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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하신 하나님 (시117:1-2)

본문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찬양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찬양의 기원이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자세한 경위를 알 도리가 없다. 막연하게 나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음악이 초자연적인 기원을 가진 것으로 보았다는 것과 예술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여겼다는 점을 확인할 뿐 이다. 음악은 오랜 옛날부터 가사가 없이도 사용되어 내려왔다. 음악은 사람을 자극시키며 나아가 황홀경으로 몰아 넣는 힘이 있었다. 왕하 3:15에서 우리는 그것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아합왕이 죽은 후에 모압왕이 이 스라엘을 배반하여 돌아섰다. 여호람왕이 유다왕 여호사밧과 에돔왕과 함께 동맹 을 맺고 모압을 치려고 하는데 군사들과 생축을 먹일 물이 떨어졌다. 전쟁에서 마실 물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다왕 여호사밧은 군졸 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 물을만 한 선지자가 없는가 ' 물었다. 이때 여호사 밧 왕의 앞에 나아 온 선지자가 엘리사였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절하던 선지자 엘리사가 강권함을 이기지 못하여 왕에게 명을 내리는데 엘리사는 자기에게 거문 고 탈 자를 불러 오도록 명하였다. 왕하 3:15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 .저 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음악은 악마를 몰아내기도 하며 사람을 흥분시키기도 한다. 좋은 음악가는 영 감을 받은 자로서 그의 예술로 그의 영감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영감이라는 것은 잠정적이며 순간적이며 개인적인 경험이다. 여러종류의 악기가 사용된 것은 물론이다. 당시 악기는 하나님을 찬양하는데만 사용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데도 사용되었다.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에 제사장들은 양각 나팔을 사용 하였고 백성들은 큰 소리를 질러 성을 무너트렸다. 이렇게 사용하던 음악에 노랫 말이 붙게 되었고 이러한 가사 즉 시와 음악은 하나님을 더욱 기쁨으로 찬양하는 수단이 되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앞에서 모세의 누이 미리암은 소고를 치며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였다. 솔로몬 성전에는 제사장과 함께 특별히 노래를 맡 은 레위인들을 두어 봉사하게 하였다. 신약성경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찬미하며 감람산으로 올라갔다. (마 26:30)는 기록을 본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서 하나님을 찬미하였 고 이러한 경험을 가진 바울이 골로새서와 에베소서에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 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 라고 가르쳤다.
1.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실 분이시다. 오늘 본문은 모든 나라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말하고 있다. 찬양은 찬양을 받을만한 이유를 가진 이에게 나타난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특별히 시인이 모든 나라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찬 양하라고 요청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맨 처음 한 인간이 세상에 존재할 때의 모습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흙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전능하신 조물주에 의하여 만들어졌을 때 그 코에는 조물주의 생기가 들어갔다. 그때에 비로소 인간은 생령이 되었다. (창 2:7) 여기의 생령은 '네페쉬 하야' 즉 LIVING SOUL 혹은 LIVING BEING 을 말한다. 히브리어에서 네페쉬는 여성명사로 성경에 756회나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숨 쉬는 것을 말한다. 시 104:29 에서 보는대로 '주께서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 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라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주시는 양식을 받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 있는 생명 즉 '네페쉬 하야'가 된다는 것이다. 생명은 하나님의 소유이다. 우리가 스스로 생명을 끊는 것을 금하는 것은 이 생명이 내 것일 수 없기 때 문이다. 생명이 내게 있는 것이든 아니든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시편기 자는 36:9 에서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라고 고백하였다.
상대성원리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아인슈타인이 생전에 회고록을 남겼다. 회고 록은 사실 북키(Bucky) 박사가 쓴 것인데 그는 자서전에 기록하기를 '아인슈타인 은 생명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굳게 믿은 사람이라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1955년 3 월 나는 부친으로부터 아인슈타인이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우리는 프린스톤으로 차를 달려 주치의인 딘 박사와 의논하였다. 교수는 새로운 외 과 기술로 고칠 수 있을런지 모른다고 말하였다. 당시 나는 뉴욕의 병원에 근무 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외과과장인 프랭크 글렌 박사를 초빙할 것 을 제안하였다. 이튿날 글렌박사는 우리와 함께 프린스톤으로 차를 몰았다. 글렌 박사는 외과 수술이 한가닥 희망이 있다고 말을 하였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을 뉴 욕으로 옮겼으면 하고 말하였다. 심한 고통 중에 신음하던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우리들의 권유를 즉석에서 거 절하였다. '생명을 인공적으로 연장시킬 수 있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는 그의 고집 때문이었다. 나의 부친을 비롯하여 그의 주치의, 딸 말고트 그리고 나도 힘 서 권유하였으나 그의 대답은 언제나 'No' 였다. 다음 날 아침 아인슈타인은 76 세로 숨졌다. 그의 시신을 검시해 본 결과 그의 생각은 옳았다. 욋과 수술을 했 다하여도 그의 생명은 더 이상 연장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시다.
그러므로 그를 찬양하자 !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우리 삶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을 주장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살 `수 있는 물질적인 자원 뿐 아니라 무한한 정신적, 영적 자원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고 성령님을 통하여 모든 일을 깨닫게 하시고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공급하시는 .분이시다. 인간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이다. 특별히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는 우리들을 '허물과 죄와 사망에 서 다시 살리셨기 때문'이다. 바울은 엡 1장에 기록하기를 '찬송하리로다 !'하였다. 우리를 자기의 아들로 삼아 주셨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고 말하였다. 이 말씀은 같은 장 12절과 14절에도 반복이 되는 말씀이다. 곧 '그 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것이다.
