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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를 부르신 하나님 (렘1:1-10)

본문

이 주부터 예레미야서를 우리가 함께 묵상하고 또 말씀을 상고하는 과정을 통해 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나누어 드린 유인물을 보면 예레미야 및 그 동시대인들에 대해서 시대적인 배경과 또 그 시대에 함께 사역했던 선지자들과 그리고 왕들에 대해서 그리고 사건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도표를 만든 것이 있습니다. 그 것으로써 예레미야가 활동했던 시대적 배경을 대략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왕조가 멸망 당하기 약 40년 전부터 멸망 당할 때까지 선지자 로서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유다 왕조가 바벨로니아에 의해 완전 히 멸망 당할 때까지 마지막 시대를 사역의 시기로 삼고 있었던 선지자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예레미야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라 불리울 정도로 국 가와 민족이 망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회개할 줄 모르고 끝까지 하나님 앞에 패역 하면서 멸망을 자초해 가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 뿌려 기도하며 말씀을 증거했던 선지자가 바로 예레미야 선지자였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말씀을 상고하는 과정에서 다루게 되겠습니다마는 그의 일생은 참으로 대접을 받기보다는 질시와 배척을 받았고, 같은 민족에게 회개를 촉구하다가 많은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도 그의 일생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나라가 망한 다음에 애굽으로 피신을 가고, 그래서 애굽에서 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서 말씀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음을 당하는 그와 같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의 카이로 근방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의 사역은 참으로 어려 운 사역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절박한 시대적 상황 가운데서 눈물 뿌려 말씀을 증거했던 예 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대에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들려 주 시는가에 대해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실질적으로 보면, 이와 같은 선지자들이 출현하는 시대를 보면, 대부분 다 특징이 있습니다. 그 선지자들이 나타나는 시대의 특징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시대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백성들이나 지도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방황함으로 말미암아 위기에 처할 때 선지자들이 출현하여 그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는 것이 선지자들의 사명인 것입니다.
특별히 예레미야 시대에 가장 위기의 상황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지도자와 백성 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그 사실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게 자기 나름대로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무지함, 영적인 무감각의 시대가 바로 예레미야가 활동했던 시대였습니다. 사실 이 예레미야서를 보면서 우리는, 바로 오늘 우리의 시대가 얼마나 영적으 로 혼돈된 시대이고, 또한 우리가 얼마만큼 무감각한 시대에 살고 있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로서 하나님에 대해 예민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에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이 시대가 악하기 때문에 너희는 세월을 아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라고 말씀을 해 주셨 습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세의 증상인 세상 사는 삶에 마음을 빼앗기고 살아 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봅니다. 오늘 새벽기도 시간에도 잠깐 말씀드렸습니다만, 사람들이 살아 가면서 자기 나름대로는 전부 특별하게 의미있게 산다고 생각하고 살아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객관적으로 옆에서 지켜보면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사람 사는 모습이 다 거 기서 거기인 그러한 삶을 살다가 인생을 마감하는 모습들을 우리는 보게 되고, 그 모습이 바로 내게서도 나타나게 됨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들의 영적 상태를 보면, 우리 나름대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들 스스로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에는 예민하지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나름 대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한다고 하면서도, 사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하여, 그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하여 애쓰는 모습들은, 그 흔적들 은 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세상의 삶을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는지 모릅니다. 그것을 위해선 얼마나 예민한지 모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얼마나 열심을 내는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실상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삶, 마지막 심판대 앞에 섰 을 때, 하나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잘했다고 칭찬하실 그러한 삶을 위해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한 그러한 삶을 위해서는 우리가 얼 마나 열심을 내고 있고 수고하고 있는지를 돌이켜 볼 때, 우리는 오늘 이 시대를 살 아 가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에서 역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에 있어 예민하지 못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 정말 할 일이 많지마는 이 날을 지켜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겠다고 모인 저와 여러분들조차도 이 시대를 얼마나 분별하고 있습니까 또한 우리는 오늘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 인가에 대해서는,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 어떠한 방법인지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은 관심과 애착과 수고가 없음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가운데에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예레미야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고 사명을 받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 임하셨습니다.
