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5:13-6:3)

본문

허망한 일을 당한 한 여인의 이야기가 지난주 신문에 실렸습니다. 광주시 선암동에 살고 있는 이 여인은 91년 양 계장 일을 하다가 넘어져 목뼈가 서로 어긋나는 탈골 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을 해 수술 을 받았지만 완치가 되지 않아 하반신이 마비가 된 체 퇴원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수술 후 이 여인에게는 이상한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 작을 했습니다. 음식 삼키기도 힘들어 지고 밤새 코를 골기까지 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의 코고는 소리에 시끄러워 함께 잠자는 것을 불평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증세들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 져서 물조차 삼키기 어려워 졌고 한 달 전부터는 헛구역질과 함께 피고름이 넘어왔습니다. 이 여인은 편도에 염증이 생긴 것으로 판단을 하고 근처 의원 을 찾아갔다가 깜짝 놀랄 만한 진단을 받았습니다. 목에 거즈가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3년 전 수술 당시 목뼈와 기도 사이 살 속에 남겨진 거즈가 곪아 기도의 벽을 뚫고 삐져 나온 것이었습니다. 11일 백씨는 서울 여의도 성모 병원 에서 이물질과 고름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3년 전 자신을 수술한 의사와 병원을 상대 로 고소장을 광주 지검에 접수 를 시켰습니다. 얼마나 허망한 일입니까 지난 3년 동안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한 일이나 아이들에게 함께 잠을 잘 수 없다는 홀대를 받은 일, 통증으로 고생해야 했던 일, 이 모든 일들을 생각하면 허망하기 그지없는 것들일 것입니다. 모든 것을 믿고 자신을 내어 맡겼던 그 의사가 오히려 자신에게 3년 동안의 고통 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원망스러웠겠습니까 오늘 본문에도 바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5:13절을 읽습니다.  이 구절이 우리들에게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 습니다. 에브라임이나 유다가 자신들에게 치료해야 할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 합니까 그렇습니다. 앗수르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도움을 요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보 십시오. 치료함을 받을 수 있 었습니까 아닙니다. 치료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앗수르 왕은 저들의 상처를 낫게 할 수 없었습니다. 왜죠 그렇습니다. 이 문제는 저들이 치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였기 때문입니다. 이와 똑같은 경우가 신약 성경에도 기록되고 있습니다. [막 5:25-26]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 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여기에 보면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여기서 혈루증이란 하혈을 하는 병입니다.-고생 을 하는 여인이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어떻게 합니까 그렇습니다.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백 방으로 애를 씁니다. 이 의원을 찾아보기도 하고 저 의원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용하다는 소문만 있으면 행여나 자신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까 하여 다녀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떠하다고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괴로움만 당하고 있는 것을 다 허비하였다는 것입니다. 의사들에게 괴로움을 당하고 가진 재산도 다 허비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행 여나 자신을 도울 수 있을 것이 라고 찾아갔던 의사들이 오히려 자신에게 더 큰 괴로움을 주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내가 이 병 만 낳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지 하리라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소의 괴로움이 뒤따른다 하더라도 낫기만 한 다면 별문제가 없을 것이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런 경우가 별로 없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이 상한 치료법이 참 많았습니다. 제 아버님이 한 번은 허리를 다쳐서 고생을 하셨는데 여 러 가지 약을 다 써 보았지만 낫지를 않았습니다. 어디서 저희 어머님이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마른 인분을 다려 먹으 면 낫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 셔서 약에 쓰려고 마른 백사장을 돌아다니며 마른 인분을 줏던 생각이 납니다. 바로 이 이야기입니다. 이 여인이 자 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갖은 방법을 다 써 보았다는 것입니다. 갖은 고생을 다 해 보았지만 결국 아무 효험을 보 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반영해 주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을 살 아가는 우리들 역시 영적인 질 병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마 여기에 앉아 있는 여러분 역시 영혼의 질병을 안고 이 자리에 오셨을 것입니다. 치료받아야 할 그 무엇을 안고 이 자리에 앉아 계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슴이 답 답해서, 어떤 사람은 목이 뻣뻣 해서, 어떤 사람은 허리가 끊어질 것 같고,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말 할 수 없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은밀한 고통을 가지고 이 자리에 모이셨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치료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인 생의 고민 영혼의 고통 이 모 든 문제들을 어떻게 치료받고 싶으십니까 혹 여러분들도 허리를 다쳤던 그 여인처럼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처 럼 여러분들을 치료할 수 없는 그 어떤 것들에 여러분들을 내어 맡기면서 살아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우리들의 영혼의 문제는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치료할 수 없습니다. 문득문득 찾아 오는 인생의 공허함, 허망함, 이런 것들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우리들의 죄의 문제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세상 물질로도, 세상 명예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내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성공을 한 것처럼 보일 만큼 출세를 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이것들을 해결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은 우리들을 더욱 더 괴롭게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으로 볼 때 멋지게 성공을 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인 솔로몬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 1:2] 전도자가 가 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 1:3] 사람이 해 아래서 수 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전 2:11]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 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그렇습니다. 세상 그 어떤 것으로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바람을 잡으 려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히려 우리들을 괴롭게만 하는 그런 것입니다. 선지자의 초청 바로 오늘 본문은 이렇게 헛된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어리석은 인생들을 향한 선지자의 초청입니다.
