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동경하는 욥 (욥10:18-22)
본문
욥은 본문에서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파멸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런 아픔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탄합니다.(18절) 그래서 견 디기 어려운 깊은 고통 때문에 다시 한번 죽음에 대해 동경하는 자신의 심정을 토로합니다. (18-19)탄생에 대해 원망하는 욥의 탄원 내용을 서술하는(22-23)인간 이 머무를 최후의 장소를 동경하는 욥의 심정을 토로한다.
1.고통이 강해 질수록 욥은 육신의 고통이 경감되기를 바랄 뿐 아니라 이로 인해서 야기된 정신적 불안감에서도 벗어나 평안을 누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곳은 매우 암울하고 어둡게 언급하고 있다.(21, 22절)
1).죽음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가 나타나기 이전 욥 시대에 널리 퍼져 있던 사후관을 보여주며
2).욥이 죽음을 예찬하던 이전의 자신의 태도를 바꾸어 생에 대한 강한 애착과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몸짓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우리가 어떠한 일을 당할지라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에 도전하는 것은 죄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고난과 역경이 닥칠 때일수록 하나님의 품에서 더욱 가까이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2.삶이 곤비한 이유 삶에 대해 애착을 갖고 자신의 생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순수한 본능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의 삶에는 곤비함이 더불어 있기 때문에 인생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때문에 본문에서도 욥도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1절)로 고백했던 것이다. 이제 삶의 곤비는 어디에서 연유하는지를 살펴 신앙으로 극복하도록 하자.
1)우리의 삶을 죄악된 목적이나 그 수단으로 사용할 때 우리의 삶은 곤비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이다. 이 곤비함은 자기 의 삶을 정도에서 벗어나게 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그릇 되이 사용한 어리석음에 대한 대사가로 나타나는 것이다.
2)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자기의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께서 주신 은혜로 개인의 행복만을 구하려 합니다. 그들은 은혜를 주 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이 세상과 이웃에 대해 불평하기 시작하며 급기야는 삶의 곤비를 느끼는 것입니다.
3)욥과 같이 육신의 고통과 질병, 건강의 악화는 큰 비탄을 느끼게 할 뿐 아니라 숱한 마음의 고통과 슬픔에 빠지게 한다. 이처럼 인간은 육신의 고난으로 인해 삶의 회의와 무미성을 느낄 때마다 곤비함을 느 끼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때마다 자신의 삶의 목적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부여하신 삶의 본질을 생각해 삶의 본연의 자세를 찾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계속 즐거움만을 누리도록 하지는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우리를 세우신 목적을 이루 시기 위해 때로는 우리에게 고통이 오도록 예비하기도 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것을 기꺼이 받다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이다.
3.어두움의 땅 =
1)죽음은 어두움의 땅으로 인도한다.
a.우리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알 수가 없다. 과학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투시할 수 없는 것이다. 과학은 '보이지 않는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뿐이다. 철학은 영 혼의 불멸성을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피할 수는 없다. 인간의 마음이란 이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무서운 벽에 헛되이 대항하 므로 좌절하고만다. 한 사람 한 사람씩 절친한 친구들이 우리를 떠나 가 버린다. 어두운 문은 이들을 맞이 하기 위하여 열려지고 있다. 그러나 결코 한줄기 빛도 거기에서는 비쳐 나오지 않는다. "휴식은 침묵 이다"
b.우리는 자연적인 본능에 의해 죽음을 무서워한다. 무덤은 우리 에게 두렵고 무서운 것이다. 우리는 죽음의 땅에서 무서운 상상을 가지 고 사는 것이다.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늘 기도 힘쓰면 큰 권능 얻겠네 (찬송 197장 1절)
1이 세상은 험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비록, 사람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져 있고 또한 다스려지지만, 우리 인간이 살아가기에 참으로 힘든 것이 험한 이 세상입니다. 짐승 이나 다른 사물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다. 천둥이나 번개, 또는 지진과 같은 자연 현상이 그다지 무서운 게 아닙니다. 우리를 정말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인간들자신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다른 사람을 아 주 힘들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2이처럼 사람들로 이루어진 세상 속에서 여러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 며 살아야 하는 나 자신은 너무 연약한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구 나 다 세상을 즐겁고도 유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을 것이나, 그것 이 맘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애를 태우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모든 사람들과 다 잘 어울리고 화목하게 지내면서 칭찬받는 생활 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살아가다 보면, 별 일 아닌 것 가지고서도 갈등을 일으키며 속상해 하는, 아주 나약한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인데도, 하루 종일 그 문제 를 가지고 괴로와하면서 씨름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다른 일까지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쉽게 잊어버리면 다른 일에 영 향을 주지 않을텐데, 그것을 극복할 만한 능력이 우리에게는 대부분 없기 때문에, 스스로 안타까와 하면서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3 늘 기도에 힘쓰면 큰 권능을 얻을 수 있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기도가 우리의 연약함을 벗어나게 해 줍니다. 기도에 힘쓰면 큰 능력 을 얻어서 인생의 고비가 있을 때마다, 그 고비를 넘길 수 있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기도를 하게 되면, 주께서 지혜를 주셔서 일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생명 되시니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친구 되시니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기쁨 되시니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소망 되시니 (93장 첫 부분들) 눈물이 앞 을 가리고 내 맘에 근심 쌓일 때 위로하고 힘 주실 이 주 예수 (93장 3,4소절) 이와 같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실 뿐만 아니라,생명이 되시고 친구가 되시며, 기쁨과 소망이 되시는 주님이건만,우리는 죽음을 생각하는 보 잘 것없는 믿음을 가진 것은 아닌가기도하며 준비하는 사람이 됩시다.
