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안에서 자신을 보라 (욥42:1-6)
본문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자신을 보는 것도 지혜로운 것이요, 또 스스로를 살펴 자신을 보는 것도 귀한 일입니다만, 인생을 지으 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눈보다야 정확하겠습니까 ! 성도 여러분 ! 믿음의 사람들이란 자신의 인생을 다른 사람 의 입술에 맡길 수 없다고 고집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했고 나는 믿었으니 믿고 나아가는 나를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증거될 줄 믿습니다하고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나의 인생을 오직 하나님께로만 판단을 받겠다고 외치는 사람들입니다.성도란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한 욥을 통해서 우리 또한 하나님 안에서 발견되어지기를 원합니다.
1. 일의 성과보다 사람 됨됨이가 문제다. 욥기 1장 1절에 보면,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 서 떠난 자더라.하고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그는 동방사람 중에서 자녀의 복과 소유물의 복을 받되 소문난 가장 큰 부자라고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섬기되 두렵고 떨림으로 섬 겨 무의식 중에서라도 죄를 범한 것이 있을까하여 성결을 위한 번제 제사를 가족의 수대로 아침에 드리기를 힘썼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평가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욥은 하나님께는 자랑 스러운 성도였습니다. 그래서 사단에게 말씀하셨습니다.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욥 1:8). 성도를 평가하시는 예수님의 기준은 또 어떤 가요 베다니 동네의 두 자매를 기억하십니까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그 분 을 대접하기 위하여 부엌으로 달려간 언니 마르다와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그 분 발 아래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던 동생 마리아의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다. 두 자매의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야 누 가 덜하고 더할 수가 없었습니다만 예수님은 이렇게 교훈하셨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눅 10:38-42). 이는 우리 주님께서 성도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우리는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 곧 어떤 일을 벌리고, 그 성과의 실적을 올리기에 힘씁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께서는 일이 아니라 인간 됨됨이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우리들은 믿음이 좋다는 것으로 하늘로 부터 철장 권세를 받아쥐고 이 세상을 흔들어 보려고 합니다. 애 쓰고 힘쓰는 기도의 밑바닥에는 어느날 갑자기 슈퍼스타로 등장 되고 싶어하는 본능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 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 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왜 이런 심판을 당하게 되었습니까 내가 증거하노니 저 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 니하였느니라(롬 10:2-3). 그러면 예수님께서 인정하시는 성도는 어떤 성도일까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란 누구 인가요 결국 성도다운 성도의 인격을 갖춘 사람이요,내가 그리스도 를 본받은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고전 11:1) 고 담대히 말할 수 있는 자리에 까지 이르기 위해서 성숙을 향한 몸 부림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
2. 사랑이 그 이유가 되게 하라 ! 욥을자랑스러워 하시는 하나님을 향해서 사단은 목청을 돋 웁니다.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 이 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 그리하시면 정 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욥 1:9-11). 욥의 신앙은 물질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이 그 이유라고 확신하는 하나님과 물질때문이라고 트집을 잡는 사단 사이에 신 앙의 시험대에 오르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말지니라(욥 1:12). 사단은 욥의 자녀와 그의 모든 소유물을 삽시간에 빼앗아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며 의기양양하게 욥 의 입술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이것이 왠말입니까 ! 하루아침에 자녀들이 떼 죽음을 당하고, 알거지가 되어버린 기가막힌 고통과 고난의 한복판에 앉은 욥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요 ! 내가 모태에서 적신(赤身)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 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 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 니하니라(욥 1:21-22).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내가 하나님을 경외함은 물질 때문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우는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는 사단이 쉽게 포기할 리가 없습니다. 다시 도전합니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욥 2:5-6). 독기가 오른 사단은 거의 목숨만 간신히 붙어있을 정도로 욥의 몸을 쳤습니다.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이 발바닥으 로 부터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했다고 했습니다.그 형편이 얼마나 참혹했던지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 고 할 정도였습니다.그러나 욥의 믿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과 같도다. 우리 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욥 2:10). 욥의 고백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자기의 목숨이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은 오직 사랑이 이유라는 것입니다. 사단은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하나님은 욥을 자랑스럽게 여기 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네가 까닭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욥 2:3). 이시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향해서 다가오시는 음성을 들어 보십시다.내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함께 찬양하십니다. 손에 있는 부귀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이슬같은 목숨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사랑의 빛 잃어가면 주님 만날 수 없어, 헛된 영화 바라보면 사랑할 수도 없어, 잠시 머물 이 세상은 헛된 것들 뿐이니 주를 사랑하는 마음 금보다도 더 귀하다.
