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가치 대 그릇된 가치 (시130:3)
본문
구원받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분명히 예수 안에서 한 성령님을 받은, 같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때로, 각자 조금씩 편차가 있는 가치관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편차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에 그 가치의 진위(眞僞)를 가를 만한 어떤 표준이 있다는 뜻은 아 닙니다. 다만 진리와 도덕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측으로부터, 각각의 문화가 가지고 있는 상대성과 특수성을 인정하는 측에 이르기까지, 가치 인식 상 의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언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릇된 가치가 횡행하는 현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 른 가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 인간이 그 가치를 인식하는 시점에서,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기반으로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성경이 가르치는 여호와 하나님의 가치는 견고하고 굳건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가치는, 그분의 거룩하 신 성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들 주변에서 우리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이 시대의 가치가, 한 시대의 가치로서 그 힘을 상실하는 때가 올지라도, 하나님의 가르침은 그때나 지금이나 또 앞으로도 변함없이 동일하다는 사실입니다. 역사에 등장했던 많은 지배 세력 가운데, 하나님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던 세력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구(舊) 소련의 지배 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진리를 떠나 인간의 눈과 인간의 생각 으로 만들어낸 가치는, 그들이 아무리 최고의 가치로 주장한다고 해도 결 국은 퇴색한 모습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우리는 조용히 지켜보았습니다. 오 직 하나님의 가치는 진실이며, 그 진실은 영원합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사야서 40장 8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하고 있는 진실되고 영원한 가치를 사모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말씀 안에 밝히 선포하신 진리와 가치를 깨달을 수 있기를 기도하십시오. 말씀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의 종이 선포하는 말씀에도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깨달은 대로, 그 가르침을 행하십시 오. 듣고 깨달은 대로 행할 때, 우리는 풀과 같이 마르지 않는, 꽃과 같지 시들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가치를 경험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도 영원한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는 굳건 한 하루가 되길 기도합시다. 제 1의 가치:주님을 의뢰하는 것 시 2 편 세상에 서로 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사람은 모두 각기 다른 생각과 각기 다른 주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상대방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상대와 내가 서로 다른 생각과 주장을 가지 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과 주장을 갖게 되는 이유는, 아마 우리들 개인의 관심이 다르고 이해 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생각과 주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사실 한 사회에서 사회 내부의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각 개인의 이익을 유보하게 하는 어떤 사회적 행위가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서 사회는 먼저 모든 사회 구성원 에게 그 사회적 행위를 결정한 동기를 납득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수용할 수 있는 '공동의 가치'가 있 어야 합니다.
그런데 공동의 가치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자기 개인의 관심과 이익만을 바라보는 데서 벗어나 보다 높은 가 치, 보다 높은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구성원 개개인의 '개 별 가치'와 공동체 전체의 '공동 가치' 사이에 서로 공통 부분을 찾는 것 이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치의 최고 우선 순위는 '주님의 주인되심'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와 최고 의 가치가 되시는 주님의 주권을 인식하는 것, 그것은 각기 다른 개개인의 집합체인 공동체 생활에 꼭 필요한 일입니다. 시편 기자는, 공동체 내에서 여러가지 형태의 악(惡)이 행해지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 이라고 진단합니다. 시편 10편 2절과 11절을 보십시오. "악한 자가 교만하 여 가련한 자를 심히 군박하오니 저희로 자기의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 저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 얼굴을 가리우셨으니 영 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그렇습니다. 만일 우리의 모든 행위를 감찰하시는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님께서 마지막 날에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한 일에 궁극적인 책임을 물으신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먼저 우리 주님을 더욱 신뢰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우리를 지키시는 주님의 성실하심을 믿고, 우리의 헌신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상이 크다는 사 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이기라"고 하신 주 님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적극적으로 주님과 함께 하는 생활이 되도록 만 들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키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제 2의 가치:가 정 마 19:3-12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에서 이혼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보도를 심 심치않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 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미 이혼율 40%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은 물론이 고, 가까운 일본이나 동남아, 중국과 같이 동양적인 사고 방식을 기반으로 하는 여러 나라들에서도 이혼율의 증가가 눈에 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안전할까요 미국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미국에서 그리스도인의 이혼율은 그리스도 인이 아닌 가정의 이혼율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부부가 함께 일 주일에 1회 이상 꾸준히 교회에 출석하는 미국 가정의 이혼율은 18%로, 이것은 전혀 신앙 생활을 하지 않는 가정의 이혼율에 비하면 그 절반에 그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러면 이렇게 통계 수치의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스도 인의 가정을 단단하게 묶어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가지로 분석할 수 있겠지만, 결혼이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교회에서 배우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태복음 19장 6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러한즉 이제 둘 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
