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의 길 (욥15:20-35)
본문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우리 시대에 와서는 흉악범들이 도처에 서 날뛰고 있어 모두가 마음을 졸이고 있습니다. 살인, 강도, 절도, 폭력, 음해, 모략등의 끔찍한 일들을 저질르는 자들을 보면서 악인의 횡포에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성경이 규정하고 있는 악인에 대한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름을 알 수있습니다. 성경은 비록 행동에 옮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악을 마음에 품고 있으면 그는 벌써 악인이며(마 5:28)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하나님을 떠나 있는 자들을 통털어 악인으로 규정합니다.(사57:3,4).
1.멸망의 날이 작정되어 있습니다. = 악인은 멸망의 날이 이미 작정되어 있습니다. "강포자의 햇수는 작정되 었으므로"(20절), "멸망시키는 자가 그에게 임하리니"(21절), "칼날의 기다 림이 되는니라"(22절) 악인들이 세상에서 활개치고 있는 것을 보면 신앙심 에까지도 회의가 일어나게 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면 어찌하여 저런 자들을 당장 처벌하지 않고 두고만 보시는지 속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더욱 혼란을 끼쳐 주는 것은 악인들이 망하기는 커녕 그들 이 도리어 더욱 형통한 것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런 경우를 가리켜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오히 려) 그 힘이 건강하다'(시73:4)고 꼬집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을 목격하 면 누구라도 신앙에 심각한 갈등을 느기게 됩니다. 그러나 악인이 아무리 안하무인 격으로 날뛴다 하더라도 그의 멸망의 날은 벌써 하나님께서 설정 해 두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 날이 더딘 것은 하나님께서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도록 그 배려를 베푸신 것이 라 말하기도 하였습니다(벧후3:9). 이렇게 보면 악인에게 당장 멸망이 이 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사라이 유예기간을 주신 셈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악인에게는 멸망의 날이 분명히 정하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 시는 분이지만 영원히 참는 분은 아니십니다. 그러기에 우리 역시 악행을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손을 들어 하나님을 대적하여 전능자를 배반하는 악인들은(25) 반드시 일생에 고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한된 삶을 살게 되고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롬3:16) 구원의 희망조차 없습니다.(22)
2. 끝까지 유리 방황합니다. 악인은 '그는 유리하며'(23절), "그는 황무한 성읍, 사람이 살지 아니하는 집, 돌 무더기가 될 곳에 거하였음이니라"(28절) 하였습니다. 악인은 유 리 방황하며 음식을 구걸하게 되고, 빈곤함(23)과 환란과 고통의 두려움에 빠져서(24) 멸망하게 되어 버립니다. 악인은 끝까지 유리 방황하는데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가고, 생각지 말 아야 할 것을 마음에 두며, 마치 더러운 먹이를 찾아 온 골목길을 헤매고 다니는 개와 같은 모습이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한 탐욕심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인류 가운데서 최초로 방황하게 된 자는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이었습이다.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 하는 자가 되리라"(창4:12). 이렇게 하여 가인은 가련한 방랑자가 되고 말 았습니다. 동생 요셉을 파는 일에 공범자가 되었던 르우벤은 '나는 이제 어디로 갈까'(창37:30)하고서 외쳤습니다. 사도 요한은 마치 명쾌하게 풀 이라도 하듯이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 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요일2:11)고 하였습니다. 또한 악인은 목을 굳게하고 두터운 방패로 하나님을 치려하며(26) 방탕과 탐욕에 눈이 어두워서(27)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약탈하여 자신이 무너뜨 린 성읍 속에서 스스로 부요케하며 거하려 합니다.(28), 그러나 그러한 부 요함은 오래가지 못하고 재물은 바닥이 날 것이며(29)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입김에 사라져 버릴 소망없는 상태에 처할 것입니다(30).
