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의 말로(末路) (욥18:5-21)
본문
여기에 나오는 빌닷의 변론은 실제로 많은 진리를 내포하고 있으며 죄를 회개치 않은 악인의 상태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를 깨닫게 합니다. 그러나 악인의 기준과 근본적인 행복과 불행에 대한 기준이 결코 인간의 안목에 따 라 판정될 수 없으며 오직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평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악인의 빛은 꺼지고"
(5)라고 했습니다. 큰 환난에 빠져있는 욥의 현실을, 악인의 비참한 상태로 단정하 고 자신들의 모든 논리를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친구로서 결코 올바 른 태도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악인에 대한 빌닷의 변론 자체는 올바르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적용할 때 하나님의 관점이 아닌 자신의 관점 에서 적용한 빌닷의 평가는 커다란 과오를 저지른 것입니다. 소경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을 생각해 보십시오(요9:1-3). 불의한 자의 결말에 대한 교훈 은 "그 뿌리가 마르고"(16) "그의 기념이 땅에서 없어지고"(17) "아들도 없 고"(19) "놀라리라"(20)는 것입니다. 섹스피어어의 작품 '베니스 상인'에는 수전노(守錢奴)인 유대인 샤일록의 비극적인 말로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돈을 갈취하려고 교 활한 흉계를 꾸미다가 그 때문에 도리어 자기가 파탄되고 만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공의의 법칙에 따라 악인의 종국적 파멸을 경고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 구체적인 예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울 왕 의 말로와 가룟유다의 말로는 가히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빌닷이 말 한 악인의 말로가 어떤 것인가를 상세히 알아 봅시다.
1.두려움에 쫓기에 됩니다. 악인의 말로는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래고 그 뒤를 쫑아 올 것 이며(11절)"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악인은 외면적 형벌이 가해지기도 전에 그 내면에서부터 스스로 견디기 어려운 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잘 밝혀 주고 있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도 있습니다만 악인은 악 을 저지르게 되면 먼저 죄책감에 짓눌리게 되고 나아가서 보복이나 하나님 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떨다가 끝내는 절망에 빠지고 맙니다. 죄를 지으면 무엇보다도 양심의 고발부터 당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양심이 마 비되어 그 얼굴까지 철판이 되어 버린 자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대개 사람은 양심의 가책에서 도주할 수가 없고 스스로 채찍을 들기 때문에 두려 움과 괴로움을 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아무리 자기 행동을 변명하더라도 양심은 그를 정면으로 노려보면서 정죄합니다.그리고 이 양심은 자기의 악행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분노하시고 온 땅이 증오하며 지옥이 크게 입 을 벌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여 줍니다. 그러기에 악인은 그 고통에서 탈 출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갈 길을 찾습니다. 이는 온갖 환난 가운데서도 담대함과 평강을 누릴 수 있는 의인의 내면 상태와는 너무도 대조적이라 하겠습니다. 2 죽음의 왕에게 사로 잡히게 됩니다. 악인의 말로는 그의 백체가 먹히리니 곧 사망의 장자가 그 지체를 먹을 것이며 무서움의 왕에게 잡혀 갈 것이다.(13,14절)라고 하였습니다. 한마디 로 악인은 꼼짝없이 죽음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 '이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대 앞에서 모든 사람은 그 행 한 바대로 심판을 받으며 모든 사람은 죽음의 선고를 받게 됩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도는 사면을 받을 따름입니다. 동양의 설화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무서운 맹수를 피 하여 우물로 뛰어 들었다가 하필 중간에 뻗힌 나무 뿌리에 걸려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래로 바닥을 내려다 보자 이번에는 거기서 용이 입 을 크게 벌리고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종내 죽고 만다는 비 유이지만 이 얘기는 악인의 운명을 잘 보여 주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끝까지 회개치 않고 악행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죽음의 지 옥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받은 자들은 영원한 안식과 희락을 누리게 됩니다. 3 완전히 버림을 당합니다. 