4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고 되어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예레미야가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선 지자로 세우시기 위하여 예레미야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러고난 다음 하시는 말씀이, 5절에 보니,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라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너가 이 세상에 생명으로 태어나기 전부터 내가 너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이지요. 그 다음에 계속하시기를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다 고 하셨습니다. 기가 막히는 말씀입니다.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는 너를 벌써 알았고, 너를 구별하였고, 이미 너를 선지자로 세웠다. 내 인생은 내것이 아니예요. 내 인생이라고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 제 제가 어느 결혼식에 갔다 오면서, 어느 집사님과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직장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니, 그분이 지금 하시는 일은 그분이 전공한 분야가 아닌 엉뚱 한 분야였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웃었습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 전공한 일조차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어요. 살다 보면 이상하게 어떤 다른 일을 하고 있 잖아요 사람 사는 것이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 의 인생에 대해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이미 우리를 택하셨다고 했습니다.
 에베소 1장에도 보면, 창세 전에 내가 너를 택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만들기 전에 이미 우리를 택했다고 했습니다. 오늘 예레미야에게 찾아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너를 구별하였고 선지자로 세 웠다. 믿거나 말거나에요. 그 다음 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했고 6절에 보니 이 사명을 받은 예레미야가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면 내가 가로대 슬프도소이다. 그러면서 뭐라 말 합니까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어린아이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뭐라고 말씀 해요 너는 아이라고 말하지 말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내가 네게 무엇을 말하든지 너는 말하라. 네가 그 일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부딪치는 어떤 세 력들 때문에, 어떤 사람들로 인해서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원할 것이고, 내 가 너와 함께 할 것이고, 내가 너에게 할 일을 말해 주겠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9절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하나님께서 그 손을 예레미야 입에 대시며,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노라. 네가 가서 이스라 엘 백성을 향해 전해야 될 말을 내가 네 입에 둔다. 하는 그런 상징적 의미로 입술 에다 손을 대셨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10절에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 앞으로 예레미야가 해야 될 사역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이 본문을 통해서 한 가지 기억할 것은 뭐냐 그건 바로 우리의 소명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엘리사 선지자는 부름 받을 때 뭐하고 있다가 부름 받았습니까 밭에서 소를 끌고 밭을 갈고 있다가, 에스겔은 뽕밭에서 뽕을 따며 일 을 하고 있다가 부름 받았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는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다가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부르는 방법은 매우 다양합니다. 그러나 똑 같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셨고 때가 되매 그분께서 찾아 오셨고 부르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부르심의 방법은 다양 합니다. 오늘 우리들을 향해서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역시 부르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 에게는 사업이 망하는 그 경제적인 고통 때문에 하나님의 그 부르심에 응답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질병으로 고통 가운데 누워 있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 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나가는 사람이 전도하는 그 한 마디에 주님의 부름에 응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면서부터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주님을 영접하고 부름에 응답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죄로 말 미암아 고민하다가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 주님을 찾게 되는 사람도 있고요. 어떤 사람은 자기 생명의 위협과 두려움 때문에 주님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초보 단계에서는 내가 주님을 찾는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찾아서 교회에 나온 것으 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해 놓으셨고 그 택하신 자를 때가 되매 찾아 부르신 그 부르심을 받고, 부르심에 마음의 감동을 받습니다.
에베소 서 2장에 보니까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은 너희의 행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은혜로 된 것이라. 그리고 이 은혜는 선물이라 그랬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어요. 그래서 그 전에는 수없이 들었지만 그 말이 내게 와서 닿지를 않았어요. 그 전에는 여러 가지 방법으 로 하나님에 대해 들었지만 내게 어필이 되질 않았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때가 되 매 그에게 은혜를 주시면, 그 마음에 믿음을 주시면, 그 믿음을 통해서 그 부르심에 대해 깨달음을 갖게 되고 응답을 하게 됩니다. 하여간 내가 생각하면 내가 하나님을 믿어야 겠구나, 내가 교회에 나가야 겠구나, 그래서 내가 교회에 나온 것 같지만 실 상은 뭐예요 여러분 에베소서 1장 3절에서 7절까지 봉독해 봅시다. 다음 2장 8절을 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셔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을 받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반응이 뭡니까 아! 교회를 나가야 겠구나, 아! 하나님을 믿어야 되겠구 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이 부르심을 받지 못하면 이런 생각이 전 혀 들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이 생각이 들기 전까지 복음을 접할 기회가 없었습니 까 있었지요. 여러분들 눈으로 교회도 많이 보았어요. 사람들이 성경 찬송가 들고 가는 것을 봤어요. 그러나 그것이 내게 어필이 되질 않았어요. 지나가는 사람이 전도 할 때 그렇게 그 말이 내게 귀담아 들을 말로 인정되질 않았어요. 그러나 어느날 때 가 되니까 어떤 동기를 통해서 아! 믿어야 되겠구나. 한 번 나가 봐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는 이미 어떤 단계를 지났어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택 하셨다고 에베소서 1장 4절에 말씀하셔요. 또 부르셨다고 했어요.