1.고통이 강해 질수록 욥은 육신의 고통이 경감되기를 바랄 뿐 아니라 이로 인해서 야기된 정신적 불안감에서도 벗어나 평안을 누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곳은 매우 암울하고 어둡게 언급하고 있다.(21, 22절)
1).죽음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가 나타나기 이전 욥 시대에 널리 퍼져 있던 사후관을 보여주며
2).욥이 죽음을 예찬하던 이전의 자신의 태도를 바꾸어 생에 대한 강한 애착과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몸짓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우리가 어떠한 일을 당할지라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에 도전하는 것은 죄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고난과 역경이 닥칠 때일수록 하나님의 품에서 더욱 가까이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2.삶이 곤비한 이유 삶에 대해 애착을 갖고 자신의 생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순수한 본능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의 삶에는 곤비함이 더불어 있기 때문에 인생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때문에 본문에서도 욥도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1절)로 고백했던 것이다. 이제 삶의 곤비는 어디에서 연유하는지를 살펴 신앙으로 극복하도록 하자.
1)우리의 삶을 죄악된 목적이나 그 수단으로 사용할 때 우리의 삶은 곤비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이다. 이 곤비함은 자기 의 삶을 정도에서 벗어나게 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그릇 되이 사용한 어리석음에 대한 대사가로 나타나는 것이다.
2)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자기의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께서 주신 은혜로 개인의 행복만을 구하려 합니다. 그들은 은혜를 주 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이 세상과 이웃에 대해 불평하기 시작하며 급기야는 삶의 곤비를 느끼는 것입니다.
3)욥과 같이 육신의 고통과 질병, 건강의 악화는 큰 비탄을 느끼게 할 뿐 아니라 숱한 마음의 고통과 슬픔에 빠지게 한다. 이처럼 인간은 육신의 고난으로 인해 삶의 회의와 무미성을 느낄 때마다 곤비함을 느 끼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때마다 자신의 삶의 목적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부여하신 삶의 본질을 생각해 삶의 본연의 자세를 찾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계속 즐거움만을 누리도록 하지는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우리를 세우신 목적을 이루 시기 위해 때로는 우리에게 고통이 오도록 예비하기도 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것을 기꺼이 받다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것이다.
3.어두움의 땅 =
1)죽음은 어두움의 땅으로 인도한다.
a.우리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알 수가 없다. 과학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투시할 수 없는 것이다. 과학은 '보이지 않는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뿐이다. 철학은 영 혼의 불멸성을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피할 수는 없다. 인간의 마음이란 이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무서운 벽에 헛되이 대항하 므로 좌절하고만다. 한 사람 한 사람씩 절친한 친구들이 우리를 떠나 가 버린다. 어두운 문은 이들을 맞이 하기 위하여 열려지고 있다. 그러나 결코 한줄기 빛도 거기에서는 비쳐 나오지 않는다. "휴식은 침묵 이다"
b.우리는 자연적인 본능에 의해 죽음을 무서워한다. 무덤은 우리 에게 두렵고 무서운 것이다. 우리는 죽음의 땅에서 무서운 상상을 가지 고 사는 것이다.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늘 기도 힘쓰면 큰 권능 얻겠네 (찬송 197장 1절)
1이 세상은 험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비록, 사람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져 있고 또한 다스려지지만, 우리 인간이 살아가기에 참으로 힘든 것이 험한 이 세상입니다. 짐승 이나 다른 사물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다. 천둥이나 번개, 또는 지진과 같은 자연 현상이 그다지 무서운 게 아닙니다. 우리를 정말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인간들자신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다른 사람을 아 주 힘들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2이처럼 사람들로 이루어진 세상 속에서 여러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 며 살아야 하는 나 자신은 너무 연약한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구 나 다 세상을 즐겁고도 유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을 것이나, 그것 이 맘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애를 태우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모든 사람들과 다 잘 어울리고 화목하게 지내면서 칭찬받는 생활 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살아가다 보면, 별 일 아닌 것 가지고서도 갈등을 일으키며 속상해 하는, 아주 나약한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인데도, 하루 종일 그 문제 를 가지고 괴로와하면서 씨름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다른 일까지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쉽게 잊어버리면 다른 일에 영 향을 주지 않을텐데, 그것을 극복할 만한 능력이 우리에게는 대부분 없기 때문에, 스스로 안타까와 하면서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3 늘 기도에 힘쓰면 큰 권능을 얻을 수 있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기도가 우리의 연약함을 벗어나게 해 줍니다. 기도에 힘쓰면 큰 능력 을 얻어서 인생의 고비가 있을 때마다, 그 고비를 넘길 수 있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기도를 하게 되면, 주께서 지혜를 주셔서 일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생명 되시니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친구 되시니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기쁨 되시니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소망 되시니 (93장 첫 부분들) 눈물이 앞 을 가리고 내 맘에 근심 쌓일 때 위로하고 힘 주실 이 주 예수 (93장 3,4소절) 이와 같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실 뿐만 아니라,생명이 되시고 친구가 되시며, 기쁨과 소망이 되시는 주님이건만,우리는 죽음을 생각하는 보 잘 것없는 믿음을 가진 것은 아닌가기도하며 준비하는 사람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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