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사60:1-9)
본문
오늘 읽은 본문에서 두가지 명령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일 어나라'는 말과 ' 및을 발하라'입니다. 이 명령은 재촉하시는 하나님의 명 령입니다. 마치 옛날 소돔과 고모 라가 죄악으로 멸망 당하게 됐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재촉하여 '빨리 떠나라, 주 저하지 말고 떠나라, 뒤를 돌아보지 말고 걸음을 재촉하여 떠나라H고 하신 것처 럼 우리를 향하여 '일어나라, 그리고 을 발하라N고 명령하 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시간 우리를 향하여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고 명령하시는 주님의 명령을 들 어야 겠습니다. 그리고 그 명령에 순종하고 일어 나야 =K습니다. 롯과 그의 아내가 소돔과 고모라를 쉽=1 떠날 수 있는 조건들이 너 무나 많았습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크게 사업이 성공하여 기반을 닦았고 빌려 은 사업체도 그 곳 에 다 있었습니다. 더구나 패물에 욕심이 은 롯 의 아내로서는 더욱 더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떠나야 했고 떠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일어나야 합니다. 일어나 빛을 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사야 60장은 몇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2절은 교회가 일어나 을 발해야 될 것을 명령하고 있고, 3-8절은 교회가 날로 날로 부흥하고 발전할 것이며 부요하게 될 것이며 동서남북 멀고 가까운 거리에서 하나님의 백성 들이 하나님께 예 배드리기 위해 모척들 것이며, 9-13절은 새로운 개종자 즉, 예수 믿기 로 작정하고 나오는 많은 새신자들이 교회에 나와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 이며, 14-
I6절은 교회는 그 지위가 높아져서 영광과 명성을 누리게 될 것이고, 17-22절의 교회는 평화를 누리고 성도들은 복을 받을 것이며 영원 한 기쁨을 갖게 될 것이 라는 것이 60장의 내용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교회의 승리와 축복을 의미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이 말씀이 우리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멧세지라 고 믿어 의심치 않읍니다. 우리 층신교회는 앞으로 계속해서 확장될 것입니다. 영육 간에 성한 교회가 될 것이며, 날마다 새로워지는 교회가 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이 교회를 찾아 모여들 것이며 이 교회 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기쁨과 영과 자랑으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많은 새 교우들이 새신자들이 이 전으로 나와서 신앙을 고백하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날로 평안하고 평화롭기 이를 데 없어서 시편 23편의 분위기를 가진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한강변의 기적을 낳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 교회에 서는 많은 종들이 배 출될 것이고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주셨던 교회의 비젼이 곧 우리 교회의 비젼임을 나는 조금도 의심치 않습니다. 또 사실은 이런 비젼 ! 이런 신앙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합니다. 본문말씀을 주목해 보십시다.
1. 일어나라 ! 서 있는 사람, 고 있는 사람더러 일어나라'고 말하진 않습니다. 드러누워 있는 사람. 발뻗고 앉아 있는 사람에게 하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7장 ll-17절을 보면 나인이란 성에 한 과부가 외아들을 데리고 살고 있었읍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외아들이 병으로 죽었읍니다. 그 동네 많은 사람들이 상여 뒤를 따르 며 그 과부를 위로했으나 외아들을 잃은 과부의 울음은 그치질 않았습니다. 이 광경을 주님께서 보시고 그 과부를 불쌍히 여기사 죽은 아이의 관에 손을 대시고 '청 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하셨을 때 죽었던 자가 살아 일어났습니다. 주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에도 '일어나라'고 명령하 심으로 죽은 자를 살 려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앉거나 드러누워서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세 가지 있다 고 봅니다. (l) 피곤했을 때 등산을 해보면 산을 올라가는 동안 몇 번씩 쉬어야 합니다. 높고 험한 산일수록 피곤은 더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등산도중 발뻣고 드러누워서 편히 쉬어 버리면 정상엔 을라갈 수가 없게 됩니다. 잠깐 쉬고 다시 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신앙 생활의 이치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고달픈 인생을 살다보면 피곤하고 짜증나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의 행 군을 증단해 버리면 그의 영은 소망이 없 어져 버리고 맙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주저앉아 있거나 드러누워 있는 사람들에게 주 님은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운동해서 피곤해진 몸은 운동으로 풀어야 하는 것처럼 영적으로 신 앙적으로 피곤해진 영흔은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피곤을 풀고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즉 영적 각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2) 병들었을 때 병든 사람은 앉거나 드러누워야 합니다. 