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법이 즐거운 사람 (시119:57-72)
본문
며칠 전새벽기도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운전을 하고 가는 중 마음 속에서 찬송가 하나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것은 찬송가 178장 '은혜가 풍성한 여호와 하나님은 믿는자 한 사람 한 사람'이라고 하는 찬송이었는데 혹 부흥회 때나 골라서 부르던 찬송이요 보통 때 혼자서는 좀처럼 불러본 적이 없는 찬송이었습니다. 새벽기도회. 삼일기도회를 준비하면서 깨달은 말씀이 제게는 참 큰 은혜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혼자서 부흥회를 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목회를 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목사는 말씀으로 밥을 짓는 주부와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늘은 또 어떤 말씀으로 교인들에게 대접을 하여야 하는가를 생각하고 고민하며 말씀을 파헤치다보면 가끔씩 남들이 쉽게 찾지 못하는 보물같은 말씀을 발견하는 특별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 말씀을 전하기만 하지만 그와같은 일으르 계속 반복하다보면 하나님과 교인들에게 죄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서 정말 억지로 체면 때문에 조금씩이라도 그 말씀을 생활에 적용해 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원죄로 인하여 굳어지고 완악해진 몸과 마음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조금씩 조금씩 그 몸과 마음이 풀어지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일이 점점 쉬워지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조금씩 쉬어지게 되면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되는 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보게 되면 전에는 생각지도 못하고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을 보고 경험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데 그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며 감동하는 생활이 얼마나 기쁘고 즐겁고 감사한지 이루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전에 저희 아버님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여 약 3개월 정도를 기브스를 하고 누워 계신적이 있으셨습니다. 3개월만에 기브스를 불었지만 그동안 다리가 굳어졌기 때문에 퇴원한 후에도 여러달 동안을 물리 치료를 하며 그것을 풀어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뼈를 꺽는듯한 고통을 저희 아버님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잠시 고통 당하는 것이 싫다고 굳어진 다리를 편하게 내버려 둔다면 결국 불구가 되어 평생을 고생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잠시 고통스러워도 물리 치료를 받아야만 했습니다.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물리 치료를 계속하면 조금씩 조금씩 다리가 풀리게 됩니다. 나중에는 그것을 굽혔다 폈다하는 것이 조금도 힘들거나 아프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걸을수도 있고 나중에는 뛸 수도 있게 됩니다. 다시금 걷고 뛰는 기쁨과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악으로 굳어진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핀다는 것은 뼈를 꺽는듯한 고통을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그것을 포기하면 우리는 평생을 영적인 불구로 쓸모없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자꾸 연습하다보면 조금씩이나마 하나님의 말씀에 익숙해지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익숙해지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쉬어지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쉬어지게 되면 드디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즐거워지게 되어 이 땅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나라의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구원의 축복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찬송중에 '주와 같이 길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보통 다른 사람들은 주와 같이 길 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여 때문에 가능한한 회피하려고 하는데 그 찬송가의 작사자는 주와 같이 길 가는 것을 즐거운 일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이 말씀을 거울삼아 여러분 자신을 한 번 비추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일이 쉬우십니까 아니면 어려우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알고 계십니까 모르고 계십니까 저는 오늘 이 예배에 나아와 예배하는 사랑하는 동안교회의 교인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깨달아 알며 늘 그 복을 누리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19편의 기자도 바로 그 말씀의 맛을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시편 119편중의 가장 유명한 말씀중에 하나인 103절에서 그는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60절에서 그는 '주의 계명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치 아니하였나이다'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보통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것이 무겁고 부담스러워서 가능하면 회피하려고 하고 지체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시편 119편의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즐거움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것을 지키되 신속히 지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들어가 있었는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또한 62절에서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이제껏 살아오는 동안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 답답함과 괴로움으로 인하여 한밤중에 잠이 깨어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이 오기를 고통스럽게 기다렸던적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은 여러분들에게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솔직히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고 벅차서 한밤중에 잠이 깨고 그 밤중에 무릅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본적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그와같은 경험이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시편 119편의 기자가 바로 그 축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주의 의로운 규례 때문에, 남들은 부담스러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그 주의 규례 때문에 그는 한 밤중에 일어나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담스러워 보였던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속에 숨겨져 있는 비밀과도 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들이 바로 이 축복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다가 