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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무한하신 지존자 앞에 선 인생 (욥37:1-24)

본문

본문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대한 엘리후의 계속되는 변론이다. 엘리후는 기 상과 기후 변화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섭리(1-13), 여름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섭리(14-18), 하나님의 섭리의 초월성(19-24) 등을 말한다. 이런 절대 주권자요, 능력자요, 만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 앞에 선 유한하고 연 약한 우리 인생들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
'본론'
1. 삼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1, 24) 엘리후는 천둥소리를 하나님께서 분노하여 내시는 소리라 하였습니다(36:33, 공 동 번역). 그리고 천둥 소리를 생각만해도 마음이 떨리고 기절할 것만 같다고 하 였습니다(1절 '자기 처소에서 떠나느니라는 말은 어디론가 튕겨나갈것같다 즉 실 족하고 실신할 것만 같다는 뜻이다). 당시 고대인들은 이렇게 천둥 소리를 하나님 께서 발하시는 진노의 소리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게 지식이 뛰어나고 당대의 신 앙인들보다는 한 차원 위의 높은 신적 지식을 가졌다 자부하는 엘리후 역시도 이런 오묘한 자연의 조화 앞에서는 한낱 자연인으로서 큰 불안과 두려움을 가졌던 것입니다. 천둥 소리 하나만 놓고 보아도 이런데 다른 광대한 자연 현상 앞에서야 인간 들의 연약함이 얼마나 대조적으로 비교되겠습니까 그리고 당대 최고의 지성과 신 잉 지식을 자랑하던 엘리후도 그러했는데 다른 사람들이야 어떠했겠습니가 이렇 게 천둥과 번개, 비와 바람, 등 인간의 능력으로 감히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위대 한 능력과 비교할 때 인간은 너무나도 보잘것없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굉대한 자연 현상을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우주 만 물을 창조하시고 또한 계촉해서 우주 만물의 운행과 질서를 주관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가 아니십니까 그러기에 우주 만물 가운데 나타나는 모든 자연 현상 과 천기는 오직 하나님의 주권하에서 운행되고 질서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자연의 오묘한 질서와 광대한 현상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과 주권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저 이런 놀라우신 일을 수행하시는 하나님 을 두려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두려움, 즉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우리가 주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천등과 번개로 아니 면 폭풍우와 엄청난 자연 재해로 벌을 내리실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그 저 하나님을 공포의 하나님으로 알고 두려워하라는 말이 아니라, 삼가 조심하며 자 신의 성결함을 돌아볼 줄 아는 그런 거룩한 두려움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2. 날마다 감사와 찬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7절) 엘리후는 '그가 각 사람의 손을 봉하시나니 이는 그 지으신 모든 사람으로 그것 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7절)고 하였습니다. 팔레스틴에서는 여름에 남방에서 폭 풍우(광풍, 이는 팔레스틴 남방의 사막에서 부는 열풍을 말한다)가 불어와 큰 비를 내립니다. 그리하여 장마가 나고 농사에 큰 피해를 입히기도 합니다. 또한 겨울에는 북방에서 찬 바람이 불어 얼음이 얼고 모든 땅은 경작이 불가능해 집니다(9-10 절). 엘리후는 이를 가리켜 하나님께서 사람의 손을 봉하셨다고 표현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때때로 기후와 계절을 통하여 경작이 불가능하게 하시고 또한 때 로는 극심한 흉년으로 고통을 주시는 데에는 이가 있습니다. 엘리후는 이런 자연 현상을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이 우주 만물의 창조주요, 운행자이시며 섭리자이심 을 깨닫게 하려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즉 적당한 비와 이슬을 내리시사 땅의 소산 을 먹게 하시는 분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깨닫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여름의 열 풍과 겨을의 찬바람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절대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 앞에 설 매 우리는 그저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입 고 먹고 자는 모든 것이 모두 한가지로 자비하시고 긍휼 많으신 주의 은혜로만 가 능하기 매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우주 만물을 통혜 드러난 주의 광대하고 위대하심을 발견하고는 '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도다'며 찬양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신약의 위대한 사도였던 바울은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는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고는 그저 모든 영광을 주님께만 돌리지 않았습니까(롬 11:36) 이렇게 주님의 무한하고 광대하신 농력과 절대 주권 앞에 설 때 우리 연약한 인간뉼은 인생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건적으로 주히 은혜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설대 무한하신 주님 앞에 선 우리 인생들이 어찌 주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 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3. 그저 주의 은혜를 바라보며 은총만을 사모해야 합니다(14절). 엘리후는 욥을 향해 말하기를, '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기묘 하신 일을 궁구하라(14절)고 하였습니다. 즉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앞에서 말한, 자연 헌상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절대 무한하신 능력을 곰곰히 생각해보라는 뜻 입니다. 이는 곧 주의 절대 무한하신 위엄과 능력을 생각하며 그저 겸손하게 주의 은총과 자비만을 사모하라는 권면이요, 충고입니다. 실로 우리 인생들은 구름이 어 떻게 평형을 유지하며 계속해서 하늘 한가운데 떠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16절) 그리고 북방의 바람이 찬기운을 가져오고, 또한 남방의 열풍이 더운 기운을 가져오는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합니다(17절). 뿐만 아니라 환하고 넓게 펼쳐긴 하 늘과 동일한 하늘을 만들어 펼 수 있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18절). 실로 현대 의 뛰어난 과학도 자연 헌상 가운데 나타난 결과를 놓고 기상 현상을 설명할 수 있 을지는 몰라도 궁극적인 자연 현상의 원인과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동일한 자연 현상을 인간의 힘으로 만들 수도, 멈추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광대한 자연의 힘 앞에는 속수 무책, 무력한 것이 인간의 실상입니다. 그러기에 인생은 이런 자연 헌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그저 은총 베풀어주시기만을 간구할 뿐입니다. 주께서 광풍과 우뢰를 보내사 세상을 흑암 으로 덮으시는 것도 또한 광풍 후의 맑고 환한 광명을 보내시는 것도 모두 하나님 의 깊으신 뜻과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닙니다. 그러기에 여기에 감추어진 주의 깊으 신 뜻을 능히 측량하기란 쉽지 않습니다(23절). 따라서 독불 장군처럼 전능자의 통치 행위를 비난하고 대적 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그저 은헤 베풀어주시기 만 을 사모하며 주의 은총만을 고대 하는 것반이 우리 연약한 인생이 전능자 앞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임을 명심합시다.
'결론' 절대 무한하신 주님 앞에 선 우리 인생들은 너무나 연약하고 보잘것 없는 존재입니다. 아무리 인간의 두뇌가 발달하고, 인간의 과학이 고도로 발달하였다고는 하 지만 우주 만물과 자연 현상 가운데 나타난 주님의 절대 무한하신 능력에는 감히 비교될 수 없습니다. 그러할진대 이런 절대 무한하신 능력자요 주전자인 하나님 앞에 선 우리 인생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마땅히 삼가 두렵고 떨리는 심령으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또한 날마다 이러한 주께서 나를 구원하시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주신것에 대하야 주께 감사와 찬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저 주의 은총만을 의지하고 주의 긍휼만을 사모해야 합니다. 정녕 우리가 인생히 연약함과 한계를 느낄수록 우리는 더욱 절대자 앞에 가까 이 나 아갈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시 74:16-17, 9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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