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문지방(I) (겔47:1-5)
본문
에스겔 47장은 에스겔 선지자가 본 물의 환상에 관한 기록입니다. 확실히 이 환상은 신비하고 오묘한 환상 증의 하나입니다. 성전 문지 방에서 흘러 내리기 시작한 물이 점점 불어나서 결국은 건너지 못할 큰 강이 되었다는 것이 본문의 얘기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먼저 문지방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전 에 한국 집들은 한곁같이 문지방이 높았습니다. 서양식으로 주택구조 가 개량되기 전에는 대부분 문지방이 높아서 드나드는데 불편이 많았 습니다. 저는 그런 집에서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한마디로 성전 문지방 즉,교회의 문지방이 낮아야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불편스럽지 않게 드나들 수 있어야 합니다. 어른도 드나들 수 있어야 하고 애들도 드나 들 수 있어야 합니다. 잘 사는 사람도 드나들기에 편해야 하고 가난한 사람도 드나 들기에 편해야 합니다. 어떤 교회는 상류사회의 인사들만 모여 있기 때문에 춥고 배고픈 사람들은 드나들기가 어려운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잘못입니다. 어떤 교회는 자칭 가난한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가진 놈들은 원수들 이라는 적개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못 들어가는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잘못입니다. 어느 교회는 같은 지방 사람끼리만 똘똘 뭉쳐서 모이기 때문에 다 른 지방사람들이 들어가지 뭇하는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어떤 교회는 창설했던 몇몇 사람들이 중십이 되어 있기 때문에 다 른 사람들이 발 붙이지 못 하는 교회도 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잘못입니다.
어떤 교회는 학력수준이 높은 사람들끼리만 모억 있기 때문에 그외 사람들은 들어가지 못하는 교회도 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잘못입니다. 부흥하는 교회, 은혜스러운 교회는 문턱이 높아선 안 됩니다. 누 구나 마음 편하게 들어와서 주님을 만나고 가는 곳, 주님께 예배드리 고 가는 곳. 은 혜를 받고 위로를 받고 평안을 얻는 곳이 교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란 지방색이 있어도 안 되고 텃세가 있어도 안 되고 계급 의식이 있어도 안 되고 빈부의 차별이 있어도 안 되고 신분상 우열이나 차별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교회갈, 잘 사는 사람이 들어와서 못사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겸손해 야 하는 곳입니다. 많이 배운 사람이 배우지 못한 사람과 어깨를 나란 히 하고 예수에 관한 얘기를 주고 받는 곳이어야 합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과 악수를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의 문턱이 높다는 것은 그 교회가 폐쇄 적이어서 드나들기가 어 렵다는 얘기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자랑가운데 하나가 문지방이 낮다는 것입니다. 누구든 지 들어와서 주님을 만나고 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교회에 들어오시는 분들은 아주 평안한 마음으로 들 어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들어오실 때 아예 낮아질 각오와 동질화될 각오를 가지고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가령 하나넘의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통 령이라고 할지라도 교인대접 이상은 받을 생각을 아예 말아야 합니다. 미국 대통령 카터도 주일날 교회에 나가면 주일학교에서 아이들 을 가르치고 있 다고 합니다. 미국 대통령이 꿔가 아쉬워서 아이들을 가르치겠습니까 미국 대 통령도 교회에 나가면 교인 이고 주일학교 교사에 불과합니다. 저는 그 분의 신앙태도가 바로 민주적이고 신앙적이라고 생각 합니다. 내 신분이 무엇이건 내 직업이 무엇이건, 내 지위가 무엇이건 간에 하나님 앞에서는 다 같은 종이요 자녀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엔 특별석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 교회의 건축설계 자체가 민주적 설계입니다. 서로를 바라보면서 대등한 위치에서 주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부언해 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누구든지 일단 이 교회에 들어와서 교인으 로 등록을 하여 교인이 되고, 권찰이 되고, 교사가 되고, 성가대가 되 고. 청년회원이 되고, 집사가 되고. 권 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전도 사가 되고. 목사가 되었으면 이 교회는 내 교회. 내 살림, 내 문제' 라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제가 개인저으로 가장 싱어하는 한국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 름아닌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가서 살면서 한국을 욕하고 남의 나라 일처럼 떠벌리는 사람들입니다. 욕을 해도 이 땅 에 살면서, 욕을 먹어도 이 땅에 살면서. 두들겨 맞아도 이 땅에 살면서라면 심판이 없 습니다마는 남의 나라에 가서 제 나라 제 조국을 욕하는 것은 누워서 제 얼굴에 침는 것과 다를 바 없 습니다. 또한 저는 교회생활도 마찬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수 십년을 다녀도. 직분을 맡아도 이 교회안에 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문제들과 사건들을 남의 집 얘기하듯 하는 분 들이 있다면 그건 잘못입니다. 내 일이고 내 집안 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일 을 보듯이, 남의 말을 하 듯이, 자기 자신은 구경꾼인양 얘기하는 것은 결코 좋은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교회의 직분자들이 갖춰야 할 첫째 요건과 기본적 자세가 있다 면, 이 교회를 내 교회로 생각하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염려하고 함께 기도하는 태도입니다. 그런 사람들이라야 이 교회리 일꾼으로서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 성전 문지방에서 흘퍼내리는 물에 네하여 생각해 보 십시다.
