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땅 (호4:1-19)
본문
지난달 23일 인도의 수라트시에서 발병한 페스트는 전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보사부에서는 인도를 경유해 서 오는 모든 여행자들에 대해서는 강제 격리를 시킬 것이라는 발표도 있었고 사태가 더 악화 될 경우 인도 여행을 금지시키거나 비행기 운항도 중지시킬 것을 고려 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 세계가 긴장을 하고 있는 것은 페스트의 무서움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14세기 말 유럽에서 발생을 했던 페스트는 당시 전 유럽 인 구의 4분의 1인 4천2백83만6천4백86명의 생명을 앗아갔었습니다. 이 일은 인류에게 일 어났던 일 중에, 아마 가장 저 주스러운 일 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이 페스트의 영향력이 어떠한가를 검역이라는 말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검역이라는 말은 전염병을 막기 위해서 공항이나 해항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는 일로 바로 이 페스트를 막기 위해서 하던 일이었습니다. 이 검역 가리켜 쿠오런틴이라고 합니다. 이 쿠오런틴이라는 말이 생긴 유 래는 이렇습니다. 14세기 후반 죽음의 병 페스트가 전 유럽을 휩쓸자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이 병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를 두고 연구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결국 이들이 내린 결론은 여행자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거나 들어온 사람들을 격리를 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1377년 아드리아 연해서부터 여행자들을 40일 동안 격리하였다가 그래 도 발병을 하지 않으면 돌려보내기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40일 동안 격리하기로 결정 한 것은 성경에서 40이 저주 의 숫자이기 때문에(노아의 홍수, 예수님의 시험받으심, 40년간의 광야 생활.) 이 기 간이 지나도 발병을 하지 않으 면 괜찮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40일 동안 격리를 한다고 해서 쿠 오런틴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은 라틴말로서 40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로 지금도 거역 절차를 가리켜 쿠오런틴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죽음의 병 페스트가 인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일단 진정 국면으로 접어 들었다고는 하니 참 다행스러 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대 의학이 발달했기 때문에 망정이지 얼마 전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옛 부터 이런 불치의 병들이 발생을 해서 전염을 하기 시작하면 신의 저주가 내렸다고 생각을 해서 그 사람이나 마을을 격리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격리를 하면 그곳은 죽음의 그림자만이 암울하게 드리운 저 주받은 땅이 되고 맙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저주받은 땅이 있어서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이제 이 시 간 오늘 본문을 통해 무엇이 이 땅을 저주하게 했는가를 살펴보면서 함께 교훈을 얻기를 원합니다. 슬픔의 땅 먼저 1-3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 자 여기서 반복되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땅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3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이 땅의 장래가 어떻다고 말합 니까 예, 땅이 슬퍼하게 될 것이며 거기 거하는 사람이나 들짐승, 공중의 새, 바다의 고기가 쇠잔하고 없어지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즉, 그곳에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죽음을 맛볼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땅이 슬퍼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땅을 우리들은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저주 받은 땅이라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땅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요 1절에 있는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 고 있다는 것을 가정해 볼 때 그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를 하고 있던 가나안 땅을 말하고 있음을 쉽게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나 안 땅하면 생각이 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약속의 땅이 생각이 납니다. 젖 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 그렇습니다.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풍요로움의 상징 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가나안 땅을 정탐을 했을 때의 장면을 이 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민 13:21-27' 이에 그들이 올라가서 땅을 탐지하되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홉 에 이르렀고 또 남방으로 올라 가서 헤브론에 이르렀으니 헤브론은 애굽 소안보다 칠 년 전에 세운 곳이라 그 곳에 아 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 가 있었더라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 한 송이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취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포도송이를 벤 고로 그 곳을 에스골 골짜기 라 칭하였더라 사십 일 동안에 땅을 탐지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 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 에게 회보하고 그 땅 실과를 보이고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 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 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이 말씀은 이 땅의 풍요로움에 대해서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포도송이가 혼 자 들 수 없어서 두 사람이 막대기에 꾀어 들고 다닐 정도였다고 말 합니다. 