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빛을 발하라 (사60:1-3)
본문
빛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기쁨, 자유, 소망,힘을 상징해 왔습니다. 빛은 어두움을 물리치 기에 사람들이 빛을 좋아합니다. 사람마다 등을 켜서 낮은 곳에 두지 않습니다. 높은 곳에 두고서 많은 곳 을 비추게 합니다. 본문 앞장 59장은 3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1죄악이 하나님과 분리시켰다는 것입니다.
2죄악의 결과 를 이야기하고,
3하나님 중재자를 통해서 이스라엘과 화해하시고 구원하신다는 내용입니다. 즉 49장은 죄 의 문제와 해결의 결과 구원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60장이 시작됩니다. 60장의 내용 은
1구원받은 너희는 빛이니 일어나 빛을 발하라
2세상은 점점 어두워진다.
3너희의 밝히는 빛을 따라 사방에서 사람들 이 몰려들어 시온에 가득 찬다.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서 죄악의 문제가 해결되면 빛이 되므로 일어나 빛을 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방황하던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와 교회가 부흥한다는 내용 입니다. 구약의 예언에는 이중적의미가 있습니다. 본문의 예언은 먼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것의 예언입니다. 그래서 시온에 사람이 가득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이 예언은 교회시대에 있을 영광 의 빛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빛으로 표현합니다. 빛 되신 주님이 이 땅에 오셨지만 세상은 그를 알지 못했고 영접치 않 았습니다. 하나님은 영광의 빛을 교회에 두시고 세상의 소망이 되게 하셨습니다. 성도의 삶 을 통하여 이 빛 이 증거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마5:14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라고 했습니다. 이사 야도 일어나 빛을 발하라 고 했습니다. 성도가 세상의 빛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빛이 되지못합니까 죄 때문입니다. 어 린 때 등잔불을 키고 살았습니다. 등잔불을 오래도록 켜두면 불꽃이 흐려집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등잔 심지가 타고남 은 재가 쌓였기 때문입니다. 성냥개피도 재를 털어내면 불꽃은 다시 피어오릅니다. 성도의 빛이 흐리고 빛 을 발하지 목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 끼어있는 앙금 같은 죄, 회개치 않은 죄, 용서하지 않은 죄, 교만, 불순종 때문입니다. 죄중에 용서받지 못할 죄는 성령님 훼방죄 입니다. 죄중에 큰 죄는 습관적인 죄, 반복적인 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하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 치 않는 죄는 사함 받을 수 없습니다. 성도의 영혼을 그늘지게 하는 것은 회개치 않은 죄입니다. 회개치 않으면 심령이 괴롭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다시 피어오르는 등잔불처럼 빛을 발하게 됩니다. 성도는 세 가지를 통해서 빛을 발해야 합니다.
첫째로 성실한 삶을 통해서 빛을 발해야 합니다. 삼풍백화 점의 붕괴는 이사회의 불성실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예라 하 겠습니다. 건설업계만 아니라 사회전반의 불성실입니다. 이 런 어두운 세상에서 성도는 성실로 빛을 발해야 합니다. 이 사회가 말하기를 다른 사람은 몰라도 기독교인은 성실하 고, 믿을 만하다는 평가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평가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노력이 있어 야 합니다. 예수님의 성실이 그 시대에는 환영받지 못했어도 후대에는 계속해서 드러납니다. 또한 창세기 37장 이하에 보면 요셉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히 창39:3에 보면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 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라고 했습니다. 또한 감옥에서도 전옥이 요셉에게 감옥의 일을 다 맡기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보디발과 전옥이 영안 으로 보았습니까 아닙니다. 요셉의 성실이 말해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현대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성 실이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겸손한 삶을 통해서 빛을 발해야 합니다. (창26:28)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 으리라 말하였노 라 여기서도 이삭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증언합니다. 불레셋의 아비멜렉이 이 삭을 쫓아낼 정도 로 이기적인 사람인데 그가 하나님을 영안으로 보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삭의 겸손 즉 그랄 우물에서 싯나로, 르호봇으로, 브엘세바로 다투지 아니하고 겸손히 옮겼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이 삭의 겸손을 통해서 전해진 것입니다.
셋째로 희생의 삶을 통해서 빛을 발해야 합니다. 희생이 없이는 영광이 없습니다. 성도의 희생적 삶을 통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이 인류를 구원했습니다. 성도 의 희생이 세상 의 희망이 되어 집니다.