3. 허망이 그 보응이 됩니다. = 악인의 수확에 대하여 "허망한 것을 믿지 말 것은 허망한 것이 그의 보 응이 될 것임이라"(31절)고 하였습니다. 악인이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악인들이 잔학한 짓을 자행하는 그 밑바닥에는 강한 소유욕이 깔려 있습니다. 소유욕이 너무 강하면 강도가 남의 물건을 강탈하는 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악인의 소득은 물거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악 인의 소득이 엄청난 것처럼 보이고, 그것으로 평안을 누리는 것처럼 보 입니다. 그러나 그런 행복은 순간적이요(20:5), 불확실한 것이며(눅 12:20), 헛된 것이요(전2:1,2) 이 세상에서만 국한된 것입니다.(눅 16:24,25), 그리고 끝내는 하나님의 심판의 자료 밖에 되지 않습니다.(시 73:18-20). 악인의 소득은 허망 밖에 없습니다. 악행 자체부터가 허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덫에 걸린 짐승은 자기의 귀중한 목숨만 빼앗길 뿐,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악인은 성공하기 전에 실패할 것 이며(31-33) 아무 결실없이 죄만 지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엘리바스의 이러한 주장 자체를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모든 악인은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 문입니다. 그러나 욥의 경우와 같이 환란의 원인이 판명되지 않은 상황에 서 이러한 단순논리를 적용한 것은 다분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정당한 지식이라도 올바른 적용을 할때에만 그 가치 가 있음을 명심하고, 나의 논리만이 정당한 것이라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 록 조심해야겠습니다. 악인의 종말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멸망의 날은 이미 작정되고, 끝까지 유리 방황하면고 그 보응은 허망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잔악하여 악을 자행하는 자들을 더욱 선망하면서 추켜 세우고(롬 1:32), 심지어 그런 자를 영웅처럼 찬탄하기도 합니다. 악의 기만성이 바 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악행은 궁극적으로 죽음의 함정에 떨어지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차려 그런 기만에 떨어지지 않도록 해 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싫어하시는 악한 것을 부러워 하지말고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을 듣고 우리도 실천하는 하루가 됩시다. '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 '
1)수고하시는 우체부 아저씨에게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내미는 아주머니의 손길은우리를 기쁘게 한다.
2)일흔이 넘으신 할아버지께서 자전거를 타고 새벽에 신문을 각 가정에 배달하시는모습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3)'금연'이라 쓰여진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금연리라고 쓰여진 것이안보이세요'라고 용기있게 말하는 모습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4)비오는 날 학교 앞에서 우산을 들고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모습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5)장바구니늘 들고 웃으며 정겹게 지나가는 머리가 하얗게 센 노부부의 뒷모습은우리를 기쁘게 한다.
6)어느 날 친구와의 우정이 '이것이었구나' 하며 서로 간의 믿음이 더욱 강해졌음을느낄 때 우리를 기쁘게 한다. 7)한 어린이가 무심코 버린 과자 봉지를 청소하는 아저씨가 줍자 미안한 듯다시 돌아가 휴지를 줍는 어린이의 손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8)제과점에서 삼촌과 유치원생이 정겹게 빵을 나눠먹는 모습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9)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피곤하시죠'라고 웃으며 맞아주는 아내 의 얼굴은우리를 기쁘게 한다.
1.멸망의 날이 작정되어 있습니다. = 악인은 멸망의 날이 이미 작정되어 있습니다. "강포자의 햇수는 작정되 었으므로"(20절), "멸망시키는 자가 그에게 임하리니"(21절), "칼날의 기다 림이 되는니라"(22절) 악인들이 세상에서 활개치고 있는 것을 보면 신앙심 에까지도 회의가 일어나게 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면 어찌하여 저런 자들을 당장 처벌하지 않고 두고만 보시는지 속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더욱 혼란을 끼쳐 주는 것은 악인들이 망하기는 커녕 그들 이 도리어 더욱 형통한 것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런 경우를 가리켜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오히 려) 그 힘이 건강하다'(시73:4)고 꼬집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을 목격하 면 누구라도 신앙에 심각한 갈등을 느기게 됩니다. 그러나 악인이 아무리 안하무인 격으로 날뛴다 하더라도 그의 멸망의 날은 벌써 하나님께서 설정 해 두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 날이 더딘 것은 하나님께서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도록 그 배려를 베푸신 것이 라 말하기도 하였습니다(벧후3:9). 이렇게 보면 악인에게 당장 멸망이 이 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사라이 유예기간을 주신 셈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악인에게는 멸망의 날이 분명히 정하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 시는 분이지만 영원히 참는 분은 아니십니다. 그러기에 우리 역시 악행을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손을 들어 하나님을 대적하여 전능자를 배반하는 악인들은(25) 반드시 일생에 고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한된 삶을 살게 되고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롬3:16) 구원의 희망조차 없습니다.(22)
2. 끝까지 유리 방황합니다. 악인은 '그는 유리하며'(23절), "그는 황무한 성읍, 사람이 살지 아니하는 집, 돌 무더기가 될 곳에 거하였음이니라"(28절) 하였습니다. 악인은 유 리 방황하며 음식을 구걸하게 되고, 빈곤함(23)과 환란과 고통의 두려움에 빠져서(24) 멸망하게 되어 버립니다. 악인은 끝까지 유리 방황하는데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가고, 생각지 말 아야 할 것을 마음에 두며, 마치 더러운 먹이를 찾아 온 골목길을 헤매고 다니는 개와 같은 모습이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한 탐욕심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인류 가운데서 최초로 방황하게 된 자는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이었습이다.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 하는 자가 되리라"(창4:12). 이렇게 하여 가인은 가련한 방랑자가 되고 말 았습니다. 동생 요셉을 파는 일에 공범자가 되었던 르우벤은 '나는 이제 어디로 갈까'(창37:30)하고서 외쳤습니다. 사도 요한은 마치 명쾌하게 풀 이라도 하듯이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 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요일2:11)고 하였습니다. 또한 악인은 목을 굳게하고 두터운 방패로 하나님을 치려하며(26) 방탕과 탐욕에 눈이 어두워서(27)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약탈하여 자신이 무너뜨 린 성읍 속에서 스스로 부요케하며 거하려 합니다.(28), 그러나 그러한 부 요함은 오래가지 못하고 재물은 바닥이 날 것이며(29)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입김에 사라져 버릴 소망없는 상태에 처할 것입니다(30).