이렇게 풍요로운 땅이 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땅이 어떻게 된다고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슬픔의 땅이 된다고 말합니다. 죽음의 땅이 된다 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 까요 무엇이 이런 풍요로운 땅 을 낙망의 땅으로 바꾸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2,3절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2,3절은 없는 것과 있는 것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없습니까 예, 진실이 없습니다. 인애가 없 습니다. 또 하나님을 아는 지 식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주가 있다고 말합니다. 사위가 있다 고 말합니다. 살인과 투절과 간음이 있다고 말합니다. 또 강포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피가 피를 뒤대이고 있다 고 말합니다. 즉, 피흘림이 지 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구절을 가만히 보십시오.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없습니까 뭔가 바뀌었다는 느 낌이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있어야 할 것은 없고 없어야 할 것은 있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진실이 있어야 했습니다. 인애가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없 어지고 말았습니다. 저주와 사 위 살인 투절 간음 이런 것들은 없어야 마땅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버 젓이 있습니다. 뒤바껴져 버린 것입니다. 뒤죽박죽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땅은 저주가 임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이 됩니다. 있어야 할 것이 없고 없어야 할 것이 있어질 때 문제가 발생을 합니다. 아담과 하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일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는 죄악은 없어야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의 말씀에 순종을 하는 것은 마땅히 있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뒤바뀌 고 만 것입니다. 있어야 할 것 이 없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들도 에 덴 동산에서 내어 쫓김을 당하 고 만 것입니다. 온 인류가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저주의 길로 들어서고 만 것입니다.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 을 보면 아담의 후예 답게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을 과감하게 없애 버리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없어야 할 것을 있 게 만들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얼마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지존파의 사건을 보 십시오. 인천 북구청의 사건을 보십시오. 이 사건의 주도적인 인물들이 모두 그렇게 살려 했습니다. 있어야 할 것은 헌신짝처럼 팽개쳐 버리고 없어 야 할 것을 고집하며 살아왔던 사람들입니다.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뒤죽박죽이 된 것이 많으면 많 을 수록 우리들은 점점 더 저주를 향해 달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러하였습니다. 저들 역시 이렇 게 있어야 할 것은 없애고 없애야 할 것일 있게 함으로 저주를 향해 달려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떠하십니까 혹 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저주를 자처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도 있어야 할 것은 없애 고 없애야 할 것은 있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과연 꼭 해야 할 것들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중에는 아 무도 이런 저주를 향해 달려가는 분은 없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 좀 더 말씀을 살펴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주를 향해 달려갔던 모 습을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음으로 6절 말씀을 보십시다. .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주를 향해 달려가게 되었다고 말하 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서 지식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 까요 많이 배워야 한다는 말일까요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많이 알 아야 한다는 말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들은 성경 퀴즈 대회에서 늘 일등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 까요 1절에 있는 말씀을 통하여 여기서 말하는 지식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자 1절에서는 무엇 이라 말하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무엇 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롬 1:21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 하며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지 만 그것으로 그분을 영화롭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지식이란 말은 이론 적인 것과 실제 를 겸비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예를 들어보십시다.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말을 아시죠 예, 여러분 들은 이 말을 다 알고 계실 것 입니다.