악인의 말로는 '그는 광명 중에서 흑암으로 몰려 들어가며 세상에서 쫓 겨 날 것이다'(18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악인은 누구나 무덤의 흑암, 곧 빛이라고는 가는 실낱 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완전한 흑암 속으로 버 림을 당하고 말 것을 의미합니다. 또 세상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기억나게 합니다.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 하여 바깥 어두운 곳에 내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22:13) 악인은 누구나 결국 산 자의 땅에서 추방을 당함은 물론이고 낙원에서도 천국에서도 내던짐을 받고 맙니다. 사람이 겪는 일로서 이보다 더한 비운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악행은 흉내도 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예화' 교활하고 꾀쟁이인 여우를 무척 싫어하는 농부가 어 느 날 무르익은 보리를 추수하기 위해 보리밭으로 나갔습니다. 마침 여우가 보리밭 곁에서 여유로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 퍼지게 자고 있는 여우를 발 견한 농부는 살금살금 다가가 가져온 망태기로 잽싸게 여우를 잡았답니다. "요놈! 내가 얼마나 네 녀석을 잡으려고 벼르고 벌렀는지 모른다. 오늘 한번 맞좀 봐라. 마음 같아서는 당장 때려 죽이고 싶지만 그 동안 네 녀석 에게 골탕먹은 걸 생각하면 열번 죽여도 속이 시원치 않다." 그러면서 농부는 여우를 실컷 괴롭혀서 죽일 방법이 없나를 골똘히 생각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얼른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동네 청 년이 석유통을 들고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농부는 뭔가 기발한 생각이 떠 올랐는지 그 청년을 불러 세웠습니다. "여보게, 그 기름을 이 밧줄에 조금만 뿌려주게.아니 뭘 하시려고요" 농부는 밧줄에 기름을 흥건히 뿌린 후에 그것을 여우 꼬리에 붙들어 맵니다. "이 밧줄에다 불을 붙이면 이 여우놈은 꼬리에 불이 붙어 점차 타서 죽 을 걸세. 어때!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 그러자 청년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습니다. "그건 너무 심한 것 같아요." 그래도 농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여우 꼬리를 맨 밧줄에 불을 붙 였습니다.
그런데 꼬리에 불이 붙은 여우는 곧장 그 농부의 보리 밭에 뛰 어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추수 직전의 보리 밭은 뜨거워 날뛰는 여우에 의 해 여기저기 불이 붙어 타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깜짝 놀란 농부는 여우 를 보리밭에서 쫓아냈지만 이미 보리 밭은 불바다가 되어 버렸습니다. 여 우를 골려 주려다가 자신의 보리밭까지 몽땅 태워버린 농부는 울상이 되었 습니다. '어이쿠 이럴 줄 알았으면 여우를 그냥 놓아 보내는 건데' 성도 여러분! 우리는 참으로 어지럽고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르며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지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온갖 권모 술수와 죄악된 방법으로 경쟁자를 누르고 부귀를 획득하는 것이 오히려 똑똑하고 멋있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악 인에게는 잠시 동안의 부귀가 있을 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패망이 덮치고 말 것입니다.
(5)라고 했습니다. 큰 환난에 빠져있는 욥의 현실을, 악인의 비참한 상태로 단정하 고 자신들의 모든 논리를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친구로서 결코 올바 른 태도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악인에 대한 빌닷의 변론 자체는 올바르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적용할 때 하나님의 관점이 아닌 자신의 관점 에서 적용한 빌닷의 평가는 커다란 과오를 저지른 것입니다. 소경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을 생각해 보십시오(요9:1-3). 불의한 자의 결말에 대한 교훈 은 "그 뿌리가 마르고"(16) "그의 기념이 땅에서 없어지고"(17) "아들도 없 고"(19) "놀라리라"(20)는 것입니다. 섹스피어어의 작품 '베니스 상인'에는 수전노(守錢奴)인 유대인 샤일록의 비극적인 말로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돈을 갈취하려고 교 활한 흉계를 꾸미다가 그 때문에 도리어 자기가 파탄되고 만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공의의 법칙에 따라 악인의 종국적 파멸을 경고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 구체적인 예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울 왕 의 말로와 가룟유다의 말로는 가히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빌닷이 말 한 악인의 말로가 어떤 것인가를 상세히 알아 봅시다.