1. 믈의 근원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절을 보면 '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7절을 보면 '나는 양의 문'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 습니다. 즉 주님은 생명의 문이십니다. 문지방 밑에서 둘이 흘러 내렸다는 것은 물의 근원이 주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그 사실을 요 한복음 4장 14절에서 주님이 친히 밝혀 주셨 습니다.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근원이십니다. 생명의 근원이시고, 낙원의 근원이시고, 축복의 근원이십니다. 백록 담을 근원으로하여 압꼭강 과 두만강이 흐르 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근 원으로 하여 우리의 삶은 영위되고 발전되는 것입니다.
2. 그 물은 흘러 내렸습니다. '동으로 흐르다가.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고 1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물은 연못이나 저수지의 물처럼 고여있지 않고 홀러 내렸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루살렘에만 머물지 않고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한 생수는 마른 땅을 적시면서 점점 앞 으로 흘러 내려 갔습니다. 역사란 퇴보하는 역사도 있고 앞으로 전진하는 역사도 있습니다. 교회도 뒤로 물러서는 교회가 있고 앞으로 전진해 나가는 교회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전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만일 복음의 물 결이 미국까지만 흘러 오다가 중단되어 버렸다면 한국 이 어떻게 되었 겠습니까 만일 복음운동이 한국에서 중단되어 버리면 어떻게 되겠 습니까 계 속 홀러야 합니다. 그래서 계속하여 개척 교회를 세워야 하고 선교사를 보내야 하고 약한 교회를 도와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특별히 선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헌금에도 참여해 시기 바랍니다. 동남아는 지금 여러 가지 정치적 사정 때문에 한국 선교사가 들어 가기가 어려워졌습니다만 인도네시아, 이갈, 인도, 방글레데시, 태국 등 얼마든지 우리 선교사들이 들어 갈 곳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도 같 은 경우 만일 평신도 선교사가 들어간다면 300-400$ 정 도면 들어가서 선교를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80년도에 동남아에도 우리 선교사가 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여기 에는 교우 여러분의 뜨거운 기도와 재정적 참여가 필요합니다.
3. 그 물은 점점 불어 났습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계속 흘러 내리면서 물은 점점 불어 났습니다. 본문을 보면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 내린 물이 점점 불어나고 있을 때 에스겔이 그 물을 건너 게 되었습니다. 발목에 올랐습니다. 일천 척 을 더 나갔을 때는 물이 무릎에 올랐습니다. 얼마 후 다시 건을 때는 허리가 차고 나증엔 헤엄을 치지 않으면 건널 수 없는 큰 강이 되 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5절 마지막을 보면 '세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고 했읍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뜻을 찾아 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말씀드린 대로 복음은 계속 뻗어나가되 점점 불어나고 확대 된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운동이 말하자면 슬며서 흘러 내리 던 복음의 생수가 결국은 건널 수 없을 만큼 큰 강을 이루고 전 세계 를 정복하고 말았습니다. 전세계 어느 곳이건 앞으 로는 복음의 강물 줄기가 뻗어 나가지 않는 곳이 없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한 사람의 신앙이 성장하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발 목이 물에 잠겼다는 것은 신앙의 초보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교회를 두발로 걸어서 드나들기만 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아직 다른 어떤 체험은 없습니다. 발목만 잠겼기 때문에 발목신앙 입니다, 주일이면 예배만 드리고 돌아가는 출석신앙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물은 점점 불어 납니다. 그래서 무릎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믈이 무릎에 오르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지를 걷어, 을려야 합니다. 조금 깊이 들어간 상태입니다. 