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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 (욥42:1-6,히7:23-28,막10:46-52)

본문

욥의 고난에 대해 하나님께서 직접 답변하지는 않으셨지만 이제 욥은 하나님의 음성 을 듣고 그의 주권적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무지로 말미암아 그 동안 순종하지 못함으로써 발했던 불평과 자기의 (義)에 대한 고집들을 깊이 회개하기에 이릅니다. 사실 하나님이 친히 욥에게 나타나신 것만으로도 욥의 고민은 이미 해결된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욥은 고난 중에 하나님의 침묵하심을 심히 답답하게 여기고 가장 고통스러워 했는데 이제 하나님의 현현을 통해 그 고통은 사지고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욥은 모든 것이 회복되었습니다. 즉
1.친구들과의 관계 회복,
2.형제와 자매 및 지인(知人)들과의 관계 회복,
3.재물의 회복,
4.자녀의 회복 등입니다. 그리고 욥은 그 이후로 140년이나 장수를 누렸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궁극적으로 누릴 영원한 복의 예표가 됩니다. 이 회복은 본서의 주제인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히브리서 7:23-28 (히7:23) 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 되 (히7: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히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 라 (히7: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 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히7:27)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히7: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 에 하신 맹세 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앞에서 교리적 방법으로 아론에 대한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논증했다면, 여기서는 그 영원한 유효성에 대해 실제적 사실들을 들어 우월성을 증명합니다. 즉, 구약의 제사장들은 결국 죽기 때문에 계속 바뀌어 숫자가 많으나 그리스도는 영원히 죽지 않는 거룩하고 지존하신 분이며, 단번에 완전한 제사를 드림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다른 중보물 없이 그 분의 공로로 만 하나님께 영원히 나아갈 수 있게 하셨고, 또한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으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다는 점에서 아론과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심을 강조 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0:46-52 (막10:46)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 와 함께 여 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 가 길 가에 앉았다가 (막10: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 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막10: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막10: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막10:50)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막10:51)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 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막10: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 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본서에 예수님께서 그의 갈릴리 사역 기간 동안 두 번에 걸처 소경을 고치신 사건이 나옵니다. 이 두 사건 사이의 차이는
1.전자는 이름이 없지만, 후자는 바디매오라는 이름을 가진 점,
2.전자는 타인이 예수님께 데리고 왔지만, 후자는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스 로 예수님께 나와서 외친점,
3.전자는 소경의 눈에 침을 뱉으시고 안수하시며 고치셨지만, 후자는 단지 말씀으 로 고치신 점,
4.전자는 집으로 보내심을 받고 돌아갔지만, 후자는 가라는 말을 듣 고서도 집으 로 가지않고, 예수님을 길에서 좇은 접 등입니다. 결국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그들의 눈을 뜨게 하셨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그들 로 하여금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과 하나님의 아들로 동일시하게 하고, 십자가에서 무덤까지 예수님을 따르도록 하여으며, 부활후 세상에서 증인의 사명을 다하고, 그 분의 이름으로 봉사할 수 있도록 해 주었던 것입니다.
1.이런 이적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날에는 의학적 기적이 많으나 예수님은 과학이나 의약품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 으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즉 안수와 말씀으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은 본래 소경의 세계를 보계하고 인간을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하시 기 위해 오신 분으로 확신시키 줍니다.(신약성경에 구원이 무려 163번) (요9: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약5:20)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1).수많은 사람들은 영적 소경이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평화와 안전을 결사적으로 찾고 있지만 찾을 수 없습니다. (눅24:16)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요1: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2).하나님 말씀은 우리가 소경인 것을 알게 함으로 우리의 소망과 평화와 안전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게 합니다. (눅24:31)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 보더니 (요8:12)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 리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님을 실제로 믿고 신뢰할 수 있도록 예수 안에서 믿음을 일깨 워 줍니다.
3).감사는 세상에서 주님의 길을 따르도록 이끌어 줍니다.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눅24:32)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주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영안을 열어서 참된 제자가 되게 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히 악을 피할 뿐만 아니라 주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에서 적극 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4).주님은 자비하셔서 우리가 실제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의 인내심, 신앙, 감사 그리고 예수님의 동정적 응답은 특히 할 만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여 라고 외친 소경 바디매오와 함께 놀라움과 두려움 속에서도 감사하게 됩니다. 이러한 감사가 주님과 하나님 왕국을 위하여 우리 자신이 십자가를 지는 희생이 있을 찌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믿으심니까.
2.침묵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욥기42:1-6,10-17)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실제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생생하게 느끼는 사람이 야말로 진실로 하나님 을 사랑하고 그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무소불능 하신 하나님 (2절상) (욥42:2)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인간은 누구나 고난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많은 불평을 하게 됩니다. 욥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난 중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 만남은 이전의 어느 만남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직접적이고 실존적이며 확실한 만남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모든 불평 불만은 물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의심까지도 거둬들이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2).경영을 이루시는 하나님 (2절하) (욥42:2하)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줄 아오니 하나님의 경영은 선하신 경륜으로 이것을 이루시는 방법 또한 선하십니다. 험난한 세상을 바라볼 때 선하신 경륜을 선한 방법으로 이룬다는 것은 인간의 눈으 로 보면 불가능하지만 영안을 가지게 될 때 무한한 가능성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한번 계획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고야 마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확신한다면 결코 우리에게 불평이나 불만이 있을 수 없고, 좌절이나 낙망도 없게 됩니다.
3).보여주시는 하나님 (5절) (욥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 다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욥처럼 회개하며 자신의 죄악을 신앙으로 변화가 됩니다. 믿음은 들음으로부터 출발하지만, 듣는 신앙은 지식 적이고 관념적인 신앙으로 흘러 버리기 때문에 살아 있는 믿음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눈으로 보는 체험적인 신앙은 확신 있고 초월적인 신앙입니다. 예화 (예수님의 제자들, 사도 바울) (요20:28) 도마가 대답하여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이런 신앙은 모든 혼란을 견디게 하는 것입니다.
4).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 (10-17절) (욥42:10)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 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욥42:11)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및 전에 알던 자들이 다와서 그 집에서 그와 함께 식물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 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금 한 조각과 금고리 하나씩 주었더라 (어느해) (욥42:12)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욥42:13)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 (욥42:14)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 하였고 세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며 (욥42:15)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 아비가 그들에게 그 오라비처럼 산업을 주었더라 (욥42:16) 그 후에 욥이 일백 사십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 (욥42:17)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 욥은 과거에 받았던 복을 다시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갑절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은 결국 승리한다는 확증을 얻게 하십니다. 역사를 통해서 보면, 진실된 성도의 삶이 때로는 패배자의 삶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진실로 욥과 같이 삶을 산 성도는 패배로 끝을 맺지 않습니다. 그들은 욥처럼 가시 적인 복을 받지는 못했을지라도 영원한 승리로 끝을 맺었습니다. 욥의 승리가 결국은 그 승리의 전형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3.예수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히7:25-28) 성도의 생활이란 예수님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고마워서 내 몸이 자기 것이 아니요, 예수님의 핏값으로 사신 몸인 것을 깨닫고 하나님과 형제를 위하여 생명을 버릴 수 있게 됩니다. (고전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기독교의 사랑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구속 의에 근원 하였고, 또 사랑은 구속 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을 알지 못하고서는 참된 기독교의 현제를 이해할 수 없고, 또 어떤 희생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적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침묵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어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놀라우신 경륜 과 만남을 확신하는, 체험적인 신앙으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 어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놀라우신 경륜과 만남을 확신하는 체험적인 신앙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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