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세상 속에 거하는 성도 (욥12:1-25)
본문
전통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신앙으로 욥을 판단하며 비난했던 소발의 신랄한 비판 이 지니간 뒤 무려 3장(12-14장)에 걸친 욥의 열정적인 답변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읍과 그의 세 친구들 사이에 벌어졌던 제 1차 설전이 매듭지어 지게 됩니다. 욥은 이번 답변을 통해 먼저 자신을 정죄하고 비난했던 친구들에게 냉소적 인 말투와 빈정거리면서 친구들의 섣부른 충고에 대해 대꾸했던 것입니다.
1.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 합당치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1-6절). 욥은 자신의 친구들이 최고의 지혜인양 피력했던 많은 말들이 사실은 매우 평범 하고 일상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임을 말하였습니다(3,7-8절). 뿐만 아니라 자신 의 친구들처럼 특별한 고통없이 평안한 생활을 하는 자들은 욥 자신처럼 고난당하는 자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좀더 심하게는 고난당하는 자들을 비난하고 정죄하기 까 지 한다고 지적하였습니다(5절). 실로 자기의 지식에 도취된 자, 지적으로 심히 오 만한 자는 결코 온전한 지혜에 이롤 수 없고, 이웃의 아픈 헌실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가치관이나 자기 견해를 절대시 하여 이웃을 너무 쉽게 판단하고 비난하는 자는 이웃의 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좁은 시야를 벗어던지고 이웃의 고통스런 입장에 서서 이웃을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이웃 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일은 결단코 생겨나지 않을 줄 압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은 혜로 구속함을 받은 자라면 매사에 무엇을 하든지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며, 나보다 남을 더욱 낫게 여기는 겸손한 자세를 견지해 가야 하겠습니다(빌 2:1-8). 진실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와 교제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약 4:6).
2. 이 세상에서는 애매히 고난을 받을 때도 있음을 말아야 합니다(7-12절). 죄와 불법이 기승을 부리는 이 세상에서는 악한 자들이 형통하고 대신 의인들이 고난받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6절). 이러한 난해한 현실은 우리가 가까이서 목도 하는 자연의 세계에서도 넉넉히 발견할 수 있는 현상들입니다. 즉 성질이 사납고 고약한 강한 짐승이 성질이 유순하고 그저 부드럽기만 한 약한 짐승을 잡아 먹는 것처럼 불의한 일이 매일 자연계에서 발생합니다. 이런 현상은 모든 피조 세계의 대표자인 인류가 하나님의 법을 거역하고 범죄함으로써 그 이후부터 모든 피조 세 계에 만연되어버린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실로 인간의 죄악이 이처럼 인간 세계는 물론이거니와 온 자연 세계에 고통을 제공하야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간 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비록 인간의 범죄로 인해 에매한 고통이 이 땅에 생겨났 지만, 그 고통과 고난을 주장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롬8:20) 실로 하나님은 당신의 절대 주권으로써 이 땅의 모든 일들을 친히 주관 하십니다. 특별히 하나넘은 당신의 백성의 신앙 성숙을 위해서 고통과 시련을 허락하기도 하 십니다(약 1:2-4). 만약 하나님의 은혜로운 경륜 가운데 혹 애매히 고난을 받는 자 가 있다면 불평과 원망을 삼가하고 도리어 하나넘을 생각하고 구원의 주를 바라봄 으로써 슬픈 현실을 잘 인내하며 견뎌내어야 하겠습니다(벧전 2:19).