그런데 사실, 가정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가 않습니다. 인간 이 처음 하나님을 반역한 이후, 인간의 모든 관계는 본질적으로 왜곡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친밀해야 할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안정감 보다는 긴장을 더 느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만일 가정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 을 경험하고 있다면,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주님이 우리 가정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시는지, 그리고 가정을 위해 우리가 기울 이는 모든 노력을 얼마나 귀중하게 여기시는지 돌아보는 것일 줄 압니다. 모든 인간 관계의 비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주님의 마음으로 상대를 바 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사랑하는 존재인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상대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만 일 우리 가정이, 가정의 귀중한 의미를 상실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아름답 게 열매맺는 가정이기를 소망한다면,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를 우리 가정 의 참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지금까지 그의 삶을 성실하게 지켜주신 주 님을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오늘 주님이 그 가정을 아름답게 지키실 것이라는 사실도 깊이 신뢰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영혼을 아끼시는 주님의 마음으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영혼을 아끼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시다. 제 3의 가치:개인의 성품 잠 22:1 지금처럼 물질적인 생활 수준의 높낮이로 인간을 평가하는 출세 지향적 인 사회 구조로 굳어지기 전에, 종교적인 신념이나 도덕성, 자기 절제, 정 의감 또는 다른 사람을 위하는 선한 마음과 같은 인간의 성품을 가치 기 준으로 삼아 인간을 바라보던 때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의 내적인 성품은, 그 사람 개인의 인생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에도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성품은, 그가 어떤 행동을 선택할 것 인지를 결정하는 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떤 사회적인 행동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도, 사실은 화려한 정치 구호 나 선전 보다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개별적인 성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영혼의 구원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겨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2장에서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행동에 필요 한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성품을 강조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로마서 12 장 9절 이후를 보십시오.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 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 소망 중 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 사도 바울이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를 세밀하게 지적하는 이유는, 우리의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 사실은, 우리의 의지(意志)라기 보다는 우리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어떤 사람을 기꺼이 도울 수 있다 면, 다시 말해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재능과 우리가 가진 좋은 것으로 기 꺼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갈 때 가능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성품이 성숙해 가면서, 우리의 행위가 점 점 더 주님을 따라가는 일에서 견고해져 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주님 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일에서, 우리가 더욱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인간의 가치 대 하나님의 가치 잠 31장 어떤 사람은 현대 사회의 특성을 '가치관의 부재'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치관을 "어떤 행동을 선택하게 하는 최종적인 판단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떤 행동을 선택할 때에는,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행동 이라고 해도 거기에는 분명히 우리 자신의 가치관이 반영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의식적으로 행해지는 행동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때로는 미처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취해진 행동 선택에 있어서도 우리가 내 면화하고 있는 가치관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가치관'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 만 모든 사람이 똑같은 기준을 가지고 가치관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경험에 따라, 또 자기 지식에 따라 지극히 제한 적인 가치관을 형성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인간에 의해 형성된, 인간적인 가치관은 대부분 편파적이고 때로는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판단이 편파적이고 불합리한 것과는 달리, 하나님의 판단 기준은 언제나 동일하며 또 언제나 치우침없이 정의로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그분이 소중하게 여기시는 가치에 대해서 우리에 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분의 성품을 알아갈 수 있고, 또 그분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만일 우리가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먼저 성경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성경 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고, 인간의 제한적인 가치관에 의존해서는 '진정한 가치'를 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점에 대해서 단호하게 선포하십니다.