그 부르심에 의해 서 아! 나가야 겠다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단 말이예요. 그러니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혹시, 이제 나는 교회를 다녀야 되겠다. 예수를 한 번 믿어 봐야 되겠다. 한 번 들어 보고 결정해야 되겠다. 고 생각하고 나오신 분 이 계시다면, 이미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걸음이 인도되었다는 사실 을 깨달으셔야 합니다. 이것은 지금 그 수준에 있는 성도들은 실감이 나질 않아요. 여러분들, 앞으로 신앙이 성숙하게 되면 이것이 더 깊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예를 들자면, 어린아이들이 자라나서는 자기들이 스스로 다 자란 것으 로 착각을 합니다. 다 자기 잘났다고 해요. 철들면, 결혼해서 애를 낳아 보면 자기가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부모의 수고와 헌신과 그 땀과 눈물이 얼마나 절실했던 것 인가를 깨닫는 것처럼, 그래서 오늘 자기가 이렇게 성장한 것을 아는 것처럼, 믿음이 성숙한 뒤에라야 하나님께서 나는 알고 있지 못하는 그 순간부터, 나는 하나님을 모 른다고 부정하던 그 시절부터, 하나님은 나를 이미 붙잡고 계셨고 인도하고 계셨다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저희 아버님이 그런 고백을 하십디다. 6.25사변 때 해병대에 계셨는데, 인천 상 륙작전, 대동강 도하작전을 경험하고 그리고 백두산까지 가셨지요. 해병대니까 제일 앞장서셨지요.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기셨지요. 포탄이 떨어져서 같이 있던 전우들 이 다 죽었는데도, 저희 아버님은 포탄이 바로 앞에 떨어졌는데도 죽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귀는 멀게 되었습니다만. 그분이 나중에 예수를 믿고난 다음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그때 운이 좋아서 산 줄 알았는데, 내가 은혜를 받고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나를 장로 만들기 위해서, 복된 자녀 만들기 위해서, 다른 사람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나를 살리셨다. 고 고백을 하십디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기에 오늘도 우리가 이 자리에 나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가운데에서 우리가 특 별히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예레미야의 가정입니다.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제사장의 가문 에서 태어난 아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특 별히 쓰임을 받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상당수가 경건한 가정에서 경건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많은 주의 종들을 봅니다만, 구약성경에 나타난 많은 사람들을 봅니다만, 에스겔, 스가랴, 세례 요한이 제사장의 가문에서 태 어났습니다. 다니엘도 그랬구요, 사무엘도 그랬구요, 에스더도 그랬습니다. 다 선지자 가문 아니면 경건한 부모의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소명에 대해 좀 더 깊이 들어가기 전에,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혈통을 존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은 신앙적 가정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부모 를 귀중하게 여기십니다. 여러분이 경건하게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말씀을 순종하 고 사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자녀들을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자녀 들을 들어 쓰십니다. 이것은 기독교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일꾼이 태어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사명을 감당하는 하나의 일꾼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누가 그 사람을 위해서 진정으로 기도하겠습니까 여러분의 영적인 일이 달려 있는 여러분의 목사를 위해 기도할 때, 얼마나 깊이 기도합니까 지금도 저를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하는 분은 역시 저의 부모님입니다. 물론 저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주시는 성도님들도 계신 줄 제가 알 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저의 부모님과 같이 그렇게 절실하게 잊지 않고 기도하는 분 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친척요, 선생님요 아니요. 그 아이를 지도하고 있는 주일학교 선생님이 그 아이를 위해 얼마나 기도하겠습니까 여러분, 진정으로 그 아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은 그 아이의 부모 밖에 없어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일꾼들을 세우실 때에 기도의 사람들을 세우는데, 그 기도의 사람으로는 그 부 모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건한 부모의 가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일꾼을 더 많 이 세우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사회과학, 인문과학 등등 많이 심어주기 위해 투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자녀들을 위해 가장 먼저 힘써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경건하게 사는 모습,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이제 소명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자기를 찾아옴을 보았 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찾아옴을 보고난 후, 그가 보이는 반응은 굉장합니다.