잘한다면 여러분들은 아마 보다 영적으로 성숙된 신 앙인이 되실 것입니다. 거울을 보지 않아서 자 그러면 오늘 본문에 소개되고 있는 조지는 일 즉, 망하는 일에는 어떤 것이 있을 까요
1,2절을 읽겠습니다. 자 보십시오. 이 구절은 어떻게 하면 망할 수 있다고 우리들 에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우상 숭배를 하면요 바알을 섬기면은 요 예, 물론 이것도 말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좀 더 말씀을 자세히 살 펴보면 이것 보다 좀 더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절을 가만히 보십시오. 에브라임이 어떤 존재였습니까 그렇 습니다. 말하면 떨 정도로 지명 도도 있고 권세도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점점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망하는 길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여기 망한다는 말은 사실 사망이라는 말입니다. 즉, 점점 죽음의 길을 향해 저어 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 다면 보십시오. 무엇으로 인해 점점 사망의 길로, 망하는 길로, 조지는 길로 걸어가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바알을 섬김으로 범죄 했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바로 이 일에 대표적인 가문이 하나 있습니다. 어느 가문 인줄 아십니까 바알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죠 이스라엘에 바알신 을 하나님을 섬기는 일보다 더 흥왕 하게 했던 인물이 하나 있죠 그렇습니다. 바로 이세벨입니다. 이세벨은 아합의 아내였고 베니게 왕이자 바알신 을 섬기는 제사장의 딸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아합왕과 결혼을 하여 이스라엘에 거하게 되자 바알을 섬기는 일이 점점 흥왕 해져 갔습니다. 왕상 18장에 보면 당시 이스라엘에는 바알신을 섬기는 선지자 450명과 바알신과 친척 지간인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 400명이 있었다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반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몇 명이 있었습니까 엘리야의 말 대로라면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했습니다. 다 이세벨 이 죽인 것입니다. 이 정도로 당시 바알을 섬기는 일이 흥왕 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 가문이 어떻게 되었습니 까 그렇습니다.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예후의 반역에 의해서 나봇의 포도원에서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또 이 세벨은 어떻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역시 난간에서 떨어져 죽어 개들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알을 섬기다가 망 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제도 그런데 보십시오. 2절은 이 사실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도 더 욱 범죄 하여라 말합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자 다시 보십시오. 1절 끝나는 부분입니다. 망하였거늘 2절은 어떻게 시 작을 하죠 그렇습니다. 이제 도 라고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죠 그렇습니다. 이렇게 우상을 섬기다 처 참하게 망한 거울이 있는데 그 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도 그렇게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들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2절에 그렇습니다. 우상을 만 듭니다. 그리고는 그 우상에게 입맞춥니다. 즉,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이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가를 보십시오. 우상을 섬기다 망한 거울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들은 어떻게 하고 있 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것과 상관없이 그 일을 그대로 행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죠. 그렇습니다.분명히 거울이 되는 사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거울을 보지 않으면 조진다는 것이죠. 사람에게 있어서 거울은 참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모양새를 고치고 다듬을 수 있으니까요. 아마 거울을 통해서 자신의 얼굴에 검정이 묻은 것을 보고도 그대로 방치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즉시 그것을 고치려 할 것입니다. 요즘 저희 집 큰아이가 얼마나 거울을 들여다보는지요. 하루에도 수없이 거울을 보고 머리를 빗습니다. 잠시도 머리가 엉클어 진 것을 두지 않아요. 심지어는 잠자기 전에도 거울을 보고 자더라고요. 여러분 혹시 건물 복도에 세 워진 거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해 본 적이 있습니까 없다면 한 번 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앞을 지나 가는 사람은 거이 대부분이 흘깃 흘깃 거울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쳐다보면서 지나갑니다. 어떤 사람은 이상한 표정 도 지어 보기도 하고 그래요. 이게 바로 사람의 속성이에요. 거울이 있으면 그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고 싶은 것이 죠.