을 보십시오. "나의 길은 너희 길과 같지 않으며." 그런 가 하면 잠언 1장 7절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 그렇습니다. 사람은 그가 가지고 있는 판단에 따라 '가치관'을 만들어 내지만, 주 님은 그분이 소중하게 여기시는 가치에 따라 '사람'을 빚으십니다. 우리의 인생을 빚으시는 주님의 손길을 경험하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그 분의 길은 우리의 지식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십시 오. 그리고 선하신 그분의 성실하심에 의지하십시오. 우리 삶에 있는 모든 것으로, 합력해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이루신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 고, 기도하십시오. 분명히 여러 모양과 여러 상황에서 합당하게 역사하시는 주님을 경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들 각자 주님의 놀라 운 섭리와 경륜에 의지하여,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경험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시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사야서 40장 8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하고 있는 진실되고 영원한 가치를 사모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말씀 안에 밝히 선포하신 진리와 가치를 깨달을 수 있기를 기도하십시오. 말씀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의 종이 선포하는 말씀에도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깨달은 대로, 그 가르침을 행하십시 오. 듣고 깨달은 대로 행할 때, 우리는 풀과 같이 마르지 않는, 꽃과 같지 시들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가치를 경험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도 영원한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는 굳건 한 하루가 되길 기도합시다. 제 1의 가치:주님을 의뢰하는 것 시 2 편 세상에 서로 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사람은 모두 각기 다른 생각과 각기 다른 주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상대방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상대와 내가 서로 다른 생각과 주장을 가지 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과 주장을 갖게 되는 이유는, 아마 우리들 개인의 관심이 다르고 이해 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생각과 주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사실 한 사회에서 사회 내부의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각 개인의 이익을 유보하게 하는 어떤 사회적 행위가 필요하며, 그러기 위해서 사회는 먼저 모든 사회 구성원 에게 그 사회적 행위를 결정한 동기를 납득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수용할 수 있는 '공동의 가치'가 있 어야 합니다.
그런데 공동의 가치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자기 개인의 관심과 이익만을 바라보는 데서 벗어나 보다 높은 가 치, 보다 높은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구성원 개개인의 '개 별 가치'와 공동체 전체의 '공동 가치' 사이에 서로 공통 부분을 찾는 것 이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치의 최고 우선 순위는 '주님의 주인되심'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와 최고 의 가치가 되시는 주님의 주권을 인식하는 것, 그것은 각기 다른 개개인의 집합체인 공동체 생활에 꼭 필요한 일입니다. 시편 기자는, 공동체 내에서 여러가지 형태의 악(惡)이 행해지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 이라고 진단합니다. 시편 10편 2절과 11절을 보십시오. "악한 자가 교만하 여 가련한 자를 심히 군박하오니 저희로 자기의 베푼 꾀에 빠지게 하소서 /. 저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 얼굴을 가리우셨으니 영 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그렇습니다. 만일 우리의 모든 행위를 감찰하시는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님께서 마지막 날에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한 일에 궁극적인 책임을 물으신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먼저 우리 주님을 더욱 신뢰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우리를 지키시는 주님의 성실하심을 믿고, 우리의 헌신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상이 크다는 사 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이기라"고 하신 주 님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적극적으로 주님과 함께 하는 생활이 되도록 만 들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키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제 2의 가치:가 정 마 19:3-12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에서 이혼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보도를 심 심치않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 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미 이혼율 40%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은 물론이 고, 가까운 일본이나 동남아, 중국과 같이 동양적인 사고 방식을 기반으로 하는 여러 나라들에서도 이혼율의 증가가 눈에 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안전할까요 미국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미국에서 그리스도인의 이혼율은 그리스도 인이 아닌 가정의 이혼율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부부가 함께 일 주일에 1회 이상 꾸준히 교회에 출석하는 미국 가정의 이혼율은 18%로, 이것은 전혀 신앙 생활을 하지 않는 가정의 이혼율에 비하면 그 절반에 그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 러면 이렇게 통계 수치의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스도 인의 가정을 단단하게 묶어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가지로 분석할 수 있겠지만, 결혼이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교회에서 배우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태복음 19장 6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러한즉 이제 둘 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