그렇다면 어느날 여러분이 쫄딱 망해 버렸다면 어떻게 해야죠 예, 감사해야 죠 욀까요 그렇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시기 때문에 가져가신 것이 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것은 무엇 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이론입니다. 그러나 쫄딱 망해도 감사하는 것은 무엇입니 까 그렇습니다. 실제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것을 안다고 가정을 해 보십시다. 아마 그 사람은 하나님은 사랑이예요 하 고 많은 사람들에게 말할 것입니다. 만약 주일학교 교사라면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치실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 분의 집에 화재가 나서 모든 것을 다 날려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이런 화제가 나 자 하나님을 원망하고 조롱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 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것입니다. 이론으로는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알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바 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그러했습니다. 저들은 이론으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알지 못하고 있었 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이 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떠합니까 혹 하나님을 이론으로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서 나는 하나님을 알고 있노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초신자들에게는 별로 없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 일 수록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많이 들어서 이론은 밝은데 실제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교회에서 제일 골치 앞 은 사람들이 이 사람들입니다. 이론이 밝아서 다 아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도 다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가 업습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에서 늘 걸림돌이 됩니다. 말로는 무엇이든 다 할 것 같은데 실제는 그렇 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스스로를 점검해 보십시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를. 번성할 수록 다음으로 나타나는 저들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7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 자 여기에 나타난 저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번성할 수록 어떻지요 예, 번성할 수록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호세아가 활동을 할 당시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솔로몬 다음으로 번영을 하던 때였습니다. 모든 것들이 풍 족했었습니다. 국제적으로도 안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애굽과 앗수르와도 어깨를 견줄 정도로 부강한 나라가 되어 있 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바로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점 더 타락의 길로 걷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신 들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영광을 돌릴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들의 부요함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저들이 저주받은 민족이 될 것이라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참사람의 마음은 이상합니다. 다급할 때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 도와 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다급한 일들이 다 해결이 되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겨날 정도가 되었습니다. 뒷간에 갈 때하고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도 하나님을 이처럼 섬기고 있지 않습 니까 여러분 잘 되면 어떠해 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렇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자신들의 힘으로 된 것인양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떠합 니까 이런 마음가짐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생각 은 하지 않고 마치 그것이 자 신의 능력으로 얻은 양 거기에 취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우리들이 취할 자세가 아닙니다. 제사장들의 죄 이스라엘의 죄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계속 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 여러분 이 8절의 말씀이 어떤 말씀처럼 보입니까 사실 잘 이해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자 이 구절을 이 해하기 위해서 하나씩 살펴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먼저 여기서 저희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자 이 저희들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저희들이 하는 일이 내 백성들의 속죄 제물을 먹습니다.
그렇다면 제사를 드린 제물을 먹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가 이것을 먹었죠 그렇습니다. 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저희는 다름 아닌 제사장들이라는 것 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제사장들이 백성들이 죄사함을 얻기 위해서 드린 제물을 먹으면서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백성들이 짖는 죄악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관심 은 어떤 관심일까요 백성들이 더 이상 죄를 짖지 말았으면 하는 관심일까요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요 이렇게 이 부분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 제사장들의 밥상이 풍성해 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 니까 그렇습니다. 백성들이 죄 를 많이 지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럴 수록 저들은 제사를 드리러 자주 올 것이고 그렇 게 되면 자신들이 더 많은 것을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이야기입니다. 자신들이 더 많은 것들을 먹기 위해서 백성들이 더 많은 죄를 지었으 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제사장들 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백성들의 죄를 사하는 제사를 드려 주는 사람들 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자신들이 비록 못 먹을 지라도 백성들이 죄를 짖지 않는 일에 관심을 갖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당시 제사장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사장이 이렇게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제사 장들이 이 정도라면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사실 백성들이 죄를 지어도 제사장은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여도 제사장은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 제사장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이 저주의 땅이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오늘날 종교적인 지도자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오늘날 많은 종교 지도자들도 이런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신앙 성숙을 위해서 땀흘리기보 다 자신의 안녕을 위해서 힘쓰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런 일은 종교 지도자들에게만 일 어나는 문제들일까요 저는 아니라 생각을 합니다. 우리들도 얼마든지 오늘 본문에 나 타나는 제사장들과 같은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여기 제사장들의 죄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남이 잘못되는 일을 통해 자신이 잘 되는 것입니다. 남이 배고픈 일을 통해 내가 배부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이 제사장 들처럼 남이 잘못되어서 배 부 르려고 하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보십시다. 여러분들이 문방구를 운영하고 있다고 가정 을 해 보십시다.
