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이슬, 화덕, 전병 (호6:4-7:16)

본문

주보를 한 번 보실 까요 오늘 설교 제목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슬, 화덕, 전병이라고 기록 되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아마 여러분 중에 이 제목이 의 미하는 바를 아시는 분은 없으실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여러분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 스스로도 이 렇게 제목을 정해 놓고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왜냐하면 제목이 너무 난해하기 때문입니다. 설교 제목을 정할 때는 몇 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간단명료해야 하고 본문의 의미를 충분히 이야기하는 것이어야 하고 재미있어야 하고 말하고 자 하는 핵심을 나타내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제목은 다른 것은 다 합격처럼 보였습니다. 간단명료하고, 본문의 의미도 충분히 나타내고 있고 재미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제목으로는 그 누구도 이 제목이 무엇을 말하고 자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제목을 택한 대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슬, 화덕, 전병이라는 말이 기억하기 쉽기 때문에 이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바만 잘 깨달으면 본문의 내용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 의도가 적중을 할지 안 할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잘 기억이 되지 않는다고 하 더라도 제 의도를 이해하시고 기억할 수 있도록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오늘 본문을 오랫동안 기억을 한다는 의미에서 한 번 따라 해 주시겠습니까 이슬, 화덕, 전병 예, 좋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따라 했던 이 단어들은 오늘 본문 6:4절에, 7:4절에, 7:8절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 이것들을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면서 이것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슬 먼저 이슬이라는 말을 생각해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슬 하면 어떤 것이 생각이 나십니까 아마 이슬 하면 영롱하고 아름답고 순전한 그 어떤 것이 생각이 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우리들에게 말하는 바는 그것과는 아주 다른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일까요 4절을 함께 살펴 볼 수 있 기를 바랍니다. . 자 이 구절에서 이슬이 어떻게 표현이 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쉬 없 어지는 이라고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슬은 참으로 쉽게 사라져 버립니다. 또 4절에서 이슬과 함께 표현을 하고 있는 아침 구름은 사실은 아침 안개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이것 역시 쉽게 사라져 버립니다. 앞을 분간 할 수 없을 만큼 안개가 자욱하더라도 일단 태양이 떠오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안 개이며 이슬입니다. 이처럼 이 것들은 잠시 보였다가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에 무엇이 비유되고 있 습니까 예, 인애가 비유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애는 쉽게 사랑으로 이해를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현 대인의 성경에는 이렇게 이 부분을 번역해 놓고 있습니다. 너희 사랑이 아침 안개와 같고 일찍 사라지는 이슬과 같 구나
그렇다면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랑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저들의 사랑이 어떻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잠시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있을 때는 온 천지가 이것으로 뒤덮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태양만 떠오르면 얼마 못 가서 이것들은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바로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고 있는 사랑이었습니다. 이것은 진실한 사랑이 아닙니다.
진실한 사랑은 어떤 순간에도 영롱하게 빛나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 의 사랑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죠 그렇습니다. 진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잠깐 보이다 없어지는 사랑이 어 떨 때 나타날까요 가식적인 사랑일 때 이렇게 나타납니다. 남들 앞에 보이기 위한 사랑이기 때문에 남들이 보는데서는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사랑을 지켜보는 청중들이 사라져 버리면 그만 사랑을 중단하는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 별명을 붙인다면 무대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대에서는 잘 하는데 무대를 떠나면 잘 하지 못하는 사랑입니다. 또, 이런 사랑은 이해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사랑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저 사람에게 득이 있으 면 잘합니다. 마치 천하를 다 줄 것처럼, 자신의 간도 내어 줄 것처럼 사랑을 합니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깨어지면 그만 돌변에서 모든 사랑을 거두어 드립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노부모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을 것 입니다. 늙어지면 돈이 있어야 괄세를 받지 않아요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렇습니다. 부모가 돈을 가지고 있으면 부 모를 잘 섬기지만 돈이 다 떨어져 버리면 헌신짝 차듯이 차 버린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 고 있는 사랑이었습니다. 외식 적이고 가식적인 사랑, 이런 사랑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네가 어떻게 하랴 그래서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에브라힘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 게 어떻게 하랴 무슨 이야기입니까 너희들의 사랑이 이처럼 잠시 보이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데 내가 너희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런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대답을 하시겠습니 까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이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의 수준을 보고 아무개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치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하십니까 5절을 봅니다. . 어떻게 하셨다고 요 그렇습니다. 선지자들로 저희들을 쳤다고 말합니다. 선지자들을 보내서 저들을 통해 말씀하시고 저들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셨다는 것입니다.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니 역시 마찬가지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마음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6절에 있는 말씀에 하나님의 의도가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 자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원하시지 않는 것이 분명히 구분되 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원하신다고요 그렇습니다. 인애를 원하신다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원치 않는다 고 말씀하시죠 그렇습니다. 제사를 원치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말씀을 하 시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제사는 드리지만 인애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즉, 종교적인 의식은 잘 갖추었지만 사랑의 삶을 살아가는데 실패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제사와 인애와의 관계를 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중 요할까요 사실은 제가 이렇게 질문을 드리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됩니다.
