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성 선정 (수20:7-9)
본문
도피성은 모두 여섯 개로써 요단강 양편으로 북쪽, 중앙, 남쪽에 각각 두었습니다. 게데스는 헬몬산 하부에서 가까운 북쪽 갈릴리에 있으며, 세겜은 중앙 사마리아의 에발과 그리심 산맥 사이의 옛 종족의 중심지였습니다. 기랏 아르바는 유다 산지에 있는 헤브론입니다. 베셀의 위치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르우벤 지파 지역에 있기 때문에 사해 북구 동편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라봇은 길르앗 라못인데 갈릴리 바다 동남쪽으로 약 25마일 떨어진 동편 사막에 가까운 중요한 지역입니다. 바산의 골란은 훨씬 북쪽이어서 아마 갈릴리 바다에서 동편으로 약 7마일쯤 떨어진 곳이었을 것입니다. 구약의 도피성은 모두 높은 산지에 설치하였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도 십자가에 높이 달려 돌아 간심으로 죄인들이 바라보게 했습니다. 민 21장에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불뱀들을 보내어 백성들을 물게 함으로 다 죽게 되었는데 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명하시기를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매어달게 하고 그것을 쳐다보는 사람은 모두 살게 했습니다. 도피성은 요단강 동편에 세 곳, 서편에 세 곳을 지정하여 각 지파들이 들어오기 편리한 곳에 정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상 누구에게나 파악되리만큼 단순하고 평이함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할 것 없이 국경과 민족을 초월한 우주적이면서도 누구나 들을 수 있게 평이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지역적인 감정이나 어떤 분파적인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은 평민의 복음입니다. 어떤 특권 계급이나 특수 계층의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복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피성이 있는 곳은 광야에 있으면서 죄인이면 누구나 올 수 있는 장소에 위치하였던 것입니다.
1. 요단강 서편에 있는 세 성에 대하여
(1) 게데스 이 성은 요단강 서쪽으로 갈릴리에 있으니 최상부에 있는데 그 이름의 뜻은 “거룩하다”는 뜻입니다. 과연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거룩이 되시나니 “예수는 하나님께서 세우사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바 거룩은 우리가 가진 것이 아니요 우리에게서 난 것은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심으로 내가 주 안에 들어가 거룩한 자가 되는 것 뿐입니다. 우리가 게데스 도피성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생활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하여졌다는 말은 주 안에서 하는 말이요, 신앙에서 하는 말입니다.
(2) 세겜 이 성은 요단강이 서편 중간에 있으니 그 이름의 뜻은 “능력”입니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 강하다고 자인하지만 실로 약한 것 뿐입니다. 육체도 약하고, 의지도 약하니 허약함에 포위된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은 본연적으로 약합니다. 그러나 주 안에 있는 자는 사람이 보기에 약한 자라도 사자보다 더 강하여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약한 자였지만, 성에 대한 유혹을 받았을 때 사자보다 더 용감하게 이겼고, 다니엘도 약한 사람이지만 사자의 입을 막았으며, 세 청년도 약한 사람이었지만 불의 기세를 막았습니다. 이것은 다 주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용사라도 주님 품에서 떠나면 약한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삼손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능력의 주 안에서만 강자가 되고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3) 헤브론 이 성은 요단강 서쪽으로 최남단에 있으니, 헤브론이란 뜻은 “교제”, “침묵”, “교통”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주 예수와 교제하는 것이 참으로 생명이요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의 하고자 하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창 18:17) 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아브라함과 하나님과 교제할 때였습니다. 하나님의 가슴 속의 깊은 뜻을 아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인데 그 교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기도하는 일은 곧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입니다.
2. 요단강 동편에 있는 세 성에 대하여
(1) 베셀 이 성은 요단강 동편에 있는 성으로 최남단에 있습니다. 이 성의 이름의 뜻은 “안전”입니다. 이 세상의 어디를 가든지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지진, 풍재, 화재, 우환, 질고, 사망 등 어느 구석도 안전한 곳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도피성 되시는 주님 안에서는 진정한 평안이 있습니다. 그 안에 있으면 참으로 안전합니다. 노아시대의 홍수 때 전 세계가 다 멸망받았지만 오직 방주 안에 있던 노아와 그 식구들만이 안전하였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이 방주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시 마지막 재앙인 장자 죽는 재앙이 유월절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장막에서는 안전하였습니다. 주님 밖에 거하는 자는 홍수와 칼에 죽음과 심판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편안함과 즐거움과 안전이 있으니 우리는 항상 주 안에 있어야 합니다. 롬 8:1에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하였습니다.