그런데 어느 날 바로 옆에 어떤 사람이 문방구를 또 차렸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 습니까 잘 되라고 개업식에 찾 아가셔서 축하를 해 주시겠습니까 물건을 진열하고 할 때 도움도 주고 하시겠습니까 혹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상대 방이 잘 않되기를 기대하지 않습니까 바로 이런 것들이 제사장들의 죄와 같은 것들이 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 우리 들이 취해야 할 삶의 자세가 아닙니다. 남이 배고파야 내가 살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오늘 제사장들도 그렇게 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고 있습니다. 마음을 빼앗김 또, 11절을 보시겠습니다. .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말하 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저 들의 마음을 빼앗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엇이 저들의 마음을 빼앗고 있습니 까 예, 음행과 묵은 포도주 또,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술과 음행에 빼앗겨져 버렸습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 이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있어야 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을 섬길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저들의 마음속에 온전히 하나님만을 채우고 살 것을 요 구하셨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마음을 하나님께가 아닌 음행과 술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빠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이렇게 행음하고 포도주 에 취했다고 하는 것 뒤에는 더 큰 죄악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는 음 행과 포도주는 당시 이방신들을 섬길 때 행하던 일들이었습니다. 당시 이방 신전에서 거행되는 제사에서 음행과 포도 주는 없어서는 않 될 중요한 것들이었습니다. 당시 이방신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의식 중에는 신전에 거하는 여인들과 육체적인 관계를 갖는 의식도 있었고 포도주를 먹고 즐기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음행과 포도주에 빠졌다는 것은 이런 의식에 매료되었다는 것입니다. 12절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12절을 읽습니다. . 나무를 향해 물었다는 것은 우상을 섬겼다는 것을 말합니다. 왜 그렇게 되었다고요 예, 음 란한 것들에 매료되어서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매료되었는가가 13,14절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13절을 읽습니다. . 이 말은 어디를 가든지 우상을 섬기는 것으로 가 득 찼다는 것입니다. 마치 유행 처럼 그렇게 전 이스라엘을 번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노래방이 잘 된다고 하니까 노 래 방이 곳곳에 생겼었습니다. 이번에는 단란 주점이 잘된다 하니까 곳곳에 생기는 것마다 단란 주점입니다. 바로 이 렇게 이스라엘 전역에 이방신을 섬기는 것들이 번지고 있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쉽게 이방신을 섬기는 것들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또 13절 하반절과 14절의 말씀을 보십시다. . 어떤 일들이 일어 났다고 말합니까 이스라엘 모 든 사람들이 음행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딸들이 음행을 합니다. 며느리들도 간음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벌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남편들도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온 이스라 엘이 이렇게 간음을 하고 있었 습니다. 마치 유행병이 번지는 것처럼 이 일들이 번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해 야 하는 마음을 간음을 하고 포 도주를 즐기면서 우상을 섬기는 일에 빼앗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땅을 저주의 땅 죽음의 땅이 되게 하시겠다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에는 무엇으로 가득차 있습 니까 혹 여러분들도 오늘 본문 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세상에 빼앗겨 있는 것은 아닙니까 세상의 즐거움에 여러분들 의 마음이 빼앗겨 있지는 않습 니까 이것은 우리의 취할 바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 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 다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이것은 내 마음에 하나님 아닌 다 른 것으로 채워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들의 마음이 빼앗겨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들의 마음을 빼앗는 것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우리들의 마음을 집중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길거리에 진열되어 있는 현란한 상품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이웃집 에 사는 아무개가 나보다 더 좋 은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 마음을 빼앗습니다. 우리 가정의 문제가 내 마음을 빼앗습니다. 신문에 보도되고 있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내 마음을 빼앗습니다. 한 번 여러분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어느 것 하나 우리들의 마음을 빼앗 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들이 나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신 차리지 않 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에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이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취할 바가 아닙니다.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예, 깨 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자들의 말로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 들은 저들에 여러분들의 마음을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 지금까지 우리들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이 왜 저주의 땅이 되고 있는가를 생각 해 보았습니다. 원인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들이 마치 죄악의 길이 자신들이 걸어야 할 길인 줄 알고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5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 이 말씀이 기록 될 당시는 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과 유다 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선 나라였고 북이스라엘은 그렇지 못 하였습니다. 그래서 북이스라 엘을 닮지 말라고 유다를 향해서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 여기서 말하는 길갈 과 벧아왠은 북이스라엘 사람 들이 우상을 섬기는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이곳으로 가지 말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북이스라엘 이 걷는 길은 어떤 길입니까 그렇지요. 죄 된 길이고 저주의 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생각이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은 아니였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그것이 축복의 길이요 즐거운 길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실제 로 이것은 저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술에 취했고 음행 하는 일 에 빠져 있었습니다. 