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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써 야훼를 알자 (호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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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쉽게 만날 수 있는 착각증세 . 그것은 자신이 많은 것을 알고있다고 지레 생각하는 것 입니다. 자신의 기억 속에 어떠한 사실들이 단지 남아있다고 해서 그것을 안다 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기억 속에 남아있으면서도 그것이 자신과 전혀 무관한 이름없는 모래알 처럼 흩뿌려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제 얼굴에 묻은 오물이 거울에 비쳐졌다해도 당연하게 뒤따르는 행동 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것은 무지(無知) 에 해당됩니다. 아는 것은 단지 기억하는 능력 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기꺼이 움직이게 하는 힘 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양의 상식을 가지고 있느냐 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이 얼마나 자신에게 책임있게 다루어지는지 가 중요한 사항 입니다. 유리관 속에 가두어 놓은 화려 하고 요란한 전시물들은 단지 전시물일 뿐, 그것이 잉크가 가득 들어있는 연필 한자루만 못한 경 우가 있습니다. 멀리 떠나있는 그리운 친구에게 글을 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보석함에 열쇠 채 워진 값진 만년필이 아닙니다. 쓸모있는 연필 한자루 가 있어야 합니다. 여백을 애절한 그리움으 로 매울 수 있는 것은 보석함 만년필이 아니라 이 흔해빠진 연필인 것입니다. 우리가 앎 대해서 말할 때 그것이 고상한 학문이나 지식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을 저버리는 것이라면, 어느 순간에 그 고상함을 향하여 쓸모없음 이라는 판정을 낼려야 하는 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현실적인 것은 언제나 옳은 것 이 라든지 쓰임새가 있어야 옳다 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것 이 정작 움직임으로 표현되어야 하는데도, 손 과 발로 그것을 중명해야 하는 순간에도 다락 속에 꼭꼭 그 고상한 것 들을 숨겨 놓는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앎 에는 그 만큼의 책임있는 걸음걸이가 포함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것은 앞서말한대로 알고 있지 못함(無知) 입니다. 얼룩 묻은 얼굴로 활보하면서 내 얼굴에 얼 룩묻었다는 사실을 잘 안다 고 소리치며 다니는 것과 다름 아닙니다. 오늘 읽은 성서는 우리에게 야훼 여호와 하나님을 알자 힘써 알자 고 말합니다. 안다는 것이 움직 이게 하는 힘 이라면, 야훼를 아는 것은 바로 그의 생각이 깃든 움직임 을 뜻하는 것입니다. 오 랜 시간동안 하나님 알기 에 대한 착각 속에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가 이러했다 저러했다는 많은 기억들을 가지고 살아가면서도 그 생각이 자신의 삶과 공동체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 대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그러한 경우가 사실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이라는 주제로 지적인 놀이 를 하고 있을 따름 인 것입니다. 그것은 이기적인 놀이 입니다. 마치 놀이가 끝나면 아무런 생각없이 놀이도구를 버 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모습입니다.
해질 무렵 그 아이가 쌓아놓은 모래성이 파도에 쓸려 사라지는 것처럼 그렇게 아무런 느낌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아는 것은 결코 이러한 호기심을 단지 자극하거나 무료한 마음을 달래는 놀이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철저하게 되돌아보면서 자신의 삶과 공동체 속에 뒤틀려지고 구부러진 것을 기꺼이 바로잡아가는 움직임 이 바로 알아가는 작업 입니다. 실로 아는 것은 농부의 호미질과도 같습니다. 씨를 뿌리면서 결실하는 결과를 짐작하면서도 풍요한 결실을 장담하며 다 아는 듯이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지금 땀흘리며 김을 매고 거름 을 주는 것을 알 따름이라고 말합니다. 결과를 성급하게 장담하지 않으면서 진지하게 지금 땀흘 리며 현재를 살아가는 것. 이와같이 묵묵하게 한걸음 씩만 내닫는 소걸음 농부의 모습에서 무서 우리 만큼 철저한 앎 의 현실을 볼 수 있습니다. 성서에 나타나는 야훼 하나님을 알자 그를 찾아가자 라는 말은 자신의 찢긴 현실, 구부러지 고 깨어진 현실을 바르게 깨우치는 것 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에 서 잘못되었는지를 깨달았을 때 각성과 전환의 기초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안다는 것은 이러한 깨달음과 책임있는 움직임의 전 과정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즉, 야훼를 힘써 아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만남의 일상을 회복하는 것 을 뜻합니다. 성서는 오늘 우리에게 말합니다. 땅에 발딛 고 서서 힘써 야훼 하나님을 알아가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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