교회를 위해 바지를 걷어 을리고 팔 을 걷고 일을 생각합니다. 약간 은혜를 체험하는 상태가 됩니다. 조금 더 나가면 물이 허리에 차게 됩니다. 허리에 차면 어떻게 됩니까 이 때야말로 물에 뜰락말 락하는 그런 상태입니다. 알 것 같기도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상태, 둥둥 뜨는 체험을 하는 때가 바로 이 때입니다. 물이 많아져서 건너지 못할 강이 되어 버럽니다. 여기에 신앙의 신 비가 있습니다. 예수는 깊히 믿을수록 더 깊어집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부족 하고 무능력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정말로 은혜의 세계에 깊이 들어 간 사람들은 성령님의 은혜만을 의지하고 겸손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 요 그것은 건널 수 없는 은혜의 강이 가로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 게 되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좋은 성도일수록 '주여 ! 나는 부 족합니다. 저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주 님이 도와주셔야 됩니다'라는 말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어설픈 은혜를 체험하고 나면 사람이 교 만 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이고 제일 은혜가 충만 한 사람이라는 착각을 하 게 됩니다만 깊은 은혜를 체험하면 내 힘으 로 건너서도 안 되고 건널 수도 없는 강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에 겸손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내 힘으로 건너지 못하는 강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발 견해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라는 찬송의 의 미는 바로 그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의 찬송 이라고 믿습니다. 물이 불어나 듯이 우리의 신앙은 점점 자라야 합니다. 점점 신앙의 깊은 경지로 들어가야 합니다. 수박 기 식의 신앙생을 청산하 시기 바랍니다. 땅을 깊이 파야 샘물이 나오 듯이 신앙 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놀라운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l) 우리의 발목이 은혜의 물에 잠겨야 합니다. 우리의 발이 은혜의 강물에 잠기게 되면 발로 범죄할 수가 없읍니다. 발로 가서는 안될 곳을 알게 됩니다. 밟아선 안 될 땅을 우리의 발 로 밟지 않제 됩니다. 출애 굽기 3장 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고 했습니다. 더 러운 신발, 부정한 신발을 벗으라는 뜻입니다.
(2) 무릎이 은훼의 강물에 잠겨야 합니다. 우린 혼히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럽니다. 특히 한국 사람의 습관은 단정하게 무릎 꿇고 기도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저들도 간절한 기도를 드릴 때는 무릎을 끓고 기도했습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자기를 낮춘다'는 뜻이 있습니다. 잘못을 빌 패는 무릎을 꿇고 빕니다. 내 무릎이 은혜 의 강물에 잠기면 기도의 무릎을 끓게 됩니다. 왜 시험이 옵니까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험당하고 고난당 하는 사람은 기도해야 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주 님은 말하셨습니다. 기도의 무릎이 은혜의 강물에 잠 겨야 합니다.
(3) 허리가 은혜의 강물에 잠겨야 합니다. 사실상 인체 증에 허리는 가장 요긴한 곳입니다. 중심 부분입니다. 허리뼈가 온전치 못하면 사람은 바로 서서 걸을 수가 없게 됩니다. 무 슨 뜻입니까 내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은혜의 강물에 잠겨야 합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은혜란 전 인체가 다 받아야 합니다. 입도 눈도 귀도 손도 발도 가슴도 돈주머니도 지식도 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참 은혜 가 됩니다.
(4) 은혜의 강물에서 헤엄쳐야 합니다. 이것은 온 몸이 잠기는 것을 말합니다. 입이 은혜를 받으면 말만 잘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눈 이 은혜를 받으면 좋은 것만 보려고 합니다. 내 인격 전체가 온전히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말씀드렸습니다만 설 익은 은혜,어설픈 은혜를 체 험하면 사람만 못 쓰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하던 사람은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쉬면 은 혜가 떠나버리 고 맙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십시다.