사치와 향락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런 저들을 향해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아니다 그 길은 저 주의 길이며 죄의 길이라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저들은 깨닫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주의 길 을 가는 사람은 자신이 저주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돌이킬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향해서 너희들은 제발 그 길로 가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다 그 것이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라 고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길이 아니라면 그 길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 길 로 간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가르쳐 준 길이 아니라면 발을 금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발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습니까 이 시간 곰곰이 내가 과연 걷고 있는 길은 어디를 향 하는 길인가를 생각해 보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3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이 땅의 장래가 어떻다고 말합 니까 예, 땅이 슬퍼하게 될 것이며 거기 거하는 사람이나 들짐승, 공중의 새, 바다의 고기가 쇠잔하고 없어지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즉, 그곳에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죽음을 맛볼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땅이 슬퍼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땅을 우리들은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저주 받은 땅이라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땅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요 1절에 있는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 고 있다는 것을 가정해 볼 때 그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를 하고 있던 가나안 땅을 말하고 있음을 쉽게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나 안 땅하면 생각이 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약속의 땅이 생각이 납니다. 젖 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 그렇습니다.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풍요로움의 상징 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가나안 땅을 정탐을 했을 때의 장면을 이 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민 13:21-27' 이에 그들이 올라가서 땅을 탐지하되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홉 에 이르렀고 또 남방으로 올라 가서 헤브론에 이르렀으니 헤브론은 애굽 소안보다 칠 년 전에 세운 곳이라 그 곳에 아 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 가 있었더라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 한 송이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취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포도송이를 벤 고로 그 곳을 에스골 골짜기 라 칭하였더라 사십 일 동안에 땅을 탐지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 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 에게 회보하고 그 땅 실과를 보이고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 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 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이 말씀은 이 땅의 풍요로움에 대해서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포도송이가 혼 자 들 수 없어서 두 사람이 막대기에 꾀어 들고 다닐 정도였다고 말 합니다. 이렇게 풍요로운 땅이 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땅이 어떻게 된다고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슬픔의 땅이 된다고 말합니다. 죽음의 땅이 된다 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 까요 무엇이 이런 풍요로운 땅 을 낙망의 땅으로 바꾸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2,3절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2,3절은 없는 것과 있는 것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없습니까 예, 진실이 없습니다. 인애가 없 습니다. 또 하나님을 아는 지 식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주가 있다고 말합니다. 사위가 있다 고 말합니다. 살인과 투절과 간음이 있다고 말합니다. 또 강포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피가 피를 뒤대이고 있다 고 말합니다. 즉, 피흘림이 지 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구절을 가만히 보십시오.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없습니까 뭔가 바뀌었다는 느 낌이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있어야 할 것은 없고 없어야 할 것은 있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진실이 있어야 했습니다. 인애가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없 어지고 말았습니다. 저주와 사 위 살인 투절 간음 이런 것들은 없어야 마땅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버 젓이 있습니다. 뒤바껴져 버린 것입니다. 뒤죽박죽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땅은 저주가 임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이 됩니다. 있어야 할 것이 없고 없어야 할 것이 있어질 때 문제가 발생을 합니다. 아담과 하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일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는 죄악은 없어야 마땅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의 말씀에 순종을 하는 것은 마땅히 있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뒤바뀌 고 만 것입니다. 있어야 할 것 이 없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들도 에 덴 동산에서 내어 쫓김을 당하 고 만 것입니다. 온 인류가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저주의 길로 들어서고 만 것입니다.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 을 보면 아담의 후예 답게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을 과감하게 없애 버리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없어야 할 것을 있 게 만들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얼마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지존파의 사건을 보 십시오. 인천 북구청의 사건을 보십시오. 이 사건의 주도적인 인물들이 모두 그렇게 살려 했습니다. 있어야 할 것은 헌신짝처럼 팽개쳐 버리고 없어 야 할 것을 고집하며 살아왔던 사람들입니다.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뒤죽박죽이 된 것이 많으면 많 을 수록 우리들은 점점 더 저주를 향해 달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러하였습니다. 