(2) 라못 이곳은 요단강 동편 중부에 있는데 그 이름의 뜻은 “높이 들린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고상하고 고결하고 초월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을 영적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신은 좀 고상하게 들려야 합니다. 금욕에서 떠나, 명예욕에서 떠나, 부귀욕에서 허영심, 공명심에서 좀 떠나야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일반 군중을 떠나고, 70장로를 떠나고, 아론과 여호수아를 떠나 단신으로 시내산으로 올라가고 또 올라가서 하나님과 교제하여 그 얼굴에 광채가 나타난 것과 같이, 주 예수께서 헬몬산에 올라가서 광채를 나타내신 것 같이 주 예수 안에서 영원한 천국과, 영원한 기업을 바라봅시다.
(3) 골란 이 성은 요단강 동편 최북구로써 그 이름의 뜻은 “행복”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참 행복은 없습니다. 인간 세상은 광야와 같아서 광풍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참 행복이 있습니다. 참 위로가 있습니다. 가난해도 병 중에도 죽는 그 찰나에도 주 안에 있는 자에게는 기쁨이 있으니 행복한 것입니다.
3. 도피성 안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습니다 9절에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우거하는 객을 위하여 선정한 성읍들로써” 라고 했습니다. 도피성은 본래 레위 지파 기업의 분깃으로 각 지파는 저마다 제일 좋은 부분을 성별하여 하나님께 드렸는데, 오히려 그것이 자기들이 숨는 피난처가 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도피성 안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이 함께 거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차별이 없음을 의미합니다(골 10:12). 구약시대의 오순절(맥추절)은 신약시대에 성령 강림의 거점을 이루었는데, 구약의 맥추절에는 저마다 원하는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성 중의 레위인 뿐 아니라 객과 노인과 고아와 과부들이 모두 함께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 하였습니다(신 16:11).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는 유대인이 왕이라 쓴 패가 있었는데, 히브리어, 로마, 헬라어로 기록하였습니다. 히브리인은 혈통과 전통을 자랑하고, 로마인은 정치를 자랑하고, 헬라인은 문화를 자랑하는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죄인인 것을 드러내고 거기에는 차별이 없음을 드려내는 것입니다(롬 3:7).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원수된 담을 헐으시고 그 안에서 새 사람을 지어 화평을 이루게 하였는데(엡 2:14-15), 거기에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의 분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골 3:11). 그리스도는 만유의 주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 온 세상의 도피성입니다. 도피성에 도피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형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공정한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도피성에 도피한 자는 우선 신원보장을 받고 공정한 재판을 받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죄 값이 거져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죽으셨기에 내 죄가 사하여진 것입니다.
1. 요단강 서편에 있는 세 성에 대하여
(1) 게데스 이 성은 요단강 서쪽으로 갈릴리에 있으니 최상부에 있는데 그 이름의 뜻은 “거룩하다”는 뜻입니다. 과연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거룩이 되시나니 “예수는 하나님께서 세우사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바 거룩은 우리가 가진 것이 아니요 우리에게서 난 것은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심으로 내가 주 안에 들어가 거룩한 자가 되는 것 뿐입니다. 우리가 게데스 도피성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생활의 가치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하여졌다는 말은 주 안에서 하는 말이요, 신앙에서 하는 말입니다.