4. 강물이 흐르는 대로 에스겔은 따라갔습니다. 따라가면서 지켜 보았습니다. 따라간다는 것은 '믿는다'는 뜻과 '순종한다'는 뜻이 있읍니다. 진리는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역행하면 축복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사도요한이 밧모섬에 들어가 성령님의 감동으로 장차 세상 끝날에 될 일들 에 관하여 계시를 받은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요한이 계시를 받을 때 취한 행동을 주목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오라'하면 오고 '가라'하면 갔습니다. '들으라' 그러면 듣고 '기록하 라' 그러면 기록했습니다. 즉, 절대로 하라는 대로 했습니다. 만일 요한이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결정했더라면 하나님은 요한을 계시 전달자로 쓰시지 않으 셨을 것입니다. '찬송가 300장 1절은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늘 함께 하시리라.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교우 여러분 은혜의 강물에 역류하지 맙시다. 성령님을 거스리지 맙 시다. 순종합시다. 하나님의 은혜를 거스리면 유익이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과 맞서거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거스려서 하나님의 책망을 받는 사람이 없기를 기도드럽니다. 어떤 신학자는 '하나님 앞에 솔직히'란 책을 썼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 우린 믿음과 순종만을 보여드리고 내 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축복 받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다음 주일 계속해서 본문말을 나누기로 하겠습니다.
어떤 교회는 학력수준이 높은 사람들끼리만 모억 있기 때문에 그외 사람들은 들어가지 못하는 교회도 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잘못입니다. 부흥하는 교회, 은혜스러운 교회는 문턱이 높아선 안 됩니다. 누 구나 마음 편하게 들어와서 주님을 만나고 가는 곳, 주님께 예배드리 고 가는 곳. 은 혜를 받고 위로를 받고 평안을 얻는 곳이 교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란 지방색이 있어도 안 되고 텃세가 있어도 안 되고 계급 의식이 있어도 안 되고 빈부의 차별이 있어도 안 되고 신분상 우열이나 차별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교회갈, 잘 사는 사람이 들어와서 못사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겸손해 야 하는 곳입니다. 많이 배운 사람이 배우지 못한 사람과 어깨를 나란 히 하고 예수에 관한 얘기를 주고 받는 곳이어야 합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과 악수를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의 문턱이 높다는 것은 그 교회가 폐쇄 적이어서 드나들기가 어 렵다는 얘기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자랑가운데 하나가 문지방이 낮다는 것입니다. 누구든 지 들어와서 주님을 만나고 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교회에 들어오시는 분들은 아주 평안한 마음으로 들 어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들어오실 때 아예 낮아질 각오와 동질화될 각오를 가지고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가령 하나넘의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통 령이라고 할지라도 교인대접 이상은 받을 생각을 아예 말아야 합니다. 미국 대통령 카터도 주일날 교회에 나가면 주일학교에서 아이들 을 가르치고 있 다고 합니다. 미국 대통령이 꿔가 아쉬워서 아이들을 가르치겠습니까 미국 대 통령도 교회에 나가면 교인 이고 주일학교 교사에 불과합니다. 저는 그 분의 신앙태도가 바로 민주적이고 신앙적이라고 생각 합니다. 내 신분이 무엇이건 내 직업이 무엇이건, 내 지위가 무엇이건 간에 하나님 앞에서는 다 같은 종이요 자녀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엔 특별석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 교회의 건축설계 자체가 민주적 설계입니다. 서로를 바라보면서 대등한 위치에서 주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부언해 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누구든지 일단 이 교회에 들어와서 교인으 로 등록을 하여 교인이 되고, 권찰이 되고, 교사가 되고, 성가대가 되 고. 청년회원이 되고, 집사가 되고. 권 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전도 사가 되고. 목사가 되었으면 이 교회는 내 교회. 내 살림, 내 문제' 라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제가 개인저으로 가장 싱어하는 한국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 름아닌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가서 살면서 한국을 욕하고 남의 나라 일처럼 떠벌리는 사람들입니다. 욕을 해도 이 땅 에 살면서, 욕을 먹어도 이 땅에 살면서. 두들겨 맞아도 이 땅에 살면서라면 심판이 없 습니다마는 남의 나라에 가서 제 나라 제 조국을 욕하는 것은 누워서 제 얼굴에 침는 것과 다를 바 없 습니다. 또한 저는 교회생활도 마찬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수 십년을 다녀도. 직분을 맡아도 이 교회안에 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문제들과 사건들을 남의 집 얘기하듯 하는 분 들이 있다면 그건 잘못입니다. 내 일이고 내 집안 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일 을 보듯이, 남의 말을 하 듯이, 자기 자신은 구경꾼인양 얘기하는 것은 결코 좋은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교회의 직분자들이 갖춰야 할 첫째 요건과 기본적 자세가 있다 면, 이 교회를 내 교회로 생각하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염려하고 함께 기도하는 태도입니다. 그런 사람들이라야 이 교회리 일꾼으로서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 성전 문지방에서 흘퍼내리는 물에 네하여 생각해 보 십시다.