병원의 수많은 침상마다 드러누워 있는 환자들 ! 저들은 드러누워 있는 것이 좋아서 드러누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아는 어느 환자 한 분은 너무너무 병원 침대에 오래 드러누워 있었기 때문에 죽더 라도 한번 땅을 밝아보고 죽는 것이 소원하는 말 을 되풀이하곤 했습니다. 왜 주저앉아 있습니까 어디가 병들었습니까 왜 우리의 영흔의 각 부분, 각 마디가 제 구실을 못하는 것입니 까 병들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사도행전 3장을 보면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 한 사람이 성전 문간에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들어가다가 그를 보고 '내게 은 과 금은 없거니와 내 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 으로 일어나 걸으라'했을 때 그가 곧 일어 나 기뻐 뛰었다고 했습니다. 오 주여 ! 나의 관절. 나의 심장, 나의 이목구비, 나의 사지백체가 새로운 힘올 얻고 일 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나의 영이 힘을 얻어 일어 나 걷게 하여 주읍소서. (S) 죽었을 때 죽은 시체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사자무언(꼬욥)이라고 합니다. 죄는 우리의 영흔을 좀먹는 독소이며 전염병균 과 같습니다. 그걸 내버려 두면 전신에 퍼져저 생명을 빼앗아 가버리고 맙니다. 우린 우리의 영흔과 우리의 신앙 상태를 조기진단해야 합니다. 그 병이 너무 깊어진 다음엔 고치기가 어습니다. 20세기 인류의 최대 적은 '암'이라는 병입니다. 한번 걸렸다하면 사형선고나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이 은 조기발견이 제일 좋은 치료방법이라고 합니다. 영흔을 좀먹는 휘, 불신앙은 암과 같습니다. 일쩍 발견하고 고치지 않으면 일어나 걸을 수가 없게 되고 맙니다. 그러면 어떻게 무슨 힘으로 일어날 수 있습니까 피곤한 사람이 병든 사람이 죽은 사람 이 제 힘으로 일어날 수 있습니까
(4) 말씀 붙잡고 일어나야 합니다. 환자가 지이나 목발 그리고 횔 췌어를 의지하고 일어나는 것처럼 영적으로 피곤한 사람, 병든 사람, 죽어가는 사람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의지하고 일어나게 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 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흔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 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했습니다.
(5) 성령님의 능력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보호하시고 도와주시고 약할 때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내 힘으로 일어서지 못할 때 일으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을 보면 이와같이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 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님 이 말할 수 없는 탄 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기진맥진하여 내 힘으로 일어나지 못할 때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을 급히 청 해야 합니다. 위급환자는 구급차를 불러서 응급실로 들어가듯이 성령님의 도움을 급히 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일어나서 무엇을 해야합니까 '빚을 발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구원을 받고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고 나면 마치 식사 후 에 포만감에 사로잡척 식곤증을 느끼고 드러눕고 싶은 것처럼 받은 은혜. 주신 은혜에 감사 할 줄도 모르고 침체상태에 빠져서 게을러지게 됩니다. 기도하던 사람이 기도하지 않게 되고 전도하던 사람이 전도하지 않게 되고 교회 잘 나 오던 사람이 교회 빠지게 되고 봉사하던 사람이 사하지 않게 됩니다. 이런 상태는 그 영혼이 다시 병들어가는 징조이며 재발해 가는 징 조입니다. '일어나라 을 발하라' 어려서부터 소아마비로 반신을 쓰지 못하던 S8세의 청년이 어느 은혜로운 성회에 참석 하여 은혜를 받고 그 자리에서 인어났습니다. 온 마을의 경사고 화세였습니다. 그는 오직 주의 은혜라고 교회를 잘 나오더니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성한 다리는 술집을 드나들낀 투 전판 을 드나들고 관광을 다니고 교회와 멀어지고 그러기를 2년여 동안 그 랬습니다. 그 러는 사이 서서히 아주 서서히 그의 손과 발이 원상으로 되돌아 가버렸습니다. 그후론 안 수를 받아도 회개하고 철야를 해도 그의 몸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의 생사도 모릅니다. 일어났으면 을 발하라 ! 여기서 말하는 빛은 어떤 빛인가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6) 우리의 행실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5장14-16절을 보면 '너희는 세상의 및이라 했고 이와같 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우린 우리의 생활을 통해 빛을 발해야 합니다. 구름이 끼면 태양 이 가리워 지듯이 우리의 어두운 생활은 주님의 영광과 교회의 영광 을 가리우게 됩니다. 우린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을 발해야 하며 은혜받은 사람으로 서 을 발해야 답니다.