3. 허망이 그 보응이 됩니다. = 악인의 수확에 대하여 "허망한 것을 믿지 말 것은 허망한 것이 그의 보 응이 될 것임이라"(31절)고 하였습니다. 악인이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악인들이 잔학한 짓을 자행하는 그 밑바닥에는 강한 소유욕이 깔려 있습니다. 소유욕이 너무 강하면 강도가 남의 물건을 강탈하는 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악인의 소득은 물거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악 인의 소득이 엄청난 것처럼 보이고, 그것으로 평안을 누리는 것처럼 보 입니다. 그러나 그런 행복은 순간적이요(20:5), 불확실한 것이며(눅 12:20), 헛된 것이요(전2:1,2) 이 세상에서만 국한된 것입니다.(눅 16:24,25), 그리고 끝내는 하나님의 심판의 자료 밖에 되지 않습니다.(시 73:18-20). 악인의 소득은 허망 밖에 없습니다. 악행 자체부터가 허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덫에 걸린 짐승은 자기의 귀중한 목숨만 빼앗길 뿐,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악인은 성공하기 전에 실패할 것 이며(31-33) 아무 결실없이 죄만 지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엘리바스의 이러한 주장 자체를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모든 악인은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 문입니다. 그러나 욥의 경우와 같이 환란의 원인이 판명되지 않은 상황에 서 이러한 단순논리를 적용한 것은 다분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정당한 지식이라도 올바른 적용을 할때에만 그 가치 가 있음을 명심하고, 나의 논리만이 정당한 것이라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 록 조심해야겠습니다. 악인의 종말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멸망의 날은 이미 작정되고, 끝까지 유리 방황하면고 그 보응은 허망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잔악하여 악을 자행하는 자들을 더욱 선망하면서 추켜 세우고(롬 1:32), 심지어 그런 자를 영웅처럼 찬탄하기도 합니다. 악의 기만성이 바 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악행은 궁극적으로 죽음의 함정에 떨어지는 지름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차려 그런 기만에 떨어지지 않도록 해 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싫어하시는 악한 것을 부러워 하지말고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을 듣고 우리도 실천하는 하루가 됩시다. '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 '
1)수고하시는 우체부 아저씨에게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내미는 아주머니의 손길은우리를 기쁘게 한다.
2)일흔이 넘으신 할아버지께서 자전거를 타고 새벽에 신문을 각 가정에 배달하시는모습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3)'금연'이라 쓰여진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금연리라고 쓰여진 것이안보이세요'라고 용기있게 말하는 모습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4)비오는 날 학교 앞에서 우산을 들고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모습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5)장바구니늘 들고 웃으며 정겹게 지나가는 머리가 하얗게 센 노부부의 뒷모습은우리를 기쁘게 한다.
6)어느 날 친구와의 우정이 '이것이었구나' 하며 서로 간의 믿음이 더욱 강해졌음을느낄 때 우리를 기쁘게 한다. 7)한 어린이가 무심코 버린 과자 봉지를 청소하는 아저씨가 줍자 미안한 듯다시 돌아가 휴지를 줍는 어린이의 손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8)제과점에서 삼촌과 유치원생이 정겹게 빵을 나눠먹는 모습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9)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피곤하시죠'라고 웃으며 맞아주는 아내 의 얼굴은우리를 기쁘게 한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