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한계 (욥25:4-6)
본문
겉모양으로만 보면 인간은 짐승과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을 사람 비슷한 짐승에서 진화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는 진화론까지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나 정신의 우수성을 보면 인간은 분명히 짐승과는 뚜렷 이 다른 존재이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로서도 규정할 수 없는 어떤 우월한 존재인 것이 확실합니다. 진정 인간의 우수성은 오늘날의 첨단과학, 여러분 야의 학문과 문화를 창출해 내는 재능과 기량만 보아도 넉넉히 알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종교적인 면, 특히 성경이 지적하고 있는 면에서 보면 인간 은 여러 자기 한계 안에 갇혀 있는 존재인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을까요
1.의로운 자가 없습니다.-'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랴'(4절) 빌닷은 이 세상에 이로운 자가 없다는 것을 천명합니다. 사실 이러한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성경 안에는 이러한 뜻의 언급이 무수히 산재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데 주여 누가 서리이까"(시130:3),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시143:2) 사실 인간의 안목으로 볼 때는 의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성덕이 하늘같아서 만인이 우러러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孔子는 인애(仁愛)를 가르쳤으며 釋迦는 자비(慈悲)를 가르쳤고 묵자는 인류애(人類愛)를 가르치며 실제로는 그들은 각각 자신들의 가르침과 똑같이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인류의 스승이라고 부르기를 서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인류의 성인이라는 사람들 역시 우리와 조금도 다 름없는 죄인들에게 지나지 않습니다. 진정 절대적으로 의로운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비극적 단면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불가불 구원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2.깨끗한 자가 없습니다.-"부녀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4절) 빌닷은 인간 중에는 깨끗한 자가 없다는 것을 천명하였습니다. 사실 이러 한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성경 안에는 이와 같은 의미의 표현이 여러 군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시14:3).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17:9) "사람이 무엇관대 깨끗하겠느냐"(욥15:14) 물론 이러한 측면도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에는 사람들 가운데 깨끗한 자 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카톨릭 교회에서 자랑삼고 있는 성녀 테레사 같은 이의 삶은 참으로 명경수와 다름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이들도 불결한 자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눈에는 해와 달 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하지 못하거든"(5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에 인간은 누구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씻음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 입니다.(히9:14)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도 자신을 깨끗케 할 자가 없다는 사 실을 분명하게 기억합시다. 예수님의 필로 씻음을 받아야만 가능합니다.
3.존귀한 자가 없습니다.-"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6절) 빌닷은 계속하여 인간이 무척 비천한 존재라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이 말에는 인간의 비천함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사실 벌레와 구더기만큼 미 천한 미물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불의하고 부정한 모습을 드러낸 말씀이 성경 안에는 수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시22:6),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사41:14)
그런데 이 말씀들에 나타난 벌레와 구더기라는 표현은 본래부터 인간이 그 처럼 미천한 존재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뜻하고 있지 않습니다. 인간이 처음 지음을 받았을 때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기에 피조물로서 인간처럼 존귀한 존재가 없었습니다.(창1:26)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타락한 후로는 불행하게도 버러지 형상을 경배하는 죄인의 자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생각하면 안타깝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불가불 그리스도를 본받음으 로써 다시 존귀의 자리를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인간의 탁월성은 가히 견줄 곳이 없습니다. 진정 짐승들은 예나 이제나 조 금도 다름없는 방법으로 생존을 유지하고 있지만 인간은 역사를 통하여 끊임 없이 문명과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이를 능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안목으로 보면 인간에게는 의로운 자가 없고 깨끗한 자가 없으며 존귀한 자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반드시 영접하여 저런 비극적인 한계들을 극복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본래의 존귀성을 되 찾아야 하겠습니다. '예화' 인간은 누구나 마찬가지 유대 땅 어느 마을에 랍비가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율법과 의식을 성실히 준행하여 거의 완벽에 가까운 종교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로 인해 그에게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무리 중엔 꼭 소수의 열심 있는 자가 있는 법, 그 랍비를 따르던 제자들 중에도 한 명의 열심 있는 젊은 제자가 있었답니다. 