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고난을 이루자 (사53:4-6)
본문
오늘 본문의 말씀은 고난의 종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의 종으로 오셔서 고난받으실 것을 주님이 오시기 약700년 전에 예언했습니다. 고난의 종은 인간의 죄와 질병과 고 통을 대신 지시고 고난받으신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고난의 모습은
1찔림의 고통
2상함의 고통
3징계의 고통
4채찍의 고통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이런 고난을 당하셨기에 우리는 약 속의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그 약속의 축복은
1죄에서 자유함
2질병에서 자유함
3마음의 평 화를 누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성도는 주님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속죄함을 얻 고, 질병에서 자유하고, 평화를 누려야 합니다. 옛날부터 중죄인을 사형시킬 때 우리 나라에서는
1사약
2교수형
3단두형
4총살형을 내렸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목에 맷돌을 목에 매서 깊은 바다에 던졌다고 합니다. 또한 페르시아에는 십자가형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로마에까지 내 려와 로마시대에도 이방인에게는 십자가 처형을 했습니다. 페르시아에서 십자가 처형을 한 것은
1신성한 땅에서 죄인을 죽이면 땅이 더러워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2흉악한 죄인은 십자가 에 달려서 새에게 뜯기는 고통을 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고통은 너무커서
1십자가 처형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악몽에 시달린다는 것입니다.
2로마 군인들도 십자가 이야기 를 싫어했다.
3로마 황제는 식사시간에 누가 십자가 이야기를 하면 끌어다가 매질을 했다고 한다. 즉 십자가라는 말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재수 없는 소리였다.
4십자가의 고통이 너무 커서 이방인만 십자가 처형을 했지, 로마 시민은 절대로 십자가의 처형을 하지 않았다. 십자가 처형 의 고통은
1못에 찔리는 고통이요
2채찍질 당하는 고통이요(당시의 채찍의 끝에는 날카로운 뼛조각, 납,쇳조각 등을 묶어놓아서 그 채찍으로 맞으면 살점이 툭툭 떨어져 나갔다)
3태양의 고통입니다. (뜨거운 햇빛은 목마름의 고통입니다)
4야간에는 추위의 고통입니다. 5새들이 와 서 쪼아먹는 고통입니다. 보통사람은 2-3일간 십자가에 달려 있어야 죽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가 시관을 쓰셨고, 채찍에 맞으므로 법정에서 형장까지의 거리가 1Km 정도인데 갈 수 없어서 구레네 시몬이 대신지고 갔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곳은 해골이란 곳입니다. 이곳을 히브 리말로 골고다 라고 했고, 라틴어로는 갈보리 라고 했습니다. 왜 그곳의 이름이 해골일까 전 설에 의하면 아담의 뼈가 그곳에 묻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을 해골이라 했습니다.
첫째 아 담은 범죄로 인류에게 죽음을 가져다 줬는데
둘째 아담 예수는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인류에게 자유와 평안을 주었습니다. 무죄하신 주님이 왜 십자가 앞에서 침묵을 지키시면서 극악무도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첫째로 주님의 고난은 사랑의 고난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은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살리시려고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 참혹한 십자가의 고통으로 우리 를 사랑하셨다면 우리도 주님의 고난을 이루기 위해서 사랑의 실천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주님의 고난은 용서의 고난입니다. 탕자 같은 나를 용서하시고, 죄악 투성이인 나를 용서하시려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나의 죄를 대 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시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마귀에게는 용서가 없습니다. 마귀는 용서를 싫어합니다. 마귀는 용서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용 서로서 마귀의 일을 진멸하셨습니다. 주님은 용서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우리도 주님의 용서 의 고난을 본 받아 용서의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주님의 고난은 사명의 고난입니다. 마태복음26장에 보면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핏 방울 같은 땀방울을 흘리시면서 사명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 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이렇게 세번 기도하셨 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십자가를 지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참혹함을 아시면서 사명이기에 고난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 살아있는 순교자를 원하십니다. 상황과 타협 하지 않는 순교자, 신앙을 지키려고 세상 것을 포기하는 순교자를 원하십니다. 우리모두 주워진 사명에 충성하여 주님의 고난에 충성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로 주님은 고난을 통하여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영광을 얻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인정하 시는 고난이었다는 증거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두 가지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1)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이름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믿는 자에게 소망을 주고, 기쁨을 주고, 힘을 되는 이름이며, 마귀를 물리치는 이름입니다.