왜냐하면 이 둘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 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언 듯 보기에는 인애가 더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드리지 말라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 입니까 그렇습니다. 제사는 잘 드리는데 인애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은 인애가 빠진 제사의 무용론을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인애가 빠진 제사 자체를 싫어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애가 빠진 제사를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인애를 어떻게 말씀드렸죠 예, 사랑이라 말씀을 드렸습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그것 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의 완성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들의 삶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이렇게 정 리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외식 적이고 가 식적으로 하면서 단지 제사를 드리는 일에만 분주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제사는 사실 죽은 제사가 될 것입니다. 이런 제사는 의식만 살아 있는 그런 제사가 될 것입니다. 마치 마음도 없으면서 웃음을 짖고 인사를 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가증한 일이 겠습니까 아무런 마음도 없으면서 제사를 드리러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 보십시 오. 우리들은 상대방이 나에게 대해서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가식적인 웃음을 던져도 별문제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이 속마음을 그 어느 누구보다 더 잘 아시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 1:11-1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 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 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 디지 못하겠노라 이 말씀이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제사에 하나님께서 지치셨다는 것입니다. 삶이 실천되지 않는 제사에 지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제사가 아닌 진정한 삶이 있는 사랑이 있는 그런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 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여기서도 삶이 없는 제사에 대해서 거부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진정한 사랑입니까 아 니면 잠시 보이다 없어지는 그런 사랑은 아닌 지요 오늘 여러분들은 어떤 사랑을 가지고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혹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아침 이슬처럼 쉬 사라지는 그런 사랑을 가지고 이 자리에 나오시지는 않으셨습니까 가식적 이고 이기적인 그런 사랑, 잠시 동안 있다가 사라지는 그런 사랑, 이런 사랑으로 나오셨다면 우리들의 모습을 다시 재고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형식적인 사랑을 가지고, 형제와 원수진 어떤 일들을 가지고 이 자리에 나오셨다면 하나님 앞에서 회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저는 종종 고민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과연 우리 사랑하는교회가 이름처럼 사랑이 넘치는 교회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종종 생각하는 것은 우리들의 사랑이 바로 오늘 본문과 같이 쉬 사라지는 이슬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떨 때는 사랑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떨 때는 찬물을 끼 얹은듯한 냉랭함이 곳곳에 배여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직 우리들이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좀 순수하게 서로를 만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들 의 안경을 벗어 던지고 순수하게 만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것이 안되면 우리들은 사랑하는교회라는 이름을 갈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이 일을 위해 힘써 보십시다. 이슬 같은 사랑이 아닌 변치 않는 그런 사랑을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화덕 다음으로 제목에 등장하는 단어는 어떤 것입니까 예, 화덕이라는 말입니다. 이제 이 화덕의 의미를 한 번 살펴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먼저 다시 묻죠 이슬은 무엇에 비교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랑에 비교되었습니다. 어떤 사랑이었죠 그렇습니다. 쉬 사라지는 그런 사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이슬이라는 말을 들을 때나 이슬을 볼 때 무엇을 기억해야 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내 사랑은 어떤가 혹 쉬 사라지는 그런 사랑은 아닌가 하는 것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 그러면 두 번째 등장하는 단어인 화덕은 어디에 비교되고 있을까요 먼저 이 화덕이라는 말이 기록되는 구절을 살펴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7:4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 이 말씀만을 가지고는 화덕이 무 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기 위해
1,2절을 읽습니다. . 어떤 것들이 여기서 언급되고 있습니까 궤사, 도적질, 노략질, 악등이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4절에는 간음이 언급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들은 화덕의 의미를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 있 을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바로 악을 충동질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 이런 생각 을 가지고 7:4절을 살펴 볼 수 있기 바랍니다. 4절에 기록되고 있는 화덕이 어떤 화덕입니까 예, 빵만 드는 자에게 달궈진 화덕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화덕이 어떻게 묘사되고 있습니까 반죽을 뭉침으로 발교 되기까지만 불을 그칠 뿐이라고 말합니다. 무슨 이야기죠 빵 굽는 일을 연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빵 굽는 사람이 빵을 굽기 위 해서 화덕이 불을 붙입니다. 풍로를 돌려 가면서 화로에 불이 거세게 일어나기까지 풍로 질을 계속할 것입니다. 이렇 게 풍로 질을 계속하다가 잠시 쉴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빵을 반죽할 때입니다.
