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통하는 사회 (사55:6-13)
본문
이이솝 우화에 보면 양치는 소년이 거짓말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소년은 처음에 혼자 양을 치게 되자 심심함을 느끼게 되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소년은 마을을 향하여 소리칩니다. "늑대가 나타났 다!" 소년의 외침은 마을 사람들에게 들려지고 이 소리는 구원을 호소하는 소리로 들려져서 마을 사람들이 뛰쳐 나옵니다. 그러나 곧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고 사람들은 허탈감에 빠져서 자기의 일터로 돌아갑니다. 소년은 혼자 남게 되자 다시심심해졌습니다. 아까의 일이 생각납니다. 처 음에는 멋모르고 한 일이었으나 재미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다시 반복 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년은 또 마을을 향하여 소리칩니다. " 늑대가 나타났다!" 이번에도 마을 사람들은 그 소년의 말을 믿어 주었습니다. 양을 치는 소년에게로 달려간 마을 사람들은 이번에도 거짓말로 자기네 들을 골려주려는 생각이었음을 알게 되고 허탈감에 빠진 사람들은 각자 자 기의 일터로 돌아갑니다. 이 소년은 거짓말하는 자체에 대한 잘못된 반성보 다는 거짓을 말하고 마을 사람들이 이에 속아서 자기에게로 달려 나오는 것 이 재미가 있었습니다. 한참 후의 일이었습니다. 정말로 늑대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소년은 정신없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소리쳤습니다. "늑대가 나 타났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그 소년의 외침은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습니다. "늑대가 나타났어요. 정말 로 늑대가 나타났어요." 오늘날 우리의 주변에서는 양치는 소년의 외침과 같은 소리가 들려오는 느낌을 가집니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소리를 저마다 외치고 있다는 생각 이 듭니다. 정치인들이 그렇습니다. 이들의 거짓된 외침이 사회를 혼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관료들이 그렇습니다. 공공요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말을 해도 국민들은 이들의 소리가 양치는 소년의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짓된 소리로 밖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경제인들의 거짓됨이 사회 가치 체계를 흔 들어 놓고 있습니다. 교육자들의 거짓됨이 어린 학생들의 마음을 삐뚤게 만 들고 있습니다. 종교가들의 거짓됨이 사회의 진실을 왜곡되게 하고 있습니다. 진실된 목소리를 듣기가 어렵게 되었다는 말들을 곧잘 합니다. 철학자요 교육가인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이를 대표하여 쓴 책이 "에밀"인데 그는 여기서 교육의 종류를 '자연의 교육, 사물의 교육, 인간의 교육'이라는 세 가지를 생각하는데 이 가운데서 도 기본이 되는 것은 '자연의 교육'으로 말을 합니다. 루소는 이렇게 해서 인간은 사회에 의해 타락하는 일이 없는 자연인으로서 교육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연은 거짓을 모릅니다. 진실만이 통합니다. 질서대로 움직 입니다. 비가 하늘에서 내리면 땅을 적시고 싹이 나게 하고 꽃을 피웁니다. 열매가 맺도록 도와줍니다. 사람과 짐승들에게 마실 물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자기의 할 일을 다 마친 물은 다시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 갑니다. 이러한 자연 법칙은 질서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거짓됨이 없습니다. 누가 더 잘났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편법이 통하지 않습니다. 다툼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질서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자연 속에는 진실만이 통합니다. 우리가 밟는 흙은 진실된 것만을 나타냅니다. 거짓 을 말할 줄 모릅니다. 사람이 잘 가꾸면 잘 가꾸는 만큼 보답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또한 그렇습니다. 거짓이 없습니다. 왜곡됨이 없습니다. 말씀에는 힘이 있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갑니다. 하나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게 합니다. 인간의 계획이 악 할 뿐입니다. 거짓으로도 통하는 것은 인간 사회 뿐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이 악한 사회를 정화시킬 능력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인간 역사가 이를 증명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거짓된 사회를 정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공평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순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날만한 때에 찾아야 합니다. 가까이 계실 때에 하나님을 불러 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말씀대로 순종하고 살아야 함에도 이를 행 하지 못하는 우리는 회개할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16-17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 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회개 할 기회를 주실 때에 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모스 8:2 말씀처럼 "내 백성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저를 용서치 않으리라"고 하신다면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버리신 것입니다. 