1절 말씀 을 읽겠습니다.  우리 성경은 5:15절과 6:1절이 연결되면서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계하 며 돌아오는 이야기처럼 보여 집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 본문은 어리석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호세아 선지자의 권면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생각해 보십시다. 지금 호세아의 눈에는 무엇이 보입니까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길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 길은 너무나 자명한 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길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보이지가 않는 것입니다. 호세아에게는 너무나 분명한 길인데 이스라엘 백성 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길입니다. 그래서 엉뚱한 길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호세아는 지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때때로 저희 집 아이들이 다투는 것을 보면 웃음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둘 다 틀린 답을 가지고 서 로 옳다고 합니다. 서로 다투다 보면 싸움 일보 직전까지 갑니다. 결국은 그 문제를 제 게 가져와서 판결을 구합니다. 아빠 어느 것이 옳아요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둘 다 아닌데 서로 맞다고 하면서 제 판결을 기다리는 이 아이들 의 모습이요 바로 이것을 호세아 선지자가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틀린 답을 가지 고 맞다고 우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그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무슨 말입니까 그 렇습니다.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답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런 해답으로는 문제를 해 결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렇다면 해답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여호와께 돌아가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정답이라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호세아가 제시한 정답을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자 이 말씀이 전제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것이 바로 저들이 문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있어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있어야 할 바로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어려움이 따라옵니다. 남편은 남편으로서 있어야 할 자리가 있 고 아내는 아내로서 있어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으면 문제가 따르고 불편함이 따 릅니다. 힘들고 괴롭습니다. 마 찬가지입니다. 우리들도 영적으로 있어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어디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 앞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돌아가자는 것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혹 하나님 앞으로 돌 아가야 할 분은 없습니까 혹 이렇게 말씀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돌 아가다니요. 저는 지금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잖아요 이렇게 하나님 앞에 있는데 또 어디를 가란말 이예요 라고 말씀하실 분이 계 실지 모르겠습니다.
5:6절을 보십시다. . 이 말씀을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 들이 어떻게 할지라도요 예,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수많은 양 떼를 이끌고 나온다 하 더라도 소 떼를 이끌고 나온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저들을 만나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들이 제단 앞에 수많은 것들을 가지고 나왔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저들을 만나 주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왜요. 그렇습니다. 이미 저들의 삶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기 때 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이 이 자리에 앉아 있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겉 모습은 이 자리에 앉아 있을지 모르지만 실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과 상관없는 우리들일 수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경건의 모양 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모여 예배 하기도 하고, 봉사하기도 하고, 성경 공부를 하기도 하는 이 모든 일 들이 경건의 모양입니다. 그렇 다면 경건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나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드러나는 것을 말 합니다. 즉, 말씀에 순종된 나의 삶을 말하는 것이죠. 오늘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도 바로 이것입니다. 경건 의 모양은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까 이렇게 생겨나는 교회 에서 저각금씩 모여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이것 경건의 모양입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볼 수 있는 기도원 버스 들. 또 그 속에 타고 있는 수많 은 기도자들. 이들 역시 저각금씩 기도원을 찾아 부르짖는 사람들입니다. 이것 역시 경건의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 들이 세상 속에서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일까요 이것이 바로 경건의 능력입니다. 그리스도인하면 과연 존경의 대상이 되고 그래 뭐가 달라도 달라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이것이 경건의 능력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누구 못지 않게 경건의 모양은 잘 갖추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진정 경 건의 능력이 있습니까 우리들이 경건의 능력이 없다면 실은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서 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저 종 교적인 의식만 갖춘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모든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래서 경건의 능력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떻습니 까 혹 여러분들의 모습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는 것은 없습니까 여러분들의 마음이, 여러분들의 삶이 여러분들의, 행동이, 여러분들의 인격이 언어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지 않습니까 그렇 다면 우리는 이 선지자의 초청 에 응해야 합니다. 돌아서야 합니다. 함께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이 시간 여러분 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돌아가야 할 이유