그런데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았습니까 아니죠 그들은 거기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망한 것이죠. 사망의 길 로 들어선 것이죠.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일이에요. 우리들도 거울이 있습니다. '고전 10:6' 볼까요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 게 하려 함이니 어떤 것들이 거울이 된다고요 그렇습니다. 성경에 있는 여러 사건들이 거울이 된다는 것이에요. 또 '고전 10:1
1' 보죠. 저희에 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성경 이 무엇을 위해서 기록되었다 고요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거울이 되기 위해서 기록이 된 것이에요. 왜 우리가 말씀 을 묵상을 해야 되죠 그래요. 거울을 보기 위함이에요. 매일 우리들의 영적인 모습이 어떤 가를 보기 위함이죠 아마 일어나서 거울도 보지 않고 출근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에요. 왜죠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나의 최소 한의 예절이죠. 그래서 그 바쁜 와중에서도 거울과 씨름을 하죠. 마찬가지예요.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 우리들도 영적인 단장이 필요한 것이에요. 그래서 말씀이라는 거울을 펼쳐 들고 내 자신을 비추어 보고 다듬는 것이에 요.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서면서 내 영을 단장도 하지 않은 체 설 수 있겠어요. 이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저는 종종 성도들이 멋지게 단장 을 하고 길거리에 나서는 것을 보면서 저들이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어떤 단장을 했을까 궁금할 때가 있어요. 한 번 묻죠 어떤 단장을 하고 이 자리에 나오셨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매일 성경을 해야 하느냐 매일 성경 에 묶여야 되느냐 제가 이런 말을 했어요. 매일 성경에 묶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묶여야 한다고요. 또 이렇게도 말하고 싶어요. 거울 앞에는 매일 수분씩 묶이면서 말씀 앞에 좀 묶이면 안되느냐고요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에 좀 묶이세요. 그리고 자신을 살펴보세요. 내 자신의 영적인 모습이 어떤가 좀 살펴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일을 하지 않아 망했어요. 여러분들도 망하고 싶다면 할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말씀을 거 울을 보시기 바래요. '약 1:23-2
4'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 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사실 여러분 제가 이 자리에서 말씀 을 전하는 이유도 어디에 있죠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잘 들여다보시게 하기 위함이죠.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하든지 여러분들이 거울을 잘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 요. 여러분 희미하게나마 여러분들의 모습이 보인다면 좀 고치세요. 왜 그리 자신을 방치하세요. 경고 자 이렇게 자신을 방치했던 사람들에게 내리는 경고를 보세요. 3절 같다는 이야기가 네 번 나오죠 아침 구름 같고, 쉽게 사라지는 이슬 같고, 광풍에 날리 우는 쭉정이 같고, 굴뚝에서 나는 연기 같다고 하죠. 자 보세요. 이것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죠. 처음에는 있는 것 같 으나 쉬 사라지는 것들이죠. 또 정함이 없는 것들이에요. 어떤 사람의 말로예요. 그렇죠. 거울을 보지 않는 사람들의 말로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도 이런 인생이 되기 원하세요. 그러시다면 거울을 좀 보세요. 말씀의 거울을 통 해서 좀 고치세요. 배불러서 자 이제 다음으로 소개되고 있는 망하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죠. 먼저 4-6절을 읽겠 습니다. 어떻게 시작을 하죠 그렇습니다. 그러나라는 말로 시작을 합니다. 왜 그러나라는 말로 시작을 할까요 여기서의 그러나라는 말은 이런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울도 보지 않았어요. 그래서 망하는 길로 사망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이런 문제가 제기될 수 있죠 아니 이들이 거울도 보지 않고 엉뚱한 길로 갈 동안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셨는가 하는 문제에요. 바로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에요. 4 절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셨어요 그래 갈 테면 가 봐라 하고 뒷짐을 지고 계 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러시지 않으셨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셨죠 그렇습니다.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말씀하셨죠. 이 런 사실에 대해서 5절은 권고라는 말로 표현을 하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울을 보 지 않고 다른 길로 갈 때 권고하셨습니다. 바로 우리들이 살피고 있는 호세아서도 마찬 가지이죠. 다른 길로 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권고하기 위해서 기록한 것이죠. 종종 우리들이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어요. 무엇인고 하면 내 신앙이 떨어져 하나님 도 잘 느껴지지 않는 그런 상 황이 되면 하나님도 내게 무관심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은 부르시고 계셔요.
