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악인과 의인의 대조적인 시간 (욥17:6-16)

본문

안타까운 욥의 탄식이 계속됩니다. 죽음이 가까왔고 바라는 것도 죽음 뿐이라는 고통의 끝에 다다른 욥은 감당하기 힘든 지독한 고통 가운데서 계속 살아가기 보다는 차라리 죽어 구더기에 먹히는 것이 더 낫다고 까지 말합니다. 비록 친구들이 하나님의 징계가 끝나면 구원해 주실 것이고,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욥의 현실에 서는 그들의 말이 '밤으로 낮을 삼고 빛이 어두운데 가깝다'(12)고 하는 조롱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끝까지 인간의 유혹적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하나님께 죽음까지도 맡겨버리는 태도로 일관한 욥에게 서 환란과 핍박 중에서도 신앙을 지켜 나가는 성도의 참 모습을 발견하게 되며 우리 또한 큰 위로와 도전을 받게 됩니다. 한 가지 일을 두고서도 마음이 사곡한 자는 그것을 나쁘게 평가하는 데 비하여 마음이 정직한 자는 좋게 평가합니다. 이는 곧 어떤 색안경을 끼 느냐에 따라 사물이 검게 보이기도 하고 푸르게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한 사람 예수를 가리켜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같은 예수를 보고서 미친 자라고(요10:20) 매도해 버린 경우도 있었습니다. 만약 평소 에 경건하고 선량하게 지내던 사람이 내일 죽음에 이른다는 것을 미리 알 게 된다면 그는 각별히 자기 마음을 더욱 선하게 가지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서조차 악습에 젖은 사람은 '내일 죽으리니 먹 고 마시자'(사22:13)라고 하기 심상입니다. 이런 상반된 사고 방식과 행동 의 차이는 고난에 대한 반응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데 욥은 본문에서 그 점을 잘 대조시켜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반응은 도대체 어떤 것 일까요 풀어 놓는 말
1.의인은 더욱 분발합니다. 욥은 애매하게 당하고 있는 자기의 고난을 처절한 심정으로 술회하고 나서 곧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독실히 행하 고 손이 개끗한 자는 점점 힘을 잃어가느니라'(9절) 그러니까 욥은 어떤 의인이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보게 되면 그는 더욱 분발하여 의를 행하는 일에 힘쓸 것이라는 판단을 피력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평범한 견해로 볼 때 어떤 의인이 까닭없는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을 보면 누구나 당장 온몸에 서 힘이 빠지고 말 것입니다. 의인조차 저런 고난을 당한다면 도대체 의를 행하면서 살 필요가 어디 있겠느냐는 판단 때문입니다. 그러나 욥의 판단 은 달랐습니다. 그가 참으로 의인이라면 욥의 고난을 보고 더욱 경성하여 의롭게 살려고 가일충 분발할 것이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욥처럼 훌륭한 신앙인이 극심한 고난을 당한다면 욥의 신앙에 미치지 못 하는 자기야 어떻게 되겠느냐는 두려움이 앞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 명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 앞에는 아무리 복잡하고 뒤죽박죽인 세상 일에서 도 조금도 회의심을 불러 일으킬 것이 없고 그러기에 그에게는 어떤 모순도 생겨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까지 뚫어 보는 눈을 가지게 됩니다.(마5:8). 그러니 그런 사람 앞에서 드러나지 않을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상황 속에서 자신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보니 성숙된 신앙인으로 자라가는 긍정적 안목을 지녀야 하 겠습니다.
2.악인은 더욱 어두워집니다. 욥은 자기 고난을 바라보는 의인의 태도를 미루어 말하고 나서 이번에는 대조적으로 악인의 소행을 들어 천명하였습니다. '그들은 밤으로 낮을 삼고 빛이 어두운 가운데 가깝다하는구나'(12절)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여기서 그들이라고 지칭한 것은 매정한 세 친구들,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을 가 리킨 것입니다. 이 구절은 해석상 여러 견해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밤이 지나면 낮이 오고 어둠이 지나면 빛이 오듯이 욥의 고난은 곧 끝나게 될 것을 가리킨다는 견해 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기술을 크게 바꿀 것이 없 이 '악인은 밤을 낮삼아 살고 빛과 어두움도 다를 것이 없다고 하는구나'라 고 문자 그대로 이해해도 무난하리라 봅니다. 영적 의미에서 볼 때 악인은 낮과 밤을 구별하지 못하고 빛과 어둠도 구 별하지 못합니다. 사도 요한도 악인은 자기 행위가 악하기 때문에 빛을 미 워하고 도리어 어둠을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자들이 욥의 고난을 보았을 경우 더욱 암담한 상태로 추락할 것은 확연한 것입니다. 즉 악인은 경건한 자들의 고난을 보고서 '의로운 체해도 별 수 없구먼, 그러니 실컷 먹고 마시며 쾌락을 즐기는 것이 최고다'라고 생각합니다. 악인은 곧은 것 도 굽게 보고 옳은 것도 그르게 보며, 좋은 것도 나쁘게 보고 아름다운 것 도 추하게 보기 마련입니다. 모든 일을 '뒤틀린 마음'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악인은 감히 하나님의 이런 일에 대해서도 서슴지 않고 악담을 퍼붓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가 조심하여 이런 악의 시각을 벗겨 내야 할 것입니다. '예화' 1453년 회교군대가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했습니다. 콘스탄틴노 플은 로마와 함께 중세 기독교의 성도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발칸인들이 앞으로 수세기동안 크리그챤의 지배를 받느냐의 풍전등화같은 위기에 처했는데도 교회의 사제들이 모여서 성모 마리아상의 눈의 색을 무슨 색할것이 냐 천사는 남성적이냐 여성적이냐, 성수에 파리가 빠져 죽었는데 성수가 오염됐느냐, 파리가 성화됐느냐 하는 문제로 싸웠습니다. 1917년 겨울 레닌의 귀국으로 공산혁명군대가 모스크바를 쳐들어와 세상 이 뒤집히고 기독교 왕족과 부자와 승려와 군벌등 125만명이 시베리아에서 피난가다 죽고 기독교의 뿌리가 뽑히는 마당에 모스크바의 한 목사(사제) 회의에서는 까운의 후드색에 관한 문제와 축도할 때 손가락을 어떤 모양으 로 펼것인가에 대해 두시간반을 싸웠다고 합니다. 지금의 한국의 교회는 어떤 모습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정리하는 말 성도 여러분! 선한 사람은 악에서 선을 배우지만 악한 사람은 선에서도 악을 배웁니다. 이는 마음의 태도가 상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욥의 고난 이 의인에게는 분별력을 끼쳐 주지만 악인에게는 도리어 깊은 어둠만 만 들어 준다는 것도 바로 이점을 가리킨 것이었습니다. 신앙인에게는 이 세상이 신앙으로 살기에 알맞지만 불신자들에게는 이 세상이 자기들 멋대로 살기에 알맞습니다. 이런 일을 경계삼아 우리는 아무쪼록 하나님의 선하시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239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