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훼 하나님의 웃음 (렘44:16)
본문
당신이 야훼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한 말을 우리는 듣지 않겠소. 너무도 분명한 사실인데도 못보거나 듣지 못했다면, 눈이 없어 못보거나 귀가 없어 듣지 못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스스로 귀막고 눈멀어 너무도 생생하고 자명한 사실을 끝내 알아차리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눈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며 오히려 온전하여 바르게 보고있다고 우겨 대며, 바로 듣고 있다는 억지를 세워 스스로를 변호하려 든다면 이것이야 말로 커다란 문제가 됩니다. 이러한 어리석은 억지가 깊이에서 부터 삶을 엉켜들게 하는데도, 그래서 깊은 절망의 수렁에 발 을 이미 들여논 행세가 되었는데도 이기적인 반역의 행태가 전혀 문제 될것 없다는 생각이 가득한 모양입니다. 파라오의 사슬에서 해방된 경험을 갖고 있는 이스라엘이 바로 그러한 형상을 하고 있었 습니다.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스라엘의 해방에 함께하신 야훼 하나님은 웃으셨습니다. 야훼 이름으로 우리에게 한 말을 듣지 않겠소 우리의 판단에는 잘못이라고는 없소 언제나 우리의 지헤로운 판단은 우리에게 풍요의 결과만을 주었을 뿐이고, 언제나 옳았소. 야훼 누구 다 부질 없소! 조상들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 선택한 神들 중에 하나 였을 뿐이고, 우리는 우리의 뜻에 따라 우리의 풍요를 선택했을 따름 ! 그들을 파라오의 사슬에서 풀어주어 해방의 민족을 이루어 살게하신 야훼는 어이가 없고 가소로와 또한번 웃으셨습니다. 그들의 선택이 무얼 의미하는지 너무나 분명했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눈멀고 귀 먹었으니까 말입니다. 예전에 그들이 원치 않았지만 그들의 몸이 파라오의 노예되어 묶여 있었으나 해방을 갈망하였고 결국 야훼 하나님의 해방의 손길이 함께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풍요를 따라 스스로를 정신적-물질적인 노예로 만들어 버림으로 결국 그들의 전부가 애굽의 사고방식에 구 속되어 버린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전부를 풍요의 노예가 되어버리고도록 내어주고도, 진정한 해방의 기쁨을 모두 빛 바랜 이야기 정도로 만들어 버리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그들은 무언가를 얻은듯 하였으나 사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것이란걸 알아차리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자기 현실에 대해 양손을 가로저어 아니 라고 말하면서, 어찌 이렇게 까지 되었는가 고 아무도 묻지 않았던것입니다. 다만 알량한 자신들의 판단이 옳았다는 말만을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그러나 어처구니 없는 행태가 어디 그 시절 그 사람들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이겠습니까. 눈멀고 귀 먹은 억지의 현실은 오늘을 살아가는 예수의 사람 이라 불리우는 이들에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따름 의 현실을 아주 이기적인 범주에 규정지어 놓고 단지 자신의 어떠 어떠한 경우, 어떠한 부분에 대해서만 자신의 인격이나 삶과는 무관한 어떤 동의 문서 를 단지 편지로 발송하듯 했을 뿐, 그것이 어떠한 효력을 가져오리란 기대는 애초 갖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도 기대하지 않는 신앙고백이 어느 누구에게 어떠한 영향력이 되겠 습니까 결국 스스로 귀먹고 눈먼 걸음으로 띠 엄 띠엄 할 뿐입니다. 오늘을 기독자(基督者)로 살아간다는 것 이 무얼 뜻하는지 찬찬히 살피어볼 일입니다. 그리스도 인으로 산다는 것에 아무런 기대도 두지 않는 행태로 덤덤하게 서있을 뿐이라면, 그리고,단지 먹고 즐기고 누리는 일 에, 어떤 자기 성취욕 에 기대어 살 뿐이라면, 야훼 하나님은, 아들의 목숨을 던 져 우릴 사랑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가슴이 아프도록 어처구니가 없어 하실 것입니다. 어찌된 사랑 인지 , 모든 것을 다 던져 표현하신 두렵도록 장엄한 사랑 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오늘도 우리에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 몇번이라도 다시 말씀하실 것입니다. 