그런데 내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에요. 지난 시간 말씀을 드린 것처럼 영적인 에이즈에 걸린 것이에 요. 감각 없는 사람이 된 것이 죠. 하나님이 간절하게 부르셔도 그것을 듣지 못하는 것이에요. 호세아서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떻습니까 그렇 죠. 하나님께서 얼마나 간절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시나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 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에요. 혹 오늘 여러분 중에도 이런 오해를 하고 있는 분이 계시지 않으세요. 아 니에요 문제는 바로 당신 이예 요. 하나님이 어떻고 누가 어떻고 하지 마세요. 바로 당신이 무감각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깨달아 지지 않는 것 뿐이에요. 권고하시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간절히 권고하시면서 하신 것이 있죠 무엇이죠 예, 저들을 배부르게 하신 일이에 요. 아마 여러분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면서 어떻게 배불리었는가를 잘 아 시고 계실 것이에요. 아주 특 별한 방법을 동원하셔서 저들을 먹이셨어요.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또 물이 없을 때는 반석에서 물이 쏟아 지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죠. 사실은 저들이 가나안 땅에서 생활하면서 누린 모든 것들 이 다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주 신 것들이죠. 하나님의 돌보심이 없이 어떻게 저들이 배부를 수 있겠어요.
그런데 보세 요. 6절에 배부름으로 인해 어 떻게 되었다고 말하죠 그렇습니다. 배부름으로 인해 교만해 지고 하나님을 잊어 버렸 다는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저 들을 배부르게 하셨다면 더 감사하고 더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들은 교만하여 졌고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이 죄의 발전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세요. 배 가 부르자 어떻게 되었죠 그렇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교만해 졌어요. 그리고는 요 예,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었 죠.
그렇다면 보십시다. 배부른 것과 교만해지는 것과 어떤 상관이 있을까요 예, 상관 이 있습니다. 어떤 상관이 있 죠. 그렇습니다. 배부름으로 인해 자신의 원래 처지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배를 불리시니까 고 맙고 감사했겠죠 얼마나 감격했겠어요. 아무것도 아닌 나를 이렇게 먹여 주시고 입혀 주시다니 하고 노래를 부르고 신났겠죠. 그러나 시간이 점점 흘러가자 타성에 젖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먹어 도 감사하지 않아요. 그러나 시간이 더 지나면 이제자신이 뭔가 잘나서 먹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것이에요. 그래 내가 이정도구나 하는 것이죠. 우리 속담에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지 못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바로 그런 처지가 된 것이에요. 이렇게 되면 무엇 만 보이죠 그렇습니다. 자신만 보이는 것이에요. 그러니 하나님을 잊어버리죠. 바로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 이었어요. 하나님께서 저들을 잘 권고하시고 배부르게 했더니 그만 저들이 망하는 길로 들어서 버리고 만 것이에요.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배불러서 망하게 되었다고요. 다시 말하면 배불러서 조진 경우죠.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에요.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배불러서 망하다니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의외로 이런 일들 이 우리 주변에도 많이 있더라구요. 배고플 때는 신앙생활을 잘하다가도 그만 배가 부 르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사람 들이 많아요. 아마 여러분들도 주변에서 이런 사람을 많이 보았을 것이에요. 조심하세 요. 여러분들도 배불러 망하지 않도록 늘 주의하세요. 사람의 심리가 참으로 묘하죠. 없고 가난할 때는 작은 것 하나 도 그렇게 고맙고 감사할 수 없 어요.