회개할 기회를 놓치고난 후에는 심 판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자는 그 길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불 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 돌아와야 합니다. 인간의 뜻은 항상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 아와서 그의 긍휼하심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도록 긍휼이 크신 분이십니다. 인간 스스로 죄 용서 받기를 거부하는 죄인이라도 하나님은 용납하십니다. 이것 이 하나님과 인간의 생각의 차이이며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인간의 거짓된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본문 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 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차원이 여기에 있습니다.이러한 하나님이시기에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도 서 슴지 않았던 베드로를 용서하시고 사도 중 머리로 세우셨으며, 자칭 죄인 중의 괴수였던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도 죄지은 자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만 진실이 통하는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용서하고 싶은 소수의 사람들의 잘못만을 용서하지만 하나님은 대상에 관계 없이 모든 인간을 용서하며 더욱이 그들을 용서하기 위해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희 생제물로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만이 사회를 진실된 모습으로 가꿀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말은 신뢰할 수 없고, 인간의 약속은 파기될 수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불변합니다. 이 신실성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특성입니다. 사탄은 허탄한 거짓말로 인간을 유혹하여 타락케 합니다. 이 죄악의 씨가 인간의 입술을 통해 남을 호리고 속여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말씀이며, 인생을 영원한 길로 인도하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는 모든 사람 이 진실된 모습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실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 하시고 가르치신 말씀에 아멘하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으로 하여금 우리를 형통케 하시는 것은 말씀 자체 가 무슨 마술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하나님에게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진실된 모습 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그가 하는 모든 일과 행사가 형통하게 됩니다.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진실된 모습안에 있는 기쁨 과 평안은 아무도 앗아갈 수 없습니다. 이 기쁨과 평안은 하나님 안에서만 가능하기에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사회 속에서 기쁨과 평안을 얻은 자들답 게 이웃과 자연을 동물과 식물들에게까지도 진실된 모습으로 대하여 관용과 덕을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자연도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산들이 노래를 합니다.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칩니다. 화답한다는 말입니다. 하물며 우리의 이웃들이야 어떠하겠습니까 삶의 질이 변합니다. 삶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잣나무가 가시나무를 대 신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화석류가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그와 교제하는 성도들은 이와 같이 삶의 질적인 변화 가 옵니다. 삶의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 성도들이 사는 사회가 또한 질적으 로 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진실이 통하는 사회는 진실의 근원이신 하나님 안에서만 가 능합니다. 세상의 가시나무들, 세상의 찔레들 쓸모없는 것같고 버려 마땅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라해도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먼저 이 일에 앞장 서야합니다. 용서와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사회를 변화시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헛되이 하나님께로 돌 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께서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 하게 되어 싹이 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할 줄 믿습니다.