2.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실 분이시다. 그 이유는 그의 인자하심이 크시기 때문이다. 인자하심이란 무엇인가 '헤세드'/선함, 친절함을 말한다. 톨스토이가 쓴 단편 가운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글이 있다. 처자식을 거느린 양화공이 얼마간의 돈을 가지고 아내의 새 외투를 만들 양가 죽을 사기 위하여 시장에 갔다. 가는 길에 외상값도 받을 양으로 몇 곳을 들렸으 나 돈도 받지 못하고 이미 깔려있는 외상 때문에 가죽도 구하지 못한채 술한잔에 언 몸을 녹이며 집으로 몸을 돌이켰다. 주인공 세몬이 집으로 가는 길에 교회 벽에 기대어 앉은 알몸의 젊은 이를 발 견했다. 그는 자기의 누더기를 벗어 젊은이에게 입힌 채 집으로 돌아 왔다. 아내는 사오라는 외투는 없이 낯모르는 손님을 데리고 온 남편을 질타하다가 남편 세 몬이 데려온 이 젊은이가 가여운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세몬의 온갖 질문에 아 무 말을 하지 않던 이 젊은이가 싱끗 웃었다. 얼마 후 건장한 사람이 와서 가죽 한더미를 내 놓더니 멋진 장화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하였다. 젊은이 미하일은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장화대신 슬리퍼를 만들었다. 세몬은 몹시 노했으나 잠시 후 건장한 사람과 함께 왔던 사람이 숨을 몰아쉬며 들어와 이제 장화는 필요없게 되었소 대신 죽은 자를 위한 슬리퍼를 만들어 주시오라고 부탁하는 말에 깜짝 놀 랐다. 세몬은 미하일에게 조용하게 물었다. 자네는 별로 말이 없었다. 단지 몇번 입 가에 웃음을 보인 일이 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가 미하일은 세몬에게 대답을 하였다. 나는 하나님의 명을 어겨 벌을 받은 천사입니다. 나를 인간세계에 보내 신 하나님이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이 무엇이며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 무 엇인지를 알아 오라고 분부하셨지요.
저는 그 대답을 알게 되어 너무 기뻐서 웃 었던 것입니다. 당신의 아내가 나를 불쌍히 여겨 빵을 줄 때 나는 인간의 마음 속에 사랑과 자비가 있음을 알고 기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건장한 사람이 와서 1년 신어도 끄떡없는 장화를 만들라 했지만 죽음의 천사가 그의 뒤에 있어서 자 신이 오늘 밤안에 죽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므로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이 무 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아이들이 무럭 무럭 잘 자라는 것을 통해서 미하일은 인간이 사는 것은 '사랑'때문인 것을 알게 되었다고 세몬에게 고백하였다. 사랑은 인간에게 기쁨을 가져다 준다. 자비는 인간에게 평안을 준다. 예수님께 찾아와 영생을 물은 한 젊은이의 이야기가 눅 10장에 기록되어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사람처 럼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고 가르쳐 주셨다. 우리가 그의 인자하심을 말할 때 그것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자비는 한편이 다른 한편에게 기대하는 태도를 말한다. 예를 들면 종이 주인에게 바라고, 손님이 주인에게 바라는 마음이다. 구약성경의 헤세 드는 성격이 아니다. 사람의 행동을 말하는 것이다. 이 행동은 충실한 사랑의 행 동이다. 나아가 그것은 하나님의 확고한 사랑을 의미한다. 저와 여러분은 이 사랑, 이 자비하심 때문에 오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실 분이시다. 그 이유는 그의 진실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실하심은 인간과의 언약을 실천하시는데서 발견된다. 아브라함 에게 주신 약속을 따라 하나님은 그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다. 야곱에게 분부 하신대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게 하리라 하시더니 과연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 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하시더니 과연 약속하신대로 야곱과 그의 12자 녀들이 요단을 건너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셨다. 하나님의 진실하심은 언약의 성취로 증명된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자기 백성을 이끌어 들이시는 하나님의 약속 은 변함없이 이루어졌다. 히브리 기자는 이러한 하나님에 대하여 '어제나 오늘이 나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분'이라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 인생은 뜬 구름과 같다. 살과 같이 빠르게 지나가는 인생을 가리켜 누가 헛되고 헛되다 하였던가 바람을 잡는 것 같고 구름을 잡는 것 같은 것이 인생 이다. 사람도 믿을 것이 못되고 자기 인생도 믿을 것이 못된다. 시인은 말하기를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하였다. 스승의 머리를 삭발하며 자기를 나무라는 교수를 향하여 '아저씨 미안해요.' 비아냥 거리고 선생을 향하여 주먹질하는 것이 오늘의 세태이다. 세상은 우리를 근심 가운데 몰아넣는다. 그러나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시다. 오늘 우리가 찬양하는 이유는 영원 전부터 계셔서 오고 오는 모든 시대에 나타내시는 그의 자비하심과 진실하심 때문이다.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크도다 크시도다. 살아 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내 속에 참된 기쁨 늘 충만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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