그런데 배부르고 나면 작은 것은 거들 떠보지도 않아요. 언제 그랬느냐는 것이 죠. 이게 사람의 마음의 예요. 그래서 사단도 바로 이런 우리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을 하죠. 그래서 배부르게 하는 것이에요. 왜요. 예, 하나님 을 잊어버리게 하기 위해서예요. 감사를 잊어버리게 하기 위해서예요. 기쁨을 잊어버리 게 하기 위해서죠. 오늘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혹 여러분들 중에도 이렇게 배불러 망하고 있는 분은 없는지요 제가 이렇게 물어 보면 목사님 우리 사랑하는교회에 배불러서 망할 만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하고 말씀하실지 모르겠 어요. 그러나 배부르는 것은 비단 물질적인 것만 말하는 것은 아니죠. 여러 가지 면에서 그럴 수 있어요. 특히 영적 으로도 그럴 수 있지요.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여러분들이 어떻게 생각을 할지 모르겠지만 오해하지 말고 들으시 기 바랍니다. 우리 사랑하는교회가 아직 덜 다듬어져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성경적인 교회가 한 번 되어 보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모 르긴 몰라도 여러분들이 이 사랑하는교회를 선택하게 된 동기 가운데 하나가 전에 다니 시던 교회보다 뭔가 더 나은 점이 있다 싶어서 등록을 하셨을 것이에요. 그래 어떤 분들은 그래 참 내가 좋은 교회 를 만났다 하고 즐거워도 하셨 어요. 그리고 감사도 했고요. 그런데 시간이 점점 지나가자 그런 기쁨도 감사도 잃어버 리는 것 같아요. 배부르게 된 것이죠. 그래서 지금은 모든 것이 다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어요. 감사도 없고 기쁨도 없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배부 른 것은 좋은 것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배불러 망하지는 마세요. 오히려 그것이 더 큰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되기를 바 라겠어요. 경고 이렇게 배불러 교만해지고 하나님을 잊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셔요. 7-9절을 보죠. 여기서도 같다는 이야기가 몇 번 나오죠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사자 같고, 표범 같고, 새끼 잃은 곰 같다 말하죠. 이런 것들의 공통점이 무엇이죠 그렇습니다. 흉악하 다는 것이에요. 포악하죠. 그런데 보세요. 구나 이렇다고 말씀하시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대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 엘 백성들을 찢고 삼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10-11절을 보죠 무슨 이야기입니까 저들을 지키는 왕이 없다는 것이 이예요. 왜냐하면 왕들이 저들을 지키기 보다 오히려 저들을 괴롭히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죠. 하나님 을 잊어버린 자들이 당할 어려 움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도 배불러 이렇게 망하는 사람들이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죄를 저장함으로 또 다음으로 망한 예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12,절을 읽겠습니다. 언뜻 보면 이 구절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를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에브라임의 죄가 쌓이 고 쌓였으니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어떤 뜻이죠 그렇습니다. 죄를 저장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망하게 되었죠 그렇습니다. 죄를 저장해 두다가 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보 십시오. 저장할 것이 따로 있지 죄를 저장을 해 두다니요.
그런데 의외로 이런 분들이 많이 있더군요. 죄가 뭐 좋다고 저장을 해 두는지 모르겠어요. 혹 여러분들도 죄를 저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죄를 저장하는가 아닌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어떻게 하는 줄 아세요 내게 눈물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이 나고요. 자 보세요. 요한이 우리가 죄 없다 하면 거짓말이라고 했으니까 우리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죠.
그렇다면 문제는 이 지은 죄를 어떻게 처 리하고 있느냐는 것이에요. 어떻게 처리해야 하죠 그렇습니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 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실 것이요. 라 말합니다.