그 비밀스러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고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한 밤중에 잠이 깨어 마음의 무릅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놀라운 복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시편 119편의 기자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의 비밀 스러운 즐거움을 알았던 사람인가를 우리는 오늘 본문 7절과 72절에서 또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 시편 기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천천 금은보다 귀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편의 기자는 그 귀한 말씀이 고난중에 더 깊이 잘 드러난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그 고난까지 자신에게 유익한 것이라고 고백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시편 119편의 기자가 당한 고난은 그렇게 쉽고 만만한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시적으로 표현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연기중의 가죽병'(시119:83) 같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자신이 당하는 고난이 얼마나 극하고 힘들었으면 연기중의 가죽병 같다는 표현을 하였겠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같은 고난속에 천금보다 귀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음을 깨닫고 그 고난까지도 자신에게 유익하다 하였으니 이 시편 기자가 깨달은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크고 놀아웠던 가를 짐작하여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평생 예수를 믿는다하면서도 참 예수를 믿는 맛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안에 참 복이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우며 마치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이 부담스러워 보이기는 하지만 세상이 줄 수도 없는 꿈도 꿀 수 없는 놀라운 축복이 있습니다. 고난중에도 즐거워하고 자다가도 깨서 하나님께 감사할 그런 삶이 주안에 있습니다. 높은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찬송할 삶이 정말 주안에 있습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됩니다. 찬송가 408장의 가사가 그런면에서 오늘 우리에게 얼마나 도전적인 말씀을 하여주고 있는지 모릅니다. 1절 내주 하나님이 넓고 큰 은혜는 저 큰 바다보다 깊다 너 곧 닻줄을 끄러 깊은데로 저 한 가운데 가보라 후렴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띄워 내 주 예수 은혜의 바다로 네 맘껏 저어가라 2절 왜 너 인생은 언제나 거기서 저 큰 바다 물결 보고 그 밑 모르는 깊은 바다 속을 한 번 헤아려 안보나 3절 많은 사람이 얕은 물 가에서 저 큰 바다 가려다가 찰싹 거리는 작은 파도보고 맘이 조려서 못가네 4절 자 곧 가거라 이제 곧 가거라 저 큰 은혜 바다 향해 자 곧 네노를 저어 깊은데로 가라 망망한 바다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시편의 기자는 우리가 잘아는 유명한 시편 119편 105절에서 '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이 이렇게 혼돈하고 많은 사람들이 방황하고 있는 까닭은 세상이 길을 잃었기 때문이요 오늘날 이 세상이 이렇게 깊은 어두움에 빠지게 된 것은 세상이 빛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길과 빛을 잃은 까닭은 세상이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잃어버린 연고입니다. 그러나 더 엄밀히 이야기하면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식대로 살지 아니하고 세상식대로 사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안다고 하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아니하고 그분의 식대로 살지 아니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만이라도 믿음대로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이 세상의 어두움을 살아지게 될 것이고 이 세상의 혼란은 그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삼일절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옛날 우리들의 믿음의 선배들은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저들의 생명을 걸고 독립을 위하여 싸웠습니다. 왜정시대때 태극기를 들고 싸우다가 옥 살이도 하고 피를 흘리고 순교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해방된 조국에서 살고 있으나 우리들의 정신세계와 영적세계는 보다 깊은 혼돈과 어려움속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옛날 우리들의 선배들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싸웠듯이 오늘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싸워야만 합니다. 그 싸움은 우리의 영적인 싸움이어야만 합니다. 전에는 태극기를 들고 나아가 싸웠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나아가 싸워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길들여지지 아니한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잠시 고통스러워도 물리 치료를 받아야만 했습니다.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물리 치료를 계속하면 조금씩 조금씩 다리가 풀리게 됩니다. 나중에는 그것을 굽혔다 폈다하는 것이 조금도 힘들거나 아프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걸을수도 있고 나중에는 뛸 수도 있게 됩니다. 다시금 걷고 뛰는 기쁨과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악으로 굳어진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핀다는 것은 뼈를 꺽는듯한 고통을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그것을 포기하면 우리는 평생을 영적인 불구로 쓸모없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자꾸 연습하다보면 조금씩이나마 하나님의 말씀에 익숙해지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익숙해지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쉬어지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쉬어지게 되면 드디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즐거워지게 되어 이 땅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나라의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구원의 축복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찬송중에 '주와 같이 길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보통 다른 사람들은 주와 같이 길 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여 때문에 가능한한 회피하려고 하는데 그 찬송가의 작사자는 주와 같이 길 가는 것을 즐거운 일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이 말씀을 거울삼아 여러분 자신을 한 번 비추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일이 쉬우십니까 아니면 어려우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알고 계십니까 모르고 계십니까 저는 오늘 이 예배에 나아와 예배하는 사랑하는 동안교회의 교인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깨달아 알며 늘 그 복을 누리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19편의 기자도 바로 그 말씀의 맛을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시편 119편중의 가장 유명한 말씀중에 하나인 103절에서 