3. 이 악한 세상을 주잔하시는 분은 하나님임을 알아야 합니다(13-25절). 악인들이 잠시 번영하고 불의산 자들이 잠깐 형통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곧 이 세상의 주관자가 악한 자들임을 입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악인들이 세상에서 형통하는 순간이 있지만 결국 그들은 스스로의 악행으로 인해 심판받아야 할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바로 이 세상 역사를 홀로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롬 11:36). 그런 점에서 악인들의 형통함은 결단코 복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형통함은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대 앞에서 그들 스스로 를 정죄하는 분명한 입증 자료가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서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는 어떤 경우에든 악인들의 번성함을 부러워 해서는 안되고, 그들의 형통함으로 인해 실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오직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깊이 신뢰 하며 그분의 공의로운 심판의 때를 조용히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결론' 진실로 우리 성도의 본향은 이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늘 본향을 바 라보고 살아가는 하늘 시민권자들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비록 이 세상의 질서 가 왜곡되고 이 세상에서 악인들이 형통한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실의와 좌절 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그럴 때일수록 강하게 본향을 바라보면서 주어신 삶에 최선 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를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빌3:20)"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1.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 합당치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1-6절). 욥은 자신의 친구들이 최고의 지혜인양 피력했던 많은 말들이 사실은 매우 평범 하고 일상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임을 말하였습니다(3,7-8절). 뿐만 아니라 자신 의 친구들처럼 특별한 고통없이 평안한 생활을 하는 자들은 욥 자신처럼 고난당하는 자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좀더 심하게는 고난당하는 자들을 비난하고 정죄하기 까 지 한다고 지적하였습니다(5절). 실로 자기의 지식에 도취된 자, 지적으로 심히 오 만한 자는 결코 온전한 지혜에 이롤 수 없고, 이웃의 아픈 헌실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가치관이나 자기 견해를 절대시 하여 이웃을 너무 쉽게 판단하고 비난하는 자는 이웃의 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좁은 시야를 벗어던지고 이웃의 고통스런 입장에 서서 이웃을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이웃 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일은 결단코 생겨나지 않을 줄 압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은 혜로 구속함을 받은 자라면 매사에 무엇을 하든지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며, 나보다 남을 더욱 낫게 여기는 겸손한 자세를 견지해 가야 하겠습니다(빌 2:1-8). 진실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와 교제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약 4:6).
2. 이 세상에서는 애매히 고난을 받을 때도 있음을 말아야 합니다(7-12절). 죄와 불법이 기승을 부리는 이 세상에서는 악한 자들이 형통하고 대신 의인들이 고난받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6절). 이러한 난해한 현실은 우리가 가까이서 목도 하는 자연의 세계에서도 넉넉히 발견할 수 있는 현상들입니다. 즉 성질이 사납고 고약한 강한 짐승이 성질이 유순하고 그저 부드럽기만 한 약한 짐승을 잡아 먹는 것처럼 불의한 일이 매일 자연계에서 발생합니다. 이런 현상은 모든 피조 세계의 대표자인 인류가 하나님의 법을 거역하고 범죄함으로써 그 이후부터 모든 피조 세 계에 만연되어버린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실로 인간의 죄악이 이처럼 인간 세계는 물론이거니와 온 자연 세계에 고통을 제공하야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간 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비록 인간의 범죄로 인해 에매한 고통이 이 땅에 생겨났 지만, 그 고통과 고난을 주장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롬8:20) 실로 하나님은 당신의 절대 주권으로써 이 땅의 모든 일들을 친히 주관 하십니다. 특별히 하나넘은 당신의 백성의 신앙 성숙을 위해서 고통과 시련을 허락하기도 하 십니다(약 1:2-4). 만약 하나님의 은혜로운 경륜 가운데 혹 애매히 고난을 받는 자 가 있다면 불평과 원망을 삼가하고 도리어 하나넘을 생각하고 구원의 주를 바라봄 으로써 슬픈 현실을 잘 인내하며 견뎌내어야 하겠습니다(벧전 2:19).
3. 이 악한 세상을 주잔하시는 분은 하나님임을 알아야 합니다(13-25절). 악인들이 잠시 번영하고 불의산 자들이 잠깐 형통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곧 이 세상의 주관자가 악한 자들임을 입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악인들이 세상에서 형통하는 순간이 있지만 결국 그들은 스스로의 악행으로 인해 심판받아야 할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바로 이 세상 역사를 홀로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롬 11:36). 그런 점에서 악인들의 형통함은 결단코 복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형통함은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대 앞에서 그들 스스로 를 정죄하는 분명한 입증 자료가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서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는 어떤 경우에든 악인들의 번성함을 부러워 해서는 안되고, 그들의 형통함으로 인해 실의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오직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깊이 신뢰 하며 그분의 공의로운 심판의 때를 조용히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결론' 진실로 우리 성도의 본향은 이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늘 본향을 바 라보고 살아가는 하늘 시민권자들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비록 이 세상의 질서 가 왜곡되고 이 세상에서 악인들이 형통한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실의와 좌절 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그럴 때일수록 강하게 본향을 바라보면서 주어신 삶에 최선 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를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빌3:20)"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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