그렇다면 이 반죽이 끝나면 다시 빵 을 굽기 위해서 화로의 불을 세게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일에게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이스 라엘 백성들의 죄악이 계속 타오르는 화로처럼 활활 타오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이것이 쉬게 됩니까 예, 빵을 반죽할 때만 잠시 쉬게 됩니다. 이 의미가 6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분명해 집니다. 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 자 이 구절에서는 화덕이 이스라엘의 마음과 비교되어 있습니다. 여기 엎드리어 기다리며, 예비되는 동안만 화덕이 불타는 것을 쉰다는 말이죠 무슨 말인고 하니 저들이 죄를 계획하는 동안만 불길이 쉬게 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저 들의 죄는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는데 쉴 때라고는 다른 죄를 모색하고 도모할 때 그 때만 잠시 쉰다는 것이죠 이제 화덕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십니까 이 화덕은 쉴 사이 없이 타오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말합니다. 아니 잠시 불길이 멈추어 질 때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때란 빵을 반죽할 때 뿐입니다. 이 반죽이 다 되면 이 화덕 은 다시 타오르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은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잠시 잠시 멈칫거리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 때도 다른 죄를 준비하는 기간에 불과합니다. 이 기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뜨겁게 타오르게 될 것 입니다. 7절에는 이런 죄악에 대해서 한 예를 들고 있습니다. 7절을 읽습니다. . 자 이 구절 에서 화덕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떤 죄악이 비교되고 있죠 예, 재판장을 삼키고 왕들을 삼킨다는 말로 비교되고 있습니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시대적인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북 이스라엘 왕국의 왕위가 물 려지는 경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아들들에 의해서 왕위가 이어지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신하들에 의해서 왕위 가 빼앗기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이런 왕위들이 아들에게 물려지는 경우보다 신하에게 찬탈을 당한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나답, 엘라, 시므리, 디브니, 여호람, 스가랴, 살룸, 브가히야, 베가등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바로 이것을 놓 고 왕들을 삼킨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오르는 죄악이 이스라엘의 왕들을 이렇게 자주 바꿀 정도로 그렇게 극심하게 타올랐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보십시다. 오늘 여러분들의 내면의 세계는 오늘 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처럼 타오르고 있지 않습니까 쉴 사이 없이 아니다른 죄악을 도모할 때만 잠시 쉴 뿐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의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언급을 한 대로 '롬 1:29-3
2' 곧 모든 불의,추악,탐욕,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살인,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 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 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 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는 죄악들이 여러분들에게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들의 내면의 세계를 곰곰이 살펴보십시오. 나는 과연 어 떠한가 내 속에는 어떤 죄악들이 타오르고 있는가 나는 이런 화덕이 아닌가 전병 다음으로 오늘 제목에 등장하는 단어는 무엇입니까 예, 전병이라는 말입니다. 자 이 말을 살펴보기 전에 다시 복 습을 해 보겠습니다. 이슬을 무엇을 상징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쉬 사라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했습니다. 화덕 은요 예, 타오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상징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전병이 의미하는 바를 생각해 보도록 하 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전병 하면 어떤 것을 연상하겠습니까 군침이 돕니까 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 자 여기서 무엇을 말하고 있죠 예, 전병은 전병인데 어떤 전병이라 말하죠 그렇습니다. 뒤집지 않는 전병이라 말합니다. 뒤집지 않는 전병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전병을 구울 때 언제 뒤집죠 한쪽이 어 느 정도 익어야 뒤집습니다.