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슬프도소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사야도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난 다음에 소명을 받을 때에, 아, 슬프다 고 했습니다. 왜요 죄악 가운데 거하는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으니 내가 죽게 되었구나 하고 엎어져 버 렸습니다. 사도 요한도 밤모 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하늘나라를 보고는 그만 엎어 져 죽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 를 진정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는 놀라운 반응들이 나타나게끔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은 진정으로 주님을 만났습니까 여러분을 부르고 계시는 주님을 여러분은 진정으로 만나셨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놀 라운 삶의 변화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레미야는 놀라운 반응 을 나타내고, 그의 삶에는 놀라운 변화가 나타납니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가 알고 있 던 하나님과는 다른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이 삶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 나기 시작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그 순간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그 순간 인생은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예레미야는 자기 자신에 게 놀라운 변화가 생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그는 새로 운 의식과 새로운 비전과 새로운 신뢰를 갖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셨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의 삶에는 놀라운 삶의 변화가 일어나게끔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까 새로운 의식을 갖게 됩니다. 새로운 사명을 깨닫게 됩니다. 새로운 삶의 모습을 갖기 시작합니다. 예레미야는 지금까지 그 동네를 벗어나 보지 못했던 한 이름 없는 소년이었습니다. 그에게서 꿈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이었는지 성경은 말해 주고 있지 않지마는, 그렇게 크지 못 했을 것입니다. 그는 힐기야 가문의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제 하나님을 만난 순간,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는 순간,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 가문의 아들이 이제는 이스라엘 나라와 민족을 위한 사람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 집을 넘어선 밖에서는 어느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의 존재 가치가 그렇게 인 정되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유다와 열방에 있어 그의 가치가 매 우 존귀하게 바뀌는 역사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거창하게 한 민족의 지도자로, 한 선지자로 부름 받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그 자신에 놀라운 삶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내 가정과 내 처자식과 나 만을 위하고 나만을 보고 살던 삶이었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은 그 순간부터 그의 삶의 가치가 변화됩니다. 이제까지는 내 만족을 위해 살았다 할지 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그 인생의 가치가 달라지 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는 내 가정을 위해 살았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삽니다. 이제까지는 내 만족을 위해 살았지만, 이제 만국의 왕이시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만족과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이 피상적으로 느껴진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누구를 위해 사는가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는 아주 중요합니다. 제가 보기엔 요즘은 참 재미가 없는 세상입니다. 남자들은 하루종일 열심히 일 해서 돈벌어다 집에 갖다 주면, 부인들은 집에서 에어로빅하러 다니니, 보올링하러 다니니, 테니스하니. 남자들은 땀빼면서 돈벌어다 갖다 주면, 여자들은 땀빼면서 돈 써요. 가전제품점에 가 봐도 전부 여자들에게 편리한 것들만 나와 있어요. 가면 갈수 록 심하지요. 그리고 남자들 편하게 해주는 것들은 별로 나오질 않아요. 기껏해야 전 기면도기 정도 뿐인 것 같아요. 그렇죠 그것도 더 이상 개발이 잘 안 되더군요. 여 자들 것 같았으면, 더 기술 개발을 시킬 텐데, 남자들 것이 되니, 더 이상 기술 개발 이 안 돼요. 갈수록 여자들 편한 세상이 되어 가요. 한국 남자들이 불쌍해요.