저들 역시 이렇 게 있어야 할 것은 없애고 없애야 할 것일 있게 함으로 저주를 향해 달려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떠하십니까 혹 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저주를 자처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도 있어야 할 것은 없애 고 없애야 할 것은 있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과연 꼭 해야 할 것들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중에는 아 무도 이런 저주를 향해 달려가는 분은 없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 좀 더 말씀을 살펴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주를 향해 달려갔던 모 습을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음으로 6절 말씀을 보십시다. .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주를 향해 달려가게 되었다고 말하 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서 지식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 까요 많이 배워야 한다는 말일까요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많이 알 아야 한다는 말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들은 성경 퀴즈 대회에서 늘 일등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 까요 1절에 있는 말씀을 통하여 여기서 말하는 지식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자 1절에서는 무엇 이라 말하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무엇 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롬 1:21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 하며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지 만 그것으로 그분을 영화롭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지식이란 말은 이론 적인 것과 실제 를 겸비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예를 들어보십시다.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말을 아시죠 예, 여러분 들은 이 말을 다 알고 계실 것 입니다.
그렇다면 어느날 여러분이 쫄딱 망해 버렸다면 어떻게 해야죠 예, 감사해야 죠 욀까요 그렇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시기 때문에 가져가신 것이 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것은 무엇 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이론입니다. 그러나 쫄딱 망해도 감사하는 것은 무엇입니 까 그렇습니다. 실제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것을 안다고 가정을 해 보십시다. 아마 그 사람은 하나님은 사랑이예요 하 고 많은 사람들에게 말할 것입니다. 만약 주일학교 교사라면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치실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 분의 집에 화재가 나서 모든 것을 다 날려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이런 화제가 나 자 하나님을 원망하고 조롱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 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것입니다. 이론으로는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알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바 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그러했습니다. 저들은 이론으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알지 못하고 있었 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이 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떠합니까 혹 하나님을 이론으로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서 나는 하나님을 알고 있노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초신자들에게는 별로 없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 일 수록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많이 들어서 이론은 밝은데 실제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교회에서 제일 골치 앞 은 사람들이 이 사람들입니다. 이론이 밝아서 다 아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도 다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가 업습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에서 늘 걸림돌이 됩니다. 말로는 무엇이든 다 할 것 같은데 실제는 그렇 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스스로를 점검해 보십시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를. 번성할 수록 다음으로 나타나는 저들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7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 자 여기에 나타난 저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번성할 수록 어떻지요 예, 번성할 수록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호세아가 활동을 할 당시는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솔로몬 다음으로 번영을 하던 때였습니다. 모든 것들이 풍 족했었습니다. 국제적으로도 안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애굽과 앗수르와도 어깨를 견줄 정도로 부강한 나라가 되어 있 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바로 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점 더 타락의 길로 걷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신 들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영광을 돌릴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들의 부요함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저들이 저주받은 민족이 될 것이라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참사람의 마음은 이상합니다. 다급할 때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 도와 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다급한 일들이 다 해결이 되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겨날 정도가 되었습니다. 뒷간에 갈 때하고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도 하나님을 이처럼 섬기고 있지 않습 니까 여러분 잘 되면 어떠해 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렇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자신들의 힘으로 된 것인양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떠합 니까 이런 마음가짐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생각 은 하지 않고 마치 그것이 자 신의 능력으로 얻은 양 거기에 취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우리들이 취할 자세가 아닙니다. 제사장들의 죄 이스라엘의 죄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계속 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 여러분 이 8절의 말씀이 어떤 말씀처럼 보입니까 사실 잘 이해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자 이 구절을 이 해하기 위해서 하나씩 살펴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먼저 여기서 저희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자 이 저희들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저희들이 하는 일이 내 백성들의 속죄 제물을 먹습니다.