1.두려움에 쫓기에 됩니다. 악인의 말로는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래고 그 뒤를 쫑아 올 것 이며(11절)"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악인은 외면적 형벌이 가해지기도 전에 그 내면에서부터 스스로 견디기 어려운 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잘 밝혀 주고 있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도 있습니다만 악인은 악 을 저지르게 되면 먼저 죄책감에 짓눌리게 되고 나아가서 보복이나 하나님 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떨다가 끝내는 절망에 빠지고 맙니다. 죄를 지으면 무엇보다도 양심의 고발부터 당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양심이 마 비되어 그 얼굴까지 철판이 되어 버린 자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대개 사람은 양심의 가책에서 도주할 수가 없고 스스로 채찍을 들기 때문에 두려 움과 괴로움을 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아무리 자기 행동을 변명하더라도 양심은 그를 정면으로 노려보면서 정죄합니다.그리고 이 양심은 자기의 악행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분노하시고 온 땅이 증오하며 지옥이 크게 입 을 벌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여 줍니다. 그러기에 악인은 그 고통에서 탈 출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갈 길을 찾습니다. 이는 온갖 환난 가운데서도 담대함과 평강을 누릴 수 있는 의인의 내면 상태와는 너무도 대조적이라 하겠습니다. 2 죽음의 왕에게 사로 잡히게 됩니다. 악인의 말로는 그의 백체가 먹히리니 곧 사망의 장자가 그 지체를 먹을 것이며 무서움의 왕에게 잡혀 갈 것이다.(13,14절)라고 하였습니다. 한마디 로 악인은 꼼짝없이 죽음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 '이라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대 앞에서 모든 사람은 그 행 한 바대로 심판을 받으며 모든 사람은 죽음의 선고를 받게 됩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도는 사면을 받을 따름입니다. 동양의 설화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무서운 맹수를 피 하여 우물로 뛰어 들었다가 하필 중간에 뻗힌 나무 뿌리에 걸려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래로 바닥을 내려다 보자 이번에는 거기서 용이 입 을 크게 벌리고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종내 죽고 만다는 비 유이지만 이 얘기는 악인의 운명을 잘 보여 주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끝까지 회개치 않고 악행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죽음의 지 옥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받은 자들은 영원한 안식과 희락을 누리게 됩니다. 3 완전히 버림을 당합니다. 악인의 말로는 '그는 광명 중에서 흑암으로 몰려 들어가며 세상에서 쫓 겨 날 것이다'(18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악인은 누구나 무덤의 흑암, 곧 빛이라고는 가는 실낱 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완전한 흑암 속으로 버 림을 당하고 말 것을 의미합니다. 또 세상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기억나게 합니다.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 하여 바깥 어두운 곳에 내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22:13) 악인은 누구나 결국 산 자의 땅에서 추방을 당함은 물론이고 낙원에서도 천국에서도 내던짐을 받고 맙니다. 사람이 겪는 일로서 이보다 더한 비운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악행은 흉내도 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예화' 교활하고 꾀쟁이인 여우를 무척 싫어하는 농부가 어 느 날 무르익은 보리를 추수하기 위해 보리밭으로 나갔습니다. 마침 여우가 보리밭 곁에서 여유로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 퍼지게 자고 있는 여우를 발 견한 농부는 살금살금 다가가 가져온 망태기로 잽싸게 여우를 잡았답니다. "요놈! 내가 얼마나 네 녀석을 잡으려고 벼르고 벌렀는지 모른다. 오늘 한번 맞좀 봐라. 마음 같아서는 당장 때려 죽이고 싶지만 그 동안 네 녀석 에게 골탕먹은 걸 생각하면 열번 죽여도 속이 시원치 않다." 그러면서 농부는 여우를 실컷 괴롭혀서 죽일 방법이 없나를 골똘히 생각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얼른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동네 청 년이 석유통을 들고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농부는 뭔가 기발한 생각이 떠 올랐는지 그 청년을 불러 세웠습니다. "여보게, 그 기름을 이 밧줄에 조금만 뿌려주게.아니 뭘 하시려고요" 농부는 밧줄에 기름을 흥건히 뿌린 후에 그것을 여우 꼬리에 붙들어 맵니다. "이 밧줄에다 불을 붙이면 이 여우놈은 꼬리에 불이 붙어 점차 타서 죽 을 걸세. 어때!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 그러자 청년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습니다. "그건 너무 심한 것 같아요." 그래도 농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여우 꼬리를 맨 밧줄에 불을 붙 였습니다.
그런데 꼬리에 불이 붙은 여우는 곧장 그 농부의 보리 밭에 뛰 어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추수 직전의 보리 밭은 뜨거워 날뛰는 여우에 의 해 여기저기 불이 붙어 타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깜짝 놀란 농부는 여우 를 보리밭에서 쫓아냈지만 이미 보리 밭은 불바다가 되어 버렸습니다. 여 우를 골려 주려다가 자신의 보리밭까지 몽땅 태워버린 농부는 울상이 되었 습니다. '어이쿠 이럴 줄 알았으면 여우를 그냥 놓아 보내는 건데' 성도 여러분! 우리는 참으로 어지럽고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르며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지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온갖 권모 술수와 죄악된 방법으로 경쟁자를 누르고 부귀를 획득하는 것이 오히려 똑똑하고 멋있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악 인에게는 잠시 동안의 부귀가 있을 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패망이 덮치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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