40대 남자 사망율이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예요. 무엇 때문에 사는가 말입니다. 누굴 위해 사는가 말입니다. 남자분들 잘 들어세 요. 남자로 태어나서 오로지 처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서 인생을 산다면, 불쌍한 인생 입니다. 여자로 태어나서 한 남자 바라보고 일생 산다는 것은, 참 비극입니다. 그러 니 여러 남자 쳐다보고 사세요. 또 그렇게 듣는 사람들이 있다구요. 정신 없는 사람 들이예요. 우린 잘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그 삶에 변화가 있단 말 입니다. 그 변화 가운데 가장 큰 변화가 뭔지 아시겠습니까 바로 인생의 가치의 변 화입니다. 왜 사는가의 변화예요. 이것을 맛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신앙에 재미가 없어요. 여러분이 예수 만나서, 그분과의 관계에서 그분이 기뻐하는 삶을 살 때, 그것은 바로 우리의 기쁨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주었을 때, 그리고 그 사람이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 자신이 더 기쁜 것처럼 말이죠. 한 여자를 기쁘게 하는 것도 기쁘다면, 만왕의 왕이시요, 여러분의 생명과 영혼을 위 해서 십자가를 지신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여러분의 삶에 얼마나 큰 기쁨이 되고 만족이 되는가를 체험에 보고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삶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름없는 한 소년 이었습니다. 그는 그 가정에서 그의 삶을 마감할 수 밖에 없는, 그의 생활의 모든 가 치와 기준과 울타리가 그 가정을 넘어설 수 없는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난 다음에는, 그의 삶의 영역이 한 가정에서,한 가문에서 울타리를 넘어서 한 민족으로 변화되는 놀라운 삶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 여러분 자신의 만족과 여러분 가정의 삶을 위해서 사는 삶이라면, 여러분 남편 과 아내와 여러분 자식을 위함으로 그 인생이 마감될 삶이라면, 그것처럼 비극적인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한 생명으로 태어나서 일생 동안 수고해서 한 남자와 그리고 한 여자 그리고 여러분의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여러분의 인생의 전부라면, 그것은 인생의 참다운 의미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한 인생으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교육 받고 훈련 받아서 한 여자와 한 남자 그리고 자녀를 양육하는 것으로 여러분 인생의 모든 가치로 여긴다면, 그리고 그것으로 여러분의 일생을 마감한다면, 그 일생은 실패였다고 밖에 평가할 수 없다 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주님을 만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에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가치기준이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의 식과 새로운 비전과 새로운 신뢰관계가 형성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삶의 영역이 뭔가 좀 변화되어서, 진정한 가치와 진정한 기쁨을 누리는 삶을 맛보시길 바랍니다. 예수를 만난다고 하는 것은 기가 막힌 사건입니다. 예수 만난다고 하는 것은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놀라운 삶의 변화입니다. 아직도 여러분의 삶 에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아직도 진정으로 예수를 만나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예수를 만났다 할지라도, 아직도 그분과 깊은 교제가 없다는 증거 일 것입니다. 오늘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이 부름 받는 부분까지만 말씀을 다루겠습니다. 다음 주에 예레미야의 반응과 그 반응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에 대해서 다시 한번 말씀 을 상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께서 한 선지자를 세워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말씀하셨던 그 말씀을 통해서 이 혼탁한 시대를 살아 가고 있는 저희들에게 말씀을 들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예레미야서를 통해서 그 시대에 말씀하셨던 하나님이 바로 오늘 이 시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의 음성 듣기를 원합니다. 오늘 이 시간 특히 우리가 바라옵기는, 경건한 가정을 존귀히 여기는 하나님의 그 역사하심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가정이 모두 경건한 가정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귀히 들어 쓰시는 가정들이 되도록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시간 간절히 원하옵기는, 주여, 오늘도 주님의 부르심이 있기에 이 자 리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 만나는 역사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그 만남 을 통해서 변화가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한 사람을 만나서도 변화가 있는 것처럼,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변화하는 것처럼, 오늘도 주님 만남으로 변화가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만남이 가장 소중한 만남임을 깨닫게 하시고, 이제 이 만남을 통해서 인생이 변화되게 하시고, 삶의 가치기준이 변화되게 하시고, 아버지 하나님이여, 삶의 모습이 변화되는 축복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님 만나지 못한 심령들이 있습니까 그래서 아직도 그 마음에 기쁨이 없는 자들이 있습니까 아버지, 오늘도 삶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 있 습니까 무엇 때문에 사는지를 모르고 오늘 하루를 살아 가고 있는 심령들이 있습니 까 주여, 이 시간 주님 만남으로 저들의 인생에 새로운 가치가 부여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만남으로 말미암아 저들의 인생이 가치있는 인생으로 전환되기를 원합니다. 지금까지는 아버지 하나님, 잠깐 있다간 없어지는 것들을 위해서 살았다 할지라도, 남은 여생 주님 앞에 인정받고 상급 받을 수 있는 삶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질 수 있 도록 이 시간에 축복해 주시옵소서. 감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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