그는 자신이 따르는 랍비의 헌신적으로 완전 무결한 모습을 존경하며 늘 랍비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성 베드로에게 물 었습니다. "저어, 제가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는 은근히 확신에 차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늘 랍비를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것은 무엇이든지 완벽 하게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렵소, 여기는 천국이 아니란 말이요." 성 베드로는 그에게 천국의 문은 훨씬 더 높은 곳에 있는데 그곳에 가려면 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만 한다고 설명해 주며 그 사다리를 가리켰습니다. 그 사다리는 높이 뻗어 올라 구름으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사다리를 본 그는 흠칫 놀랐습니다. "그럼 언제쯤 도달할 수 있을까요 이 사다리는 끝도 없는 것 같네요!" 그러자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겁먹지 마십시오 그건 당신에게 달렸소, 당신은 이 분필을 갖고 사다리를 오르며 디딤대 하나 하나에 당신이 이제껏 지은 죄를 하나씩 표시하십시오 그렇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며 당신의 모든 행위와 생각의 죄를 다 적으면 비로소 사다리 끝에 당도하여 천국의 문 앞에 서게 될 것이요.그러니 천국의 길은 당신이 죄를 얼마만큼 지었느냐에 따라 멀 수도 있고 가까울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는 성 베드로의 말을 들으며 아주 만족해했습니다. 그는 분필을 가지고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한참을 올라가도 아무런 조짐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고 팔이 아파옵니다. 얼마나 올라갔을 까 그는 너무 힘이 들어 포기하고 싶었지만 이제껏 오른 만큼 다시 내려갈 생각을 하지 그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 자신의 마음을 달래며 계속 오르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사다리를 오르던 어느 날 그는 무척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겉으로는 아무런 죄도 범하지 않았을지라도 마음속으로는 온갖 죄 를 다 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죄를 숱하게 기록하며 끊임없이 사다리를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저만큼 위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고 있는 자신의 랍비를 발견했습니다. "앗, 랍비님! 다 많은 제자들을 천국으로 데려가시기 위해 다시 돌아가시는 건가요아니 그대는 아직도 어리석군 그래! 분필이 더 있어야 겠기에 다시 내려가는 것이라네!
그렇다면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을까요
1.의로운 자가 없습니다.-'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랴'(4절) 빌닷은 이 세상에 이로운 자가 없다는 것을 천명합니다. 사실 이러한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성경 안에는 이러한 뜻의 언급이 무수히 산재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데 주여 누가 서리이까"(시130:3),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시143:2) 사실 인간의 안목으로 볼 때는 의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성덕이 하늘같아서 만인이 우러러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孔子는 인애(仁愛)를 가르쳤으며 釋迦는 자비(慈悲)를 가르쳤고 묵자는 인류애(人類愛)를 가르치며 실제로는 그들은 각각 자신들의 가르침과 똑같이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인류의 스승이라고 부르기를 서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인류의 성인이라는 사람들 역시 우리와 조금도 다 름없는 죄인들에게 지나지 않습니다. 진정 절대적으로 의로운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비극적 단면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불가불 구원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2.깨끗한 자가 없습니다.-"부녀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4절) 빌닷은 인간 중에는 깨끗한 자가 없다는 것을 천명하였습니다. 사실 이러 한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성경 안에는 이와 같은 의미의 표현이 여러 군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시14:3).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17:9) "사람이 무엇관대 깨끗하겠느냐"(욥15:14) 물론 이러한 측면도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에는 사람들 가운데 깨끗한 자 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카톨릭 교회에서 자랑삼고 있는 성녀 테레사 같은 이의 삶은 참으로 명경수와 다름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이들도 불결한 자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눈에는 해와 달 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하지 못하거든"(5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에 인간은 누구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씻음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 입니다.(히9:14)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도 자신을 깨끗케 할 자가 없다는 사 실을 분명하게 기억합시다. 예수님의 필로 씻음을 받아야만 가능합니다.