그는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60절에서 그는 '주의 계명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치 아니하였나이다'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보통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것이 무겁고 부담스러워서 가능하면 회피하려고 하고 지체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시편 119편의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즐거움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것을 지키되 신속히 지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들어가 있었는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또한 62절에서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이제껏 살아오는 동안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 답답함과 괴로움으로 인하여 한밤중에 잠이 깨어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이 오기를 고통스럽게 기다렸던적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은 여러분들에게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솔직히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고 벅차서 한밤중에 잠이 깨고 그 밤중에 무릅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본적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그와같은 경험이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시편 119편의 기자가 바로 그 축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주의 의로운 규례 때문에, 남들은 부담스러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그 주의 규례 때문에 그는 한 밤중에 일어나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담스러워 보였던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속에 숨겨져 있는 비밀과도 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들이 바로 이 축복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다가 그 비밀스러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고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한 밤중에 잠이 깨어 마음의 무릅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놀라운 복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시편 119편의 기자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의 비밀 스러운 즐거움을 알았던 사람인가를 우리는 오늘 본문 7절과 72절에서 또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 시편 기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천천 금은보다 귀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편의 기자는 그 귀한 말씀이 고난중에 더 깊이 잘 드러난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그 고난까지 자신에게 유익한 것이라고 고백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시편 119편의 기자가 당한 고난은 그렇게 쉽고 만만한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시적으로 표현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연기중의 가죽병'(시119:83) 같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자신이 당하는 고난이 얼마나 극하고 힘들었으면 연기중의 가죽병 같다는 표현을 하였겠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같은 고난속에 천금보다 귀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음을 깨닫고 그 고난까지도 자신에게 유익하다 하였으니 이 시편 기자가 깨달은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크고 놀아웠던 가를 짐작하여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평생 예수를 믿는다하면서도 참 예수를 믿는 맛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안에 참 복이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우며 마치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이 부담스러워 보이기는 하지만 세상이 줄 수도 없는 꿈도 꿀 수 없는 놀라운 축복이 있습니다. 고난중에도 즐거워하고 자다가도 깨서 하나님께 감사할 그런 삶이 주안에 있습니다. 높은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찬송할 삶이 정말 주안에 있습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됩니다. 찬송가 408장의 가사가 그런면에서 오늘 우리에게 얼마나 도전적인 말씀을 하여주고 있는지 모릅니다. 1절 내주 하나님이 넓고 큰 은혜는 저 큰 바다보다 깊다 너 곧 닻줄을 끄러 깊은데로 저 한 가운데 가보라 후렴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띄워 내 주 예수 은혜의 바다로 네 맘껏 저어가라 2절 왜 너 인생은 언제나 거기서 저 큰 바다 물결 보고 그 밑 모르는 깊은 바다 속을 한 번 헤아려 안보나 3절 많은 사람이 얕은 물 가에서 저 큰 바다 가려다가 찰싹 거리는 작은 파도보고 맘이 조려서 못가네 4절 자 곧 가거라 이제 곧 가거라 저 큰 은혜 바다 향해 자 곧 네노를 저어 깊은데로 가라 망망한 바다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시편의 기자는 우리가 잘아는 유명한 시편 119편 105절에서 '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이 이렇게 혼돈하고 많은 사람들이 방황하고 있는 까닭은 세상이 길을 잃었기 때문이요 오늘날 이 세상이 이렇게 깊은 어두움에 빠지게 된 것은 세상이 빛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길과 빛을 잃은 까닭은 세상이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잃어버린 연고입니다. 그러나 더 엄밀히 이야기하면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식대로 살지 아니하고 세상식대로 사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안다고 하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아니하고 그분의 식대로 살지 아니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만이라도 믿음대로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이 세상의 어두움을 살아지게 될 것이고 이 세상의 혼란은 그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삼일절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옛날 우리들의 믿음의 선배들은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저들의 생명을 걸고 독립을 위하여 싸웠습니다. 왜정시대때 태극기를 들고 싸우다가 옥 살이도 하고 피를 흘리고 순교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해방된 조국에서 살고 있으나 우리들의 정신세계와 영적세계는 보다 깊은 혼돈과 어려움속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옛날 우리들의 선배들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싸웠듯이 오늘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싸워야만 합니다. 그 싸움은 우리의 영적인 싸움이어야만 합니다. 전에는 태극기를 들고 나아가 싸웠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나아가 싸워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길들여지지 아니한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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