그렇다면 제사를 드린 제물을 먹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가 이것을 먹었죠 그렇습니다. 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저희는 다름 아닌 제사장들이라는 것 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제사장들이 백성들이 죄사함을 얻기 위해서 드린 제물을 먹으면서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백성들이 짖는 죄악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관심 은 어떤 관심일까요 백성들이 더 이상 죄를 짖지 말았으면 하는 관심일까요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요 이렇게 이 부분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 제사장들의 밥상이 풍성해 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 니까 그렇습니다. 백성들이 죄 를 많이 지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럴 수록 저들은 제사를 드리러 자주 올 것이고 그렇 게 되면 자신들이 더 많은 것을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이야기입니다. 자신들이 더 많은 것들을 먹기 위해서 백성들이 더 많은 죄를 지었으 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제사장들 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백성들의 죄를 사하는 제사를 드려 주는 사람들 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자신들이 비록 못 먹을 지라도 백성들이 죄를 짖지 않는 일에 관심을 갖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당시 제사장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사장이 이렇게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제사 장들이 이 정도라면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사실 백성들이 죄를 지어도 제사장은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여도 제사장은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 제사장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이 저주의 땅이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오늘날 종교적인 지도자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오늘날 많은 종교 지도자들도 이런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신앙 성숙을 위해서 땀흘리기보 다 자신의 안녕을 위해서 힘쓰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런 일은 종교 지도자들에게만 일 어나는 문제들일까요 저는 아니라 생각을 합니다. 우리들도 얼마든지 오늘 본문에 나 타나는 제사장들과 같은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여기 제사장들의 죄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남이 잘못되는 일을 통해 자신이 잘 되는 것입니다. 남이 배고픈 일을 통해 내가 배부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이 제사장 들처럼 남이 잘못되어서 배 부 르려고 하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보십시다. 여러분들이 문방구를 운영하고 있다고 가정 을 해 보십시다.
그런데 어느 날 바로 옆에 어떤 사람이 문방구를 또 차렸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 습니까 잘 되라고 개업식에 찾 아가셔서 축하를 해 주시겠습니까 물건을 진열하고 할 때 도움도 주고 하시겠습니까 혹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상대 방이 잘 않되기를 기대하지 않습니까 바로 이런 것들이 제사장들의 죄와 같은 것들이 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 우리 들이 취해야 할 삶의 자세가 아닙니다. 남이 배고파야 내가 살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오늘 제사장들도 그렇게 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고 있습니다. 마음을 빼앗김 또, 11절을 보시겠습니다. .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말하 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저 들의 마음을 빼앗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엇이 저들의 마음을 빼앗고 있습니 까 예, 음행과 묵은 포도주 또,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술과 음행에 빼앗겨져 버렸습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 이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있어야 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을 섬길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저들의 마음속에 온전히 하나님만을 채우고 살 것을 요 구하셨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마음을 하나님께가 아닌 음행과 술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빠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이렇게 행음하고 포도주 에 취했다고 하는 것 뒤에는 더 큰 죄악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는 음 행과 포도주는 당시 이방신들을 섬길 때 행하던 일들이었습니다. 당시 이방 신전에서 거행되는 제사에서 음행과 포도 주는 없어서는 않 될 중요한 것들이었습니다. 당시 이방신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의식 중에는 신전에 거하는 여인들과 육체적인 관계를 갖는 의식도 있었고 포도주를 먹고 즐기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음행과 포도주에 빠졌다는 것은 이런 의식에 매료되었다는 것입니다. 12절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12절을 읽습니다. . 나무를 향해 물었다는 것은 우상을 섬겼다는 것을 말합니다. 왜 그렇게 되었다고요 예, 음 란한 것들에 매료되어서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매료되었는가가 13,14절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13절을 읽습니다. . 이 말은 어디를 가든지 우상을 섬기는 것으로 가 득 찼다는 것입니다. 마치 유행 처럼 그렇게 전 이스라엘을 번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노래방이 잘 된다고 하니까 노 래 방이 곳곳에 생겼었습니다. 이번에는 단란 주점이 잘된다 하니까 곳곳에 생기는 것마다 단란 주점입니다. 