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성2 (수20:7-9)
본문
지난 주에는 도피성이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주로 도피성의 기능들과 위치한 장소의 특징을 생각하면서도피성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도피성의 이름들이 보여주는 의미와 그것들이 가나안 땅에 흩어져 있는 위치가 보여주는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사람 이름이든지 땅 이름이든지 이름들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은 기분 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짓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를 생각하고 짓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가 이름에 들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이름은 대개 좋은 뜻을 붙여서 짓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신앙의 영광을 드러내라는 소원을 붙여서 '신영'이라고 지었고, '믿고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신은이라고 지었습니다. 많은 이름들이 이런 유의 의미를 가지고 지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작명가나 또는 목사에게 이름을 짓는 것을 부탁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명이나 지명들은 소원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어떤 역사를 반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헤브론의 옛 이름을 '기럇 아르바'고 했는데 그 뜻은 '아르바의 도성'입니다(수14:15).
그런데 아르바의 도성이라고 부르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서 가장 큰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큰 키에다가 아무도 당할 수 없는 힘을 가진 거인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가 기럇 아르바에 살았더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사는 도성을 기럇 아르바 즉 아르바의 도성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와 같이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 이름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인명이든지 지명이든지 사람이 지은 이름에는 사람이 부여한 뜻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철학적으로 발전시킨 것을 우리 나라에서는 성명 철학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관계가 있는 이름에는 하나님이 부여한 뜻이 들어 있습니다. 즉 계시가 담겨져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름에는 계시가 담겨져 있는 것이 많습니다. 인간의 소원이나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 이름들도 있지만 하나님의 뜻과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 이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사람들은 명칭 신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신학이란 하나님의 뜻을 다루는 학문인데 이름에다가 하나님의 뜻을 담았기에 명칭신학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학이라고 하면 체계화된 지식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명칭신학이라고 하면 이름에서 체계적인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체계라고 하면 일관된 원리를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름 속에 하나님의 일관된 뜻이 원리화되어 나타나 있다는 말입니다. 즉 그 이름이 가지고 있는 뜻이 전체적인 계시 체계와 일치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난 주에 보았던 바와 같이 도피성들이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들이라면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이름들도 하나님의 뜻을 체계적으로 담고 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즉 그 이름들의 뜻이 계시 체계와 일치하고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의해서 주어진 이름이라면 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피성의 이름들이 가지는 뜻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즉 명칭신학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서편에 있는 도피성부터 생각해 봅시다.
(1)갈릴리 게데스 갈릴리에 있는 게데스를 말합니다. 여기서 갈릴리란 갈릴리 지방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팔레스타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가 포함된 맨 윗쪽 지방과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주로 차지한 중간 부분과 그리고 유다 지파가 차지한 남쪽의 유다 지방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갈릴리 게데스란 맨 위쪽 갈릴리 지방에 있는 게데스를 말합니다.
그런데 게데스라는 이름은 '거룩한 곳' 즉 '성소'를 뜻합니다. 이스라엘이 여기에 들어가기 전에 이 곳에 가나안 사람들의 성소가 있었기 때문에 게데스라고 불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지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나서 그 곳을 도피성으로 만들고 그 곳에 레위인들이 살도록 한 것을 보면 이스라엘의 거룩과 관계지어서 생각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스라엘의 거룩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므로 도피성 게데스 즉 성소는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는 곳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긍휼의 하나님을 만나 부지중에 지은 살인 죄에 대하여 긍휼을 입는 곳이 게데스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게데스는 법궤 윗두껑 시은소의 연장입니다. 따라서 게데스는 모든 도피성 전체가 가지는 의미를 대표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모든 도피성이 게데스 즉 성소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법궤 즉 시은소가 가나안 땅 전 지역으로 확장됨을 보여주는 것이 도피성이라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도피성은 갈릴리에 하나, 에브라임 산지 즉 팔레타인 중부 지역에 하나 유다 산지 헤브론에 하나씩 흩어져 있으며, 요단 동부에도 역시 이런 식으로 흩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르우벤에 하나 갓에 하나 므낫세 반 지파에 하나가 있습니다. 지역을 적당히 배분하여 이스라엘이 사는 전 지역에 흩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시은소의 은총을 이스라엘 전 지역이 누리도록 하려는 배려로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서 이것은 이스라엘이 사는 모든 지역이 성소라는 뜻으로도 해석됩니다.