그렇다면 왜 우리들이 여호와께 돌아가야 하겠습니까 계속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할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우리를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이 말씀을 가만 히 보십시오. 아마 우리 속담 하나가 생각나실 것입니다. 어떤 속담입니까 예,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들은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의 의미를 아실 것입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일을 망쳐 놓고 도와준다는 말입니다. 이 말 은 그렇게 좋은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말씀도 병 주고 약 준다는 그런 의미일까요 차라리 이런 말이 더 잘 어울 릴지 모르겠습니다. 귀한 자식 매 한대 더 때린다. 왜 매를 때립니까 그렇습니다. 잘되기 위해서 매를 때리지요. 사람되라고 매를 때리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왜 찢으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돌이키라고요. 그 자리는 네가 있어야 하는 자리가 아니니 돌이키라고 매를 드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잘 못을 알고 돌이키면 어떻게 하 시겠습니까 싸매어 주시는 것입니다. 치료해 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의 상처난 마음을 안고 주님께 돌 아가면 주님은 우리들을 치료해 주시고 싸매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종종 이런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종종 쓰라린 상처를 안고 주님 앞에 엎드립니다. 그리고는 나의 상처를 조용히 내밉니다. 그러면 주 님께서는 따사로운 손길로 저 를 싸매어 주시는 것을 느낍니다. 저를 꼭 껴안으시는 하나님이 느껴집니다. 그 때의 심정을 말로 잘 표현이 안됩니다.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넘쳐 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치료자이십니다. 여러분들의 상처를 싸매 주 시며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돌아가자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그렇 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수고로움이 있습니까 아픈 상처가 있습니까 주 님께 내어 맡기십시오. 주님 제 가 아픈데요 말씀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싸매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벙어리가 아니잖 아요
그렇다면 말씀하십시오. 여러분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분 앞에서 다 내려놓으십 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치료해 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여호와께 돌 아가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돌아가자는 권면 가운데 매우 의미 심장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2절 말씀 입니다. . 이 구절을 해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얼핏 보면 우리들은 이 구절에서 그리스도의 부활 의 사건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늘 이 본문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하는 것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칼빈은 이것을 이렇게 해석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틀 후 삼일에 일으키심을 받을 것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치료하실 때 즉시 치료하시는 것이 아니라 얼마간의 기간을 두고 치료해 나감으로 참고 인내하 라는 인내의 때라고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틀림없 이 치료해 주실 터이니까 그 치 료 기간을 견디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일반적으로 어떤 질병을 치료함에 있어서도 얼마간의 기간이 있지 않습니 까 바로 그와 같은 기간이 있으니 참고 견디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병을 치료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것은 우리들의 영혼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참고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어 이렇게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즉시 부활하시 지 않으셨습니다. 이틀 후 삼일 이라는 기간을 흑암 가운데 두셨습니다. 이틀 후 삼일이 지나자 그리스도를 일으키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을 치 료하심에도 이렇게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틀 동안 죽음의 가운데 계셨던 것을 바라보면서 인내하고 참으면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도 즉시 일어나시지 않으셨습니다. 얼마간의 기간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에게도 얼마간의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어떻게 하셔야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이 기 간 동안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2절 하반절 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사실 이 번역은 정확한 번역이라 할 수 없습니다. 정확한 번역은 우리가 그 앞에서 살자 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좀 기간이 걸린다 하더라도 기다리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의 자리를 지키자는 것입니다. 내가 있어 야 할 그 자리에 있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즉시 치료하실 능력이 없으셔 서 우리들을 기다리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즉시 우리들을 치료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그 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에게 때 때로 기다림의 세월들을 두십니다. 욀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이 기다림을 통해서 우리 들의 믿음이 영롱하게 빛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바로 이런 기다림의 세월을 통해 드러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나는 주님 께 돌아왔는데 왜 이렇게 기다림의 세월들이 있는가 말씀하지 마십시오. 그 기간을 두 신 이유는 여러분들의 믿음이 더욱더 영롱하게 빛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인내함으로 기다리십시오. 이런 기 다림의 세월 동안 오직 여호와 앞에 서서 여러분들의 믿음을 더욱더 영롱하게 빛낼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를 알자 호세아는 이런 권면을 하고난 후 이렇게 말합니다.