바로 이 렇게 이스라엘 전역에 이방신을 섬기는 것들이 번지고 있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쉽게 이방신을 섬기는 것들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또 13절 하반절과 14절의 말씀을 보십시다. . 어떤 일들이 일어 났다고 말합니까 이스라엘 모 든 사람들이 음행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딸들이 음행을 합니다. 며느리들도 간음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벌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남편들도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온 이스라 엘이 이렇게 간음을 하고 있었 습니다. 마치 유행병이 번지는 것처럼 이 일들이 번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해 야 하는 마음을 간음을 하고 포 도주를 즐기면서 우상을 섬기는 일에 빼앗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땅을 저주의 땅 죽음의 땅이 되게 하시겠다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에는 무엇으로 가득차 있습 니까 혹 여러분들도 오늘 본문 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세상에 빼앗겨 있는 것은 아닙니까 세상의 즐거움에 여러분들 의 마음이 빼앗겨 있지는 않습 니까 이것은 우리의 취할 바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 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 다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이것은 내 마음에 하나님 아닌 다 른 것으로 채워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들의 마음이 빼앗겨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들의 마음을 빼앗는 것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우리들의 마음을 집중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길거리에 진열되어 있는 현란한 상품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이웃집 에 사는 아무개가 나보다 더 좋 은 집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 마음을 빼앗습니다. 우리 가정의 문제가 내 마음을 빼앗습니다. 신문에 보도되고 있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내 마음을 빼앗습니다. 한 번 여러분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어느 것 하나 우리들의 마음을 빼앗 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들이 나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신 차리지 않 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에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이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취할 바가 아닙니다.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예, 깨 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자들의 말로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 들은 저들에 여러분들의 마음을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 지금까지 우리들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이 왜 저주의 땅이 되고 있는가를 생각 해 보았습니다. 원인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들이 마치 죄악의 길이 자신들이 걸어야 할 길인 줄 알고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5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 이 말씀이 기록 될 당시는 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과 유다 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선 나라였고 북이스라엘은 그렇지 못 하였습니다. 그래서 북이스라 엘을 닮지 말라고 유다를 향해서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 여기서 말하는 길갈 과 벧아왠은 북이스라엘 사람 들이 우상을 섬기는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이곳으로 가지 말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북이스라엘 이 걷는 길은 어떤 길입니까 그렇지요. 죄 된 길이고 저주의 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생각이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은 아니였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그것이 축복의 길이요 즐거운 길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실제 로 이것은 저들에게 많은 즐거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술에 취했고 음행 하는 일 에 빠져 있었습니다. 사치와 향락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런 저들을 향해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아니다 그 길은 저 주의 길이며 죄의 길이라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저들은 깨닫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주의 길 을 가는 사람은 자신이 저주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돌이킬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향해서 너희들은 제발 그 길로 가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다 그 것이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라 고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길이 아니라면 그 길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 길 로 간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가르쳐 준 길이 아니라면 발을 금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발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습니까 이 시간 곰곰이 내가 과연 걷고 있는 길은 어디를 향 하는 길인가를 생각해 보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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