1. 믈의 근원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절을 보면 '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7절을 보면 '나는 양의 문'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 습니다. 즉 주님은 생명의 문이십니다. 문지방 밑에서 둘이 흘러 내렸다는 것은 물의 근원이 주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그 사실을 요 한복음 4장 14절에서 주님이 친히 밝혀 주셨 습니다.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근원이십니다. 생명의 근원이시고, 낙원의 근원이시고, 축복의 근원이십니다. 백록 담을 근원으로하여 압꼭강 과 두만강이 흐르 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근 원으로 하여 우리의 삶은 영위되고 발전되는 것입니다.
2. 그 물은 흘러 내렸습니다. '동으로 흐르다가.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고 1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물은 연못이나 저수지의 물처럼 고여있지 않고 홀러 내렸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루살렘에만 머물지 않고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한 생수는 마른 땅을 적시면서 점점 앞 으로 흘러 내려 갔습니다. 역사란 퇴보하는 역사도 있고 앞으로 전진하는 역사도 있습니다. 교회도 뒤로 물러서는 교회가 있고 앞으로 전진해 나가는 교회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전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만일 복음의 물 결이 미국까지만 흘러 오다가 중단되어 버렸다면 한국 이 어떻게 되었 겠습니까 만일 복음운동이 한국에서 중단되어 버리면 어떻게 되겠 습니까 계 속 홀러야 합니다. 그래서 계속하여 개척 교회를 세워야 하고 선교사를 보내야 하고 약한 교회를 도와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특별히 선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헌금에도 참여해 시기 바랍니다. 동남아는 지금 여러 가지 정치적 사정 때문에 한국 선교사가 들어 가기가 어려워졌습니다만 인도네시아, 이갈, 인도, 방글레데시, 태국 등 얼마든지 우리 선교사들이 들어 갈 곳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도 같 은 경우 만일 평신도 선교사가 들어간다면 300-400$ 정 도면 들어가서 선교를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80년도에 동남아에도 우리 선교사가 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여기 에는 교우 여러분의 뜨거운 기도와 재정적 참여가 필요합니다.
3. 그 물은 점점 불어 났습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계속 흘러 내리면서 물은 점점 불어 났습니다. 본문을 보면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 내린 물이 점점 불어나고 있을 때 에스겔이 그 물을 건너 게 되었습니다. 발목에 올랐습니다. 일천 척 을 더 나갔을 때는 물이 무릎에 올랐습니다. 얼마 후 다시 건을 때는 허리가 차고 나증엔 헤엄을 치지 않으면 건널 수 없는 큰 강이 되 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5절 마지막을 보면 '세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고 했읍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뜻을 찾아 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말씀드린 대로 복음은 계속 뻗어나가되 점점 불어나고 확대 된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운동이 말하자면 슬며서 흘러 내리 던 복음의 생수가 결국은 건널 수 없을 만큼 큰 강을 이루고 전 세계 를 정복하고 말았습니다. 전세계 어느 곳이건 앞으 로는 복음의 강물 줄기가 뻗어 나가지 않는 곳이 없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한 사람의 신앙이 성장하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발 목이 물에 잠겼다는 것은 신앙의 초보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교회를 두발로 걸어서 드나들기만 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아직 다른 어떤 체험은 없습니다. 발목만 잠겼기 때문에 발목신앙 입니다, 주일이면 예배만 드리고 돌아가는 출석신앙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물은 점점 불어 납니다. 그래서 무릎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믈이 무릎에 오르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지를 걷어, 을려야 합니다. 조금 깊이 들어간 상태입니다. 교회를 위해 바지를 걷어 을리고 팔 을 걷고 일을 생각합니다. 약간 은혜를 체험하는 상태가 됩니다. 조금 더 나가면 물이 허리에 차게 됩니다. 허리에 차면 어떻게 됩니까 이 때야말로 물에 뜰락말 락하는 그런 상태입니다. 알 것 같기도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상태, 둥둥 뜨는 체험을 하는 때가 바로 이 때입니다. 물이 많아져서 건너지 못할 강이 되어 버럽니다. 여기에 신앙의 신 비가 있습니다. 예수는 깊히 믿을수록 더 깊어집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부족 하고 무능력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정말로 은혜의 세계에 깊이 들어 간 사람들은 성령님의 은혜만을 의지하고 겸손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 요 그것은 건널 수 없는 은혜의 강이 가로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 게 되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좋은 성도일수록 '주여 ! 