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같은 기도 (사64:1-7)
본문
본문은 그 위치로 봐서 선지자의 공식 생애를 마칠 즈음에 드린 기도입니다. 이런 불꽃 같은 강렬한 기도가 성경에 많지 않습니다. 그가 절박한 영적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를 이렇게 누르고 있는 상황은 무엇일까요 주의 말씀을 분순종하고 더 나아가서는 대적하는 불신앙 때문입니다 . '주여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소서!'라는 기도는 ,
첫째로 주의 대적들을 소 멸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기도입니다. 아무리 주의 대적들이 많다 할지라도 주께서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면 문제가 없어집니다. 엘리사 시대가 떠오릅니다. 온 나라에 주를 대적하는 자 들이 가득찼지만 그가 쌓은 제단에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하시자 원수들의 세력을 파하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에 주를 조롱하고 교회를 업신여기는 자들이 바다의 모래 처럼 많습니다. 주께서 엘리사 시대처럼, 모세 시대처럼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 셔야만 합니다. 우리의 말로만은 너무나 영향력이 미미합니다. 실로 주를 대적하는 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들을 위하여 시급히 하늘에서 강림하 셔야 합니다.
둘째로 성도들의 불신앙 때문에 더욱 필요한 기도입니다. 불신자들이 세력을 얻고 겁없이 주를 대적하게 된 깊은 이유는 바로 성도들의 불신앙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로 살아 주를 높이면 감히 누가 주를 함부로 대적하겠습니까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함부로 행동하니 그들은 아예 멸시해버리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의 입을 열자마자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짐승만도 못하 게 하나님을 대하는 성도들의 잘못된 태도에 대한 탄식이요, 책망입니다. 그러나 40장 이후에는 그의 어조가 아주 바뀝니다. 지극한 하나님의 위로 를 선포합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선지자는 하나님의 책망에도 따뜻한 위로에도 여전히 타락된 자리에서 요동하지 않는 불신앙의 태도에 위기감을 느낍니다. 성도들의 신앙을 반 석위에 세워 놓으려면 주께서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는 것과 같은 분명한 역사를 일으키셔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셋째로 성도들이 기쁘게 의를 행하기 위해서 더욱 필요한 기도입니다. 주께서는 기쁘게 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들을 선대하십니다. 의를 행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인내와 희생이 요구됩니다. 우리의 본성은 이를 싫어합니다. 이런 욕구를 극복하고 의를 행하려면 의 를 행하는 자들을 선대하시는 하나님의 존재가 우리의 영혼속에서 소용돌 이 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을 가르고 강림함을 체험하는 강력한 신 앙의 소유자가 이 시대의 모든 불신앙적 조류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뚜렷이 깨닫고 기쁨으로 의를 행할 때 우리의 삶 구석 구석에 하나님의 선대하심이 나타납니다. 이것을 본 주의 대적들 이 낭패하여 두려워할 것이며 심지어는 주를 섬기려 돌아옵니다. 할렐루 야! "언제나 의를 행하는 빛과 소금되게 하소서"
첫째로 주의 대적들을 소 멸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기도입니다. 아무리 주의 대적들이 많다 할지라도 주께서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면 문제가 없어집니다. 엘리사 시대가 떠오릅니다. 온 나라에 주를 대적하는 자 들이 가득찼지만 그가 쌓은 제단에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하시자 원수들의 세력을 파하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에 주를 조롱하고 교회를 업신여기는 자들이 바다의 모래 처럼 많습니다. 주께서 엘리사 시대처럼, 모세 시대처럼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 셔야만 합니다. 우리의 말로만은 너무나 영향력이 미미합니다. 실로 주를 대적하는 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들을 위하여 시급히 하늘에서 강림하 셔야 합니다.
둘째로 성도들의 불신앙 때문에 더욱 필요한 기도입니다. 불신자들이 세력을 얻고 겁없이 주를 대적하게 된 깊은 이유는 바로 성도들의 불신앙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로 살아 주를 높이면 감히 누가 주를 함부로 대적하겠습니까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함부로 행동하니 그들은 아예 멸시해버리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의 입을 열자마자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짐승만도 못하 게 하나님을 대하는 성도들의 잘못된 태도에 대한 탄식이요, 책망입니다. 그러나 40장 이후에는 그의 어조가 아주 바뀝니다. 지극한 하나님의 위로 를 선포합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선지자는 하나님의 책망에도 따뜻한 위로에도 여전히 타락된 자리에서 요동하지 않는 불신앙의 태도에 위기감을 느낍니다. 성도들의 신앙을 반 석위에 세워 놓으려면 주께서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는 것과 같은 분명한 역사를 일으키셔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셋째로 성도들이 기쁘게 의를 행하기 위해서 더욱 필요한 기도입니다. 주께서는 기쁘게 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들을 선대하십니다. 의를 행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인내와 희생이 요구됩니다. 우리의 본성은 이를 싫어합니다. 이런 욕구를 극복하고 의를 행하려면 의 를 행하는 자들을 선대하시는 하나님의 존재가 우리의 영혼속에서 소용돌 이 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을 가르고 강림함을 체험하는 강력한 신 앙의 소유자가 이 시대의 모든 불신앙적 조류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뚜렷이 깨닫고 기쁨으로 의를 행할 때 우리의 삶 구석 구석에 하나님의 선대하심이 나타납니다. 이것을 본 주의 대적들 이 낭패하여 두려워할 것이며 심지어는 주를 섬기려 돌아옵니다. 할렐루 야! "언제나 의를 행하는 빛과 소금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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