3. 주 안에서 발견되는 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원칙이 있으십니까 이 악한 세대는 동기와 과정은 어떠하던지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사고가 팽배 합니다.이 논리가 교회 안에서 마저 통하고 있습니다.그 돈 을 어떻게 벌었느냐하는 것을 문제를 삼지 않습니다. 다만 많이 헌금하고 듬뿍듬뿍 내어놓는 사람이 교회의 지도력을 행사하고 대접을 받고 삽니다.그러나 기억하십시요 !하늘에 있는 것이 나 땅에 있는 것이나 그 안에 충만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 일진데 하나님께서 부족하셔서 인간의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말입니다.욥을 통하여 살펴볼 수 있듯이 헌금도 봉사도 신앙의 문제인 것입니다. 욥은 고난의 한 복판에서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한 몸인 아내에게로 부터 저주하 고 죽으라는 절망적인 선언을 받게 됩니다. 그를 위로하겠다고 찾아 온 친구들에게서 더 큰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더나아가 서 자신이 세워 온 신앙의 자랑이 한낱 부질없다는 것을 발견하 였습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 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 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 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귀로만 듣던 신앙생활을 하다가 눈으로 하나님을 뵙고 보니 자신이 참으로 죄인이더란 말입니다.사람 앞에서는 인정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신앙이 다른 사람과 견주어서는 뛰 어난다하여 위로로 삼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 서고 보니 자신의 의(義)란 누더기 같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게 되었더란 말입니다. 자신의 태어남을 원망 하고, 친구를 원망하고, 아내에게 분을 품어 다른 사람을 치던 사람이 변하여 자신을 쳐서 깨뜨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만나면 자신의 죄됨을 발견하고 겸손하고 낮 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베드로도 빈 그물만 내리다가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린 결과 두 배에 가득 채우게 되었습니다.하나님을 만나고 보니 물질 축복의 감격 보다는 자신의 죄인 됨을 발견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물질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였습니다. 죄인 된 자신을 치면서 스스로 깨뜨리게 되었습니다. 구원은 값없이 받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댓가를 지불해 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 기까지 인격의 성숙을 이루면서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일(Doing:To be) 이 아닙니다.바로 그 사람(Being:To be)이 문제입니다.신앙생활은 그 어떤 조건때문에 흔들릴 수 없는 사랑 그 자체가 이유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1. 일의 성과보다 사람 됨됨이가 문제다. 욥기 1장 1절에 보면,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 서 떠난 자더라.하고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그는 동방사람 중에서 자녀의 복과 소유물의 복을 받되 소문난 가장 큰 부자라고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섬기되 두렵고 떨림으로 섬 겨 무의식 중에서라도 죄를 범한 것이 있을까하여 성결을 위한 번제 제사를 가족의 수대로 아침에 드리기를 힘썼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평가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욥은 하나님께는 자랑 스러운 성도였습니다. 그래서 사단에게 말씀하셨습니다.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욥 1:8). 성도를 평가하시는 예수님의 기준은 또 어떤 가요 베다니 동네의 두 자매를 기억하십니까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그 분 을 대접하기 위하여 부엌으로 달려간 언니 마르다와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그 분 발 아래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던 동생 마리아의 사건을 생각해 보십시다. 두 자매의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야 누 가 덜하고 더할 수가 없었습니다만 예수님은 이렇게 교훈하셨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눅 10:38-42). 이는 우리 주님께서 성도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우리는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 곧 어떤 일을 벌리고, 그 성과의 실적을 올리기에 힘씁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께서는 일이 아니라 인간 됨됨이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우리들은 믿음이 좋다는 것으로 하늘로 부터 철장 권세를 받아쥐고 이 세상을 흔들어 보려고 합니다. 애 쓰고 힘쓰는 기도의 밑바닥에는 어느날 갑자기 슈퍼스타로 등장 되고 싶어하는 본능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 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 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왜 이런 심판을 당하게 되었습니까 내가 증거하노니 저 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 니하였느니라(롬 10:2-3). 그러면 예수님께서 인정하시는 성도는 어떤 성도일까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란 누구 인가요 결국 성도다운 성도의 인격을 갖춘 사람이요,내가 그리스도 를 본받은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고전 11:1) 고 담대히 말할 수 있는 자리에 까지 이르기 위해서 성숙을 향한 몸 부림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