나는 부 족합니다. 저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주 님이 도와주셔야 됩니다'라는 말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어설픈 은혜를 체험하고 나면 사람이 교 만 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이고 제일 은혜가 충만 한 사람이라는 착각을 하 게 됩니다만 깊은 은혜를 체험하면 내 힘으 로 건너서도 안 되고 건널 수도 없는 강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에 겸손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내 힘으로 건너지 못하는 강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발 견해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라는 찬송의 의 미는 바로 그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의 찬송 이라고 믿습니다. 물이 불어나 듯이 우리의 신앙은 점점 자라야 합니다. 점점 신앙의 깊은 경지로 들어가야 합니다. 수박 기 식의 신앙생을 청산하 시기 바랍니다. 땅을 깊이 파야 샘물이 나오 듯이 신앙 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놀라운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l) 우리의 발목이 은혜의 물에 잠겨야 합니다. 우리의 발이 은혜의 강물에 잠기게 되면 발로 범죄할 수가 없읍니다. 발로 가서는 안될 곳을 알게 됩니다. 밟아선 안 될 땅을 우리의 발 로 밟지 않제 됩니다. 출애 굽기 3장 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고 했습니다. 더 러운 신발, 부정한 신발을 벗으라는 뜻입니다.
(2) 무릎이 은훼의 강물에 잠겨야 합니다. 우린 혼히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럽니다. 특히 한국 사람의 습관은 단정하게 무릎 꿇고 기도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저들도 간절한 기도를 드릴 때는 무릎을 끓고 기도했습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자기를 낮춘다'는 뜻이 있습니다. 잘못을 빌 패는 무릎을 꿇고 빕니다. 내 무릎이 은혜 의 강물에 잠기면 기도의 무릎을 끓게 됩니다. 왜 시험이 옵니까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험당하고 고난당 하는 사람은 기도해야 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주 님은 말하셨습니다. 기도의 무릎이 은혜의 강물에 잠 겨야 합니다.
(3) 허리가 은혜의 강물에 잠겨야 합니다. 사실상 인체 증에 허리는 가장 요긴한 곳입니다. 중심 부분입니다. 허리뼈가 온전치 못하면 사람은 바로 서서 걸을 수가 없게 됩니다. 무 슨 뜻입니까 내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은혜의 강물에 잠겨야 합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은혜란 전 인체가 다 받아야 합니다. 입도 눈도 귀도 손도 발도 가슴도 돈주머니도 지식도 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참 은혜 가 됩니다.
(4) 은혜의 강물에서 헤엄쳐야 합니다. 이것은 온 몸이 잠기는 것을 말합니다. 입이 은혜를 받으면 말만 잘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눈 이 은혜를 받으면 좋은 것만 보려고 합니다. 내 인격 전체가 온전히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말씀드렸습니다만 설 익은 은혜,어설픈 은혜를 체 험하면 사람만 못 쓰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하던 사람은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쉬면 은 혜가 떠나버리 고 맙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십시다.
4. 강물이 흐르는 대로 에스겔은 따라갔습니다. 따라가면서 지켜 보았습니다. 따라간다는 것은 '믿는다'는 뜻과 '순종한다'는 뜻이 있읍니다. 진리는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역행하면 축복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사도요한이 밧모섬에 들어가 성령님의 감동으로 장차 세상 끝날에 될 일들 에 관하여 계시를 받은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요한이 계시를 받을 때 취한 행동을 주목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오라'하면 오고 '가라'하면 갔습니다. '들으라' 그러면 듣고 '기록하 라' 그러면 기록했습니다. 즉, 절대로 하라는 대로 했습니다. 만일 요한이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결정했더라면 하나님은 요한을 계시 전달자로 쓰시지 않으 셨을 것입니다. '찬송가 300장 1절은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늘 함께 하시리라.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교우 여러분 은혜의 강물에 역류하지 맙시다. 성령님을 거스리지 맙 시다. 순종합시다. 하나님의 은혜를 거스리면 유익이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과 맞서거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거스려서 하나님의 책망을 받는 사람이 없기를 기도드럽니다. 어떤 신학자는 '하나님 앞에 솔직히'란 책을 썼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 우린 믿음과 순종만을 보여드리고 내 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축복 받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다음 주일 계속해서 본문말을 나누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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