오늘을 기독자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심각하게 다시 물어보고, 우리의 만남을 다시 진지하게 엮어내야할 일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눈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며 오히려 온전하여 바르게 보고있다고 우겨 대며, 바로 듣고 있다는 억지를 세워 스스로를 변호하려 든다면 이것이야 말로 커다란 문제가 됩니다. 이러한 어리석은 억지가 깊이에서 부터 삶을 엉켜들게 하는데도, 그래서 깊은 절망의 수렁에 발 을 이미 들여논 행세가 되었는데도 이기적인 반역의 행태가 전혀 문제 될것 없다는 생각이 가득한 모양입니다. 파라오의 사슬에서 해방된 경험을 갖고 있는 이스라엘이 바로 그러한 형상을 하고 있었 습니다.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스라엘의 해방에 함께하신 야훼 하나님은 웃으셨습니다. 야훼 이름으로 우리에게 한 말을 듣지 않겠소 우리의 판단에는 잘못이라고는 없소 언제나 우리의 지헤로운 판단은 우리에게 풍요의 결과만을 주었을 뿐이고, 언제나 옳았소. 야훼 누구 다 부질 없소! 조상들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 선택한 神들 중에 하나 였을 뿐이고, 우리는 우리의 뜻에 따라 우리의 풍요를 선택했을 따름 ! 그들을 파라오의 사슬에서 풀어주어 해방의 민족을 이루어 살게하신 야훼는 어이가 없고 가소로와 또한번 웃으셨습니다. 그들의 선택이 무얼 의미하는지 너무나 분명했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눈멀고 귀 먹었으니까 말입니다. 예전에 그들이 원치 않았지만 그들의 몸이 파라오의 노예되어 묶여 있었으나 해방을 갈망하였고 결국 야훼 하나님의 해방의 손길이 함께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풍요를 따라 스스로를 정신적-물질적인 노예로 만들어 버림으로 결국 그들의 전부가 애굽의 사고방식에 구 속되어 버린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전부를 풍요의 노예가 되어버리고도록 내어주고도, 진정한 해방의 기쁨을 모두 빛 바랜 이야기 정도로 만들어 버리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그들은 무언가를 얻은듯 하였으나 사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것이란걸 알아차리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자기 현실에 대해 양손을 가로저어 아니 라고 말하면서, 어찌 이렇게 까지 되었는가 고 아무도 묻지 않았던것입니다. 다만 알량한 자신들의 판단이 옳았다는 말만을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그러나 어처구니 없는 행태가 어디 그 시절 그 사람들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이겠습니까. 눈멀고 귀 먹은 억지의 현실은 오늘을 살아가는 예수의 사람 이라 불리우는 이들에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따름 의 현실을 아주 이기적인 범주에 규정지어 놓고 단지 자신의 어떠 어떠한 경우, 어떠한 부분에 대해서만 자신의 인격이나 삶과는 무관한 어떤 동의 문서 를 단지 편지로 발송하듯 했을 뿐, 그것이 어떠한 효력을 가져오리란 기대는 애초 갖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도 기대하지 않는 신앙고백이 어느 누구에게 어떠한 영향력이 되겠 습니까 결국 스스로 귀먹고 눈먼 걸음으로 띠 엄 띠엄 할 뿐입니다. 오늘을 기독자(基督者)로 살아간다는 것 이 무얼 뜻하는지 찬찬히 살피어볼 일입니다. 그리스도 인으로 산다는 것에 아무런 기대도 두지 않는 행태로 덤덤하게 서있을 뿐이라면, 그리고,단지 먹고 즐기고 누리는 일 에, 어떤 자기 성취욕 에 기대어 살 뿐이라면, 야훼 하나님은, 아들의 목숨을 던 져 우릴 사랑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가슴이 아프도록 어처구니가 없어 하실 것입니다. 어찌된 사랑 인지 , 모든 것을 다 던져 표현하신 두렵도록 장엄한 사랑 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오늘도 우리에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 몇번이라도 다시 말씀하실 것입니다. 오늘을 기독자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심각하게 다시 물어보고, 우리의 만남을 다시 진지하게 엮어내야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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