그런데 사실, 가정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가 않습니다. 인간 이 처음 하나님을 반역한 이후, 인간의 모든 관계는 본질적으로 왜곡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친밀해야 할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안정감 보다는 긴장을 더 느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만일 가정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 을 경험하고 있다면,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주님이 우리 가정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시는지, 그리고 가정을 위해 우리가 기울 이는 모든 노력을 얼마나 귀중하게 여기시는지 돌아보는 것일 줄 압니다. 모든 인간 관계의 비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주님의 마음으로 상대를 바 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사랑하는 존재인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상대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만 일 우리 가정이, 가정의 귀중한 의미를 상실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아름답 게 열매맺는 가정이기를 소망한다면,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를 우리 가정 의 참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지금까지 그의 삶을 성실하게 지켜주신 주 님을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오늘 주님이 그 가정을 아름답게 지키실 것이라는 사실도 깊이 신뢰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영혼을 아끼시는 주님의 마음으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영혼을 아끼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시다. 제 3의 가치:개인의 성품 잠 22:1 지금처럼 물질적인 생활 수준의 높낮이로 인간을 평가하는 출세 지향적 인 사회 구조로 굳어지기 전에, 종교적인 신념이나 도덕성, 자기 절제, 정 의감 또는 다른 사람을 위하는 선한 마음과 같은 인간의 성품을 가치 기 준으로 삼아 인간을 바라보던 때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의 내적인 성품은, 그 사람 개인의 인생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에도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성품은, 그가 어떤 행동을 선택할 것 인지를 결정하는 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떤 사회적인 행동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도, 사실은 화려한 정치 구호 나 선전 보다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개별적인 성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영혼의 구원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겨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2장에서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행동에 필요 한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성품을 강조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로마서 12 장 9절 이후를 보십시오.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 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 소망 중 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 사도 바울이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를 세밀하게 지적하는 이유는, 우리의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 사실은, 우리의 의지(意志)라기 보다는 우리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어떤 사람을 기꺼이 도울 수 있다 면, 다시 말해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재능과 우리가 가진 좋은 것으로 기 꺼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갈 때 가능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성품이 성숙해 가면서, 우리의 행위가 점 점 더 주님을 따라가는 일에서 견고해져 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주님 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일에서, 우리가 더욱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인간의 가치 대 하나님의 가치 잠 31장 어떤 사람은 현대 사회의 특성을 '가치관의 부재'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치관을 "어떤 행동을 선택하게 하는 최종적인 판단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떤 행동을 선택할 때에는,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행동 이라고 해도 거기에는 분명히 우리 자신의 가치관이 반영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의식적으로 행해지는 행동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때로는 미처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취해진 행동 선택에 있어서도 우리가 내 면화하고 있는 가치관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가치관'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 만 모든 사람이 똑같은 기준을 가지고 가치관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경험에 따라, 또 자기 지식에 따라 지극히 제한 적인 가치관을 형성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인간에 의해 형성된, 인간적인 가치관은 대부분 편파적이고 때로는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판단이 편파적이고 불합리한 것과는 달리, 하나님의 판단 기준은 언제나 동일하며 또 언제나 치우침없이 정의로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그분이 소중하게 여기시는 가치에 대해서 우리에 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분의 성품을 알아갈 수 있고, 또 그분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만일 우리가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먼저 성경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성경 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고, 인간의 제한적인 가치관에 의존해서는 '진정한 가치'를 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점에 대해서 단호하게 선포하십니다.을 보십시오. "나의 길은 너희 길과 같지 않으며." 그런 가 하면 잠언 1장 7절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 그렇습니다. 사람은 그가 가지고 있는 판단에 따라 '가치관'을 만들어 내지만, 주 님은 그분이 소중하게 여기시는 가치에 따라 '사람'을 빚으십니다. 우리의 인생을 빚으시는 주님의 손길을 경험하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그 분의 길은 우리의 지식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십시 오. 그리고 선하신 그분의 성실하심에 의지하십시오. 우리 삶에 있는 모든 것으로, 합력해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이루신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 고, 기도하십시오. 분명히 여러 모양과 여러 상황에서 합당하게 역사하시는 주님을 경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들 각자 주님의 놀라 운 섭리와 경륜에 의지하여,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경험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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