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과 미천한 욥의 대화 (욥40:1-24)
본문
본문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관한 전장에 이어 잠시 욥에게 말할 기회를 주신 후(1-5절), 지속해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특히, 본문에서 하나님은 욥에게 하나님의 의로운 지배에 관해서 역설하고 계시다(6-24절). 욥은 하나님의 질문에 대해 더 이상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의 고백대로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동안에 자신의 미천함을 통감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속 되는 말씀은 욥으로 하여금 완전히 하나님께 자복하게 만들었다(42:1-6).
그렇다면 욥에게 주신 하나님의 두번째 말씀은 어떠했는가
'본론'
1.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겠느냐 욥은 다시한번 허리 띠를 동여매고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하라는 하나님의 종용 을 듣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문은 욥이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고난에 몸부림치며 하나님을 원망했던 욥이지만, 쪽풍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더구나 권능과 지혜, 그리고 공의에 괸한 하나님의 질문 에 관해서 욥은 물론 다른 누가 대답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폐할 수 있겠는가(8절). 사람이 하나님의 팔의 능력과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느냐(9 절). 하나님의 속성을 옷입을 수 있는가(10절). 인간이 악인을 공정하게 심판할 수 있는가(14절) 하나님의 질문은 교만한 인간이 어느 것 한 가지도 대답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하나님의 질문은 욥에게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겠느냐는 질책의 질문이요. 욥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해 선포하는 것 이었다. 그렇다. 하나님의 피조물된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의심할 수 있겠는가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 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그로 말미암은 공의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스스로를 성결하고, 온전하게 유지 해야 한다.
2. 언제까지 교만하겠느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서 비롯된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신 후 두 가지 큰 동물, 곧 하마.악어(41:1-34)를 예로 들어 욥의 교만을 지적하신다. 이 두 동물은 하나님의 창조에 의해 지음받은 동물로서 하나님의 창조력을 드러낸다. 곧 하마나 악어는 막강한 힘으로 인간을 무력하게 하고, 인간에게 두려움을 준다. 하지만 하나님에게 있어서 이들 동물들은 하나의 창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동 물들은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한다. 거대한 몸집과 힘, 그것은 인간에게 두 려움을 가져다 주지만 결국 욥과 같이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하나님의 창조 섭리 가운데 생겨난 것들이다.
그러므로 욥은 하나님의 이같은 예를 통해서 자신이 얼마 나 미약한 존재인가를 느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은 때로 교만하여 자기 보다 나은 것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대자연에서 인간처럼 나약한 존재가 또 어디 있는가 하나님은 바로 이점을 지적하고 계신 것이다. 그런즉 우리가 언제까 지 교만하겠는가
'결론' 하나님을 마주하여 하나님과 변론하며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왜냐면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토기가 자신 을 만든 토기장이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하든지, '나에게 이렇게 해 달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결단코 주의 절대 주권과 통치 권을 대적하여 것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9:20)"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예!"만 있지, "아니오!"가 있을 수 없다. 아멘! 하는 신 앙이 되어야 한다. (고후1:20)"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그렇다면 욥에게 주신 하나님의 두번째 말씀은 어떠했는가
'본론'
1.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겠느냐 욥은 다시한번 허리 띠를 동여매고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하라는 하나님의 종용 을 듣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질문은 욥이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고난에 몸부림치며 하나님을 원망했던 욥이지만, 쪽풍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더구나 권능과 지혜, 그리고 공의에 괸한 하나님의 질문 에 관해서 욥은 물론 다른 누가 대답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폐할 수 있겠는가(8절). 사람이 하나님의 팔의 능력과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느냐(9 절). 하나님의 속성을 옷입을 수 있는가(10절). 인간이 악인을 공정하게 심판할 수 있는가(14절) 하나님의 질문은 교만한 인간이 어느 것 한 가지도 대답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하나님의 질문은 욥에게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겠느냐는 질책의 질문이요. 욥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해 선포하는 것 이었다. 그렇다. 하나님의 피조물된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의심할 수 있겠는가 창조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 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그로 말미암은 공의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스스로를 성결하고, 온전하게 유지 해야 한다.
2. 언제까지 교만하겠느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서 비롯된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신 후 두 가지 큰 동물, 곧 하마.악어(41:1-34)를 예로 들어 욥의 교만을 지적하신다. 이 두 동물은 하나님의 창조에 의해 지음받은 동물로서 하나님의 창조력을 드러낸다. 곧 하마나 악어는 막강한 힘으로 인간을 무력하게 하고, 인간에게 두려움을 준다. 하지만 하나님에게 있어서 이들 동물들은 하나의 창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동 물들은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한다. 거대한 몸집과 힘, 그것은 인간에게 두 려움을 가져다 주지만 결국 욥과 같이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하나님의 창조 섭리 가운데 생겨난 것들이다.
그러므로 욥은 하나님의 이같은 예를 통해서 자신이 얼마 나 미약한 존재인가를 느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은 때로 교만하여 자기 보다 나은 것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대자연에서 인간처럼 나약한 존재가 또 어디 있는가 하나님은 바로 이점을 지적하고 계신 것이다. 그런즉 우리가 언제까 지 교만하겠는가
'결론' 하나님을 마주하여 하나님과 변론하며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왜냐면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토기가 자신 을 만든 토기장이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하든지, '나에게 이렇게 해 달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결단코 주의 절대 주권과 통치 권을 대적하여 것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9:20)"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예!"만 있지, "아니오!"가 있을 수 없다. 아멘! 하는 신 앙이 되어야 한다. (고후1:20)"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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