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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최후의 선지자 (렘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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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는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15리쯤 떨어진 아나돗의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나, 유다 요시아 왕 13년(주전626)에 예언활동을 시작했 단. 아나돗은 아도니야의 왕위찬찰 음모에 가담했다가 솔로몬에게 추 방당한 엘리의 후손 제자장 아비아달 집안이 살던 곳이다(왕상 2:26,27). 예레미야가 소명을 받던 때는 유다에 늘 위협적인 존재인 앗수르가 붕괴되고 있었으나 신흥 바벧론이 일어나고 있었다.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기에 백성들이 죄악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런 자기 민족의 죄악을 돌이키기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에 부르심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알았고 (5):히브리말로 '야다'라는 단어는 지식적인 앎 그 이상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남편과 아내가 경험하는 관계(창4:1)요, 특 별한 선택(암3:2)이다. 하나님은 그를 출생 전부터 아시고 선택하셨던 것이다. 아이 (6):히브리말로 '나아르'로서 '소년','결혼 연령의 청년'에 대해 쓰는 말이다. 그가 부르심 받을 당시의 연령은 확실히 정할 수 없으나 제사장과 레위인의 근무 연령이 30세 이상인 것으로 보아 여기에 미달 한 약 20여 세로 추측할 수 있다.
1.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를 일방적으로 부르셨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행동들을 말해 보자(5).
2.예레미야는 왜 하나님의 부르심에 거절했는가 (5-6).
3.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장차 전할 메시지는 몇 절에 있는가
4.예레미야를 부르신 후 그에게 보여 주신 두가지 환상은(11-14).
5.왜 하나님께서 유다를 멸망시키겠다고 말씀하셨나(16).
1. 예레미야의 소명(1:4-10) 모든 예언서는 "여호와의 말씀이 00에게 임하니라."로 시작된다. 5절 의 '알았고','구별하였고',그리고 '세웠노라' 거의 같은 뜻으로서 잉태와 출생 이전부터 있었던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행 동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그를 '구별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 룩한 일을 위해 성별하셨다는 것이다. 또한 그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 우셨다'는 것은 첫째로 그를 단순히 유다에만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부르셨다는 뜻이요,
둘째25는 26 27 28 그를 부르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하나님도 되 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흥적인 것이 아닌 출생전부터 아신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 하나이다."라고 주저한다. 아이란 나이가 어리다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엄청난 소명의 짐을 감당하기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낸 말이다. 구약의 많은 종들이 부르심을 받을 때 주저했다(출4:10,왕상 3:7). 핑계하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고 하였다. 이것을 확증하시듯 하나님은 그의 입에 손을 대심으로 그가 하나님의 대언자 임을 입증시켜 주셨다. 그가 선포해야 할 말씀은 파괴적이며 건설적인 양면을 띤 것이다. 새 로 짓기 위해서는 옛 것을 허물어야 하는 것처럼 유다의 사회적이며 종교적인 잘못된 행위가 청산되어야 했다. 그래서 10절에 6개의 동사 가 사용되었는데(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다), 앞의 4개는 심판의 뜻이 담겨져 있고, 뒤의 2개는 축복 의 메시지이다. 결국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은 사람이 아무리 버티어도 죄악으로 인해 파괴될 수 밖에 없으며, 그후에는 주께서 새 예루살렘을 세우신다는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사명을 받은 것이다.
2. 예레미야가 본 두가지 환상(1:11-15).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분명히 하기 위해 두가지 이 상을 보여주셨다. 하나는 살구나무 환상으로서 예레미야가 살구나무를 보자 하나님께서 물으셨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예, 살구나무 가 지를 보나이다." 살구나무란 히브리말로 '샤케드'인데 예레미야가 그 것을 보았을 때 그는 그 말과 비슷한 히브리어 '소케드'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런데 '소케드'란 '지켜보다'라는 뜻이다. 그러자 하나님 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시길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네가 내 말을 지 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12) 하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지는지를 지켜보신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끊는 가마의 환상으로서 가마가 북에서 기울어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유다의 우상숭배와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그들에 대한 심판 을 북방으로부터 시작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참으셨다. 그동안 백성들이 죄를 돌이키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셨다. 그러나 주님의 참으심에도 한계가 있으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도 사랑의 한계가 있으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돌이킬 줄 모르는 백성들을 그대로 두면 그들은 영원히 소망이 없게 된다. 그동안 하나님의 참으심이 그 재난을 두면 그들은 영원히 소마 이 없게 된다. 그동안 하나님의 참으심이 그 재난을 막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재난을 막지 않으신다. 그것이 백성들에게는 처참 한 심판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환상을 보고 자기 민족에게 나라의 멸망을 전해야 하는 예레미 야는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예언을 매국적 인 것으로 생각하는 수많은 반대자들에게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거짓 선지자들처럼 사람들의 귀에 달콤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진리를 외면한 인기에 영합할 수도 없었다. 그는 오 직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고 입에 담아 주신 말씀만을 전하는 선지자로 부름받았던 것이다.
3. 힘주시는 하나님(1:16-19). 축복 아닌 저주와 심판을 선포할 수밖에 없는 예레미야에게는 자연 대적자들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부르심을 받을 때에 머뭇거렸 던 것이다. 스스로 하는 일이란 자신이 모든 일을 책임질 수밖에 없지 만 주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나섰다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이다. 이것이 신앙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말씀을 전할 때에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고 하셨다.두려움은 신앙을 약화시킨다(마8:26). 사람들을 두려워할 때 주의 명령을 온전히 수행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예레미야가 이들 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닌 자연스런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두가지 방법으로 예레미야를 격려하신다.
첫째는 소극적인 것으로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통해서 하셨다. 반대자들을 볼 때 두려울 수밖에 없지만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을 의지할 때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둘째는 적극적인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서 예레미야를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의 특징은 견고하고 흔들림이 없는 방어물이라는 점이다. 어떤 대적에도 맞설 수 있는 사람으로 예레미야 를 강하게 하시고 힘주시는 약속이다. 이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두려울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웠던 때, 필요한 일이 있어서 예레미야를 부르셨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우리를 통해서 하 실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나와 우리 가정, 우리 교회 안에 파묻혀 밖을 보지 못한 것이 아닌가 부르심은 '나'를 위함이 아닌 '너'를 위함이다. 이제 우리 주변을 살펴보자. 어려운 일 도, 나서기 싫은 일도 보일 것이다. 그 일에 대해 부르고 계시지 않는 가 주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선한 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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