이를 대표하여 쓴 책이 "에밀"인데 그는 여기서 교육의 종류를 '자연의 교육, 사물의 교육, 인간의 교육'이라는 세 가지를 생각하는데 이 가운데서 도 기본이 되는 것은 '자연의 교육'으로 말을 합니다. 루소는 이렇게 해서 인간은 사회에 의해 타락하는 일이 없는 자연인으로서 교육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연은 거짓을 모릅니다. 진실만이 통합니다. 질서대로 움직 입니다. 비가 하늘에서 내리면 땅을 적시고 싹이 나게 하고 꽃을 피웁니다. 열매가 맺도록 도와줍니다. 사람과 짐승들에게 마실 물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자기의 할 일을 다 마친 물은 다시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 갑니다. 이러한 자연 법칙은 질서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거짓됨이 없습니다. 누가 더 잘났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편법이 통하지 않습니다. 다툼이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질서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자연 속에는 진실만이 통합니다. 우리가 밟는 흙은 진실된 것만을 나타냅니다. 거짓 을 말할 줄 모릅니다. 사람이 잘 가꾸면 잘 가꾸는 만큼 보답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또한 그렇습니다. 거짓이 없습니다. 왜곡됨이 없습니다. 말씀에는 힘이 있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갑니다. 하나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게 합니다. 인간의 계획이 악 할 뿐입니다. 거짓으로도 통하는 것은 인간 사회 뿐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이 악한 사회를 정화시킬 능력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인간 역사가 이를 증명해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거짓된 사회를 정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공평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순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날만한 때에 찾아야 합니다. 가까이 계실 때에 하나님을 불러 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말씀대로 순종하고 살아야 함에도 이를 행 하지 못하는 우리는 회개할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16-17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 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회개 할 기회를 주실 때에 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모스 8:2 말씀처럼 "내 백성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저를 용서치 않으리라"고 하신다면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버리신 것입니다. 회개할 기회를 놓치고난 후에는 심 판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자는 그 길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불 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 돌아와야 합니다. 인간의 뜻은 항상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 아와서 그의 긍휼하심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도록 긍휼이 크신 분이십니다. 인간 스스로 죄 용서 받기를 거부하는 죄인이라도 하나님은 용납하십니다. 이것 이 하나님과 인간의 생각의 차이이며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인간의 거짓된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본문 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 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차원이 여기에 있습니다.이러한 하나님이시기에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도 서 슴지 않았던 베드로를 용서하시고 사도 중 머리로 세우셨으며, 자칭 죄인 중의 괴수였던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도 죄지은 자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만 진실이 통하는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용서하고 싶은 소수의 사람들의 잘못만을 용서하지만 하나님은 대상에 관계 없이 모든 인간을 용서하며 더욱이 그들을 용서하기 위해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희 생제물로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만이 사회를 진실된 모습으로 가꿀 수 있습니다. 인간의 말은 신뢰할 수 없고, 인간의 약속은 파기될 수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불변합니다. 이 신실성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특성입니다. 사탄은 허탄한 거짓말로 인간을 유혹하여 타락케 합니다. 이 죄악의 씨가 인간의 입술을 통해 남을 호리고 속여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말씀이며, 인생을 영원한 길로 인도하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는 모든 사람 이 진실된 모습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실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 하시고 가르치신 말씀에 아멘하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으로 하여금 우리를 형통케 하시는 것은 말씀 자체 가 무슨 마술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하나님에게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진실된 모습 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그가 하는 모든 일과 행사가 형통하게 됩니다.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진실된 모습안에 있는 기쁨 과 평안은 아무도 앗아갈 수 없습니다. 이 기쁨과 평안은 하나님 안에서만 가능하기에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사회 속에서 기쁨과 평안을 얻은 자들답 게 이웃과 자연을 동물과 식물들에게까지도 진실된 모습으로 대하여 관용과 덕을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자연도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산들이 노래를 합니다.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칩니다. 화답한다는 말입니다. 하물며 우리의 이웃들이야 어떠하겠습니까 삶의 질이 변합니다. 삶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잣나무가 가시나무를 대 신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화석류가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그와 교제하는 성도들은 이와 같이 삶의 질적인 변화 가 옵니다. 삶의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 성도들이 사는 사회가 또한 질적으 로 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진실이 통하는 사회는 진실의 근원이신 하나님 안에서만 가 능합니다. 세상의 가시나무들, 세상의 찔레들 쓸모없는 것같고 버려 마땅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라해도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먼저 이 일에 앞장 서야합니다. 용서와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사회를 변화시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헛되이 하나님께로 돌 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께서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 하게 되어 싹이 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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