2. 사랑이 그 이유가 되게 하라 ! 욥을자랑스러워 하시는 하나님을 향해서 사단은 목청을 돋 웁니다.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 이 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 그리하시면 정 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욥 1:9-11). 욥의 신앙은 물질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이 그 이유라고 확신하는 하나님과 물질때문이라고 트집을 잡는 사단 사이에 신 앙의 시험대에 오르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말지니라(욥 1:12). 사단은 욥의 자녀와 그의 모든 소유물을 삽시간에 빼앗아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며 의기양양하게 욥 의 입술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이것이 왠말입니까 ! 하루아침에 자녀들이 떼 죽음을 당하고, 알거지가 되어버린 기가막힌 고통과 고난의 한복판에 앉은 욥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요 ! 내가 모태에서 적신(赤身)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 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 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 니하니라(욥 1:21-22).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내가 하나님을 경외함은 물질 때문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우는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는 사단이 쉽게 포기할 리가 없습니다. 다시 도전합니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욥 2:5-6). 독기가 오른 사단은 거의 목숨만 간신히 붙어있을 정도로 욥의 몸을 쳤습니다.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이 발바닥으 로 부터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했다고 했습니다.그 형편이 얼마나 참혹했던지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 고 할 정도였습니다.그러나 욥의 믿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과 같도다. 우리 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욥 2:10). 욥의 고백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자기의 목숨이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은 오직 사랑이 이유라는 것입니다. 사단은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하나님은 욥을 자랑스럽게 여기 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네가 까닭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욥 2:3). 이시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향해서 다가오시는 음성을 들어 보십시다.내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함께 찬양하십니다. 손에 있는 부귀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이슬같은 목숨보다 주를 더 사랑하는가 사랑의 빛 잃어가면 주님 만날 수 없어, 헛된 영화 바라보면 사랑할 수도 없어, 잠시 머물 이 세상은 헛된 것들 뿐이니 주를 사랑하는 마음 금보다도 더 귀하다.
3. 주 안에서 발견되는 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의 원칙이 있으십니까 이 악한 세대는 동기와 과정은 어떠하던지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사고가 팽배 합니다.이 논리가 교회 안에서 마저 통하고 있습니다.그 돈 을 어떻게 벌었느냐하는 것을 문제를 삼지 않습니다. 다만 많이 헌금하고 듬뿍듬뿍 내어놓는 사람이 교회의 지도력을 행사하고 대접을 받고 삽니다.그러나 기억하십시요 !하늘에 있는 것이 나 땅에 있는 것이나 그 안에 충만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 일진데 하나님께서 부족하셔서 인간의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말입니다.욥을 통하여 살펴볼 수 있듯이 헌금도 봉사도 신앙의 문제인 것입니다. 욥은 고난의 한 복판에서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한 몸인 아내에게로 부터 저주하 고 죽으라는 절망적인 선언을 받게 됩니다. 그를 위로하겠다고 찾아 온 친구들에게서 더 큰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더나아가 서 자신이 세워 온 신앙의 자랑이 한낱 부질없다는 것을 발견하 였습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 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 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 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귀로만 듣던 신앙생활을 하다가 눈으로 하나님을 뵙고 보니 자신이 참으로 죄인이더란 말입니다.사람 앞에서는 인정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신앙이 다른 사람과 견주어서는 뛰 어난다하여 위로로 삼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 서고 보니 자신의 의(義)란 누더기 같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게 되었더란 말입니다. 자신의 태어남을 원망 하고, 친구를 원망하고, 아내에게 분을 품어 다른 사람을 치던 사람이 변하여 자신을 쳐서 깨뜨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만나면 자신의 죄됨을 발견하고 겸손하고 낮 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베드로도 빈 그물만 내리다가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린 결과 두 배에 가득 채우게 되었습니다.하나님을 만나고 보니 물질 축복의 감격 보다는 자신의 죄인 됨을 발견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물질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였습니다. 죄인 된 자신을 치면서 스스로 깨뜨리게 되었습니다. 구원은 값없이 받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댓가를 지불해 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 기까지 인격의 성숙을 이루면서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일(Doing:To be) 이 아닙니다.바로 그 사람(Being:To be)이 문제입니다.신앙생활은 그 어떤 조건때문에 흔들릴 수 없는 사랑 그 자체가 이유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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