그러므로 서로 돌보아 구제하며 봉사하며, 빛을 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은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인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임마누엘교회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소망 의 빛, 생명의 빛을 성실과 겸손과 희생으로 발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죄악이 하나님과 분리시켰다는 것입니다.
2죄악의 결과 를 이야기하고,
3하나님 중재자를 통해서 이스라엘과 화해하시고 구원하신다는 내용입니다. 즉 49장은 죄 의 문제와 해결의 결과 구원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60장이 시작됩니다. 60장의 내용 은
1구원받은 너희는 빛이니 일어나 빛을 발하라
2세상은 점점 어두워진다.
3너희의 밝히는 빛을 따라 사방에서 사람들 이 몰려들어 시온에 가득 찬다.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서 죄악의 문제가 해결되면 빛이 되므로 일어나 빛을 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방황하던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와 교회가 부흥한다는 내용 입니다. 구약의 예언에는 이중적의미가 있습니다. 본문의 예언은 먼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것의 예언입니다. 그래서 시온에 사람이 가득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이 예언은 교회시대에 있을 영광 의 빛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빛으로 표현합니다. 빛 되신 주님이 이 땅에 오셨지만 세상은 그를 알지 못했고 영접치 않 았습니다. 하나님은 영광의 빛을 교회에 두시고 세상의 소망이 되게 하셨습니다. 성도의 삶 을 통하여 이 빛 이 증거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마5:14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라고 했습니다. 이사 야도 일어나 빛을 발하라 고 했습니다. 성도가 세상의 빛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빛이 되지못합니까 죄 때문입니다. 어 린 때 등잔불을 키고 살았습니다. 등잔불을 오래도록 켜두면 불꽃이 흐려집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등잔 심지가 타고남 은 재가 쌓였기 때문입니다. 성냥개피도 재를 털어내면 불꽃은 다시 피어오릅니다. 성도의 빛이 흐리고 빛 을 발하지 목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 끼어있는 앙금 같은 죄, 회개치 않은 죄, 용서하지 않은 죄, 교만, 불순종 때문입니다. 죄중에 용서받지 못할 죄는 성령님 훼방죄 입니다. 죄중에 큰 죄는 습관적인 죄, 반복적인 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하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 치 않는 죄는 사함 받을 수 없습니다. 성도의 영혼을 그늘지게 하는 것은 회개치 않은 죄입니다. 회개치 않으면 심령이 괴롭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다시 피어오르는 등잔불처럼 빛을 발하게 됩니다. 성도는 세 가지를 통해서 빛을 발해야 합니다.
첫째로 성실한 삶을 통해서 빛을 발해야 합니다. 삼풍백화 점의 붕괴는 이사회의 불성실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예라 하 겠습니다. 건설업계만 아니라 사회전반의 불성실입니다. 이 런 어두운 세상에서 성도는 성실로 빛을 발해야 합니다. 이 사회가 말하기를 다른 사람은 몰라도 기독교인은 성실하 고, 믿을 만하다는 평가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평가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노력이 있어 야 합니다. 예수님의 성실이 그 시대에는 환영받지 못했어도 후대에는 계속해서 드러납니다. 또한 창세기 37장 이하에 보면 요셉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히 창39:3에 보면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 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라고 했습니다. 또한 감옥에서도 전옥이 요셉에게 감옥의 일을 다 맡기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보디발과 전옥이 영안 으로 보았습니까 아닙니다. 요셉의 성실이 말해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현대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성 실이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겸손한 삶을 통해서 빛을 발해야 합니다. (창26:28)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 으리라 말하였노 라 여기서도 이삭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증언합니다. 불레셋의 아비멜렉이 이 삭을 쫓아낼 정도 로 이기적인 사람인데 그가 하나님을 영안으로 보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삭의 겸손 즉 그랄 우물에서 싯나로, 르호봇으로, 브엘세바로 다투지 아니하고 겸손히 옮겼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이 삭의 겸손을 통해서 전해진 것입니다.
셋째로 희생의 삶을 통해서 빛을 발해야 합니다. 희생이 없이는 영광이 없습니다. 성도의 희생적 삶을 통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이 인류를 구원했습니다. 성도 의 희생이 세상 의 희망이 되어 집니다.
그러므로 서로 돌보아 구제하며 봉사하며, 빛을 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은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인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임마누엘교회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소망 의 빛, 생명의 빛을 성실과 겸손과 희생으로 발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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