(7) 복음 증거를 의미합니다. 복음증거의 때가 무르익었고 문이 열렸습니다. 및을 발하라, 이 말 은 명령입니다. 복음 을 전하라 ! 절대 명령입니다. 목사가 되고 설 교자가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네가 받은 복음 ! 네가 받은 은혜 ! 네 가 받은 사랑 !을 그대로 남oi1 게도 주라는 얘기입니다. 왜 늘 만나고, 함께 일하고 함께 온갖 얘길 다 늘어놓고 사는 사람에게 '딱 한 마디 !' 예수에 관해선 말을 못하는 것입니까 부끄럽기 때문입니까 장사가 안될까봐 그런 것 입니까 사업에 지장이 있을까봐 출세에 지장이 있을까봐 안됩니다. 그래선 안됩 니다. 다음 말을 주목하십시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 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 인하리라'(마 1l:32-33). 일어나서 을 발하라 ! 다음 말씀을 다시 주목하십시다. 에스더 4장
14절에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 암아 놓임과 구원을 받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 은 멸망하리라.'
I6절은 교회는 그 지위가 높아져서 영광과 명성을 누리게 될 것이고, 17-22절의 교회는 평화를 누리고 성도들은 복을 받을 것이며 영원 한 기쁨을 갖게 될 것이 라는 것이 60장의 내용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교회의 승리와 축복을 의미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이 말씀이 우리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멧세지라 고 믿어 의심치 않읍니다. 우리 층신교회는 앞으로 계속해서 확장될 것입니다. 영육 간에 성한 교회가 될 것이며, 날마다 새로워지는 교회가 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이 교회를 찾아 모여들 것이며 이 교회 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기쁨과 영과 자랑으로 여기게 될 것입니다. 많은 새 교우들이 새신자들이 이 전으로 나와서 신앙을 고백하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날로 평안하고 평화롭기 이를 데 없어서 시편 23편의 분위기를 가진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한강변의 기적을 낳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 교회에 서는 많은 종들이 배 출될 것이고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주셨던 교회의 비젼이 곧 우리 교회의 비젼임을 나는 조금도 의심치 않습니다. 또 사실은 이런 비젼 ! 이런 신앙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합니다. 본문말씀을 주목해 보십시다.
1. 일어나라 ! 서 있는 사람, 고 있는 사람더러 일어나라'고 말하진 않습니다. 드러누워 있는 사람. 발뻗고 앉아 있는 사람에게 하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7장 ll-17절을 보면 나인이란 성에 한 과부가 외아들을 데리고 살고 있었읍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외아들이 병으로 죽었읍니다. 그 동네 많은 사람들이 상여 뒤를 따르 며 그 과부를 위로했으나 외아들을 잃은 과부의 울음은 그치질 않았습니다. 이 광경을 주님께서 보시고 그 과부를 불쌍히 여기사 죽은 아이의 관에 손을 대시고 '청 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하셨을 때 죽었던 자가 살아 일어났습니다. 주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에도 '일어나라'고 명령하 심으로 죽은 자를 살 려주셨습니다. 사람들이 앉거나 드러누워서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세 가지 있다 고 봅니다. (l) 피곤했을 때 등산을 해보면 산을 올라가는 동안 몇 번씩 쉬어야 합니다. 높고 험한 산일수록 피곤은 더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등산도중 발뻣고 드러누워서 편히 쉬어 버리면 정상엔 을라갈 수가 없게 됩니다. 잠깐 쉬고 다시 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신앙 생활의 이치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고달픈 인생을 살다보면 피곤하고 짜증나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의 행 군을 증단해 버리면 그의 영은 소망이 없 어져 버리고 맙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주저앉아 있거나 드러누워 있는 사람들에게 주 님은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운동해서 피곤해진 몸은 운동으로 풀어야 하는 것처럼 영적으로 신 앙적으로 피곤해진 영흔은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피곤을 풀고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즉 영적 각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2) 병들었을 때 병든 사람은 앉거나 드러누워야 합니다. 병원의 수많은 침상마다 드러누워 있는 환자들 ! 저들은 드러누워 있는 것이 좋아서 드러누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아는 어느 환자 한 분은 너무너무 병원 침대에 오래 드러누워 있었기 때문에 죽더 라도 한번 땅을 밝아보고 죽는 것이 소원하는 말 을 되풀이하곤 했습니다. 왜 주저앉아 있습니까 어디가 병들었습니까 왜 우리의 영흔의 각 부분, 각 마디가 제 구실을 못하는 것입니 까 병들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사도행전 3장을 보면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 한 사람이 성전 문간에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들어가다가 그를 보고 '내게 은 과 금은 없거니와 내 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 으로 일어나 걸으라'했을 때 그가 곧 일어 나 기뻐 뛰었다고 했습니다. 오 주여 ! 나의 관절. 나의 심장, 나의 이목구비, 나의 사지백체가 새로운 힘올 얻고 일 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나의 영이 힘을 얻어 일어 나 걷게 하여 주읍소서. (S) 죽었을 때 죽은 시체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사자무언(꼬욥)이라고 합니다. 죄는 우리의 영흔을 좀먹는 독소이며 전염병균 과 같습니다. 그걸 내버려 두면 전신에 퍼져저 생명을 빼앗아 가버리고 맙니다. 우린 우리의 영흔과 우리의 신앙 상태를 조기진단해야 합니다. 그 병이 너무 깊어진 다음엔 고치기가 어습니다. 20세기 인류의 최대 적은 '암'이라는 병입니다. 한번 걸렸다하면 사형선고나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이 은 조기발견이 제일 좋은 치료방법이라고 합니다. 영흔을 좀먹는 휘, 불신앙은 암과 같습니다. 일쩍 발견하고 고치지 않으면 일어나 걸을 수가 없게 되고 맙니다. 그러면 어떻게 무슨 힘으로 일어날 수 있습니까 피곤한 사람이 병든 사람이 죽은 사람 이 제 힘으로 일어날 수 있습니까
(4) 말씀 붙잡고 일어나야 합니다. 환자가 지이나 목발 그리고 횔 췌어를 의지하고 일어나는 것처럼 영적으로 피곤한 사람, 병든 사람, 죽어가는 사람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의지하고 일어나게 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 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흔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 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했습니다.