3절입니다. . 무엇을 권면하고 있습니 까 그렇습니다. 여호와를 알자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냥 알자가 아니고 힘써서 알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를 아는 일에 전심전력하자는 것입니다. 호세아는 이미 4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경고하면서 여호와를 알자고 권면한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도 바로 그 말씀입니다. 다시 이야기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가 여호와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 하는 지식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경험을 통해서 얻어지는 지식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을 경험해서 얻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의 차이점을 잘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하나님을 경험해서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기 서 말하는 알자는 권면은 어떤 권면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알자는 것입니다. 어 떻게 하든지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에 힘쓰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십시오.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먼저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가를 말씀을 통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이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 속에 나타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검토하 고 살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하나님을 아는 일이 끝나지 않습니다. 이제 한가지 가 더 남았습니다. 무엇입니 까 그렇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는 일입니다. 내가 검토하고 살핀 그 말씀대로 순종 하며 따라가는 일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처음부터 무턱대고 믿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것은 성경 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처음은 연구해 보아야 합니다.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난 다음 하나님이 이런 분이구나 깨달아지면 그 때는 무턱대고 따라나서는 믿음 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 성도들의 문제는 처음부터 무턱대고 따라나섭니다. 그래서 이단에게도 끌려가고 헛 소리에도 아멘 하고 화답합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 깨달아 지면 아멘 하시고 따라나서십시오. 그래야 온전한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믿음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권면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여호와를 아는 일에 얼마나 힘쓰 시고 계십니까 어떤 노력이 있습니까 힘써 여호와를 아는 일에는 중단이 없습니다. 이 일에 있어서는 목사도 예외 가 아닙니다. 저도 여러 해를 신학 공부를 하고 또 배웠지만 지금도 알아 가려 힘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 은 더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더 힘써야 하는 것 아닙니까 여호와를 아는 일에는 결코 중단이 없습니다. 특별한 어떤 사람만 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이 일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돌아가자 우리가 이렇게 여호와께 돌아가서 여호와를 힘써 알 때 어떤 결과가 있을까요
계속 3절을 읽습니다. . 우리들이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5:15절을 살펴보아 야 합니다. . 이 구절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지난 시간 말씀을 드렸죠 그렇습니다. 마치 사자가 자신의 굴 로 들어가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떠나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시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씀을 드렸 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제 여호와께로 돌아가서 힘써 여호와를 알고자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신다고 요 그렇습니다. 나오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예전과 같이 저들 중에 임하시겠다 고 말씀하십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나오십니까 예, 새벽빛 같이 일정하게 나타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혹시 추울 때 야외에 서 밤을 새워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렇게 춥고 어두운 밤을 새울 때 가장 기다려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새벽에 떠오르는 태양이 기다려집니다. 왜죠 예, 거기에는 따뜻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것이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알려 힘쓰는 자들에 게는 마치 아침 태양이 떠오르 면서 온기로 모든 만물을 감싸듯이 그렇게 하나님께서 따뜻함으로 우리들을 감싸며 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힘써 여호와를 구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에게도 바로 이와 같은 축복이 있 으실 것입니다. 또 어떻게 임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까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임 하시겠노라 고 말씀하십니다. 농사를 짖는 이스라엘에 있어서 비는 대단히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 이 비가 오지 않는 다면 농사는 결코 성공을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지방은 일년에 두 차례 농사를 시작을 할 때 내리는 이른 비와 농사를 끝마칠 때 내리는 늦은 비가 적절하게 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농사는 실패를 하고 맙니다. 그래서 농부는 비가 올 때 비가 오지 않으면 초조해 하고 답답해하다가 비가 오면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바로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메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그런 비와 같이 우리들의 인생을 촉촉이 적시는 그 런 분으로 나타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의 인생이 무미건조하지 않습니까 메말라 있지 않습 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구해 보십시오. 힘써 여호와를 알려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대지를 적시는 비처럼 그렇게 여러분들의 인생을 적 시면서 기쁨으로 다가오실 것입니다. 이렇게 새벽 빛 같은 하나님이 이른 비와 늦은 비와 같은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매일 의 삶에서 경험되기를 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220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