그렇다면 성소란 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게데스라는 이름의 성소는 바로 온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 하나님의 은총이 드리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게데스는 신약의 예수님 자신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참 하나님의 성소요 온 이스라엘이기 때문입니다.
(2)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 이 곳은 갈릴리와 사해의 한 중간쯤 되는 위치의 팔레스틴 땅 한 가운데 있습니다. 세겜이란 사람의 '등'이나 '어깨'를 뜻하는 말입니다. 또 산마루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원래는 이 곳이 산마루에 위치하여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불렀는지 알 수가 없지만 이스라엘이 이 곳을 점령하여서 도피성을 삼고부터는 산마루가 하나님의 '등'이나 '어깨'를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등이나 어깨는 무거운 짐을 메고 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업고 나오듯이(신32:11-12) 능력 있게 인도하신 것을 기억하게 해 주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시에 하나님은 구원의 능력자이셨습니다. 그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죄악에서 구원하시는 능력자이심을 도피성 세겜을 통해서 보여 주셨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겜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죄악에서 구원하는 능력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세겜 도피성의 의미를 아는 것이 바로 장차 올 분을 아는 것이 됩니다. 구약 성도들은 도피성 세겜을 통해서 장차 올 분의 구원의 능력을 계시를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능력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3)헤브론 헤브론은 남쪽 유다에 있는 도피성입니다. 위도상 사해 중간쯤에 있는데 해발 3040피트(약 1010m)되는 도시로서 예루살렘 남남서쪽으로 19마일 되는 곳에 있습니다. 이 헤브론의 옛 이름이 '기럇 아르바'입니다. 기럇이란 말은 도성 또는 도시를 뜻하는데 아르바는 '넷'이라는 뜻도 있고 거인 아낙 자손 중에서도 가장 큰 사람 아르바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가 네 번째 태어났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지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 14:15절에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브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고 한 말씀에 비추어 볼 때 기럇 아르바는 아낙 자손 거인 아르바의 도성이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 이 곳을 헤브론으로 바꾸어 불렀습니다. 헤브론이란 뜻은 '동맹, 연합'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갈렙이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다는 말씀과(수14:14) 일치합니다. 추측이기는 해도 아마도 갈렙이 여호와를 온전히 좇아 얻은 것을 기념하여 불렀던 이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창세기 13장과 23장에는 아브라함 때도 기럇 아르바를 헤브론이라고 한 기록이 나옵니다만 이것은 후대에 성경을 편집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렇게 정리하고 기록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과 연합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기록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헤브론은 하나님을 온전히 좇으므로 아낙 자손 아르바를 치고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은 것을 기념하게 하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온전히 좇는 자에게 약속의 땅을 주신다는 것을 계시해 주는 곳이 헤브론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헤브론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주는 곳인 셈입니다. 힘센 아낙 자손도 치게 하시면서 온전히 좇는 자에게 약속대로 기업을 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헤브론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곳을 피난처로 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피난처로 삼으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우리의 피난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동편 도피성들도 생각해 봅시다.
(4) 평지 광야의 베셀 베셀은 르우벤 지파의 땅에 있습니다. 요단 동편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서 가장 남쪽에 있습니다. 베셀이라는 말의 뜻은 '접근할 수 없는 곳, 요새, 방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도피성에 어울리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접근할 수 없는 요새니까 도피성이 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하나님이 도피성 되기 가장 안전한 분임을 보여주는 이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에게 피하는 자가 보호를 받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가장 안전한 도피성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이 계시며 또한 그 분 자신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는 가장 안전한 분입니다.