(2)모든 무릎을 그 앞에 꿇게 하셨습니다. 즉 예수만이 만 왕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로마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는데 로마는 AD313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 했습니다. 또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왕이 헨델의 메시아 공연중 왕의왕 이란 가사로 예수님을 찬양할 때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왜 일어났느냐고 물으니 나는 일개 국의 왕이 요 주님은 천하만국의 왕이신데 그 이름 앞에서 내가 어찌 앉아 있을 수 있느냐고 했답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 고난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내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 고 했습니다. 희랍의 아서왕은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기사들에게 수고했다고 말하지 않고, 그대는 희생 의 흔적을 자졌느냐 물으면서 흔적이 있는 자만 왕의 만찬에 참여하도록 했답니다. 십자가는 중죄인을 처형하는 형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영광의 십자가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흔적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적으로 주님 께서 사랑과 용서와 사명과 영광을 위하여 고난 당하셨다면 우리도 사랑의 실천자, 용서의 삶, 사명에 충성, 모든 영광 하나님께 드리는 살아있는 순교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남강(南岡) 이승훈장로
1찔림의 고통
2상함의 고통
3징계의 고통
4채찍의 고통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이런 고난을 당하셨기에 우리는 약 속의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그 약속의 축복은
1죄에서 자유함
2질병에서 자유함
3마음의 평 화를 누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성도는 주님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속죄함을 얻 고, 질병에서 자유하고, 평화를 누려야 합니다. 옛날부터 중죄인을 사형시킬 때 우리 나라에서는
1사약
2교수형
3단두형
4총살형을 내렸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목에 맷돌을 목에 매서 깊은 바다에 던졌다고 합니다. 또한 페르시아에는 십자가형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로마에까지 내 려와 로마시대에도 이방인에게는 십자가 처형을 했습니다. 페르시아에서 십자가 처형을 한 것은
1신성한 땅에서 죄인을 죽이면 땅이 더러워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2흉악한 죄인은 십자가 에 달려서 새에게 뜯기는 고통을 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고통은 너무커서
1십자가 처형의 모습을 본 사람은 악몽에 시달린다는 것입니다.
2로마 군인들도 십자가 이야기 를 싫어했다.
3로마 황제는 식사시간에 누가 십자가 이야기를 하면 끌어다가 매질을 했다고 한다. 즉 십자가라는 말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재수 없는 소리였다.
4십자가의 고통이 너무 커서 이방인만 십자가 처형을 했지, 로마 시민은 절대로 십자가의 처형을 하지 않았다. 십자가 처형 의 고통은
1못에 찔리는 고통이요
2채찍질 당하는 고통이요(당시의 채찍의 끝에는 날카로운 뼛조각, 납,쇳조각 등을 묶어놓아서 그 채찍으로 맞으면 살점이 툭툭 떨어져 나갔다)
3태양의 고통입니다. (뜨거운 햇빛은 목마름의 고통입니다)
4야간에는 추위의 고통입니다. 5새들이 와 서 쪼아먹는 고통입니다. 보통사람은 2-3일간 십자가에 달려 있어야 죽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가 시관을 쓰셨고, 채찍에 맞으므로 법정에서 형장까지의 거리가 1Km 정도인데 갈 수 없어서 구레네 시몬이 대신지고 갔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곳은 해골이란 곳입니다. 이곳을 히브 리말로 골고다 라고 했고, 라틴어로는 갈보리 라고 했습니다. 왜 그곳의 이름이 해골일까 전 설에 의하면 아담의 뼈가 그곳에 묻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을 해골이라 했습니다.
첫째 아 담은 범죄로 인류에게 죽음을 가져다 줬는데
둘째 아담 예수는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인류에게 자유와 평안을 주었습니다. 무죄하신 주님이 왜 십자가 앞에서 침묵을 지키시면서 극악무도한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첫째로 주님의 고난은 사랑의 고난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은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살리시려고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 참혹한 십자가의 고통으로 우리 를 사랑하셨다면 우리도 주님의 고난을 이루기 위해서 사랑의 실천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주님의 고난은 용서의 고난입니다. 탕자 같은 나를 용서하시고, 죄악 투성이인 나를 용서하시려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나의 죄를 대 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시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마귀에게는 용서가 없습니다. 마귀는 용서를 싫어합니다. 마귀는 용서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용 서로서 마귀의 일을 진멸하셨습니다. 주님은 용서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우리도 주님의 용서 의 고난을 본 받아 용서의 삶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주님의 고난은 사명의 고난입니다. 마태복음26장에 보면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핏 방울 같은 땀방울을 흘리시면서 사명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 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이렇게 세번 기도하셨 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십자가를 지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참혹함을 아시면서 사명이기에 고난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 살아있는 순교자를 원하십니다. 상황과 타협 하지 않는 순교자, 신앙을 지키려고 세상 것을 포기하는 순교자를 원하십니다. 우리모두 주워진 사명에 충성하여 주님의 고난에 충성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로 주님은 고난을 통하여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영광을 얻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인정하 시는 고난이었다는 증거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두 가지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1)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 이름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믿는 자에게 소망을 주고, 기쁨을 주고, 힘을 되는 이름이며, 마귀를 물리치는 이름입니다.
(2)모든 무릎을 그 앞에 꿇게 하셨습니다. 즉 예수만이 만 왕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로마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는데 로마는 AD313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 했습니다. 또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왕이 헨델의 메시아 공연중 왕의왕 이란 가사로 예수님을 찬양할 때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왜 일어났느냐고 물으니 나는 일개 국의 왕이 요 주님은 천하만국의 왕이신데 그 이름 앞에서 내가 어찌 앉아 있을 수 있느냐고 했답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 고난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내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 고 했습니다. 희랍의 아서왕은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기사들에게 수고했다고 말하지 않고, 그대는 희생 의 흔적을 자졌느냐 물으면서 흔적이 있는 자만 왕의 만찬에 참여하도록 했답니다. 십자가는 중죄인을 처형하는 형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영광의 십자가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흔적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적으로 주님 께서 사랑과 용서와 사명과 영광을 위하여 고난 당하셨다면 우리도 사랑의 실천자, 용서의 삶, 사명에 충성, 모든 영광 하나님께 드리는 살아있는 순교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남강(南岡) 이승훈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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