(2) 세겜 이 성은 요단강이 서편 중간에 있으니 그 이름의 뜻은 “능력”입니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 강하다고 자인하지만 실로 약한 것 뿐입니다. 육체도 약하고, 의지도 약하니 허약함에 포위된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은 본연적으로 약합니다. 그러나 주 안에 있는 자는 사람이 보기에 약한 자라도 사자보다 더 강하여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약한 자였지만, 성에 대한 유혹을 받았을 때 사자보다 더 용감하게 이겼고, 다니엘도 약한 사람이지만 사자의 입을 막았으며, 세 청년도 약한 사람이었지만 불의 기세를 막았습니다. 이것은 다 주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용사라도 주님 품에서 떠나면 약한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삼손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능력의 주 안에서만 강자가 되고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3) 헤브론 이 성은 요단강 서쪽으로 최남단에 있으니, 헤브론이란 뜻은 “교제”, “침묵”, “교통”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주 예수와 교제하는 것이 참으로 생명이요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의 하고자 하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창 18:17) 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아브라함과 하나님과 교제할 때였습니다. 하나님의 가슴 속의 깊은 뜻을 아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인데 그 교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기도하는 일은 곧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입니다.
2. 요단강 동편에 있는 세 성에 대하여
(1) 베셀 이 성은 요단강 동편에 있는 성으로 최남단에 있습니다. 이 성의 이름의 뜻은 “안전”입니다. 이 세상의 어디를 가든지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지진, 풍재, 화재, 우환, 질고, 사망 등 어느 구석도 안전한 곳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도피성 되시는 주님 안에서는 진정한 평안이 있습니다. 그 안에 있으면 참으로 안전합니다. 노아시대의 홍수 때 전 세계가 다 멸망받았지만 오직 방주 안에 있던 노아와 그 식구들만이 안전하였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이 방주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시 마지막 재앙인 장자 죽는 재앙이 유월절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장막에서는 안전하였습니다. 주님 밖에 거하는 자는 홍수와 칼에 죽음과 심판이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편안함과 즐거움과 안전이 있으니 우리는 항상 주 안에 있어야 합니다. 롬 8:1에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하였습니다.
(2) 라못 이곳은 요단강 동편 중부에 있는데 그 이름의 뜻은 “높이 들린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고상하고 고결하고 초월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을 영적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신은 좀 고상하게 들려야 합니다. 금욕에서 떠나, 명예욕에서 떠나, 부귀욕에서 허영심, 공명심에서 좀 떠나야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일반 군중을 떠나고, 70장로를 떠나고, 아론과 여호수아를 떠나 단신으로 시내산으로 올라가고 또 올라가서 하나님과 교제하여 그 얼굴에 광채가 나타난 것과 같이, 주 예수께서 헬몬산에 올라가서 광채를 나타내신 것 같이 주 예수 안에서 영원한 천국과, 영원한 기업을 바라봅시다.
(3) 골란 이 성은 요단강 동편 최북구로써 그 이름의 뜻은 “행복”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참 행복은 없습니다. 인간 세상은 광야와 같아서 광풍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참 행복이 있습니다. 참 위로가 있습니다. 가난해도 병 중에도 죽는 그 찰나에도 주 안에 있는 자에게는 기쁨이 있으니 행복한 것입니다.
3. 도피성 안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습니다 9절에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우거하는 객을 위하여 선정한 성읍들로써” 라고 했습니다. 도피성은 본래 레위 지파 기업의 분깃으로 각 지파는 저마다 제일 좋은 부분을 성별하여 하나님께 드렸는데, 오히려 그것이 자기들이 숨는 피난처가 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도피성 안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이 함께 거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차별이 없음을 의미합니다(골 10:12). 구약시대의 오순절(맥추절)은 신약시대에 성령 강림의 거점을 이루었는데, 구약의 맥추절에는 저마다 원하는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성 중의 레위인 뿐 아니라 객과 노인과 고아와 과부들이 모두 함께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 하였습니다(신 16:11).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는 유대인이 왕이라 쓴 패가 있었는데, 히브리어, 로마, 헬라어로 기록하였습니다. 히브리인은 혈통과 전통을 자랑하고, 로마인은 정치를 자랑하고, 헬라인은 문화를 자랑하는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죄인인 것을 드러내고 거기에는 차별이 없음을 드려내는 것입니다(롬 3:7).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원수된 담을 헐으시고 그 안에서 새 사람을 지어 화평을 이루게 하였는데(엡 2:14-15), 거기에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의 분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골 3:11). 그리스도는 만유의 주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 온 세상의 도피성입니다. 도피성에 도피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형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공정한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도피성에 도피한 자는 우선 신원보장을 받고 공정한 재판을 받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죄 값이 거져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죽으셨기에 내 죄가 사하여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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