(5) 성령님의 능력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보호하시고 도와주시고 약할 때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내 힘으로 일어서지 못할 때 일으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을 보면 이와같이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 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님 이 말할 수 없는 탄 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기진맥진하여 내 힘으로 일어나지 못할 때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을 급히 청 해야 합니다. 위급환자는 구급차를 불러서 응급실로 들어가듯이 성령님의 도움을 급히 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일어나서 무엇을 해야합니까 '빚을 발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구원을 받고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고 나면 마치 식사 후 에 포만감에 사로잡척 식곤증을 느끼고 드러눕고 싶은 것처럼 받은 은혜. 주신 은혜에 감사 할 줄도 모르고 침체상태에 빠져서 게을러지게 됩니다. 기도하던 사람이 기도하지 않게 되고 전도하던 사람이 전도하지 않게 되고 교회 잘 나 오던 사람이 교회 빠지게 되고 봉사하던 사람이 사하지 않게 됩니다. 이런 상태는 그 영혼이 다시 병들어가는 징조이며 재발해 가는 징 조입니다. '일어나라 을 발하라' 어려서부터 소아마비로 반신을 쓰지 못하던 S8세의 청년이 어느 은혜로운 성회에 참석 하여 은혜를 받고 그 자리에서 인어났습니다. 온 마을의 경사고 화세였습니다. 그는 오직 주의 은혜라고 교회를 잘 나오더니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성한 다리는 술집을 드나들낀 투 전판 을 드나들고 관광을 다니고 교회와 멀어지고 그러기를 2년여 동안 그 랬습니다. 그 러는 사이 서서히 아주 서서히 그의 손과 발이 원상으로 되돌아 가버렸습니다. 그후론 안 수를 받아도 회개하고 철야를 해도 그의 몸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의 생사도 모릅니다. 일어났으면 을 발하라 ! 여기서 말하는 빛은 어떤 빛인가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6) 우리의 행실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5장14-16절을 보면 '너희는 세상의 및이라 했고 이와같 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우린 우리의 생활을 통해 빛을 발해야 합니다. 구름이 끼면 태양 이 가리워 지듯이 우리의 어두운 생활은 주님의 영광과 교회의 영광 을 가리우게 됩니다. 우린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을 발해야 하며 은혜받은 사람으로 서 을 발해야 답니다.
(7) 복음 증거를 의미합니다. 복음증거의 때가 무르익었고 문이 열렸습니다. 및을 발하라, 이 말 은 명령입니다. 복음 을 전하라 ! 절대 명령입니다. 목사가 되고 설 교자가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네가 받은 복음 ! 네가 받은 은혜 ! 네 가 받은 사랑 !을 그대로 남oi1 게도 주라는 얘기입니다. 왜 늘 만나고, 함께 일하고 함께 온갖 얘길 다 늘어놓고 사는 사람에게 '딱 한 마디 !' 예수에 관해선 말을 못하는 것입니까 부끄럽기 때문입니까 장사가 안될까봐 그런 것 입니까 사업에 지장이 있을까봐 출세에 지장이 있을까봐 안됩니다. 그래선 안됩 니다. 다음 말을 주목하십시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 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 인하리라'(마 1l:32-33). 일어나서 을 발하라 ! 다음 말씀을 다시 주목하십시다. 에스더 4장
14절에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 암아 놓임과 구원을 받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 은 멸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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