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양심과 진리의 사회 (렘5:1-8,엡5:6-14)

본문

해마다 3월이 되면 나라와 겨레를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이며 이웃들인가를 살펴 보게 됩니다. 나라와 겨레의 장래 가 어떻게 될 것인가도 걱정하게 됩니다. 그만큼 나라와 겨레는 나의 운 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나라와 겨레는 매우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모두가 부 패와 불신의 신고를 겪고 있습니다. 아무도 위정자들의 약속을 믿지 않고 있으며 아무도 자기 이웃을 신뢰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사람들 은 사람들의 이웃이 아니라 이리와 같이 경계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3.1.독립운동을 주도하던 애국적인 선렬들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그 분들의 독립정신과 자주정신을 기리게 됩니다. 외세의 압박에서 나라와 겨레를 해방시키려고 일어섰던 그 때 그분들의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그만큼 3.1. 독립운동은 이 나라, 이 겨레의 역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었기 때 문입니다.
3.1.독립운동은 외세에 대한 항거였지만 그 기본정신은 이 겨레의 양 심선언이었습니다. 양심이 마비된 민족은 독립할 수도 없고, 독립했다 하더 라도 자기 나라를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침략자로부터의 해방은 역사의 대의에 합당하며, 자기 나라를 찾으려는 항거는 국민으로서의 양심의 결단 입니다. 양심에 입각한 독립운동만이 나라와 겨레의 자존과 번영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양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극단적인 이기주의, 부도 덕한 성공주의로 말미암아 썩을대로 썩어가고 있습니다. 더럽혀질대로 더러 워지고 있습니다. 부패와 추악의 악취는 천지에 편만하여 뜻있는 사람들의 접근을 저해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버림을 받을 극한상황에 처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인도는 싫어하지만 인도의 간디는 존경합니다. 흑인들과 어 울리는 것을 꺼려하지만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존경합니다. 그분들은 부패와 무기력증에 젖어있는 인도를 세계속의 인도로 지탱해 주는 인도의 양심이 고 흑인의 양심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귀한 손님이 와 계십니다. 독일공화국의 바이젝커 대통령이십니다. 내각책임제도 사회에서의 대통령은 단순한 상징적인 존재 에 불과합니다. 실권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분에게는 힘은 없으나 독일인 의 양심이 있습니다. 그분은 권력에 있어 독일의 상징이 아니라 양심에 있 어 독일인의 상징이기 때문에 독일인들은 그분의 말에 신뢰와 박수를 보내는 것입니다.그분은 독일의 양심일 뿐만 아니라 세계 개신교인들의 양심이 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만큼 세속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몸으로 보여 주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겨레의 희망은 무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양심이 최선의 방위력이 됩니다. 양심이 최대의 힘이 될 때 무기와 경제력 은 나라와 겨레를 위난에서 건져 주는 것입니다. 지금 뜻있는 사람들은 한 결 같이 이 나라, 이 겨레의 양심부재를 걱정하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경 제위기가 아닙니다. UR압력이 아닙니다. 국민 각자의 양심의 마비가 최대문제입니다. 부정부패로 인해 소멸해 버린 국력은 무역적자로 말미암은 국력의 소 모 보다 더 큽니다. 그것은 경제적 손실과 함께 불신과 분열이라는 사회적 손실까지 자초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농산물 압력도 우리 농업의 진실성 이 제고되면 능히 대항하고도 남는 것입니다. 옛날 다윗왕은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 깨끗한 마음을 새로 지어 주시 고, 깨끗한 뜻을 새로 세워 주소서"(시51:10)라고 기도했습니다. 일국의 제왕의 기도입니다. 권력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옵소서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경제를 부흥시켜 주옵소서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적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켜 주옵소서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임금의 마음을 깨끗하게 새롭 게 만들어 달라는 기도입니다. 나라를 다스리고, 겨레를 보호하는 일에 있 어 임금에게, 백성에게 있어야 할 최대의 힘은 양심이기 때문이었습니다.
3.1.독립운동의 지도자들은 나라의 독립은 역사의 대의이며 겨레의 진리운동이라고 믿었습니다. 진리가 아닌 독립운동은 나라를 위하는 일도 아니고, 겨레를 위한 일도 아닙니다. 왜 해방후 독립투사들이 분렬과 살생 을 자행했습니까 그들은 진리에 근거한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 의 집권을 위한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해방후 남쪽에서는 김구 선 생을 비롯하여 여운형선생, 송진우선생, 장덕수선생과 같은 민족지도자들 이 비명에 사라졌습니다. 북쪽에서는 조만식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애국지 사들이 해방의 감격을 채 누리기도 전에 암살되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 시 대의 유다 땅에서도 이와같은 일들이 자행되었습니다. 세상은 온통 범죄로 어두어졌고 국력은 부정부패로 쇠할대로 쇠해졌습니다. 이를 틈탄 외세의 침노는 시시각각 조여오고 있었습니다. 이를 감지한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 야는 진리와 정의만이 구국의 길이 된다고 믿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위정 자들도, 국민들도, 심지어 종교지도자들 마저 예레미야를 미친 사람으로 취 급했습니다. 진리를 모르는 유다는 마침내 바벧론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진리를 사랑하며, 진리대로 살지 않는 백성은 적의 침노를 받으며 사로잡힘을 당하게 마련입니다. 진리를 모르는 백성은 양의 가죽을 쓴 이리에게 먹히 게 됩니다.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거짓 선지자들에게 미혹을 받게 됩니다.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원수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습니다. 이제야 자본 보다 사람이 더 귀하다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인간과 그 모든 일은 인간이 해결하지 돈이나 기술이 해결하지 못합니다. 인력난 해소를 위해 전문대학의 증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문기술자의 양성 보다 더 소중한 것은 올바른 인간을 양성하는 일입니다. 나라의 100년대계는 교육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교육의 근본목적은 사람을 길러내는데 있지 권력이나 금력의 도구를 만들어내는데 있지 않습니다. 인간교육의 지표는 진리에 있습니다. 진리를 모르는 기술자, 군인, 판검사는 집을 세우는 일은 할 수 있어도 집터를 닦는 일은 하지 못합니다. 모래 위에 세운 집은 비,바람이 불면 쉬 무너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반석 위에 세워진 집은 어떤 위난에서도 쉬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 반석이 바로 진리입니다. 예루살렘은 돈이 없어 망한 것이 아닙니다. 유다 역사상 가장 부유한 때 그들은 망했습니다. 진리를 찾는 사람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어 주는 사람,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은 이방에 진리로 공의를 세 우는 사람"(이사야42:1-)입니다.
3.1.독립선언 72년을 맞이했습니다. 교회는 나라 일을 맡은 단체는 아 닙니다. 그러나 그 나라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고 그들의 권리와 행복을 축복하며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선교하는 기관입니다. 이 일은 양심과 진리를 일깨우고 깨끗케 하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 이 일을 위해 다시 한번 하나님께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는 하나님의 자녀 될 것을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226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