3.존귀한 자가 없습니다.-"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6절) 빌닷은 계속하여 인간이 무척 비천한 존재라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이 말에는 인간의 비천함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사실 벌레와 구더기만큼 미 천한 미물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불의하고 부정한 모습을 드러낸 말씀이 성경 안에는 수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시22:6),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사41:14)
그런데 이 말씀들에 나타난 벌레와 구더기라는 표현은 본래부터 인간이 그 처럼 미천한 존재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뜻하고 있지 않습니다. 인간이 처음 지음을 받았을 때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기에 피조물로서 인간처럼 존귀한 존재가 없었습니다.(창1:26)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타락한 후로는 불행하게도 버러지 형상을 경배하는 죄인의 자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생각하면 안타깝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불가불 그리스도를 본받음으 로써 다시 존귀의 자리를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인간의 탁월성은 가히 견줄 곳이 없습니다. 진정 짐승들은 예나 이제나 조 금도 다름없는 방법으로 생존을 유지하고 있지만 인간은 역사를 통하여 끊임 없이 문명과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이를 능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안목으로 보면 인간에게는 의로운 자가 없고 깨끗한 자가 없으며 존귀한 자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반드시 영접하여 저런 비극적인 한계들을 극복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본래의 존귀성을 되 찾아야 하겠습니다. '예화' 인간은 누구나 마찬가지 유대 땅 어느 마을에 랍비가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율법과 의식을 성실히 준행하여 거의 완벽에 가까운 종교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로 인해 그에게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무리 중엔 꼭 소수의 열심 있는 자가 있는 법, 그 랍비를 따르던 제자들 중에도 한 명의 열심 있는 젊은 제자가 있었답니다. 그는 자신이 따르는 랍비의 헌신적으로 완전 무결한 모습을 존경하며 늘 랍비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성 베드로에게 물 었습니다. "저어, 제가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는 은근히 확신에 차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늘 랍비를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것은 무엇이든지 완벽 하게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렵소, 여기는 천국이 아니란 말이요." 성 베드로는 그에게 천국의 문은 훨씬 더 높은 곳에 있는데 그곳에 가려면 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만 한다고 설명해 주며 그 사다리를 가리켰습니다. 그 사다리는 높이 뻗어 올라 구름으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사다리를 본 그는 흠칫 놀랐습니다. "그럼 언제쯤 도달할 수 있을까요 이 사다리는 끝도 없는 것 같네요!" 그러자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겁먹지 마십시오 그건 당신에게 달렸소, 당신은 이 분필을 갖고 사다리를 오르며 디딤대 하나 하나에 당신이 이제껏 지은 죄를 하나씩 표시하십시오 그렇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며 당신의 모든 행위와 생각의 죄를 다 적으면 비로소 사다리 끝에 당도하여 천국의 문 앞에 서게 될 것이요.그러니 천국의 길은 당신이 죄를 얼마만큼 지었느냐에 따라 멀 수도 있고 가까울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는 성 베드로의 말을 들으며 아주 만족해했습니다. 그는 분필을 가지고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한참을 올라가도 아무런 조짐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고 팔이 아파옵니다. 얼마나 올라갔을 까 그는 너무 힘이 들어 포기하고 싶었지만 이제껏 오른 만큼 다시 내려갈 생각을 하지 그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 자신의 마음을 달래며 계속 오르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사다리를 오르던 어느 날 그는 무척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겉으로는 아무런 죄도 범하지 않았을지라도 마음속으로는 온갖 죄 를 다 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죄를 숱하게 기록하며 끊임없이 사다리를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저만큼 위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고 있는 자신의 랍비를 발견했습니다. "앗, 랍비님! 다 많은 제자들을 천국으로 데려가시기 위해 다시 돌아가시는 건가요아니 그대는 아직도 어리석군 그래! 분필이 더 있어야 겠기에 다시 내려가는 것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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