그렇다면 뒤집지 않은 전병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아직 익 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익지 않은 전병은 섞여 있습니다. 무엇과 무엇이 섞여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익은 부분과 익 지 않은 부분이 섞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과 비교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삶과 비교가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삶이 어떠하다고요 혼잡 되었다는 것입니다.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 백성 들의 삶이고 어떻게 보면 이방인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주위에서 그런 분들을 보셨을 것입니다. 어 느 날은 이 사람이 믿는 사람 같다가 어느 날은 세상 사람 같은 그런 일들을 보셨을 것입니다. 바로 그와 같다는 것 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부침개를 드실 때 간혹 설익은 부침개를 먹고는 입맛을 버린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 때 의 기분이 어떠하시던가요 썩 유쾌하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설익은 전병과 같 았다는 것입니다. 9절 말씀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회화적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한 번 읽겠습니다. . 두 가지 사실을 말하죠 무엇입니까 예, 이방인에게 그 힘이 삼키웠다는 것이고 다 른 하나는 백발이 얼룩얼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래도 저들은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 니까 이방인에게 힘을 삼켰다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세상으로 인해 내가 삼키움을 당한다는 것이고 백발이 얼룩얼룩 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경험이 쌓였다는 것입니다. 즉, 모든 것들을 깨달아 알 만한 나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럼에도 어떠하다고요 그렇습니다.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걷고 있는 이 길이 얼마나 잘 못되었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어떠하다고 말합니까 에, 하나님께 돌아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디를 향해 갑니까 11절에 예, 앗수르를 향해 간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혹 오늘 이 이 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같이 뒤집지 않는 전병과 같지는 않습니까 세상에 살 때는 세상 사람으로 교회에 나와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렇게 살려 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들의 삶은 세상이나 교회나 가정이나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늘 시종여일해야 합니다.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보여져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주위에서 카멜레온 처럼 변색을 하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보실 때 어떤 느낌이 드시던가요 유쾌하시던가요 아닐 것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들도 뒤집지 않는 전병이 된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랑하는 교회 성도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중에 한 사람이라도 설익은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믿음이 푹 익은 그런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 힘쓰십시다. 말씀에 용광로에 우리들의 믿음을 넣고 푹 고 으십시다. 그래서 신앙의 진짜 진국이 스며 나오도록 그렇게 하십시다. 설익은 풋과일이 되어서 입맛만 버리게 하는 그런 신앙인이 아니라 깨물었을 때에 단맛이 느껴지는 그런 신앙인들이 되기를 위해서 힘쓸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 기 바랍니다. 자 이제 오늘 제목의 세 단어를 다 설명을 드렸습니다. 이슬 무엇을 말하는 것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쉬 사라지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화덕 무엇을 말하는 것이죠 예,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오르는 죄 악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전병 무엇을 말하는 것이죠 예, 세상 적인 것을 허용한 저들의 삶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 단어는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인 실상을 말해 주 고 있는 것들입니다. 바로 이런 실상을 바라보시면서 6:4절은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네게 어떻게 하 랴 무슨 말이죠 아니 너희들의 실상을 보아라. 너희들의 실상이 이러한데 과연 내가 너희들에게 어떻게 해 주어야 하겠느냐 이 말씀입니다. 여러분 혹 지난 시간의 멧세지가 기억이 나십니까 어떤 내용이었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초대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돌아오라는 간곡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죄악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냥 그대로 있었습니다. 죄짓는데 일편단심이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영적인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무 엇이라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화 있을진저 이렇게 초대에 응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를 보십시다. 13절입니다. 어떻게 시작을 하고 있죠 화 있을진저 또요 패망할진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예,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죠 그렇습니다. 저들의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은 연고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지 않은 연고입니다. 13-16절은 이 부분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13-16절은 서로 비교해서 대칭이 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다 시 한 번 읽겠습니다. 어떤 것들이 대칭이 되는지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어떤 것들 이 대칭이 되고 있죠 그렇습니다. 내가 와 저들이 대칭이 되고 있습니다. 내가는 누구입니까 예, 하나님입니다. 저 들은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십니까 13절에 저들을 구속하려 하나라고 말하죠. 또, 15절에서는 요 저희 팔을 연습시켜 강건케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어떤 일들이죠 예, 구속하시려 하셨고 강건케 하신 일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어떠했나를 보십시다. 거스려 거짓말을 했습니다. 성심으로 하나님을 부르지 않고 침상에서만 슬피 부르짖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형식적으로만 찾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새포도주를 인해 모였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거역했다고 말합니다. 또 15절은요 예, 하나님에 대해서 악을 꾀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무엇이 문제인가가 자명해 집니다. 하나님은 저들을 선대 하 시고자 하였지만 이스라엘이 이를 거부한 것입니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진노를 쏟아 붇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화있을진저, 패망할 진저
그렇다면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보신다면 무엇을 말씀하시겠습니까 혹 여러분들을 보시 면서 오늘 말씀과 같이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화 있을진저, 패망할진저 여러분들의 쉬 식어지는 사랑 을 보시면서 타오르는 죄악의 불길들을 보시면서 세상과 섞여진 여러분들이 삶을 보시면서 화 있을진저, 패망할진 저 하시지 않겠습니까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219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