(5) 갓 지파의 길르앗 라못 길르앗에 있는 라못을 말하는데 라못이라는 뜻은 높은 곳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지난 주일에 높은 곳은 하나님의 안전함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안전한 분이 되십니까 그 분이 내려오심으로 안전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내려 오심으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고 예수님이 내려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으로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을 요한복음에서는 들린다고 했습니다. 라못은 낮아지셔서 이스라엘의 높은 곳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며 또한 신약에서는 낮아지셔서 들리심으로 죄인의 피난처 되시는 주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6) 골란 바산에 있는 골란은 동편에서 맨 윗쪽에 있는 도피성입니다. 지난 주에 이것의 뜻이 기쁨 또는 마음을 돌리는 것(변심)으로 이라고 하면서 정확하게 그 뜻을 알기가 힘들다고 했는데 전체적인 도피성의 의미에 비추어 볼 때 '기쁨' 또는 '환희'로 생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기쁨이요 환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시편에는 하나님을 '극락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골란은 하나님이 유일의 기쁨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물론 신약의 신자들에게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유일한 기쁨이요 또 그 안에 있는 우리들의 유일한 기쁨입니다. 우리들에게 예수님이 이러한 기쁨이 되지 않으면 그 분을 믿는 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믿는 자는 예수님이 바로 궁극적인 기쁨요 따라서 유일한 기쁨이 되어 있습니다. 이상에서 볼 때 도피성은 그 뜻에서도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요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도피성들이 이스라엘 영토의 곳곳에 흩어져 있어서 전 영토가 하나님의 은총에 감싸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땅의 이야기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바로 하나님의 은총의 대상이요 하나님의 성소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힘이요 요새요 높은 곳이며 기쁨입니다. 그 분은 이스라엘과 함께 있음을 도피성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누구든지 그 분께로 피하고 그 분을 피난처로 삼아서 긍휼을 입도록 가르치려고 세우신 것이 도피성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면을 그의 아들을 보내셔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하나님 자신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도피성입니다. 우리는 지금 도피성 안에 있습니다. 죄악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이 사신 예수님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분은 영원한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그 분은 이미 우리들을 용서하셨고 또 언제든지 우리를 용서하시며 받으십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그 분을 의지하고 담대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도록 합시다. 그 분을 믿고 그 분의 은총과 용서를 누리십시오. 그 분이 주시는 안전을 누리십시오. 그 분이 여러분의 궁극적인 즐거움이라는 것을 믿고 여러분도 즐거워하십시오.
그런데 사람의 이름은 대개 좋은 뜻을 붙여서 짓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신앙의 영광을 드러내라는 소원을 붙여서 '신영'이라고 지었고, '믿고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신은이라고 지었습니다. 많은 이름들이 이런 유의 의미를 가지고 지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작명가나 또는 목사에게 이름을 짓는 것을 부탁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명이나 지명들은 소원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어떤 역사를 반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헤브론의 옛 이름을 '기럇 아르바'고 했는데 그 뜻은 '아르바의 도성'입니다(수14:15).
그런데 아르바의 도성이라고 부르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서 가장 큰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큰 키에다가 아무도 당할 수 없는 힘을 가진 거인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가 기럇 아르바에 살았더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사는 도성을 기럇 아르바 즉 아르바의 도성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와 같이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 이름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인명이든지 지명이든지 사람이 지은 이름에는 사람이 부여한 뜻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철학적으로 발전시킨 것을 우리 나라에서는 성명 철학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관계가 있는 이름에는 하나님이 부여한 뜻이 들어 있습니다. 즉 계시가 담겨져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름에는 계시가 담겨져 있는 것이 많습니다. 인간의 소원이나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 이름들도 있지만 하나님의 뜻과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 이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사람들은 명칭 신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신학이란 하나님의 뜻을 다루는 학문인데 이름에다가 하나님의 뜻을 담았기에 명칭신학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학이라고 하면 체계화된 지식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명칭신학이라고 하면 이름에서 체계적인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체계라고 하면 일관된 원리를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름 속에 하나님의 일관된 뜻이 원리화되어 나타나 있다는 말입니다. 즉 그 이름이 가지고 있는 뜻이 전체적인 계시 체계와 일치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난 주에 보았던 바와 같이 도피성들이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들이라면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이름들도 하나님의 뜻을 체계적으로 담고 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즉 그 이름들의 뜻이 계시 체계와 일치하고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의해서 주어진 이름이라면 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피성의 이름들이 가지는 뜻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즉 명칭신학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서편에 있는 도피성부터 생각해 봅시다.