그렇다면 보십시오. 이 렇게 죄를 자백하니 눈물이 있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여러분께 한 번 묻습니다. 죄 자백을 위한 눈물이 요즘 있으 세요. 없다면 문제입니다. 어떤 문제죠 그렇습니다. 죄를 쌓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망할 사람이기 때문이죠. 여러분 무감각하지 마세요. 어거스틴은 자신이 어린 시절 어머니의 젖꼭지를 깨문 것까지 죄로 느껴져서 회개를 했다고 하잖아요. 회개하세요. 여러분들의 죄를 보시고 눈물을 좀 흘 리세요. 그래서 좀 새로워지세 요. 언제까지 그렇게 있으시겠어요. 경고 이렇게 죄를 저장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하는 경고가 있습니다. 12,13절입니다. 12절은 해산하는 고통이 임하리라 말합니다. 13절은 이렇게 말해요. 글쎄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이런 말이에요. 출산을 하는데 왜 아이가 태에 걸려서 안나 오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 요.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바로 그런 고통이 있다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도 죄를 저장해 두다가 이 런 일 당하시지 마시고 버리세요. 그것 아무런 가치 없는 것이에요. 사망에서 구속하심 자 지금까지 살핀 말씀들을 정리해 보죠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망하죠 그렇습니다. 거울을 보지 않아서 망하고, 배불러서 망하고,죄를 저장했기 때문에 망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하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전 에 말씀을 드린 것처럼 호세아 서 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진노하겠다, 징계하겠다 하면 무엇을 생각 해야 한다고요 그렇습니다. 그 뒤의 하나님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죠 그렇습니다. 돌아오라는 간절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라 말씀을 드렸죠.
그렇다면 오늘 본문도 같은 원리에 따라서 해석되어져 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 역시 돌아오라는 것이에요. 내게로 오라는 것이에요. 너희들이 가고 있는 길은 망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내게로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14절에 있는 말씀을 통해서 더욱더 확증이 되죠 자 14절을 읽습니다. 예, 아주 유명한 말씀입니다. 누가 이 말을 했죠 그렇습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적용시키면서 이 말을 했 죠 바로 오늘 본문을 인용한 것입니다. 자 보십시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 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 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14절 말씀은 그 죄의 결과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담당하시는 지에 대한 말씀을 하시고 있죠 14절을 읽다 보면 바로 이 부분에 대해서 간결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속량, 구속이라는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한다는 것입니다. 그 대가가 무엇이죠 그렇습니다. 사망입니다. 죽음이죠. 바로 이 대가를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통해서 지 불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지불을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속량하는 것이죠. 즉, 값을 지불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죄의 대가를 지불하시고 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 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죄에 길목으로 들어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선언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죠.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십니다. 이렇게 사랑하시면서 돌아 오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죗 값을 내가 지불하겠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게로 돌아 오라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가 이 초대에 응하 겠습니까 퓨지는 그의 주석에서 호세아서의 메시지를 이렇게 정리해 놓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너의 포로 생활은 너 스스로에게서 비롯되었지만 너의 구속은 나로 말 미암은 것이다. 너의 멸망이야 너에게서 비롯되었지만 너이 구원은 나에게서 비롯되었노라. 너의 죽음은 네 스스로에게서 초래된 것이지만 너의 생명은 나로 말미암았노라. 너의 악은 너 자신으로 말미암았지만 너의 선은 나에게서 비롯되었노라. 너의 영벌은 네 스스로에게 원인이 있지만 너의 예정은 항상 너의 마음의 문에 서서 자 비로 그 문을 두드리는 내가 했노라. 너의 의무 태만은 네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지만 너에게 소명을 준 것은 나이니라. 너의 참담함은 네 스스로 자초한 것이지만 너이 축복은 나에게서 비롯되었노라. 네가 받은 저주는 네 스스로에게서 초래되었을지라도 너의 구원과 성화는 내가 하는 일 이라. 그렇습니다. 바로 호세아서는 아니 오늘 메시지는 너는 죄 값으로 인해 멸망을 낳지 만 나는 너의 멸망의 길목에서 너를 구속하노라는 메시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로 이 사랑이 저와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이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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