(1)갈릴리 게데스 갈릴리에 있는 게데스를 말합니다. 여기서 갈릴리란 갈릴리 지방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팔레스타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가 포함된 맨 윗쪽 지방과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주로 차지한 중간 부분과 그리고 유다 지파가 차지한 남쪽의 유다 지방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갈릴리 게데스란 맨 위쪽 갈릴리 지방에 있는 게데스를 말합니다.
그런데 게데스라는 이름은 '거룩한 곳' 즉 '성소'를 뜻합니다. 이스라엘이 여기에 들어가기 전에 이 곳에 가나안 사람들의 성소가 있었기 때문에 게데스라고 불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지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나서 그 곳을 도피성으로 만들고 그 곳에 레위인들이 살도록 한 것을 보면 이스라엘의 거룩과 관계지어서 생각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스라엘의 거룩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므로 도피성 게데스 즉 성소는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는 곳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긍휼의 하나님을 만나 부지중에 지은 살인 죄에 대하여 긍휼을 입는 곳이 게데스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게데스는 법궤 윗두껑 시은소의 연장입니다. 따라서 게데스는 모든 도피성 전체가 가지는 의미를 대표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모든 도피성이 게데스 즉 성소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법궤 즉 시은소가 가나안 땅 전 지역으로 확장됨을 보여주는 것이 도피성이라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도피성은 갈릴리에 하나, 에브라임 산지 즉 팔레타인 중부 지역에 하나 유다 산지 헤브론에 하나씩 흩어져 있으며, 요단 동부에도 역시 이런 식으로 흩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르우벤에 하나 갓에 하나 므낫세 반 지파에 하나가 있습니다. 지역을 적당히 배분하여 이스라엘이 사는 전 지역에 흩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시은소의 은총을 이스라엘 전 지역이 누리도록 하려는 배려로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서 이것은 이스라엘이 사는 모든 지역이 성소라는 뜻으로도 해석됩니다.
그렇다면 성소란 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게데스라는 이름의 성소는 바로 온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 하나님의 은총이 드리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게데스는 신약의 예수님 자신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참 하나님의 성소요 온 이스라엘이기 때문입니다.
(2)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 이 곳은 갈릴리와 사해의 한 중간쯤 되는 위치의 팔레스틴 땅 한 가운데 있습니다. 세겜이란 사람의 '등'이나 '어깨'를 뜻하는 말입니다. 또 산마루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원래는 이 곳이 산마루에 위치하여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불렀는지 알 수가 없지만 이스라엘이 이 곳을 점령하여서 도피성을 삼고부터는 산마루가 하나님의 '등'이나 '어깨'를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등이나 어깨는 무거운 짐을 메고 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업고 나오듯이(신32:11-12) 능력 있게 인도하신 것을 기억하게 해 주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시에 하나님은 구원의 능력자이셨습니다. 그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죄악에서 구원하시는 능력자이심을 도피성 세겜을 통해서 보여 주셨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겜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죄악에서 구원하는 능력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세겜 도피성의 의미를 아는 것이 바로 장차 올 분을 아는 것이 됩니다. 구약 성도들은 도피성 세겜을 통해서 장차 올 분의 구원의 능력을 계시를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능력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3)헤브론 헤브론은 남쪽 유다에 있는 도피성입니다. 위도상 사해 중간쯤에 있는데 해발 3040피트(약 1010m)되는 도시로서 예루살렘 남남서쪽으로 19마일 되는 곳에 있습니다. 이 헤브론의 옛 이름이 '기럇 아르바'입니다. 기럇이란 말은 도성 또는 도시를 뜻하는데 아르바는 '넷'이라는 뜻도 있고 거인 아낙 자손 중에서도 가장 큰 사람 아르바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가 네 번째 태어났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지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 14:15절에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브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고 한 말씀에 비추어 볼 때 기럇 아르바는 아낙 자손 거인 아르바의 도성이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 이 곳을 헤브론으로 바꾸어 불렀습니다. 헤브론이란 뜻은 '동맹, 연합'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갈렙이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다는 말씀과(수14:14) 일치합니다. 추측이기는 해도 아마도 갈렙이 여호와를 온전히 좇아 얻은 것을 기념하여 불렀던 이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창세기 13장과 23장에는 아브라함 때도 기럇 아르바를 헤브론이라고 한 기록이 나옵니다만 이것은 후대에 성경을 편집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렇게 정리하고 기록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과 연합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기록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헤브론은 하나님을 온전히 좇으므로 아낙 자손 아르바를 치고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은 것을 기념하게 하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온전히 좇는 자에게 약속의 땅을 주신다는 것을 계시해 주는 곳이 헤브론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헤브론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주는 곳인 셈입니다. 힘센 아낙 자손도 치게 하시면서 온전히 좇는 자에게 약속대로 기업을 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헤브론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곳을 피난처로 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피난처로 삼으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우리의 피난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동편 도피성들도 생각해 봅시다.
(4) 평지 광야의 베셀 베셀은 르우벤 지파의 땅에 있습니다. 요단 동편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서 가장 남쪽에 있습니다. 베셀이라는 말의 뜻은 '접근할 수 없는 곳, 요새, 방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도피성에 어울리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접근할 수 없는 요새니까 도피성이 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하나님이 도피성 되기 가장 안전한 분임을 보여주는 이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에게 피하는 자가 보호를 받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가장 안전한 도피성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이 계시며 또한 그 분 자신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는 가장 안전한 분입니다.
(5) 갓 지파의 길르앗 라못 길르앗에 있는 라못을 말하는데 라못이라는 뜻은 높은 곳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지난 주일에 높은 곳은 하나님의 안전함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안전한 분이 되십니까 그 분이 내려오심으로 안전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내려 오심으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고 예수님이 내려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으로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을 요한복음에서는 들린다고 했습니다. 라못은 낮아지셔서 이스라엘의 높은 곳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며 또한 신약에서는 낮아지셔서 들리심으로 죄인의 피난처 되시는 주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6) 골란 바산에 있는 골란은 동편에서 맨 윗쪽에 있는 도피성입니다. 지난 주에 이것의 뜻이 기쁨 또는 마음을 돌리는 것(변심)으로 이라고 하면서 정확하게 그 뜻을 알기가 힘들다고 했는데 전체적인 도피성의 의미에 비추어 볼 때 '기쁨' 또는 '환희'로 생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기쁨이요 환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시편에는 하나님을 '극락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골란은 하나님이 유일의 기쁨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물론 신약의 신자들에게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유일한 기쁨이요 또 그 안에 있는 우리들의 유일한 기쁨입니다. 우리들에게 예수님이 이러한 기쁨이 되지 않으면 그 분을 믿는 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믿는 자는 예수님이 바로 궁극적인 기쁨요 따라서 유일한 기쁨이 되어 있습니다. 이상에서 볼 때 도피성은 그 뜻에서도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요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도피성들이 이스라엘 영토의 곳곳에 흩어져 있어서 전 영토가 하나님의 은총에 감싸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땅의 이야기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바로 하나님의 은총의 대상이요 하나님의 성소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힘이요 요새요 높은 곳이며 기쁨입니다. 그 분은 이스라엘과 함께 있음을 도피성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누구든지 그 분께로 피하고 그 분을 피난처로 삼아서 긍휼을 입도록 가르치려고 세우신 것이 도피성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면을 그의 아들을 보내셔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하나님 자신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도피성입니다. 우리는 지금 도피성 안에 있습니다. 죄악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이 사신 예수님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분은 영원한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그 분은 이미 우리들을 용서하셨고 또 언제든지 우리를 용서하시며 받으십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그 분을 의지하고 담대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도록 합시다. 그 분을 믿고 그 분의 은총과 용서를 누리십시오. 그 분이 주시는 안전을 누리십시오. 그 분이 여러분의 궁극적인 즐거움이라는 것을 믿고 여러분도 즐거워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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